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혼을 여는 문 이콘] ‘40 순교자’

장긍선 신부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rn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입력일 2017-05-16 수정일 2017-05-16 발행일 2017-05-21 제 3045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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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테의 ‘40 순교자’.

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 박해는 종식됐지만, 이후에도 지역적인 박해는 간간히 계속돼 수많은 이들이 신앙을 지키다 순교했다.

그들 중 오늘날까지 동방과 서방교회 모두에서 공경 받는 ‘40 순교자’가 있다. 이들은 320년 경 오늘날 아르메니아 지방에 위치했던 세바스테에서 함께 순교했는데, 모두 제12연대 소속 로마 군인들로서 공훈을 많이 세웠던 용맹한 무사들이었다.

동로마 황제 리치니오는 그들에게, 우상에게 향을 바치라고 명령했지만, 그들은 모두 거절했다. 총독 아그리콜라오는 뛰어난 용사를 40명이나 죽이는 것은 피하고자 여러 가지 감언이설과 위협으로 달래보고 형벌도 가했지만, 그들의 신앙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결국 총독은 그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려, 세바스테 마을 밖 꽁꽁 얼어붙은 호숫가에서 옷을 벗기고 얼어 죽도록 했다. 이때는 3월로 아직도 매서운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러나 40명의 군인들은 이미 오래전에 순교를 각오했기에 조금도 겁내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단식하신 것도 40일, 또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기도하고 엘리야가 단식한 기간도 40일이기에 40은 참으로 성스러운 숫자이다. 주님, 지금 함께 순교하려 하는 우리 40명에게 이 형벌을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은총을 내려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형 집행을 담당한 병사들은 호숫가 옆에 따뜻한 물을 준비하고 “신앙을 버리고 빨리 여기로 나와 몸을 담가라”라고 재촉했지만 이 신앙의 용사들은 누구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군인 중 한 명이 하늘에서 이 40명의 용사들 위로 광채가 비치면서, 손에 찬란히 빛나는 화관을 든 천사들이 내려오는 것을 봤다. 그는 놀라 그 수를 세어 봤는데, 화관이 39개밖에 없었다.

‘지금 죽어가는 병사는 40명인데 왜 1개가 적을까?’라고 생각하는데, 40명의 용사들 중 한 명이 기어 나왔다. 병사들은 그에게 옷을 입혀주고 더운 물이 준비된 곳으로 데리고 갔으나, 그는 찬 곳에서 갑자기 더운 곳으로 나와 결국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이를 목격한 그 군인은 하느님의 은총에 눈이 뜨여, “나도 그리스도교를 믿는다”라고 외치며 스스로 옷을 벗고 순교 대열에 동참했다.

이와 같이, 한 배교자로 말미암아 부족했던 40이란 거룩한 숫자는 다시 채워졌다. 얼마 안 돼 용사들은 모진 추위에 하나하나 얼어 죽었다. 이후 ‘40 순교자’의 시체는 모두 불에 태워지고 재는 물에 던져졌으나 기이하게도 물 위에 한 덩어리가 돼 떠 있었다. 신자들은 그 덩어리를 건져서 잘 모셨다가, 성 바실리아스가 세운 성당에 안치하고 그들의 공훈을 기리기 시작했다. 40 순교자의 축일은 그들이 순교한 3월 9일이다.

장긍선 신부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rn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