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순교자를 만나다] 복자 조용삼(베드로)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7-08-29 수정일 2017-08-29 발행일 2017-09-03 제 306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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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과 함께 체포된 후 옥중에서 세례받고 순교
매질 당하는 부친 모습에 한 차례 배교
다음날 관장 찾아가 신앙 밝히고 재수감 

복자 조용삼(베드로) 초상화.

조용삼(베드로) 복자는 가난하고 외모도 보잘 것 없었지만,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깊은 믿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다.

경기도 양근에서 태어난 복자는 일찍 모친을 여의고 부친의 돌봄으로 성장했다. 복자는 병약하고 외모도 보잘 것 없었을 뿐 아니라, 집안이 가난해 주변 사람들에게 따돌림도 당했다. 그러다보니 서른이 되도록 혼인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복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정약종(아우구스티노)만은 열심한 복자를 칭찬했다. 정약종은 복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면서 점차 복자가 신앙을 배울 수 있도록 이끌었다. 복자는 부친인 조제동과 함께 교리를 배우면서 신자들과 어울려 지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복자는 부친과 함께 여주의 이중배(마르티노)를 찾아 원경도(요한), 정종호 등과 함께 예수 부활 대축일을 보냈다. 복자는 신자들과 함께 부활삼종기도를 바치고, 성가를 부르며 부활을 축하하던 중 포졸들에게 체포됐다.

복자는 끌려가는 동안 신앙을 증거하길 독려하는 부친에게 “아무도 자기 결심과 자기 힘을 믿을 수 없는데, 약하고 불쌍한 제가 어떻게 순교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관장 앞에서 마음이 약해지는 부친의 모습을 보면서도 “배교할 수 없다”면서 “부모가 그른 길로 간다고 해서 자식도 그른 길로 간다면 그것은 효도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뿐더러 그분들 위에 천지만물의 대부모이시며 공통된 아버지가 계시니 제게 생명을 주신 그분을 어떻게 배반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복자의 말에 화가난 관장은 더욱 세게 매질하도록 시켰다. 복자는 무릎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혹독한 매질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지만, 관장이 방법을 바꿔 복자의 앞에서 복자의 부친을 매질하자 마음이 흔들렸다. 결국 복자는 이에 굴복해 석방됐다.

함께 잡혀온 이중배는 옥에서 나가던 복자에게 통회하길 권했다. 복자는 그 말에 자신이 맹목적인 효성에 지기는 했지만, 신앙을 잃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복자는 다음날 다시 관장을 찾아가 이전보다 더 단호하게 신앙을 고백했다. 관장은 몇 개월에 걸쳐 복자가 다시 배교하도록 가혹한 형벌을 가했지만, 굳은 복자의 믿음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었다.

옥중에서 세례를 받은 복자는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1801년 3월 7일 옥중에서 숨을 거뒀다. 복자는 죽기 전 “하늘에는 두 주님이 없고, 사람에게 두 마음은 있을 수 없다”면서 “이제 제가 원하는 것은 다만 천주를 위해 죽는 것 뿐”이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신자들의 목격담에 따르면 복자가 순교하자 그 시신 위에 이상한 광채가 보였고, 이를 본 신자들이 그가 순교했음을 알았다고 한다.

■ 발자취 만날 수 있는 곳

- 양근성지, 여주성당, 어농성지

양근성지(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물안개공원길 37)가 위치한 양근 지역은 복자가 태어나고 신앙을 배우던 곳이다.

또 용인대리구 여주본당(경기도 여주시 우암로 5)은 복자가 예수부활대축일을 지내다 잡힌 여주 양섬(경기도 여주시 하동)에 현양비를 세워 기리고 있다.

어농성지(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어농로 62번길 148) 역시 신유박해의 순교자인 복자를 현양하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