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군선교 현장탐방] 10년 넘게 음악봉사 하는 생활성가 가수 장환진씨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2-04-10 수정일 2012-04-10 발행일 2012-04-15 제 2791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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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방송 라디오 ‘사랑의 노래 찬미의 노래’ 진행
드러나지 않는, 멋진 음악 봉사
악보가 든 가방 달랑 하나 메고 길을 나선다. 생활성가 가수 장환진(요한)씨는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강원도 철원행 시외버스에 몸을 싣는다. 특별한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어도 장씨의 나들이에는 늘 설렘이 넘쳐난다. 지난 2001년부터 떼기 시작한 걸음에 한결같은 설렘을 던져주는 이는 다름 아닌 육군 제6사단 청성본당(주임 하청호 신부) 병사들이다. 자신의 공연을 보러왔던 군종신부의 한마디에 트인 길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씩씩한 병사들이 반주도 없이 모기 소리로 성가를 부르고 있는 거예요.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날로 장씨는 전례 음악을 책임지는 지휘자로 코가 꿰이고 말았다. 토요일이 오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청성성당으로 달려갔다. 주일 오전 본당 교중미사 때면 성당을 찾는 병사들 가운데서 성가대를 급조해 전례를 돕는 게 그의 몫이다. 체계적인 발성연습부터 개인별 레슨까지…. 훈련이나 작전 등으로 매주 3분의 1 정도의 병사가 바뀌는 통에 성가 연습이나 전례에 대한 지도는 늘 새롭다. 장씨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낮 시간대 마련되는 6사단 제2신병교육대 미사와 밤에 봉헌되는 신병훈련소 미사 전례까지 지도하고 나면 파김치가 되기 일쑤다. 서울로 되돌아오는 막차는 이미 떨어진 시간, 인근 도시로 나가 근근이 차를 타고 돌아오면 늘 새벽이다. 이런 그의 열성과 능력이 알려져서일까, 수도권은 물론이고 부산 창원 강릉 대구 등 전국 각지의 군 본당은 물론 일반 본당들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한다. 어느 새인가 수요일엔 국군기무사령부와 인천해역방어사령부 공소 미사 붙박이가 되고 말았다.

“저를 부르는 소리가 주님께서 절 필요로 하신다는 부르심으로 들려요.”

어떨 땐 주머니에 올라올 차비조차 없어도 기어이 현장으로 달려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 2001년 PBC 창작생활성가제에서 금상을 받으며 교회 무대에서 얼굴을 알린 이래 틈틈이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해오면서도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길이었다.

■ 행복 나누기 사랑 더하기

이날따라 짐 아닌 짐이 여럿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부활대축일이 내일 모레.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병사들 생각에 도넛이며 이것저것 챙겨든 게 몇 보따리다. 장씨의 이날 나들이에는 휴가를 나와 있던 군종병 김승기(베드로·22) 병장도 함께했다. 병사들에게 천금보다 더 소중하다는 휴가를 접게 만든 건 장씨와 함께해온 추억이었다.

“형님하고 성당에 있으면 너무 재밌고…, 행복해요.”

군 생활이 행복하다는 말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장씨를 친형처럼 따르는 건 김 병장만이 아니었다.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고 세 시간여를 넘게 걸려 도착한 청성성당, 성당을 들어서는 장씨를 발견한 병사들이 먼저 달려와 안긴다. 병사들에게서는 간절함마저 풍겨온다.

“형님, 오셨어요?” “보고 싶었습니다.”

웃음을 가득 문 채 폭 안기는 윤홍걸(미카엘·22) 상병의 태가 오래 떨어져있던 가족이라도 만난 양 자연스럽다.

주말도 아닌 이날 장씨와 병사들이 한데 뭉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평소 주일 전례는 미사에 참례한 병사들이 주축이 돼 이뤄지다가도 부활이나 성탄 대축일 같은 특별한 전례시기 때는 부대 내 모든 군종병들이 모여 한 주 내내 합숙을 하며 특별한 전례음악을 준비하는 게 어느덧 청성본당의 관례가 돼있기 때문이다.

이내 코앞에 닥친 성목요일 전례를 위한 성가 연습이 시작됐다. 이미 몸에 익은 듯 10여 명의 군종병들이 테너 바리톤 베이스 등 각자의 음역을 맡아 중창단이 꾸려졌다. 장씨는 음악적 소양만을 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본격적인 성가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는 늘 그날 전례가 지닌 의미와 중요성, 성가곡이 지닌 뜻 등을 병사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치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자신들이 하는 일을 통해 하느님에 눈을 떴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장씨는 병사들에게 좋으신 하느님을 전하기 위해 가톨릭교리신학원을 졸업해 선교사 자격증을 따는가 하면 올해 들어서는 한발 더 병사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살레시오회에서 마련하는 ‘청소년사목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등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런 까닭 때문일까, 우연한 기회에 성가대에 발을 들여놨다 세례를 받는 병사들이 나오는가 하면 군부대를 오가며 둔 대자만 300명이 넘는다. 늘 편안하게 대해주는 그를 찾는 병사들 덕에 어느새 상담전문가가 되고 말았다.

“하느님께서 어디까지 바라시는지 모르겠어요.”

■ 행복한 기적체험

“자, 좀만 더 힘내서….” 마치 자신을 독려하기 위한 말인 것 같다. 그야말로 매시간 10분씩 쉬는 시간을 제외하곤 매일 밤이 이슥하도록 강행군이다. 하루도 안 돼 목이 쉬고 틈나는 대로 성가대석에서 쪽잠을 청하는 이들이 속출한다. 성가라고는 입대해서 처음 접해본다는 병사도 자신감을 얻을 무렵 드디어 미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기적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유서 깊은 성가대 못지않은 화음이 성당을 가득 메우고 군인 신자들은 편안하게 미사 전례에 빠져든다.

본당 성모회 윤성희(노엘라·49)씨는 “군에서는 생각도 못했던 화음에 취해 신앙심을 키워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미경(쿠네군다·35)씨는 “성가가 전해주는 따뜻한 감성으로 신자들이 많이 밝아진 것 같다”며 “군에서 이런 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에 주님께 감사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사가 끝나자 서로를 격려하는 포옹과 악수가 이어진다. 병사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적에 행복해하며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추억을 가슴 속 깊이 새긴다.

“하느님은 열정을 서로에게 옮게 만드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행복을 전하는 집배원은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함께 성가를 연습하는 시간은 하느님을 알아가는 깨달음의 시간이기도 하다.
장환진씨가 병사들에게 성가에 담긴 뜻과 전례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