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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
입력일 2017-06-20 수정일 2017-06-21 발행일 2017-06-25 제 3050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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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마태 18,19ㄴ-22)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는 날입니다. 갈라져 다툰 지 7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다시 하나의 민족으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사고 하느님께 기도하며, 나부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날입니다. 이런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은 화해와 일치를 위해 각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관해 잘 알려줍니다.

먼저, 오늘 제1독서에서 모세는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아 나라를 잃고 유배생활을 간다하더라도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와서,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모든 것을 되돌려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늘 끝까지 쫓겨났다 하더라도 하느님께로 돌아서기만 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다시금 모아들이시어 약속된 땅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돌아가면 우리는 과거보다도 더 잘 되고 번성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유배생활, 곧 분열과 다툼이 하느님의 뜻에 따르지 않기에 생겨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결국, 분열과 다툼을 해소하려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되돌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오늘 제2독서는 하느님께로 돌아서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바오로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라고 권고합니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고 권고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서로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성령께서 슬퍼하실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마음속에 담고 있는 모든 원한과 격분, 분노와 폭언,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바오로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은 사실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분들에게 갈라진 형제들에 대한 원한과 격분, 분노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복수하지 않고서는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그 분노를 내려놓지 않고서는 결코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한쪽 편만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화해와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상대방과 똑같이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어렵지만 하느님의 뜻에 따른 올바른 태도를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 안에서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청하고, 그들도 우리처럼 마음을 돌려 하느님께로, 형제에게로 향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고 있는 점도 바로 이 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항상 당신이 함께 계시고, 그렇게 마음을 모아 청하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카인을 해친 자가 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친 자는 일흔일곱 갑절로 앙갚음을 받는다”라고 노래하는 라멕처럼 살지 말고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권고하십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모두가 화해를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느님께 기도해야 할 바는 바로 이 점입니다. 우리 능력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화해이기에 하느님의 도우심이 절실합니다. 오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면서, 하느님께 용서할 수 있는 힘과 은총을 청합시다. 우리부터 용서하기 시작할 때 이 땅에는 분열과 다툼이 사라지고 참된 평화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오는 평화는 과거의 어떤 평화보다도 거대할 것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