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전신마비 시련 딛고 사제품 받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조남준 신부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8-01-02 수정일 2018-01-02 발행일 2018-01-07 제 3077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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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제가 신부가 됐다는 것이죠”

‘퍽’! 한 순간에 추돌해온 차량과 충돌했다. 촬영 작업을 마치고 한밤중에 이동하던 중이었다. 엄청난 충격에 뒷좌석으로 튕겨나갔다. ‘억’소리 조차 내지 못했다. 전신마비.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2007년 6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7년 12월 18일. 온전히 서서, 무릎 꿇어 장궤를 하고,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려 사제품을 받았다. 그를 만나는 이들마다 일어나 걷는 것을 기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제가 된 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29세 청년이 한순간에 전신마비로 ‘통나무 인간’이 됐다. ‘나에게 이런 사고가 생길 거라곤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는 조남준 신부. 하느님 사랑 안에서 10년이 지난 지금, 조 신부는 “나는 지금 일어나 있고 자유롭다”고 말한다.

“신부님~”하고 부르면 “어? 날 부르는 건가”하면서 설핏 망설이다 돌아본다. 아직은 ‘신부’라는 호칭이 어색하고, 여전히 ‘수사’가 좋다고 말하는 조남준 스테파노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다. 서품식 뒤 며칠간 이어진 미사 봉헌을 마치고서야 마주할 수 있었다. 실제 10년간 기다린 이야기였다. 대체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 ‘왜 하필 나?’

서울예술대학교 방송연예학과를 졸업하고 지미집(크레인과 같은 구조 끝에 카메라를 설치한 장비) 카메라감독으로 승승장구하던 시기였다. 교통사고는 스물아홉 살 청년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겨우 눈을 뜨자 처음 들은 말은 ‘목이 부러졌다’, ‘전신마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으스러진 목뼈를 제거하고 골반 뼈 일부를 갈고 철심으로 박아 목을 지지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눈도 뜨고 말도 하고 정신도 또렷한데,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저 눈만 뜨고 있는 ‘통나무 인간’이라고나 할까. 매일같이 신자들이 와서 기도를 해줬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왜 죽지 못하고 살았을까?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왜 하필 나지?”

어머니가 병실에 십자고상을 들고 오셨을 때는 하느님은 없다면서 욕부터 했다. 말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죽을 수조차 없었다.

■ ‘할 수 있는 건 기도뿐’

고통의 연속이었다. 전신마비라고는 하지만 실체를 제대로 느낄 수도 없는 고통은 계속됐다. 무엇보다 배변이 고통스러웠다. 마비로 인해 신경이 죽고 근육이 마를 뿐 아니라 장기들도 거의 제 기능을 못해 강제 관장을 하고 어머니가 변을 받아내야 했다. “20대 청년이 누워서 똥을 싼다는 것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도리어 “아기 땐 네 똥을 받아내면서 얼마나 기뻤는데. 냄새도 안 난단다. 하느님께선 아기 때처럼 너를 다시 키우라고 하시는 거 같아”라고 말했다.

조 신부는 당시 어머니의 모습에서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끝까지 함께 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봤다. 어느 순간, 그 또한 그토록 부인했던 하느님을 찾고 있었다. 그는 “누워서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 ‘감사는 변화의 시작’

어느 날 어머니는 “지금 이 상태를 받아들이자,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자”고 권했다. 거짓말처럼 그의 마음도 움직였다. 욕창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보며 몸이 깨끗한 현실에 감사했고, 교통사고로 지능을 잃은 환자를 보며 머리도 멀쩡하고 부모님을 알아보며 대화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워주시기 위해 사고를 겪게 해주신 건 아닐까…. 감사하는 마음은 나만 바라보고 있던 내 시선을 이웃들에게로 옮겨줬습니다. 그동안 모든 것을 내 힘으로 노력해서 얻은 건 줄 알았는데, 모두 하느님께서 허락해주셨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겼다. 오른쪽 손가락이 움직였다. 당시엔 한 손만이라도 움직여 혼자서 배변 처리를 하는 것을 가장 큰 바람으로 품고 있었다. 힘겨운 재활치료를 거듭하면서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고 침대에서 내려오고 일어서고 드디어 걷게 됐다.

교통사고가 나기 전엔 지미집 감독으로 승승장구했던 조남준 신부(위). 수련 시절의 모습(가운데). 지난해 12월 18일 서울 새남터순교성지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던 날.(아래)

■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입원해 있던 중앙대병원 원목실 담당 홍상표 신부(현 서울 가락시장본당 주임)는 “원목생활을 오래 했지만 전신마비 환자가 다시 걷는 것을 본 적은 없다”면서 “다른 삶을 살면 좋겠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빨리 회복해 다시 카메라를 잡고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가득 차 있던 그는 ‘부르심’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퇴원 후에도 이 생각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부모님과 함께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떠나면서 ‘성소가 나의 길인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곧바로 다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서면서 ‘내가 무사히 다녀오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건 하느님께서 내가 성소의 길을 걷길 바라시는 징표’라고 생각했다.

순례는 사제성소에 대한 확신을 줬다. 하지만 나이 때문에 교구 성소자로선 거절을 당했다. 청소년들에게 카메라 기법을 가르치는 수도자가 되겠다는 꿈도 거절당했다. 그러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를 소개받았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이 수도회에 발을 내디딘 순간, 공동체가 합송하는 기도소리를 듣자 마음이 설레었다.

■ ‘늘 나와 함께 계시는 분’

“기적은 바로 제가 신부가 됐다는 것입니다.”

전신마비에서 회복해 걸어다니는 것이 기적이 아니었다. 하느님께서는 감사할 게 넘쳐나는 삶, 무엇이든 하느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단 것을 아는 삶,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고통의 순간에도 나와 함께 계셨고,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사고도 허락하신 것”임을 깨달았다. 조 신부는 바로 그런 변화가 기적이라고 말한다.

서품 성구는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 17)로 정했다. 조 신부는 영신수련 피정 중 이 성경구절을 읽으면서 자신이 대답하기에 앞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대답을 먼저 들었다고.

“어떤 일을 겪든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감사는 제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좋은 것만이 아니라 고통 또한 은총이라는 것, 조 신부는 묵상 중에 깨달은 은총의 가치를 여전히 되새긴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인지 많이 고민하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특히 이러한 노력은 수도 ‘공동체’ 안에서 ‘기도’를 하면서 다져진다고 강조한다.

“독자분들도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떠올려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을 잊고 세상일에 바쁘게 달려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서 말입니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