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베드로의 신앙 고백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
입력일 2017-08-22 수정일 2017-08-22 발행일 2017-08-27 제 3059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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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일(마태 16,13-2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활동과 가르침을 보며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물으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아, 혹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사람들의 반응에 관해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바로 곁에서 직접 보고 들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들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을 대표하는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의 고백은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것임을 밝히십니다. 곧,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은 베드로가 직접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신, 하느님께서 선사해 주신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실제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도 이야기하듯이 하느님의 생각은 너무나도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너무나도 알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하느님과 더불어 있지 않으면, 하느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분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로마 11,33-36) 곧, 성령께서 알려주지 않으신다면 그 누구도 예수님을 주님, 곧 하느님의 아들이자 메시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하느님께서 계시해 주신 베드로의 신앙 고백,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믿음이라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신하던 베드로의 약한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무너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를 이끌어 주실 것이기 때문에 베드로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자칫 잘못 이해하면 하늘 나라의 열쇠를 지니고 있는 베드로가 마치 교회의 주인, 하늘 나라의 주인인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주인이자 하늘 나라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며, 베드로는 교회와 하늘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하느님의 시종에 불과합니다. 이 점은 제1독서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궁궐의 시종장 세브나를 쫓아내고, 엘야킴을 유다 집안의 시종장으로 앉힐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다윗 집안의 열쇠를 메어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이사 22,19-23)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힐키야의 아들 엘야킴은 히즈키야 임금의 궁내 대신이었지, 임금이 아니었습니다.(2열왕 18,37) 여기서 우리는 성경 시대에 한 나라의 열쇠는 임금이 아니라, 임금이 신뢰하던 종이 맡고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왕국의 열쇠를 가진 이는 왕국의 주인이 아니라, 임금이 명령하는 대로 곳간을 열어 곡식을 내어주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시종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보니 하느님께서 베드로에게 열쇠를 맡기시며,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로 하여금 마음대로 사람들을 다스리라고 허락하신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도록 당신께서 항상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 하느님의 뜻에 따라 교회를 잘 다스리라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교황님이 베드로의 후계자로 하늘 나라의 열쇠를 간수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늘 나라의 열쇠를 맡고 있는 하느님의 시종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주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간청합시다. 그리고 모두 합심하여 성령의 도움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교황님의 가르침에 따라 각자의 삶에서 주님의 길을 더욱 충실히 따르도록 합시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