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사상 최초 올림픽 경기장 내 ‘성폭력 상담센터’ 운영한 김성숙 수녀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18-02-26 수정일 2018-02-27 발행일 2018-03-04 제 3084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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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없는 올림픽 위해 노력했죠”

김성숙 수녀는 “폭력 피해자들이 자책감을 갖지 말고 용기를 내야 한다”면서 “우리 사회가 피해자 인권을 위해 더욱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떻게 하면 착한 목자가 될 수 있을까?’

이 고민으로 시작해 지난 21년 동안 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일에 발 벗고 나선 수녀가 있다. 김성숙 수녀(착한목자수녀회)는 그동안 여성 폭력 문제 해결에 앞장서온 ‘폭력 피해 여성 전문가’인 만큼 직함도 다양하다. 폭력 피해 여성을 구조하는 여성 긴급전화 1366 강원센터장과 1366 전국 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특히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이하 평창올림픽)와 패럴림픽대회 기간에는 성폭력 상담센터 총괄책임을 담당하고 있다. 강원 평창 보광휘닉스파크 경기장 내에 위치한 ‘성폭력 상담센터’에서 김 수녀를 만났다.

“성공적인 평화 올림픽을 위해서 꼭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제대로 된 시스템도 없었지만 제겐 든든한 ‘빽’인 하느님이 계셨습니다. 수도복이 주는 힘도 있었고요.”

올림픽 사상 최초로 경기장 4곳에 성폭력 상담센터를 연 김성숙 수녀는 “성폭력 피해 없는 평화 올림픽을 만들기 위해 성폭력 상담센터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이어 “올림픽 최초로 문을 열어 구체적인 매뉴얼이나 규범 등 갖춰진 시스템이 없었지만 성령으로부터 오는 엄청난 힘 덕분에 잘 운영 중”이라고 덧붙였다.

상담센터는 평창 보광휘닉스파크, 알펜시아, 강릉 올림픽파크, 정선 알파인경기장 관람객 구역 등 4곳에 설치, 평창패럴림픽 대회 기간인 3월 18일까지 운영한다. 상담센터는 매일 경기 일정에 맞춰 하루 8~9시간가량 탄력적으로 운영하며 그 외 시간에는 다누리콜센터(1577-1366)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13개국 언어로 성폭력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김 수녀가 경기장 내 상담센터 설립을 준비한 것은 지난해 4월경이다.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가 2만2000여 명이고, 그 중 20대 초반 여성이 70%를 차지한다. 김 수녀는 무엇보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다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김 수녀의 취지에 공감한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와 강원도청은 상담원 인력을 구축했다. 강원도청은 강릉·원주·춘천·동해 가정·성폭력상담소 등 전문상담자격 요건을 갖춘 도내 7개 성폭력 상담소 전담상담원 27명을 시설별로 1~2명씩,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는 시설별로 영어통역 자원봉사자 2~3명씩을 각각 배치했다.

지난 2월 24일까지 이곳을 찾은 이들은 20명 남짓. 피해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는 없지만 피해자들이 노출을 극도로 꺼려하고 가해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여느 성폭력 사례와도 비슷했다.

김 수녀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자책감을 갖지 말고 용기를 내라”고 조언한다. 피해자들이 용기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조치 없이 다시 피해가 벌어진 현장으로 돌아가야 할 때 김 수녀의 마음은 가장 아프다. 김 수녀는 “가해자만 내쫓는 외국과 달리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쫓겨나는 상황을 염려해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 망설이는 사례가 많다”면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변화해야 할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녀서 또 짧은 치마를 입어서 그렇다는 등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 분위기와 인식도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은 중요하다”고도 조언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가장 아픈 상처는 “인생 망했다”, “성폭력 피해는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등의 주변 시선이다. 김 수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는 없다”면서 “제대로 치유하면 피해자 누구든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며 건강하고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근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미투(Me Too) 운동’ 확산에 대해서는 “여성 안전, 여성 폭력 근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투 운동이 단순히 개인의 피해 내용을 알리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고 우려했다. 자극적인 상황 묘사로 인해 본질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수녀는 ‘미투 운동’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성폭력특별법을 공소시효 폐지를 비롯해 성추행, 성희롱 관련 처벌 강화 등으로 이어져야한다고 강조했다.

김 수녀의 또 다른 꿈은 ‘1366 평양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을 보며 하느님께서 얼마나 한반도를 사랑하고 있는 지 봤어요. 얼른 통일이 돼 여성 폭력 피해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평양에도 1366센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