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중국 장쑤성 쑤저우교구 치앤쥔웬 신부 선종

信德社 제공rn번역 임범종 신부(대구가톨릭대 중국어과 교수)
입력일 2016-09-06 수정일 2016-09-07 발행일 2016-09-11 제 3011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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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역 수난에도 본당 사목 헌신

사제서품 6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성직 생활과 인생 역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치앤쥔웬 신부.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교구 치앤쥔웬(錢俊元, 요셉) 신부가 지난 8월 27일 오후 사제단, 교우들의 기도 중에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향년 92세(한국 나이로는 93세). 치앤 신부는 선종 전날 쒸홍껀(徐宏根) 주교로부터 병자성사를 받았다.

치앤 신부는 1925년 출생으로 상하이 쉬자휘이(徐家匯)신학교에서 공부했다. 1955년 5월 18일 쉬자휘이 대성당에서 공티앤줴에(龔天爵) 주교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품 후 쑤저우 일대에서 전교를 하며 양지야차오(楊家橋)본당에 부임했으며 1957년 루쟈빵(陸家浜)본당 보좌신부를 맡았다.

그는 1958년 ‘반우파투쟁’이 일어나자 우파로 낙인이 찍혀 인근의 치앤떵(千燈)에서 단체로 ‘노동개조’(행정명령으로 강제노역을 하는 것)를 받게 됐다. 이후 베이따챠오(北大橋) 정미소에서 짐꾼으로 일하다가 루쟈빵본당으로 다시 돌아왔다.

1964년에 이르러서는 반혁명분자라는 죄명으로 농촌에서 노동개조를 하게 됐다.

1966년에는 장쟈썅(張家港)에 있는 먀오챠오(妙橋)공사로 압송돼 또 다시 노동개조에 처해진다. 1978년에는 방직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이후 개혁개방으로 양지야차오본당으로 돌아와 성당의 기틀을 다시 세웠고 쑤저우시 우쟝(吳江)에 위치한 리리(黎里)지역을 돌보며 성당 회복 업무까지 맡게 됐다. 이어 쑤저우 남쪽지역인 우쭝(吳中)에 땅을 구입해 새로운 성당을 지으며 교구 서쪽 지역으로 사목영역을 넓혔다.

1981년 쑤저우교구 총대리를 맡아 쑤저우와 난징(南京)에 수녀원을 세웠다. 또 서산(佘山)신학교에 문학반을 개설해 인근 교구 뜻있는 청년들과 신학생들을 모았을 뿐만 아니라 직접 라틴어 수업도 진행했다. 2002년 80세에 가까운 나이에 은퇴한 후 줄곧 양지야챠오본당에서 마지막 열정을 불살랐다.

信德社 제공rn번역 임범종 신부(대구가톨릭대 중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