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신앙살이 세상살이] (416) 어느 젊은 수도자의 고백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
입력일 2017-12-26 수정일 2017-12-26 발행일 2018-01-01 제 3076호 21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순명하면 잘 될 것’ 다짐에도 인사이동 소임지에 충격받아
사제의 삶 되돌아보는 계기

예전에 다른 수도회 소속의 선배 수사님을 만나러 어느 수도회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선배 수사님의 소임지가 남쪽 지방으로 변경돼 서울을 떠나시기 전에 인사를 드리러 간 것입니다.

그곳에는 선배 수사님과 비슷한 연배의 수사님, 종신서원을 앞두고 있는 젊은 수사님, 이렇게 세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젊은 수사님은 종신서원을 앞두고 실습 과정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내가 물었습니다.

“형, 10년을 넘게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우리나라의 남쪽 지역 거의 땅끝 지방으로 가게 되었는데, 어째 예상은 하셨어요?”

“아니, 하느님과 관구장님 밖에는 모르는 인사를 어떻게 예상을 해, 하하하. 사실 나 역시 조금은 꾀가 나기는 했어. 음…. 나이도 좀 있고, 혈압 약을 먹고 있고, 치과 치료도 받아야 할 일이 생겨서 내심은 서울을 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가지기는 했지, 뭐!”

“그러게요. 새로운 소임을 시작하는 것은 젊을 때나 가지는 열정 같은데. 젊을 때에는 새로운 소임을 받게 되면 오히려 설레기까지 했는데, 나이가 드니 새로운 소임을 받아 떠나기가 그리 쉽지 않죠.”

“그러니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해야지. 사실 인사이동이 나기 전날, 여기 함께 사는 세 명의 형제들이랑 저녁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 내일이면 새롭게 인사이동 공문이 나올 텐데, 다들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지. 그러자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젊은 형제가 이런 말을 하더라. ‘매 순간 순명을 결심하며 산다면 수도생활의 모든 것은 다 잘 될 거라’고. 나는 그 형제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지. ‘우와, 우리 수도회에 이렇게 의식 있게 사는 젊은 형제들이 있다니 참 멋있다.’ 그리곤 그다음 날 인사이동이 났어. 내 이름을 보니 나는 ○○ 지역 ○○ 담당으로 인사이동이 났더라고.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젊은 형제도 인사이동 명단에 있었던 거야. 해외에 있는 가난한 교회의 선교사로 임명을 받은 거지. 나는 그 전날 형제가 했던 말도 있고 해서 다들 아무렇지도 않겠거니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아닌 거야. 그 젊은 형제의 얼굴이 하얗게 사색이 된 거야. 그리고 그날도, 그다음 날도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하더라.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그저 몸이 안 좋은가 보다 했어. 그리고 2~3일이 흘렀나, 아무튼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데, 그 형제가 식탁에서 한 마디를 하더라. 수사님들에게 죄송했다고. 인사이동 공문이 나기 전날, ‘순명’하면 모든 것이 다 잘 되리라는 감히 건방진 말을 했다고. 자신은 인사이동 소식을 보고, 내심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거라 생각했대. 그런데 전혀 자신의 뜻과는 다른 소임을 받고는…. ‘게다가 선교사 소임인데, 그 나라 말도 한 마디를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하면서 며칠을 잠도 못 자고, 큰 충격 속에 빠져 있었던 거야. 그러고 나서 깨달은 것은 복음 삼덕을 이해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살기는 정말 어렵다고. 특히 예상 가능한 ‘순명’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예상 불가능한 ‘순명’은 엄청난 충격적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은 인사이동에 아무렇지 않은 듯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도 놀랐다고 하더라. 하하하. 강 신부, 우리 삶 늘 그렇잖아. 오늘은 여기서 살고, 내일은 다시 소임지로 떠날 준비를 하는 삶. 나는 그래서 떠남을 준비하는 이 삶이 참 좋아, 하하하. 좀 있다 짐 싸서 내일 내려가야지, 하하하.”

젊은 수사님의 모습이 남 이야기는 아닌 듯했습니다. 그리고 선배 수사님의 말에서 배어 있는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살아가는 모습. 두 모습에서 나를 보았습니다. 나를…!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