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떠나고 난 뒤 남는 것 / 권세희 기자

권세희 기자
입력일 2018-03-06 수정일 2018-03-06 발행일 2018-03-11 제 308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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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人死留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다. 우리 신앙인은 무엇을 남겨야 할까.

올해 선종 25주기를 맞는 고(故) 지학순 주교의 삶을 보면 그가 남긴 것으로부터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암울한 군부정권 시대, 부정부패가 극으로 치달을 때 그는 사목자이자 신앙인으로 세상이 드리우는 어두움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맞섰다.

그는 1971년 원주교구 원동성당에서 ‘사회정의 구현과 부정부패 규탄대회’를 열고 신앙인으로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당시 정권과 거세게 부딪히며 감옥에 투옥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1974년 7월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유신헌법은 무효”라며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던 거대악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는 ‘원주선언’으로 불린다. 이외에도 평생을 인권 신장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가 떠난 뒤에도 지학순정의평화상 등이 운용되는 등 그의 정신을 기리는 사업들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두운 면을 마주하고 있다. 연이어 터지는 사건들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다. 이럴 때일수록 신앙인으로서 무엇을 남겨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병들고 어려운 이들을 찾아 그들을 일으키셨듯, 교회와 신자들은 고통받는 이들의 편에서 행동해야 한다. 지학순 주교가 부조리에 맞서 몸소 행동으로 외친 것처럼, 때로는 진심을 담은 실천이 필요하다.

가난한 이들의 상처를 보듬고, 복음을 거부하는 불의에 맞설 때야말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남기는 것이 아닐까.

권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