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캄한 밤
라옐라는 컴컴한 밤인데 해뜨기 전까지를 라옐라라고 했다. 잠언에 보면 훌륭한 아내는 ‘아직 어두울 때(라옐라) 일어나 식구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준다’(잠언 31,15)는 구절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 식구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던 우리네 어머님들이 생각난다.
밤은 범죄의 시간이다. 솔로몬의 명판결을 보면, 자기 아이라고 다투는 두 여인이 나온다. 소송을 건 여인은 상대편 여인이 “그 라옐라(밤중)에 일어나”(1열왕 3,20) 죽은 아기와 산 아기를 바꿨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한밤에 은밀하게 일어난 범죄를 밝혀 달라고 청원했던 것이다. 컴컴한 밤은 유혹의 시간이기도 하다. 시편에는 “라옐라(밤)에도 제 양심이 저를 일깨웁니다”(시편 16,7)며 밤을 지키는 노래가 있다.
라옐라(밤)는 하느님이 일하시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집트 탈출의 결정적 사건은 라옐라에 일어났다. 파라오가 거듭하여 주님의 말을 듣지 않자, 하느님께서는 “내가 라옐라의 가운데에(한밤중에) 이집트 가운데로 나아가겠다”(탈출 11,4)고 말씀하시고, 한밤중에 이집트의 모든 맏배들을 치셨다.(탈출 12,29) 그리고 그 라옐라(밤)에 백성들은 “머뭇거릴 수가 없어서”(탈출 12,39) 빵의 반죽이 부풀기 전에 나왔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날은 누룩 없는 빵을 먹는 규정이 생겼다.(탈출 13,7)
야곱은 한밤의 꿈으로 하느님과 소통하였다. 일찍이 그는 베텔에서 꿈을 꾸었다.(창세 28,10-22) 하느님은 그 후에도 그에게 꿈에서 말씀하셨고(창세 31,11), 심지어 장인 라반의 꿈에도 나타나셔서 야곱을 지켜주셨다.(창세 31,24.29) 그리고 아들 요셉을 찾아 이집트로 떠나기 직전에도 하느님은 “라옐라(밤)의 환시 중에”(창세 46,2) 나타나셔서 길을 알려 주셨다. 야곱은 밤에도 일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담뿍 받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