지난 기획/특집

[그리스도의 수난, 영화로 본다] (3) 몬트리올 예수(1989)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8-03-06 수정일 2018-03-06 발행일 2018-03-11 제 3085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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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위한 희생, 지금 이 순간도 이어지고…
타락한 사회와 교회의 모습은
예수를 박해했던 모습과 맞닿아
점점 예수를 닮아가는 주인공
장기기증으로 부활 의미 보여줘

예수를 다루는 영화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예수를 주인공으로 직접 다루거나 혹은 예수 삶의 모범과 가르침을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로 형상화하는 영화. 몬트리올 예수(Jesus De Montreal, Jesus Of Montreal, 1989)는 후자에 속한다. 다니엘이라는 무명의 젊은 연출가이자 배우인 주인공은 바로 예수 수난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 예수의 형상이다.

■ 수난에 대한 비판적 성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감독 멜 깁슨과 마찬가지로 ‘몬트리올 예수’의 감독 데니 아르캉(Denys Arcand) 역시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언론과의 인터뷰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는 원래 가르멜 수녀회의 수도자가 되길 원했다고 한다. 그 역시 세례를 받았고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를 9년간 다녔다. 따라서 그가 ‘몬트리올 예수’를 만든 것이 우연은 아니었던 듯하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상업영화로 자신의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자본주의와 물질주의에 철저하게 물든 상업영화에 염증을 느끼고 캐나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게 된다. 10여년의 다큐멘터리 제작 후, 그는 ‘미제국의 몰락’(The Decline of the American Empire, 1986)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수다만으로 구성한 이 영화를 통해 아르캉 감독은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비롯해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관객들은 ‘몬트리올 예수’를 통해서도 부조리와 가식에 대한 비판, 특별히 현대의 각종 제도와 법규부터 엔터테인먼트 산업 그리고 교회의 단면들과 일부 성직자들의 그릇된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타락한 현대 사회와 교회의 모습은 예수를 박해했던 유다인과 당대의 사회적 모순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예수의 수난은 현대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 영화 속 수난극

영화의 내러티브는 연극과 영화를 넘나든다. 오래 된 이야기, 즉 성경 속 이야기를 재해석해 현대 연극으로 각색하고 파격적으로 각색한 연극을 다시금 영화 속에 배치함으로써 여러 층위의 각색을 수행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때론 영화 속 연극을 보고 때론 연극에서 빠져나와 연극 밖의 영화를 보게 된다. 때문에 영화를 감상하다보면 다소간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주인공 다니엘은 몬트리올 본당 신부의 요청으로 수난극을 현대적으로 각색해 공연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하지만 그는 전통적인 예수 수난극이 아니라 최근의 고고학적 주장과 사료들을 바탕으로 대본을 새로 쓰고, 수난극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경력의 배우들을 새로 캐스팅한다.

예수의 행적을 새롭게 해석한 다니엘은 연극 공연을 막는 교회 측의 반대에 부딪히고, 배우를 모욕하는 면접관과 몸싸움을 벌여 유치장 신세를 진다.

불의한 현실과 타락한 성직자와의 싸움은 고통스러웠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는 결국 자신이 의도한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다. 하지만 공연 도중 쓰러진 십자가에 깔려 다니엘은 죽음을 맞고, 장기기증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생명과 빛을 선사한다.

■ 다니엘과 친구들 vs 예수와 제자들

영화 속에서 연극과 현실은 같은 흐름을 갖는다. 다니엘과 배우로 캐스팅된 친구들의 삶은 예수와 제자들의 수난과 묘하게 겹쳐지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각색한 수난기와 예수 수난 이야기를 겹쳐서 전개함으로써 영화는 예수의 삶, 나아가 이 시대 예수의 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예컨대, 다니엘은 맥주 광고 오디션 현장에서 모델들에게 옷을 벗어보라는 광고주와 광고 감독, 면접관들의 언행에 분노해 집기를 부수고 난폭한 행동을 함으로써 법정에 선다. 이 장면은 성전에서 장사치들에게 분노를 터뜨린 예수의 모습이 떠오르게 한다. 법정에서 다니엘을 단죄한 판사는 빌라도를 연상시킨다. ‘천한’ 직업을 갖고 있던 다니엘의 친구들은 변변치 않은 신분을 가진 제자들과 비슷하다.

교회와 성직자에 대한 날선 풍자는 다니엘에게 연극 공연을 맡겼다가 다시 그 공연을 막아 선 신부에 대한 이야기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자수성가의 방법으로 성직을 택한 그 신부에겐 다니엘의 연극이 날리는 서슬 퍼런 비판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에 대한 형상화는 이 영화가 예수 수난에 대한 이야기임을 더욱 분명하게 한다. 다니엘이 십자가에 깔려 죽고 장기기증을 위해 수술대에 양팔을 벌리고 누운 모습은 십자가 위에 달려 희생됨으로써 온 세상을 구원하는 예수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이 영화에서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는 “기적은 오늘날에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다. 자신의 죽음이 다른 이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사했다면 그 또한 예수 부활의 의미를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행동의 하나일 수 있다. 부활의 기적은 여전히 가능하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