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30년 전 어느 날 / 박명기 신부

박명기 신부 (의정부교구 마두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7-05-30 수정일 2017-05-31 발행일 2017-06-04 제 304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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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원히,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한다고, 협조자를 보내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내 곁에서 홀연히 떠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슬퍼하는 일? 추억에 잠기는 일? 막연히 협조자를 기다리는 일? 그는 떠났지만, 나는 그를 보내지 않았다. 자신의 말대로 그는 세상 끝 날까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를 내 삶에 현존하게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과 그의 사명을 이어 내가 수행하는 것, 나아가 그의 삶을 내가 살아내며 그의 역할과 삶이 나에게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 그의 지위와 능력과 가치를 나에게서 드러내는 것! 그가 떠남으로 그의 모든 것이 나에게로 이어지는 것. 내가 이제 그가 되는 것이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선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음을, 행동하고 움직이며 소리쳐야 변화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깨달았던 30년 전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패배주의, ‘내가 무엇이라도 할 것이 있겠는가’ 하는 자조와 ‘내가 한들 변화되겠는가’ 하는 절망감도 있었다. 답답함이 무기력으로 넘어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비겁함의 막다른 골목에서 한 생명의 죽음에 대한 가슴 아픈 공감에 분연히 온 국민이 절망감을 떨치고 일어난 날이었다. 생명의 고귀함과 존엄이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라 한다면 죽음은 그 하늘의 명을 온전히 받들었음을 증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고(故) 박종철군의 죽음은 하늘의 명에 순명한 고결한 것이기에 죽음을 헛되게 만들어선 안 되었다. 죽음이 의로운 것임을 드러내기 위해 진실이 밝혀져야 하고, 더 이상 국가권력에 의해 국민의 생명이 가볍게 여겨지는 일이 생겨선 절대 안 된다는 공분이 일어났다. 모순되게도 죽임으로 생명의 연대를 만들어 함께 살아가도록 가르쳤던 고결한 체험의 시간이었다.(마치 예수의 죽음처럼!!)

이런 생각들이 모여 민주화라는 거대한 깃발을 대한민국에 세운 날이기도 하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고 쉽사리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라를 변하게 만들기 위해서 국민이 있는 것임을 알았다. 변화되고 회개한 이들의 한 목소리, 한 걸음, 작은 어깨동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을 국민 모두가 스스로 깨달은 날이기도 하다. 분노를 행동으로, 기억을 기도로, 아픔을 변화로 이끌어 국민이 주인임을 천명한 역사적인 날이 되었던 30년 전의 어느 날이다.

그 기억은 지난겨울에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 되살아났다. 유난하거나 유별나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기 위해 30년 전 6월의 어느 날처럼 손에 촛불을 들고 모여 나라의 주인이 국민임을 외쳤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다시금 장엄하게 국민에 의해 선포되었다. 30년의 세월을 넘어 모든 패배주의와 절망감, 답답함과 무력감에서 오는 비겁함을 떨치고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간 성령의 임하심 같은 희망의 체험이었다.

두려움을 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부활이요, 승천이며 성령의 이끄심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다락에 숨어 있지 말고 거친 세상으로 뛰쳐나가 상처 입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부활하신 예수는 당신의 역할을 세상에 온전히 맡기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셨다. 두렵다. 무기력함도 있다. 때로 패배감과 절망감마저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과 대한민국 역사는 내가 그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바로 부활을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이라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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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기 신부 (의정부교구 마두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