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항상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 / 박태웅 신부

박태웅 신부 (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전담)
입력일 2018-01-02 수정일 2018-01-02 발행일 2018-01-07 제 307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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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사람들은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도 좀 약하지 않은가요? 왜냐하면 그 말도 단면일 뿐, 어떻게 감히 삶의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 것일까요? 선과 악(죄)을 분별하는 것 빼고는, 분석하고 고를 필요 없이 모든 것이 다 중요하고 필요한 것 아닐까요? 돌아다보니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었네라는 고백처럼 말입니다.

저는 이 중 한 가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교(가톨릭)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 유일신이신 하느님, 계시를 통해 사람의 모습으로 강생하신 역사신이시며 인격신이신 하느님이라는 확고한 신을 가진 종교, 그리고 ‘서로 사랑하여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랑’을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가르치고 선포하는 종교라는데 있다고 봅니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그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신 그 사랑을 실천하는데 내 삶의 최고의미와 목적을 두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랑을 실천하는 것, 결코 쉽지 않지요.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내가 인간적으로 성숙해 있지 못하기에 힘들고,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함께 해야 하는 것으로 나 혼자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또 그렇고, 같은 이유로 내 방식으로 막하면 안되고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대상, 네 방식으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어떻게 하셨는지요?

사랑을 잘 실천하려면 ‘멈추는 것’(참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항상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판단을 멈추는 것. 나와 너의 사랑을 위해 판단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판단을 하면, 어쩌다 가끔 같은 경우도 만나겠지만, 나와 너 사이에 대립과 갈등과 다툼, 서로 다르다는 것이 드러날 뿐, 나와 네가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은 사라져 버립니다. 여지없이 결론을 내버렸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것이지요. 그리고 너를 향해 내 것이 움직이는 것, 내 안의 것이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멈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말 많은 조심과 노력이 필요하지요. 내 자신의 겸손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이것이 조금씩 되면 신기하게도 새로운 것이 시작됩니다. 아직 너무 느리고,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할 수 있지만,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살아있음이 느껴지지요. 고맙게 감동적으로. 상대방의 말과 태도, 얼굴표정 등의 여러 경로로.

너무 서두르면 안 되지요. 나는 없어지고 너를 헤아리는 것이 나의 관점이 됩니다. 내가 너를 보는 것은 한계(외면, 겉)가 있기에, 같은 사람인 나를 거울로 비추어봐야 보이겠지요.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며 함부로 넘겨짚는 것이 아니라, 너 자체를 헤아리고 이해하며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일체의 노력들, 즉 위로하고 격려하고 돕고 나누는 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사랑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실천적인 노력과 위와 같은 너에 대한 나의 태도와 자세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할 수 있을까요? 결정적으로 너의 인생은 내가 살 수 없고 ‘너’가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너무 작은 것일 수 있지요. 그리고 근심하고 걱정할 필요 없이 이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먼저 나는 과연 이 경계를 잘 알고 의식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조용히 기도하며. 함부로 경계를 넘나들면 안 되겠지요. 나에게 그럴 권리도 권한도 없습니다. 내 중심적인 잘못된 생각으로 억지를 부리며 함부로 경거망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면서.

박태웅 신부 (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