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고양이와 나누는 몇 가지 사랑에 대하여 / 이경자

이경자 (안나)소설가
입력일 2018-01-23 수정일 2018-01-23 발행일 2018-01-28 제 308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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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접어든 후, 아주 드문 경우긴 하지만 자정을 넘겨서 들어올 때가 있다. 저녁을 먹고 술자리를 거처 노래방까지 다니다 보면 자정이 훌쩍 넘어간다. 그래도 택시를 타지 않고 막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그것도 행운인데 자정 넘은 시간에 그런 행운을 얻긴 쉽지 않다. 어쨌든 집에 와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유리 미닫이 뒤로 어른거리는 두 개의 그림자가 훅 들어온다. 까몽이와 몽돌이. 함께 사는 고양이다. 그 애들은 느리게 신발을 벗는 나를 초조하게 바라보고 일부러 주춤거리면 한껏 화가 돋은 목청으로 ‘야옹!’ 소리 지른다. 눈빛에도 화가 찼다. 하지만 나는 어찌나 행복한지! 그 애들이 이제나저제나 할머니집사가 돌아오길 바랐을 애정이 느껴져서 마음이 저릴 지경이다. 나를 기다려주는 생명! 많지 않다.

저녁밥을 먹고 뉴스를 보면 그 애들은 내가 잘 보이는 곳에 눕거나 앉아서 집사를 바라본다. 졸려도 잠자리에 가지 않는다. 꼭 내가 보이는 곳에 있다. 그러다가 이윽고 텔레비전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면 그때 졸다가도 벌떡 일어나 앞서거나 뒤따른다. 아이들은 내 잠자리 곁에 붙여 놓은 방석과 바구니에 들어간다. 나도 누워서 머리맡의 등을 끈다. 그럼 순식간에 내 다리 사이로 와서 눕는 까몽. 사람 나이로 중년이 된 그 애는 살이 쪄서 몸이 두더지 모양이다. 엄청 무겁다. 그래도 가뿐하게 다가와서 다리 사이로 들어가 잠깐 폭을 살피다가 눕는다. 그 애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다.

혹시 그 애의 마음은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집사의 다리 한쪽에 머리를 대고 다른 다리엔 엉덩이를 대고 누우면 푸근할 뿐 아니라 안정감이 생기는 게 아닐까? 집사엄마는 절대로 어디 가지 못한다, 내가 이렇게 지키니…, 이런 맘일까 상상한다. 그러나 내가 오래 견디지 못한다.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그래서 그 애를 들어다가 그 애의 머리를 내 오른편 팔에 얹어서 눕힌다. 이럴 때마다 우리 둘 사이에 소리 없는 싸움이 생긴다. 나의 태도가 그 애를 소중하게 다루지 않고 짜증스러워 하는 게 분명할 때, 그 애는 귀신같이 알고 훌랑 빠져 나가버린다. 나가서 밥을 먹는 것이다. 아마 먹는 것으로 화를 달래는 모양이다. 그래서 살이 쪘다.

고양이는 사람보다 정확하다. 진실한 것과 거짓인 것을 어찌나 잘 알아차리는지, 그 분별력은 순수의 힘일 거라 생각된다. 사람은 속이거나 속지만 고양이는 장난을 치되 속이지 않는다.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서. 그 애의 털을 밀어줄 때, 나의 빗질에 까몽은 화를 낸다. 하지만 손길이 부드러우면 그 애의 입에서 고릉고릉 소리가 나고 스스로 몸을 뒤채서 이곳저곳 골고루 밀게 한다.

몽돌이는 내 전화기의 수신음이 울리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내게 알려준다. 까몽이는 방문자의 벨소리가 나면 뚱뚱한 몸으로 현관 문 쪽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낯선 사람이 오면, 가령 가스 검침이라거나 물건을 배달하는 경우 겁주는 소리로 으르릉거린다.

자식을 낳아 그 애들을 기를 때 느낀 행복감과 거의 다르지 않는 행복을 주는 나의 반려, 까몽이와 몽돌에게 감사!

이경자 (안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