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故 최인호 작가 다섯 번째 유고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출간

권세희 기자
입력일 2017-07-04 수정일 2017-07-05 발행일 2017-07-09 제 3052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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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글 되짚으며 수십년 문학세계 엿보다
30~40년 전 쓴 초기 습작부터 
알려지지 않은 원고 다수 수록
표지엔 조순호 화가 作 ‘기도’ 담아  

우리가 아는, 그리하여 우리에게,

우리들의 삶에

조그마한 기쁨을 주었던

모든 죽은 사람의 기억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한때 살았었으므로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中」

책 표지가 눈에 띈다. 마치 뭉툭한 붓으로 원을 그려 넣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웅크린 자세의 사람 형상이 보인다. 이 그림은 조순호 화가의 ‘기도’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표지로 선택한 이유는 고(故) 최인호(베드로) 작가가 침샘암 투병 중 수차례 방사선 치료와 중성자 치료를 받고 기관지와 식도가 딱딱하게 굳고 가늘어져 엎드려서 가래를 뱉어낼 수밖에 없었던 모습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최 작가는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문학’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1970~1980년대 한국 문단을 풍미하던 ‘청년 문학’의 아이콘이었던 작가가 생전 집필했던 원고들을 모아 다섯 번째 유고집을 출간했다.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352쪽/1만4800원/여백)다. 유고집은 작가가 30~40년 전에 쓴 초기 글과 습작노트, 신문, 잡지, 문예지 등에 기고한 원고를 모아 구성했다. 그동안 쉽게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글들이 많이 실려 ‘작가의 또 다른 문학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책은 ▲1부-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2부-침묵의 계절 ▲3부-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4부-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로 구성됐다.

“죽은 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가 아는, 그리하여 우리에게, 우리들의 삶에 조그마한 기쁨을 주었던 모든 죽은 사람의 기억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한때 살았었으므로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1부에 수록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수록된 글귀 중 하나다. 1부에는 최인호 작가의 ‘순수 에세이’ 글들이 수록됐다. 작가가 생활하면서 느꼈던 슬픔과 행복들에 대해 담았다. 작가가 20대부터 60대까지 남긴 다양한 글들을 통해 독자들은 그의 문체와 의식 세계의 변천, 심리상태도 엿볼 수 있다.

2부는 특히 눈에 띈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중심에서 겪었던 ‘역사’에 대한 내면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역사의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솔직하지만 진중한 어투로 수록돼 작가가 가지고 있는 역사인식을 드러냈다.

“4월은 혁명의 계절이다. 민주주의, 민주주의, 가난과 슬픔으로 점철된 이 땅의 조국 위에 꿈과 희망을 안겨준 계절이다. 잘 보면 종로거리를, 을지로, 광화문 앞 광장을 달리던 우리들의 선배가 보인다. 아아, 그들의 핏자국이 선연히 보인다. 그들의 죽음은 헛되이 사라진 듯 보인다… 깊은 기도를 하자. 이 땅의 침묵의 계절에 대해.”

작가는 이 장에서 ‘역사’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자신을 깊이 성찰한다. 담담한 문체지만 역사 속에 희생된 이들에게 사죄하고 그들에 대한 마음을 담은 글들을 녹여냈다.

3부는 천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았다. 천재들이 글을 쓰는 방식, 천재의 시선 등에 대해 작가 나름의 분석과 해석을 담았으며 ‘천재 화가 이인성’의 죽음을 깊이 있게 통찰해 눈길을 끈다.

4부는 작가가 ‘왜’ 문학을 하는지에 대해서 서술했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작가로서 느꼈던 ‘문학의 단상’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렇듯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는 최인호 작가가 가지고 있던 문학세계를 광범위하게 수록했다.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작가의 일대기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또 젊은 시절에 썼던 작품들을 통해 그가 병마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문학적 열망들이 그의 가슴을 두드렸는지도 독자들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2013년 9월 펜을 내려놓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살아 작가의 목소리로 말을 건다. 출판사 여백은 책을 펴내면서 “최인호 작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이 써야 할 작품에 대해 간절히 말하곤 했다. 안타깝게도 죽음으로 인해 작가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작가는 훗날 예수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저자가 역사소설을 쓴 이유도 예수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역사 추적법을 익히는 훈련이었다”고 전했다.

또 이번 유고집을 통해 “최인호 작가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문학세계와 더불어 인간 최인호를 만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세희 기자 se2@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