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께 묻다
구약성경에는 ‘하느님께 다라쉬한다’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온다. 하느님께 적극적으로 묻고 또 묻는 것이다. 이사악의 아내 레베카는 쌍둥이를 임신하였다. 에사우와 야곱은 각자 다른 민족의 조상이 된다. 그런데 쌍둥이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기들이 속에서 서로 부딪쳐 대자, 레베카는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서, 주님께 다라쉬하러(“문의하러”) 갔다(창세 25,22). 레베카는 어미의 예감으로 쌍둥이의 운명을 두고 주님께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광야를 떠돌던 백성은 모세에게 찾아가 모든 문제를 물어보았다. 모세의 장인 이트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가 백성을 상대하는 것을 보고 왜 이렇게 힘들게 일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모세가 말하였다. “백성이 하느님께 다라쉬하려고(“문의하려고”) 저를 찾아오기 때문입니다”(탈출 18,13-15). 광야의 백성은 모세를 찾아와 과연 하느님이 어디로 이끄실지, 자신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백성들 사이의 문제는 어찌 해결할지 등을 묻고 또 물었던 것 같다.
시편 저자는 주님께 다라쉬하는 일을 찬미한다. 사람은 무릇 곤경의 날에도 주님께 다라쉬해야 한다(“찾네” 시편 77,3). 아무리 세상이 어렵더라도, “주님을 다라쉬하는(“찾는”) 이들에게는 좋은 것 하나도 모자라지 않으리라”(시편 34,11)고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