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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탈북민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 윤완준

윤완준 (테오도로)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rn
입력일 2017-09-05 수정일 2017-09-05 발행일 2017-09-10 제 306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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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입북한 탈북민 임지현씨가 북한 선전매체에 등장해 한국을 비난했다. 임씨는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갔다. 한국 정부는 행방불명인 탈북민들의 중국 등 해외 행적을 파악하느라 분주하다. 임씨의 재입북 경위나 주장이 진실인지 따지는 건 다른 이들에게 맡겨두자. 필자는 이 일이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악화시킬까 걱정이다. 그 편견이 만든 장벽이 높아지면 통일은 더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은 쉽게 얘기하지만 당장 북한 주민과 같이 살 수 있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분단 70여 년간 남북에 생긴 마음의 장벽을 넘지 못하면 물리적 장벽을 허물어봐야 소용없다는 교훈을, 필자는 몇 차례 기획취재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지난해 5~6월 2개월간 대표적인 탈북민 밀집 지역인 서울 강서구 가양동, 노원구 중계동, 양천구 신정동, 인천 남동구 논현동 4곳의 남북 출신 주민들을 대상으로 통합 실태를 조사했다. 탈북민 밀집 지역에서 남북 출신 주민을 상대로 통합 현실을 조사한 건 처음이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이제부터 탈북민을 ‘북한 출신 주민’이라 부르겠다. 이유는 글 마지막에 소개한다. 조사 결과 북한 출신 주민의 69.1%, 남한 주민의 62.7%가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남한 주민이 북한 출신을 ‘나와 같은 국민’으로 보는 데 훨씬 인색했다는 점이다.

그보다 1년 전인 2015년 8월 독자들에게 소개한 ‘남북, 마음의 장벽을 넘다’는 기획 자체가 도전이었다. 1박2일 동안 남북 주민들이 함께 생활하며 자신의 삶과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고 소통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독일이 통일 이후 동서독 주민이 직면한 심리적 장벽과 선입견을 허문 ‘생애 나눔 프로젝트’를 한국에 처음 시도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자신이 없었다.

프로그램 시작부터 ‘탈북민에게 세금을 너무 많이 쓰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가진 남한 여성 A씨와 ‘남한 주민은 북한 주민에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선입견이 강한 북한 출신 여성 B씨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삶과 경험을 솔직히 얘기하고 마음을 여는 게임을 같이 하는 과정에서 장벽을 조금 허물었다. 헤어지기 전 주고받은 편지에선 좀 더 장벽을 걷어냈다. 필자를 더 놀라게 한 건 프로젝트가 끝난 다음 날 A씨가 필자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였다. “전에는 통일이라는 거창한 주제가 나와 멀었지만 이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가능성을 보았고 이것이 통일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고백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도움을 주는 남한 주민과 도움을 받는 북한 출신 주민’의 공식도 깰 수 있었다. 참가자들이 서로 힘든 점을 고백한 뒤 보낸 응원의 편지는 남북을 구분하지 않았다. 참가자 중 북한 출신 주민 정광성씨는 자신들을 새터민, 탈북민, 북한이탈주민으로 부르는 것은 다 차별적이라고 했다. 그냥 남한, 북한 출신으로 동등하게 불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완준 (테오도로)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