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밀한 형제와 누이
형제와 누이는 친밀한 사이에서 부르는 사랑의 이름이기도 했다. 다윗과 요나탄은 “목숨처럼 사랑”하였다고(1사무 20,17) 묘사될 정도로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 요나탄이 아버지 사울을 거슬러 다윗을 살려준 적이 있지 않은가(1사무 20장). 그래서 요나탄이 죽었을 때, 다윗은 깊은 슬픔에 잠겨 애도하는 노래를 짓고, “나에 대한 형의 사랑은 / 여인의 사랑보다 아름다웠소”(2사무 1,26)라고 목놓아 울었다. 이 노래에서 다윗은 요나탄을 “나의 아흐”(2사무 1,26. “나의 형”)라고 불렀다. 피가 섞인 사이는 아니지만 깊은 우정을 나눈 대상을 이렇게 부른 것이다. 아호트(누이)도 애정이 듬뿍 담긴 말이었다.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아가를 보면, 신랑이 신부를 향해 거듭하여 “나의 누이”(아가 4,9-12)로 부른다. 전통적으로 이런 다정한 호칭에서, 신부인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애정이 드러난다고 이해했다.
■ 하느님 백성 전체가 형제
아흐는 고대부터 폭넓게 쓰인 말이었다. 그래서 ‘형제’만으로 하느님 백성 전체를 가리키기도 했다. “빚 때문에 종이 된 이를 놓아주는 규정”(신명 15,12-18)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끼리는 종살이를 하더라도 7년째에는 풀어주어야 했다. 이 규정은 “너희 동족인 히브리 남자나 여자”(신명 15,12)에게만 해당된다. “너희 동족”은 “네 아흐”를 옮긴 말이다. 하느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니, 가까운 혈육이 아닌 사람도 포함하는 호칭이고, 게다가 “남자와 여자”라고 토를 달았으니, 남성과 여성을 함께(!) 칭하는, 보편적인 호칭으로 발전하는 말이기도 했다.
■ 가난한 형제가 없도록
급기야 아흐는 더 낮은 이를 향한 보편적 사랑의 언어로 발전한다. “네 아흐(너희 동족) 가운데 가난한 이가 있거든”(신명 15,7) 나이나 성별을 막론하고 “그에게 반드시 주어야 한다”(신명 15,10)는 규정에서 아흐는 보편적 형제애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구약의 가르침은 예수님에게 이어진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는 가르침을 보라.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수천 년간 숙성시킨 형제애의 완성을 볼 수 있지 않은가. 다음에는 역시 알레프로 시작하는 ‘사랑’과 ‘아멘’을 보자(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