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로 피는 담이다. 담은 인간과 짐승의 붉은 혈액을 가리킨다.
■ 에돔 검붉은색
히브리어로 ‘아돔’은 ‘붉다’는 뜻인데, 담에서 나온 낱말이다. 그리고 ‘아돔’과 형태가 비슷한 말로 ‘에돔’이 있다. 이스라엘의 먼 친척 에돔족의 이름이다. 창세기는 에돔족의 조상 에사우가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에게 “저 아돔(붉은 것), 그 아돔(붉은 것) 좀 먹게 해 다오” 하고 말하였기에, 이름을 에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창세 25,30).
그런데 담(피)처럼 붉은(아돔) 것이라면 어떤 색에 가까웠을까? 토마토 같은 새빨간 색일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피가 오래되어 엉긴 색으로서, 팥죽 같은 거무튀튀한 붉은색일 가능성이 크다. 에돔이 원한 음식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팥죽 같은 것을 좀 먹게 해 달라고 말했던 것 같다.
■ 피는 생명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피를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요, 가장 근본적인 생명의 에너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짐승을 잡을 때면, 목을 따고 고기를 거꾸로 매달아, 굳기 전에 피를 땅에 모두 흘려보냈다. 피를 다 빼고 나서야 비로소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다(신명 12,15-24; 참조: 레위 3,17; 19,26 등). 땅에 피를 흘려보내면, 생명력을 받은 땅에서 풀이 돋아나고, 다시 그 풀을 먹은 짐승이 자라서, 창조질서에 합당하게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대 유목민의 소박한 체험과 지혜에 바탕한 이런 생각은 현대의 생태학과도 부합한다. 또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리고, 인간은 오직 자신의 유한한 목적에 부합하는 만큼만 취하라는 가르침도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고대 이스라엘에 선짓국은 없었다. 고기를 피째 먹는 것은 죄에 속했다(1사무 14,31-35). 전통적인 유다인들은 지금도 이 규정에 따라 육류를 생산하고 유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