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차하는 부성애와 모성애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창세 1,28) 그 이후 옐레드(아기)는 그 자체로 사람에게 큰 기쁨이자 복이고 반대로 아기가 없는 것은 불행으로 여겨졌다.
구약성경에는 옐레드(아기)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이 교차한다.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는 그에게 자식을 낳아 주지 못하였다.”(창세 16,1) 사라이는 이 불행을 극복하고자 여종 하가르에게서 아이를 얻게 하여 이스마엘이 태어났다.(16,11) 훗날 사라이도 아들 이사악을 낳았다.(21,4) 하지만 두 아내는 갈등했고 집안에는 다툼이 일었다. 하지만 두 옐레드 모두를 사랑하는 “아브라함에게는 이 일이 무척이나 언짢았다.”(21,11)
생각해 보면, 두 아내의 갈등은 각자 자신의 옐레드를 향한 큰 모성애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은 두 옐레드 모두를 사랑하는 부성애를 지녔지만 갈등을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부성애와 모성애는 인간의 본능적이고 숭고한 감정이지만, 나약한 인간은 때로 그런 순수한 사랑 때문에 서로 갈등할 수 있는 존재다. 결국 하느님께서 두 옐레드 모두에게 큰 민족이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심으로써 이 갈등은 해결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크고 실효적이다.
■ 희망인 옐레드
아기(옐레드) 모세가 나일강에서 극적으로 구출되는 이야기는 탈출기 2장에 나온다. 모세의 어머니는 잘생긴 옐레드를 낳았지만 키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옐레드를 왕골 상자에 두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강으로 내려왔다가 옐레드를 보고 불쌍히 여기자, 옐레드의 누이가 꾀를 내어 유모를 불러오게 하였다. 공주는 모세의 어머니에게 옐레드를 데려다 젖을 먹이면 삯을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구세사 전체에서 오직 여성의 힘과 지혜에 의지해서 위기가 극복된 경우는 흔하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여성이, 곧 인간적 편에 상관없이 여성의 사랑과 지혜가 모세를 구한 것이다. 여성들이 구한 옐레드는 장차 이스라엘을 구하는 희망의 옐레드였다.
이사야 예언자의 “우리에게 한 옐레드(아기)가 태어났고 /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이사 9,5)는 말씀에서도 역시 희망의 옐레드를 볼 수 있다. 그 옐레드로 말미암아 인류가 구원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