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흥부가 기가 막혀 / 노중호 신부

노중호 신부 (성남대리구 서부본당 주임)
입력일 2018-02-26 수정일 2018-02-26 발행일 2018-03-04 제 308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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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 신부님. 신부님” 사제관 대문에서부터 우렁찬 노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겨울이 시작될 때 이웃 사랑 나눔으로 김장을 해서 나누어 드린 요셉 어르신이 와 계셨습니다.

“어르신, 무슨 일이셔요?”

“신부님, 쌀 좀 가져왔습니다.”

“아이고 어떻게 쌀을 다 가져오셨어요?”

처음에는 동사무소나 은인에게서 받으신 쌀을 가져오신 줄 알고 그냥 집에서 따뜻한 밥 해 드시지, 왜 무겁게 이 먼 거리를 가져오셨나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있으니 눈물이 나듯 감동이었습니다.

“신부님, 받아먹고만 살아서 제가 쌀 좀 샀습니다. 신부님 드리면 배고픈 사람 잘 나누어 주실 것 같아서요.”

단칸방에 아주 어렵게 사시는 요셉 어르신이십니다. 거동도 불편하시고 자녀들조차 나 몰라라 하며 관심 갖지 않아 홀로 조용히 생활하는 분이십니다. 그런 어르신께서 아예 저의 생각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도움받고 사는 사람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기쁨도 없어야 하는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앞만 보고 달리라고 강요하니 옆을 볼 겨를이 없습니다. 꽃을 밟고 지나가는 것도 모르게 짓밟고 가는 세태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앞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옆을 보아야 꽃을 제대로 봅니다.

이미 수십 년 전에, 최귀동 할아버지는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자존심 다 구겨가며 어렵게 얻은 음식을 너무 배고파서 바로 먹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리고 그 양은 본인도 먹기 부족합니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다리 밑, 거지촌,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동냥해 온 음식을 다 나누어줍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이 가르침을 온몸과 온 마음으로 가르쳐 줬습니다. 그래서 거지촌이 아니라 꽃동네가 이루어집니다.

놀부가 너무 많은 세상입니다. 가지고 또 가져도 부족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면 차라리 낙타가 바늘귀 먼저 빠져나가는 게 쉽지 놀부는 하늘나라에서 멀어집니다. 놀부를 탓할 것이 아니라 흥부가 좀 더 많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흥부가 기가 막힌 건 흥부 스스로 못된 세상에 비관적으로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 명 한 명이 흥부가 되어 기가 막히게 좋은 세상으로 변화시키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놀부의 아내에게 밥주걱으로 맞아도(형수! 밥풀이 이쪽 볼에도 묻게) 다른 한쪽도 때려달라고 허허 웃을 수 있는 흥부가 더 많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종이와 펜을 잡아 하느님의 자녀로서 내 이름과 세례명을 써봅시다. 그리고 남은 사순 시기 동안 ‘흥부가 기가 막혀’ 작전을 써봅시다. 아주 구체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선행과 자비를 찐하게 써봅시다. ‘자비’는 히브리어로 어머니 배 속(자궁)을 뜻한다고 합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움이 필요한 아이처럼 내 품에 받아들이고 그가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품고 다니며 사랑으로 감싸준다는 의미로 활용합시다.

나는 흙의 먼지처럼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느님의 자비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2000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남이 너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의 황금률을 이루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노중호 신부 (성남대리구 서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