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15) 따뜻한 생일파티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
입력일 2017-12-19 수정일 2017-12-19 발행일 2017-12-25 제 3075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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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자신의 생일이 되면, 2주 전에 [○월 ○일 ○시 ○○식당에서 본인의 생일 파티 있음. 꼭 참석 바람]이라는 문자를 보내는 동창 신부님이 있습니다. 사실 성직자나 수도자 대부분은 자신의 영명 축일은 본당 신자들이나 수도원 형제들과 함께 지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은 자신의 생일이 다가오면 동창 신부님들에게 문자를 보내서 생일 파티 날짜와 장소를 친절하게 알려 줍니다. 꼭 참석해야 한다는 부드러운 협박(?)과 함께.

아무튼 어제 그 신부님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습니다. 참석자는 동창 신부님 세 명, 가까운 지인 세 분 이렇게 총 일곱 명이었습니다. 생일 파티를 마쳐 갈 즈음, 생일을 맞은 주인공인 동창 신부님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해마다 이렇게 나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10년 동안 아무도 나에게 ‘영명 축일’만 하면 되지, 왜 ‘생일 파티’까지 하느냐고 묻거나 따지는 사람 또한 없었습니다. 오로지 나의 생일 축하를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함께해 준 여러분들이 고맙습니다.”

마음 짠–한 감사 인사를 하는데, 다른 동창 신부님들은 감사의 인사가 쑥스러운 듯 ‘야, 내년에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에 나가냐’, ‘왜 이리 무게를 잡느냐’, ‘아, 무슨 일장 연설을 하느냐’ 하며 웃음 띤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우리의 이런 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동창 신부님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전에 사제품을 받던 해엔 내 생일이 다가오자,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었지요. 아버지는 내게 ‘아들, 이제 축일이 되면 본당에서 신자들과 지낼 테니 앞으로 아들 생일이 되면 집에 와서 이 애비, 애미랑 함께 식사하는 겁니다. 알겠죠?’라고 말씀하셨고요. 그 후로 나는 생일이 되면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다 아시다시피 10년 전에 아버지께서… 정말 갑자기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셔서… 그 후로 내 생일이 돌아오면 아무런 말도 없이 홀로 하느님 품으로 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나더군요. 그렇다고 생일이라고 어머니랑 단둘이 밥 먹기도 쑥스러운 나이가 되었고.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지요. ‘그래, 생일이 되면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이런 내 마음을 알 것 같은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 좋겠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내 친구라서. 감사합니다, 내 동창이라서. 또한 갑자기 하느님 품으로 가신 우리 아버지의 빈자리를 이렇게 좋은 친구들이 채워 주셔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 역시 앞으로 좋은 친구, 좋은 사람, 그리고 좋은 사제로 살아갈게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의 길로 떠나보낼 때에, 그 사람으로부터 그 어떤 말도 듣지 못한 채, 갑자기 떠나보내야 할 때의 그 먹먹하고 가슴 답답한 그 심정. 참으로 많이 힘든 그리고 앞으로도 힘든 시간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어제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사람들 모두의 콧등이 많이, ‘훌쩍…’, 시큰해졌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