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19) 독특한 성소 판별법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1-16 수정일 2018-01-16 발행일 2018-01-21 제 307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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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미사 앞둔 새 사제
수도회 동료 의견 분분해도
‘아버지 신부님’은 고마울 따름

예전에, 잘 알고 지내던 수사님이 사제로 서품을 받아 첫 미사에 초대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주일 날 아침, 그 수사님의 출신 본당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한 터라 성당 마당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느 신자 분이 내가 첫 미사에 온 줄로 알아보시곤 본당 사제관으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사제관에 들어갔더니, 이미 세 분의 신부님이 와 계셨습니다. 다행히 그 수사님의 본당 신부님과는 안면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신부님들과 악수를 한 후 자리에 앉았고, 이어서 첫 미사에 초대된 또 다른 신부님들 몇 분이 사제관으로 들어왔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교구 신부님이셨지만, 본당 출신 수도회 신부님의 첫 미사에 굉장히 신경을 써 주셨습니다.

오신 분들은 새 신부님과 같은 수도회 신부님들 몇 분, 알고 지내던 교구 신부님과 새 신부님께 추천서를 써 주신 ‘아버지 신부님’이셨습니다. 첫 미사 시간을 기다리던 우리는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대화 주제는 새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새 신부님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 당시 소속 본당의 보좌 신부였던 신부님은 새 신부님의 고등학생 시절 모습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교구 신부님이면서 새 신부님의 ‘아버지 신부님’이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참 못난 아버지 신부예요. 새 신부님이 수도회 입회를 결심했을 때 단지 추천서만 써 준 것 밖에는 없어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한 채 방치만 했어요. 그런데 작년인가 이 친구가 종신서원식을 한다고 초대장을 보내왔기에 그 미사에 갔어요. 그때 보니 몇 명이 함께 종신 서원을 했지요. 신자 분들도 많이 오셔서 성당도 가득 찼고. 특히 그 수도회에는 젊은 수사님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종신서원식 미사를 하기 전후에 이 친구가 있는 수도회 수사님들에게 이 친구가 수도원에서 어떻게 사는지를 물어봤어요. 나도 참 짓궂었죠. 아마도 이 친구를 그저 방치했다는 죄책감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 심리에 급 관심을 가진 것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 친구와 함께 사는 수도회 수사님들이 이 친구의 이름을 듣더니 먼저 웃더라고요. 그런 다음 수사님들이 어찌나 웃으며 욕을 하던지! ‘너무 까칠해요’, ‘툭 하면, 나서기를 잘해요’, ‘잘 난 척을 너무 해요’, ‘감정 조절도 잘 못 해요’ 등.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고맙게도 나는 확신이 가더라고요. 이 친구를 수도회에 보낸 후 내 비록 방목했지만, 참으로 잘살고 있다고. 저는 잘 모르지만 수도회 안에서 동료 수사들이 어느 형제의 이름을 듣는 순간 먼저 웃음 띤 얼굴을 가진다는 것은 마음으로는 서로 통한다는 뜻이잖아요. 그리고 수사님들이 하는 욕의 내용을 들어보니, 이 친구가 수도원 안에서 분명한 소신과 철저함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떻든 수도원 안에서 자기표현을 하고, 자기 생각을 말하고. 그래서 동료들이 웃으면서 이 친구를 욕하는 것이 내 귀에는 ‘열심히 부딪히며 잘살고 있습니다’ 뭐 이렇게 들렸어요. 허허. 암튼 그 후 오늘 이렇게 사제품을 받은 후 첫 미사까지 하고 있으니 기특하죠. 앞으로도 쉽지 않을 수도생활, 잘 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 친구가 수도 생활 자체가 주는 철저함과 자신의 성소에 대한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산다면, 하느님께서 이 친구를 앞으로도 좋은 수사 신부로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아들 신부의 성소를 잘 지켜 준 수도회에 늘 고맙기도 해요.”

그 날 새 신부님 ‘아버지 신부님’의 성소 판별법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또한 그 말씀 속에는 부르심의 길에 오래 몸담은 사제의 경륜이 묻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해 ‘아하, 그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아버지 신부님, 참 맞는 말을 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