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이란 지혜 지식 믿음을 계승하는 사람 뜻해
■ 뻗어 나가는 것
벤은 사물과 식물에도 쓰였다. 히브리어로 화살은 ‘헤츠’라고 하는데, 이따금 이 말 대신 ‘활의 벤’(욥기 41,20)과 ‘화살통의 벤’(애가 3,13)이라고 했다(우리말로는 모두 ‘화살’로 옮긴다). 야곱은 죽기 전에 12지파를 모두 축복하는데, 그중에 요셉 지파를 두 번이나 “열매 많은 나무”(창세 49,22)로 부른다. 이 말을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열매의 벤’인데, (열매가 많이 열린) 나뭇가지를 벤에 빗댄 것이다. 벤과 관련된 이런 비유적 표현을 보면, ‘몸통에서 갈려나가는 것’을 칭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화살은 활이나 화살통에서 뻗어 나가는 것이요, 나뭇가지는 줄기에서 갈려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몸통을 연장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들(벤)이다. ■ 정체성을 전승하다 벤은 정체성을 계승한다. 사회적 불의에 민감하게 저항했던 예언자 아모스는 스스로를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아모 7,14)고 겸손되이 칭했는데 ‘예언자의 제자’로 옮긴 말은 ‘예언자의 벤’이다. 이런 식으로 ‘아론의 벤’, ‘유다의 벤’, ‘지혜의 벤’ 등등 ‘…의 벤’이라는 표현을 구약성경에서는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표현은 문맥을 봐서 적절히 ‘…의 아들(들)’, ‘…의 자손(들)’, ‘…의 제자(들)’ 등으로 옮긴다. 그러므로 ‘내 아들’이라는 표현은 육친의 관계를 훨씬 넘는 표현이었다. 사무엘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을 보자. 어린 사무엘은 꿈에서 하느님이 부르셨지만, 무슨 의미인지 몰라 스승 엘리에게 거듭 달려갔다. 이 장면에서 엘리는 제자 사무엘을 ‘나의 벤 사무엘’(1사무 3.16)이라 부른다. 엘리와 사무엘은 피가 섞인 사이가 아니지만, ‘내 아들’이라고 부른 것이다. 잠언에서 거듭하여 “내 아들아”(잠언 2,1; 3,1 등)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내 아들’은 단순히 내 피를 잇는 사람이라기보다 내 지혜, 내 지식, 내 믿음을 계승하는 사람이다. ■ 하느님의 자녀 벤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우리가 하느님의 바님’이라는 고백에서 정점에 이른다. 일찍이 모세는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자녀들이다”(신명 14,1)고 가르쳤고, 호세아 예언자(호세 2,1)도 같은 말을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이미 구약시대에 ‘피의 자녀’보다 ‘믿음의 자녀’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었음이 확실하다. 이런 성찰은 신약성경에서 본격적으로 도약했다.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이요 ‘하느님의 상속자’로서(로마 8,14-23; 갈라 4,4-7), ‘하느님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들’의 호칭이다(요한 1,12; 11,52). 그들은 결국 부활에 동참할 것이다(루카 20,35). 그러므로 하느님 백성은 평소에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에페 5,1).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하느님의 자녀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라 부르셨다(마태 5,9).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rn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