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하)

이학노(유스티노·서울 대치동본당)
입력일 2017-07-18 수정일 2017-07-18 발행일 2017-07-23 제 305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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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분은 부산 해운대에 있는 성가정성당을 다닐 때 만난 분이다. 1999년 부산교구는 밀레니엄 기념성당으로 해운대에 성가정성당을 짓기로 하였지만 때마침 IMF 사태가 터졌다. 수없이 많은 가정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성당에서 만나는 형제들에게 안부조차 묻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성당 건립은 계획대로 밀고 나가면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를 열심히 했지만 어느 단계에 이르자 중간정산금(보통 기성고라고 함)을 지불하기 어려운 때가 도달했다. 어쩔 수 없이 공사 중단을 결정하고 건설사인 세정건설 박순호(프란치스코·부산 온천성당) 회장을 주임신부님과 함께 찾아갔다. 사정을 말하자 그는 주저함 없이 “하느님 사업은 중단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건설 공사는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면 비용이 더 듭니다. 저희 건설부분의 재정상태가 어떤지 모르겠는데 힘들면 제 개인 돈이라도 써서 완공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런 기회를 저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박순호 회장이 우리에게 던져준 “이런 기회를 저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당시 재계순위 1·2위 건설사들도 자본 유동성 부족으로 부도를 낼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그러한 결단을 내려준 것이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하느님은 그렇게 주신 것이다.

2001년 12월 30일 성가정축일 성당 축복식에서 그분은 거액의 감사헌금을 내면서 또 한번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 이후 필자는 서울 본사로 전근이 되어 분당에 자리를 잡고 근처 성마태오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2005년부터 남성 소공동체를 맡게 됐다. 우리 성당은 1만5000여 명의 신자들로 구성이 되어있었으나 당시 사제 두 분이 사목을 하고 계셔서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지역별 형제회·자매반 활성화는 필연적이었다. 그때 필자는 한 부부 봉사자를 만났다. 강창식(스테파노·1933년생), 하례용(레지나·1934년생) 두 분은 모두 서울에서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을 하고 막 분당으로 이사를 온 참이었다. 그때 스테파노 형제는 시력에 이상이 생긴 상태였고 레지나 자매는 청력에 문제가 있어 두 분은 꼭 함께 다니면서 서로를 돕고 있었다. 그 지역 형제회 조직을 위해 몇 번이나 방문했으나 딱히 마땅한 사람이 없어 형제회 조직을 그분께 맡겼고, 처음에는 다소 당황하는 모습이었으나 며칠 후 부부가 함께 “저희에게도 이런 직분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해와 너무 감사했다.

그 후 신자명단을 받아든 내외는 교우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고 성당 소식지와 함께 형제회 첫 모임 일자와 장소, 시간 등을 설명하면서 참여를 권유했다. 그러는 동안에 있었던 아파트 경비원과의 말다툼, 심한 거절에 마음 상한 일 등은 봉사에 대한 즐거움으로 모두 잊을 수 있었다고 했다. 모임 첫날 두 부부는 적어도 20여 명 이상은 충분히 올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음식을 차려놓고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네 분 이상 오질 않자 레지나 자매는 서운함에 울먹거리기 시작했고, 신부님과 우리 일행은 달래느라 혼이 났다. 하지만 부부는 좌절하지 않았고 방문과 연락을 계속 한 끝에 세 개의 형제회가 탄생, 나중에는 지역도 둘로 나누게 되었다. 부부는 그 결과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했다.

강창식 스테파노 형제는 칠 남매의 둘째로 부모님은 독실한 신자였으나 자식들은 아무도 성당에 다니질 않았다. 그때 레지나 자매가 시댁에 들어오면서 시부모의 뜻에 따라 1968년 세례를 받았고 남편에게도 권유하여 1998년에 세례를 받게 하고, 2남 1녀의 자녀들도 모두 입교를 시켰다.

레지나 자매는 2008년 여름, 림프암으로 선종했다. 힘든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자식을 잘 기르게 해주시고 또 늦게 봉사의 직분을 주신 하느님께 늘 감사했다. 선종 전 그분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현금화해서 성당에 감사헌금으로 바치고 세상을 떠났다.

본당의 날(성마태오축일)에 매년 가장 열심히 봉사한 분에게 드리는 마태오상을 드리기로 결정한 우리는 그날 가족 모두를 초대했다. 그리고 축하와 감사의 뜻을 전했다.

우리 믿는 이들이 생각하는 ‘감사함’이란 도대체 어디까지 인가?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16-18) 바오로 사도가 당시 테살로니카 교회에 보낸 서간의 내용이다. 오늘날 우리 모든 신앙인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것이다.

봉사직에 있다 보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이분들도 때론 온몸을 다해 열심히 봉사하는 분을 만났는가 하면 자기 주관을 너무 앞세우는 분, 그다지 솔직하지 못한 분도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분들은 모두 이런 내용들조차 하느님께 감사한 것이다.

이학노(유스티노·서울 대치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