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 칼럼] (10) ‘아웅산 수치의 침묵’ / 마이클 세인즈버리

마이클 세인즈버리(UCAN 동아시아 담당 편집인)
입력일 2017-09-26 수정일 2018-09-19 발행일 2017-10-01 제 3064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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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의 압박… 교황은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지난 3주 동안, 세계는 미얀마 군부의 경악할만한 로힝자(로힝야)족 학살 작전을 지켜보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 5년 동안 줄기차게 로힝자족을 박해해 왔지만, 이번 작전은 전례없이 대규모로 진행됐다. 미얀마 군부의 박해와 테러에 시달리던 로힝자족은 급기야 아라칸 로힝자 해방군을 구성해 반격에 나섰다.

유엔 난민고등 판무관은 미얀마 군의 로힝자 반군 소탕작전을 명백한 ‘인종청소’라고 비난했다. 110만 명에 이르는 미얀마 내 로힝자족 중 거의 절반이 학살을 피해 피난을 떠났으니,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얀마 국가 고문이자 외교부장관으로서 사실상 미얀마를 이끌고 있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해, 세계는 실망을 넘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수치 여사의 침묵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미얀마 군부는 군뿐만 아니라 경찰력도 갖고 있다. 미얀마 헌법은 군부에, 선거를 하지 않고도 중앙과 지방의회 의석 1/4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은 2015년 총선에서 80%의 선거구에서 이기는 압승을 거뒀지만, 대부분 당선자들은 젊고 힘이 없다. 수치 여사의 정부는 여전히 군부가 민간인에게 자행하고 있는 공격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수치 여사에게 로힝자족 문제는 미얀마 군부가 파 놓은 함정 중 하나다. 서구의 미얀마 제재는 철회됐고, 미얀마에 투자금이 유입되고 있으며, 미얀마 군부는 서구의 투자금을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의 입지는 여전히 확고하고, 갈등은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이제 군부는 수치 여사의 평판을 깎아내리고 있고, 수치는 무력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오는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얀마를 방문한다. 그동안 교황은 평화와 난민 문제를 자주 거론했다. 로힝자족 문제가 불거지자 미얀마교회는 좀 더 ‘가톨릭’적인 이슈를 꺼내들어, 교황이 로힝자족을 언급하지 않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얀마와 로힝자족 문제를 하나의 꾸러미로 보고 있으며, 그는 아시아에서 가장 고통 받고 있는 로힝자족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 힘쓸 것이 분명하다.

수치 여사는 과거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신뢰와 지지를 얻고 정의를 위해 싸워왔고 그럴 의지도 있었다. 이제 수치 여사는 교황으로부터 힘을 얻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즉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도 아르헨티나에서 사목하던 시절 군부정권에 대항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당시 베르골료는 군부와 타협해야 했고, 지금은 바티칸의 기존 권력구조에 대항해 싸우고 있다.

수치 여사의 침묵은 분명 미얀마 정부의 무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이 수치 여사의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치 여사에게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한 장기계획이 없다는 뜻도 아니다. 분명 수치 여사는 침묵을 통해 필살의 각오로 자신의 정부를 지키고 있다. 미얀마가 다시 과거의 군부독재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엄청난 압력을 견디고 있다.

수치 여사에게 로힝자족 위기로 겪는 공포는 국내 정치문제와 깊이 연결돼 있다. 인생의 막바지에 빛나는 정치인으로 떠올랐지만, 수치 여사는 군부가 정해 놓은 한계선 앞에서 기 죽어 있다. 수치 여사는 자신은 정치인이지 ‘인권단체’가 아니라고 거듭 항변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수치 여사는 앞에 놓인 무자비한 정치적 카드로 도전을 받고 있다. 만일 수치 여사가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큰 도움을 줬던 엄청난 국제적 관심을 되찾기 위해 도덕적 신뢰라는 겉모습을 붙잡는다면, 변통의 기지가 필요할 것이다. 수치 여사는 로힝자족이라는 외통수에서 벗어나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면 그녀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마이클 세인즈버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동아시아 담당 편집인으로 아시아와 호주의 경제, 정치, 인권 분야에서 20여 년 동안 취재를 해왔다. 호주 일간지 ‘더 오스트레일리안’의 중국 특파원으로도 활동했다.

마이클 세인즈버리(UCAN 동아시아 담당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