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세상 책세상] (26) 전자책과 종이책

김용은 수녀
입력일 2015-02-04 수정일 2015-02-04 발행일 2015-02-08 제 2931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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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미사 중에 신자들이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성가를 부르거나 말씀을 읽을 때가 있다. 또한 젊은 신부님은 스마트폰을 들고 강론을 하기도 한다. 순간 궁금해졌다. 과연 전자책과 종이책과의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 역시 여행을 하다보면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기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기도하고나면 기도했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되긴 하는데 뭔가 모르게 편치 않다. 산만한 주변 탓일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조용한 공간에서 나 홀로 스마트폰으로 기도해도 그 기분은 마찬가지다. 무거운 성무일도서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향기라고 할까? 손끝에서 전달되어오는 경건함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그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이 있다. 습관일수도 있고 편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여기에는 메울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기도와 전례는 집중력이 중요하다. 공부하듯 몰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모아 분심을 멀리해야한다. 텍스트 하나하나 마음에 되새기며 말씀속의 지혜를 우리의 신앙으로 고백한다. 글을 읽으면서 기도한다는 것은 지식을 익히는 것이 아닌, 신앙의 의미를 찾고 마음과 영혼을 정화시키는 거룩한 행위이다. 그러기 위해 글 하나하나에 마음을 모아 집중해서 깊이 있게 읽어야한다. 글을 깊이 읽으려면 의지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스마트폰 전자책은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일까?

스마트폰 전자책과 종이책의 텍스트는 서로 다른 것은 없다. 다만 그릇이 다르다. 즉 매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미디어학자인 맥루한은 “매체가 곧 메시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매체가 그 자체로 이미 메시지이고 인간의 생각과 생활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영문학자인 월터 옹은 형식자체에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매체라는 형식이 내용을 담지만 동시에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된다.

스마트폰을 말씀을 담은 그릇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똑같은 이 그릇에 음악과 영상, SNS와 수많은 정보의 그릇으로도 이용한다. 스마트폰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경험의 확장을 가져다주었고 그 안에서 지각하고 느끼고 경험하였기에 단순한 지각을 넘어 무의식 안에서 여러 가지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깊이 있게 읽고 집중력을 발휘하여 마음을 모으기에는 형식자체가 이미 너무도 산만하다.

한 신경정신과 의사에 의하면 전자책을 읽는 사람의 뇌에서 마치 게임을 할 때처럼 비슷한 뇌파검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종이책을 읽을 때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똑같은 텍스트인데도 말이다. 이는 인터넷에 빠진 사람이 컴퓨터 켜는 소리만 들어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소주사진만 봐도, 담배 피는 사람이 담배연기만 맡아도 쾌락중추를 자극하는 호르몬이 나온다는 연구결과와 다르지 않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살아간다. 스마트폰중독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싶다. 그렇다면 기도를 하려고 스마트폰을 여는 순간 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수십억 개들의 말들이 허우적대고 있는 스마트폰속의 전자책을 훑어보면서 과연 집중하면서 고요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말은 넘치고 집중력은 줄어드는 사회에서 육체적으로 발을 붙이고 멈춰 읽는 종이책이 아직도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용은 제오르지아 수녀(살레시오수녀회)는 미국 뉴욕대(NYU) 대학원에서 미디어생태학(Media Ecology)을 전공하고, 버클리 신학대학원(GTU,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살레시오 영성을 수학했다. 현재 부산 ‘살레시오 영성의 집’ 관장을 맡고 있다.

김용은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