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생각의 지혜 – 생각의 주인인 나 / 박태웅 신부

박태웅 신부 (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전담)
입력일 2017-12-26 수정일 2017-12-26 발행일 2018-01-01 제 307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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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내면(생각, 정신, 이성과 감성, 마음이라 불리는)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들어오고 나오고, 생기고 사라지고. 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나입니다.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대한 문단속에서부터, 생각을 하나의 정원에 비유한다면 그것을 아름답게 잘 가꾸기 위해 좋은 것은 심고 나쁜 것은 뽑아 주고, 물도 주고 햇빛도 잘 받을 수 있도록 가꾸고 돌보아주는 주인은 나인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과 이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생각의 주인이라고요?’라는 식으로, 생각이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것인 양, 아예 주인이라는 이런 관점과 의식조차도 없구나 하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생각의 주인은 나입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내적 건강을 위해서 주인 노릇을 잘해야겠지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생각이란 것이 오랫동안 굳어진 습관적인 것들과 관계가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얼마든지 조절하고 관리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생각이란 그 자체로 현실일까요? 내면의 생각은 있는 그대로 밖에 존재하는 현실이다?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예로 행복과 불행이라는 생각이 현실이라면 밖에 어딘가에 그것이 있어야 할 것이고 구해올 수 있어야 할 터인데, 그게 가능한가요? 가져올 수 있나요. 그런 것이 아니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행복과 불행이 네 안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생각이란 결국 생각일 뿐 그 자체가 현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번 볼까요. 많은 생각 속에 머리를 싸매고 고뇌하고 심각해야 열심한 걸까요?(마치 집안이 움직일 틈도 없이 온갖 잡동사니의 세간들로 채워져 있는 것같이) 나도 지금까지 그런 줄 알았지만, 진짜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보면 복잡하지 않고 거의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방금 전의 것들도 바로 잊어버리고, 천진난만하게 노는 어린이들을 보면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별것 아닌 것을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키우고 부풀려(추측, 상상) 심각해지거나 무거워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머리만 아프지요. 물론 이 움직임을 먼저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나의 감정과 기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이것 역시 생각과 관계있다고 봅니다. 신기하게도 내가 기분이 좋을 때는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생각, 기분이 나쁠 때는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안(내면)을 잘 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화, 분노, 불편함과 같은 부정적인 기분과 감정들이 만들어질 때 그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알아채고 즉시 멈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각을 멈춘다(?). 생각은 생각일 뿐 현실이 아니기에 멈춘다고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잘 안되겠지만 부단한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심지어 생각을 멈추는 것을 넘어서서 생각을 없애는 그곳에까지.(무념, 무아) 왜 고대의 수도승들이 진리는 사람들의 말과 언어 속에 있지 않고, 침묵 속에 있다는 말했을까요. 그리고 이 침묵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또 예수님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말씀에서, 가난한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내가 생각으로 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나의 생각에 너무 무게를 두거나 과신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생각, 과연 믿을만한가요? 고집부리고 논쟁하고 주장할 정도로. 제가 보기엔 별로.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믿음, 순종, 사랑, 희생, 겸손 등의 신앙의 가르침과 모범들이 더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내 생각이 비워지고 없어지는 그만큼, 그곳에 그것들이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박태웅 신부 (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