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에 맞서 들어올린 민주주의 횃불, 오늘을 비추다” 초대 원주교구장으로 28년 재임 유신헌법에 반대하며 양심선언 ‘정의와 인권’ 민주화의 길 걸어
주교회의는 지 주교 연행에 항의하며 같은 해 7월 10일 “정의의 실천은 주교들의 의무”라는 내용의 발표문을 내고 지 주교 지지를 선언하자 정부는 이튿날 지 주교를 풀어줬다. 한 차례 고초를 겪은 지 주교의 정의와 인권을 향한 외침은 오히려 더 커졌다. 그는 1974년 7월 23일 오전 서울성모병원(현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마당에서 “유신헌법은 진리에 반대되고 민주헌정을 배신적으로 파괴해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무효이며 공판을 위해 비상보통군법회의에 출두할 수 없다”는 양심선언과 사건과 관련된 비망록을 내외신 기자와 신자들 앞에서 발표했다. 박정희 정권에 충격을 던진 이 양심선언으로 지 주교는 그날 바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그해 8월 9일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 선고가 내려지자 전국적으로 사제들과 평신도들의 양심선언, 유신철폐와 인권회복을 촉구하는 기도회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1974년 9월 24일에는 1970~80년대 암울한 군사정권 아래서 민주화의 등불 역할을 맡았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원주 원동성당에서 결성되기에 이른다. 정의구현사제단 결성으로 지 주교 석방과 인권회복을 요구하는 시국선언과 기도회는 더욱 거세게 전국적으로 이어졌고 1975년 2월 17일, 지 주교는 800여 명의 환영인파가 몰려든 가운데 서울구치소를 나와 2월 19일 10개월 만에 원주교구로 복귀했다. 지 주교는 1993년 선종하기까지 원주교구장으로 봉직하며 험난한 민주화의 길을 헤쳐 나가는 한국사회에서 정신적 지주로 존재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