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수원가대 개교기념 학술발표회 ‘덴칭거’와 오늘의 신학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7-05-16 수정일 2017-05-16 발행일 2017-05-21 제 304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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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편람」, 역사적 맥락 안에서 교회 가르침 이해 도와
단편적인 신학 정보 제공 넘어
현대 교회에서 활용 방안 논의

5월 11일 수원가톨릭대학교 개교기념 학술발표회에서 발표자들이 종합토론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 이승훈 기자

주교회의(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지난 3월 20일 한국어판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이하 「신경 편람」)을 발행했다. 이른바 ‘덴칭거’라고도 부르는 이 문헌은 2000년 가톨릭교회 역사 안에서 발표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공식 가르침을 집대성한 것이다. 2세기부터 2009년까지 공식 발표된650여 개 문헌들이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수원가톨릭대학교는 개교 33주년을 맞아, 수원가대 부설 ‘이성과 신앙 연구소’ 주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후원으로 5월 10일과 11일 “‘덴칭거’와 오늘의 신학”을 주제로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학술발표회에서는 이틀간 총 13가지 주제의 발표들이 이어졌다.

「신경 편람」은 단순히 교회 문헌들을 모아 놓은 사료 모음집이 아니다. 단편적 신학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 편찬 의도와 올바른 활용 방법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번 학술발표회는 신학 일반, 그리고 신학의 각 분야들 안에서 「신경 편람」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제안하는 자리였다.

「신경 편람」은 신학자들에게만 필요한 자료가 아니다. 심상태 몬시뇰(수원가톨릭대 명예교수)은 기조강연을 통해 오늘날 침체된 한국교회 현실을 지적하고, “신앙생활에 열심한 신자들도 교회 가르침들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믿을 교리로 정립됐는지 알지 못하며 피상적 신앙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의 미래가 불확실한 가운데, 이 문헌이 한국교회 구성원들의 질적 성장을 촉진해 교회가 활력을 되찾고 복음화 과업에 적극 투신하기를 희망한다”면서, 모든 신자들이 이 문헌을 적극 활용할 것을 기대했다.

학술발표회는 기조강연에 이어 총 3부로 나눠 진행됐다.

■ 「신경 편람」의 의미

제1부에서는 가장 먼저 황치헌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가 「신경 편람」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개괄하고, 우리말 번역의 역사와 의미를 검토했다. 「신경 편람」은 1854년, 독일 뷔르츠부룩대 교수였던 하인리히 덴칭거 신부(Heinrich Denzinger, 1819~1883)가 처음 집필한 후, 160년이 넘도록 수많은 증보판과 번역본으로 출간돼왔다.

이어 이성효 주교(수원교구 총대리)는 ‘교도권과 교부들-아우구스티누스의 이성, 신앙, 권위 이해’를 주제로, ‘신학적 이성주의’에 맞서 덴칭거 신부가 편찬한 「신경 편람」의 취지를 점검했다.

이 주교는 특별히 “교회의 권위가 최종 결정한 신앙과 도덕에 관한 이른바 실증적 문헌들이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무시되거나 경시되고, 많은 이들이 자기 생각대로 신앙과 도덕을 이해하는 것은 신학 연구에 가장 큰 해를 끼친다”고 지적했다. 또 「신경 편람」 서문 내용을 강조하고, “성경과 교회의 권위는 이성만으로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진리에 도달하게 하는 길”이라고 상기시켰다.

한편 정희완 신부(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오늘날 신학함에 있어서 전통과 교도권의 문제’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전통과 교도권의 문헌들에 대해 새로운 접근 방식과 이해방식이 요청된다”고 지적했다.

정 신부는 오늘날 신학은 “역사적 맥락 안에서 가변성을 지니며, 이에 따라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해야 하고 실천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신학은 전통과 교도권의 문헌들에 대한 형식적 반복과 재현을 넘어, “오늘의 상황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새로운 맥락에서 재해석되고 재창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학의 각 영역과 「신경 편람」

제2부에서는 성서ㆍ교의 신학의 주요 주제들과 「신경 편람」에 담긴 교도권 문헌들의 관련성을 탐구했다. 특히 신경, 원죄 교의,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격언, 교회의 권위에 대한 이해 등의 주제가 교도권 문헌들 안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보고 그 현대적 의미를 성찰했다.

최현순 박사(서강대 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는 “교회의 권위에 대한 이해와 ‘덴칭거’ 활용의 필요 및 한계” 주제발표에서 “「신경 편람」은 교도권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고 이를 하느님 백성에게 해석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 박사는 교도권 문헌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문헌이 선포된 삶의 자리, 문헌의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신경 편람」에 수록된 것을 자의적, 혹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심각한 어려움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윤리 전례 사목 신학 영역을 다룬 제3부는 도덕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어린이 입교 성사, 「신경 편람」의 실천신학적 활용 등에 대해 짚어보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박찬호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는 이 자리에서 “도덕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불변적인가?”라고 묻고, 그 대답은 긍정일수도 부정일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인해 이전의 윤리적 원칙이 수정돼야 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특정 윤리적 사안에 대한 가르침은 가변적”이라고도 밝혔다. 하지만 박 신부는 “선, 진리, 사랑, 인간 존엄성 등의 절대적 가치는 변할 수 없는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전했다.

박현창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는 “「신경 편람」은 ‘문헌의 두서없는 수집’이 아니고, ‘전후 맥락이 결여된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서 편찬됐다”면서 “특히 증보판이 거듭될수록 교회 쇄신과 개혁의 의지가 반영된 모습을 보인다”고 풀어냈다. 박 신부는 반면 “로마 중심의 위계나 성직자 중심의 어조가 강하고 상대적으로 지역 교회의 가르침과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언급이 미약한 점은 한계”라면서 “이러한 부분은 추후 편집상의 과제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박 신부는 신학자 이브 콩가르 추기경의 말을 빌어 「신경 편람」에 담긴 교도권 문헌들을 “법규처럼 ‘법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신앙의 증거들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했다.

■ 심상태 몬시뇰(수원가톨릭대 명예교수) 기조강연

- ‘덴칭거’ 한국어 대역판 역사적 의미와 오늘의 신학

‘하느님 자비’ 관점에서 편람의 가르침 해석해야

신경 편람은 신학자들로 하여금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회 가르침들을 역사적 맥락 안에서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필수적인 참고 문헌이다. 방대한 교회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에 비추어 이해해보자.

개별 교리·교의들은 복음의 진리 전체가 아니라 특정 시대와 사안에 대한 응답임을 유의해야 한다. 개별 교의는 당대의 역사적 필요와 과정에 따라 형성됐다는 역사성을 지닌다. 신학은 특정 교의가 신앙의 진리임을 확신하면서도 복음의 핵심적 진리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리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있다고 가르쳤다. 교리가 담고 있는 신앙의 진리들은 ‘복음’으로부터 해석되고 이해돼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을 중심으로 한 교회 쇄신을 도모한다. ‘복음’은 단순히 4복음서, 문서나 책을 말하지 않는다. 복음은 “신앙을 통해 주어지고 사랑 안에서 활동적이 되는 성령의 내적 선물”(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이다. 문서나 규정들은 이차적으로 복음에 속하는 것일 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움”을 복음의 핵심으로 꼽는다. 즉 복음의 중심 메시지가 무상으로 받은 하느님의 자비임을 강조하면서, 자비의 실천, 자비의 정신으로 신앙생활을 할 것을 강조했다.

요약하면, 교황은 복음의 핵심 진리인 ‘하느님 자비’를 모든 신앙 교리·교의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원리로 파악한다. 편람에 수록된 모든 가르침들을 정확히 인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이들을 모두 그리스도의 구원 진리인 ‘복음’, 그 핵심 진리인 ‘자비’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사도적 입장만이 긴장과 갈등으로 가득 찬 오늘날 세계 안에서 교회가 그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