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전, 성소
헤칼은 구약성경에서 ‘성전’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 헤칼은 하느님의 집, 곧 성전이었다(느헤 6,10). 일찍이 엘리 사제는 실로에 있는 “주님의 헤칼(성전)”(1사무 1,9)에서 일했고, 어린 사무엘이 주님의 음성을 들은 곳도 “주님의 헤칼(성전)”(1사무 3,3)이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무화과 두 광주리의 환시를 받은 곳은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헤칼(성전)” 앞이었다(예레 24,1). 그런데 헤칼은 특히 예루살렘 성전의 중앙, 곧 성소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솔로몬 임금이 지은 성전의 “앞쪽에 있는 헤칼(성소)은 마흔 암마였다”(1열왕 6,17). 성전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지극하였다.
■ 가난한 백성의 성전
헤칼이 외래어란 점을 성찰하면 구약시대 이스라엘 종교를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본디 히브리인들은 고대근동의 제국들처럼 크고 화려한 성전을 지녀본 적이 없다. 그들의 조상들은 떠돌아다니던 사람들이었고(신명 26,5) 그들은 늘 작고 초라한 백성이었다. 하지만 이집트 종살이에서 벗어나 어엿한 나라를 세웠다. 다른 나라처럼 예루살렘이라는 수도를 건설하고 훌륭한 성전을 지었다.
그러나 왕궁과 성전을 가져본 적이 없던 이 백성은 선진국들의 사례를 깊이 참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적 눈으로 보면 고대 이스라엘의 왕궁이나 성전은 다른 고대근동의 왕궁이나 성전과 비슷해 보인다. 오히려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성전은 바빌론이나 페르시아나 이집트 등 대제국들의 성전에 비교하면 초라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하느님 백성에게는 성전의 겉모습이 아니라 성전의 의미가 중요했다. 헤칼은 하느님의 궁전이었다(시편 29,9; 48,10).
예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예수님과 성전에 관한 일화가 떠오른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마태 12,1) 되었을 때, 그분은 구약시대 율법의 참뜻을 과감한 실천과 놀라운 말씀으로 가르쳐주셨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라고(12,7) 가르치시면서 스스로 이렇게 선언하셨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12,6). 이 세상 어느 대제국의 성전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 오신 기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