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 찾은 이라크 아르빌대교구 교구장 바샤르 와르다 대주교 인터뷰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6-10-18 수정일 2016-10-18 발행일 2016-10-23 제 3016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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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신앙 증거로 폭력의 악순환 멈출 수 있습니다”
극단주의 집단 ‘다에시’ 그리스도인 겨냥 무차별 공격 
교회 도움 없었다면 신앙인들 흔적조차 없어졌을 것
아직 갈 길 멀어… “기도와 도움 절실히 필요합니다”

10월 12~16일 닷새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바샤르 와르다 대주교는 이라크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와 지원을 부탁했다.

“2014년 여름, 아르빌 시내로 난민들이 몰려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첫날에는 많이 당황했지만 둘째 날부터는 아르빌의 모든 교회들이 문을 활짝 열고 난민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방한한 이라크 칼데아 가톨릭교회 아르빌(Arbil)대교구 교구장 바샤르 와르다(Bashar Warda) 대주교는 당시를 회상하기도 힘든 듯, 어렵사리 말을 이어갔다.

“여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울부짖고, 남자들은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들이 길거리와 공원들을 가득 채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화가 나 있었고,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습니다.”

와르다 대주교는 그때 생각했다고 한다. “이제 이라크의 그리스도교 교회는 완전히 소멸될지도 모르겠구나”라고. 다에시(Daesh, IS 즉 이슬람국가의 아랍어식 이름)는 야지디족 등 소수 집단인 그리스도인들을 겨냥, 이라크 모술과 니네베 평원의 마을들을 공격했다. 이 조직적 공격은 2016년 3월 국제사회에 의해 ‘집단학살’(genocide)로 규정됐다.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인근 나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구도 이들이 조국을 떠난다고 비난할 수 없었다. 그들이 떠나야 할 이유는 너무도 많았다. 집은 약탈되고 여자들은 수모를 당했다. 수많은 이들이 조직적으로 살해됐다.

“이른바 ‘성전’의 미명 아래 집단 학살, 인종 청소가 자행됐습니다. 이라크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집을 떠나거나, 아니면,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와르다 대주교는 그리스도인들이 난민으로 아르빌에 쏟아져 들어왔을 때, 그들을 환영하면서 용기를 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참상을 하느님께서 허락하셨는가?” 하고 날마다 “하느님과 싸웠다”고 말했다.

10월 12~16일까지 닷새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와르다 대주교는 방한 마지막 날 절두산 순교성지를 찾았다. 한국교회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목이 잘린 순교 현장에서 그는 이라크의 순교자들을 떠올렸다.

“매일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참수된 한국의 신앙선조들을 만나면서, 이라크의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합니다. 한국의 순교자들은 목이 잘려 강물에 던져졌지만, 이라크의 그리스도인들은 먼지 가득한 길거리에 그 목이 나뒹굴었습니다.”

대주교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왜 이라크의 그리스도인들은 국경을 넘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들이 여전히 이라크 땅에 남아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와르다 대주교는 그것을 이라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증거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얼마나 극심한 박해를 받았는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두려움에 떨면서 얼마나 오래 걸어야 했는지 하소연합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의 끝에서 그들은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으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감사할 수 없어 보일 때에도 드리는 감사의 기도가 저를 일깨우고 제게 힘을 줍니다.”

현재 아르빌대교구 관할 지역에는 10만 명 이상의 난민들이 모여 있다. 비교적 안전한 지역인 북이라크 쿠르드 자치구와 아르빌은 모든 것을 잃은 국내 난민들이 피신처를 찾아 밀려오는 곳이다. 아르빌대교구를 비롯한 북이라크 교회 지도자들이 그리스도교 난민들의 보호를 맡고 있다.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Aid to the Church in Need)를 비롯한 국제적인 구호 단체들, 각 지역교회의 따뜻한 관심과 지원이 없었다면, 이미 북이라크의 그리스도인들은 흔적조차 없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도 길이 멉니다. 여러분들의 도움과 지원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와르다 대주교는 이라크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폭력과 사랑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증거는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세상의 폭력은 더 큰 폭력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해답이고, 그래서 그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의 증거가 중요합니다. 이라크의 그리스도인들은 참혹한 고통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고, 학교, 병원, 마을의 재건을 돕고 있습니다. 결국 그러한 노력들이 이라크 땅에 평화와 화해를 일구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바샤르 와르다 대주교는 10월 16일 절두산 순교성지를 방문했다. 와르다 대주교는 이곳에서 이라크 순교자들을 떠올렸다.

바샤르 와르다 대주교는 염수정 추기경, 김희중 대주교를 비롯한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주교단과 만나 이라크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한국교회의 관심을 요청했다.

■ 고통받는 이들 위해 ‘교회’가 앞장서다

이라크 북부, 모술(Mosul)과 니네베(Nineveh) 평원 지역은 그리스도교가 탄생한 1세기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이 머물면서 신앙을 증거해 온 곳이다. 최근 방한한 이라크 아르빌 대교구장 바샤르 와르다 대주교는 “거의 50년마다 이라크의 그리스도인들은 고향을 떠나야 하는 박해의 상황에 처해지곤 했다”고 전했다. 아르빌은 북이라크 쿠르드족들이 주로 살고 있는 도시로, 아르빌 주의 주도다. 이르빌(Irbil) 또는 에르빌(Erbil)이라고도 불리며, 모술 남동쪽 80km 지점에 위치한다.

2014년 7월, 극단주의 집단인 ‘다에시’가 소수집단인 그리스도인들을 겨냥해 소위 ‘성전’을 일으켜, 약탈과 방화, 강간과 살인 등 조직적인 집단 학살을 저질렀다. 아르빌대교구 관할 지역으로 국내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들이 이라크를 떠나지 않도록 생존을 위한 지원이 절실했다.

북이라크 교회 지도자들은 식량, 의료, 주거, 그리고 교육까지, 난민들을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고 국제사회와 지역교회들에 도움을 호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라크 지원에 나선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Aid to the Church in Need) 자비 캠페인 ‘하느님 자비의 도구가 되자’의 첫 번째 후원자가 되어 미화 11만 달러를 기부했다.

식량 지원을 위해 기본적인 식량을 담은 15만개 이상의 꾸러미가 1분기마다 난민 가정에 전달됐다. 월 6만6000원의 후원으로 한 가정이 기본적인 영양 섭취를 할 수 있다. 난민 발생 초기에는 텐트와 이동식 주택이 유일한 거주 수단이었지만, 이후 주택 임대 프로젝트를 시작해 3000가구 주택에서 6500여 가정이 살아가도록 지원하고 있다. 가구당 월 13만원의 임대료가 필요하다.

난민 의료 지원을 위해 세워진 아르빌의 성 요셉 병원은 매월 3000명 이상의 환자들에게 만성질환 관리 및 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진료와 함께 월 5000만원 상당의 의약품도 무상 지원한다. 병원은 지역 내 의사와 자원 봉사자들의 무료 봉사로 운영된다.

북이라크의 교회 지도자들은 중동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맞서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이라고 믿는다. 기성세대의 변화를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청년들의 교육은 미래의 평화와 화해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갖은 노력을 통해 북이라크에 난민 자녀들을 위한 13개의 학교가 설립됐다. 특히 2015년 12월 개교한 아르빌 가톨릭대학교는 최대 3만여 명의 수용이 가능한 건물을 짓고 2016년 1월에 개강했다. 학교는 150명의 난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한다. 1인당 1700만원의 학비가 소요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