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선교지에서 온 편지 - 남수단] 난민캠프가 된 사제관

이상권 신부
입력일 2017-09-12 수정일 2018-01-22 발행일 2017-09-17 제 3062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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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바에서 돌아오니 사제관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큰 싸움이 일어나 쉐벳으로 도망가지 못한 사람들이 위험을 피해 저희들에게 피신해 온 것입니다. 빈 사제관 독채에서부터 게스트하우스까지 각 방에 적게는 15명, 많게는 20명씩 들어서 있었습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디나 그들의 침대와 매트리스가 차지하고, 한 켠에서는 벌써 아궁이를 만들어 불을 피우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경당에도 사람들을 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접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난민캠프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바로 떠나기 이틀 전, 새벽 한 시쯤 한 아주머니가 허벅지에 총을 맞고 판아킴에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성당에서 복사도 하고, 판아킴 일도 도와주는 가브리엘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모두 단순한 도둑의 소행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긴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이 싸움은 아강그리알과 아비에이촉, 두 부족 간의 해묵은 원한에 대한 복수 때문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소를 훔치고, 약탈하고, 싸우고, 죽이고, 또 복수하기를 반복하는 이들 문화에서 다들 해묵은 원한 하나쯤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계기를 통해 이 원한이 복수라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아강그리알 선교지에 피난 온 아강그리알 주민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아비에이촉의 한 남자가 아강그리알 마켓에 볼일을 보러왔는데 마켓에 있던 남자들이 왜 왔느냐며 쫓아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어떤 이가 그 사람 집안에 갚아야 할 원한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 사람을 뒤쫓아 가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강그리알은 아비에이촉 부족의 전면적인 공격을 받게 됐습니다. 보통은 이런 경우 집안끼리의 복수로 끝나지 이렇게 큰 싸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아마 제가 모르는 다른 이유도 더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쉐벳이나 본인들의 출신 마을로 도망치고, 여자들과 아이들 그리고 소수의 남자들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사제관과 수녀원, 학교 그리고 병원 등을 둘러싼 울타리가 있는 컴파운드로 피신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아강그리알 주변 작은 마을들은 텅 비어 유령마을이 됐습니다. 학교도 당연히 수업을 멈췄고, 울타리 밖에는 사람들이 모이거나 살지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싸움은 자연스럽게 약탈로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비록 많은 재산은 아니었지만, 그 재산마저 잃게 됐습니다. 싸움이 일어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미사도 성당에서 드리지 못하고 컴파운드 안 사제관에 있는 경당에서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매일 미사 중에 남수단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왠지 남수단의 평화를 바라는 기도가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아강그리알과 쉐벳의 평화가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식을 전한다는 게 참 마음이 아프고 힘이 듭니다. 이 소식을 듣는 여러분의 마음도 아프고 또한 선교사들에 대한 걱정이 더 커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픈 소식을 전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특별한 기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깊은 무력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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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