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북 인도적 지원 계속돼야"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장 유흥식 주교 인터뷰

우광호 기자
입력일 2006-11-05 수정일 200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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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식 주교는 “대북 제재로 올 겨울 북한 주민들에게 큰 고통이 예상된다”며 “복음적 자세로 인도적인 북한 지원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폭력과 억압 그리고 해상 봉쇄와 같은 무력사용은 그리스도교적 해결책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북한을 억누르고, 대립각을 세운다 해도 교회 만큼은 복음적 정신을 견지해야 합니다. 교회 마저 폭력과 억압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유흥식 한국 카리타스(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주교의 어조는 강경했다. 굳게 다문 입에서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한 발짝도 물러날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배어났다. 10월 30일 유 주교는 대전교구청 교구장 집무실로 직접 기자들을 불러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한국교회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하게 입장을 밝혔다. 요즘 북한 지원 문제에 대해 나서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힘든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유 주교의 이날 발언은 ‘광야에서 외치는 예언자’를 연상케 했다.

유 주교는 “국제 카리타스는 11월 1일 부로 한국 카리타스에게 전 세계 교회의 이름으로 북한을 도와주는 대북지원 사업을 위임했다”며 “세계 모든 가톨릭교회가 북한을 돕겠다고 나서는데 한국만 북한 지원을 두고 망설이거나 혹은 논의가 분열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북한의 어려운 취약계층을 위한 국제 사회의 인도주의적 지원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교황청의 입장을 인용했다. 교황청이 “인도적 지원은 국제 사회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기 위한 제재 조치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인 만큼 세계 교회가 한국교회에 맡긴 대북사업을 성실하게 이어나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유 주교는 대북 지원 방법론에 대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북한 정권이 아닌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을 돕자는 것입니다. 현금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취약 계층을 도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도 병행할 계획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북한 주민들을 도와야 합니다. 당장 굶어 죽는 이들을 모른 채 내버려 두는 것은 죄악입니다.”

이와 관련 유 주교는 “우리가 하는 대북 지원 사업은 북한의 어린이, 환자, 수유모, 임산부, 장애인, 노약자 등 500만명으로 추산되는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500만명 이라는 수치는 최근 북한이 발표한 노년층 인구 통계와 그동안 국제 카리타스가 대북 지원활동을 하며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한 것이다.

“문제는 올 겨울입니다. 국제 사회의 제재가 본격화되면, 많은 북한 주민들이 올 겨울 엄청난 고통에 직면할 것입니다. 199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뜻에 따라 대북 사업이 실시될 때 보다 더 큰 재난이 예상됩니다. 우리는 열린 자세, 복음적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북한이 우리의 선의를 알아주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유 주교는 “이미 지난 6월 평양을 방문해 앞으로의 대북사업에 대한 양해 각서를 체결했고, 이를 기초로 지난 9월 6일 이후 10월 31일까지 개성에서 세 차례의 실무책임자급 회의를 가졌다”며 “대북 사업의 기초를 잘 쌓아나가면서, 우리의 정성이 북한 주민 한명 한명에게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유 주교는 또 앞으로 “북측에 한국 카리타스가 국제 카리타스 대북 사업 추진 기구로 결정된 사항과 인도적 지원을 계속 할 것이라는 교황청의 입장을 전할 계획”이라며 “이 기초 위에서 앞으로의 대북사업에 대해 협의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돌처럼 굳은 한국 교회 신앙인들이 북한 주민에 대해 사랑의 마음을 열어 달라는 호소는 인터뷰 내내 계속됐다. 유 주교 마음은 인터뷰 도중에도 북한의 고통받는 형제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국제 카리타스를 대표하여 한국 카리타스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한국 카리타스의 여정에 한국교회 400만 교우들의 적극적인 기도와 협력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이 땅에 사랑과 애덕, 화해와 일치를 이루시려는 하느님의 크신 뜻 안에 있다고 믿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충실히 행하여 나아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한국 카리타스 대북지원 추진 기구 위임 일지(日誌)

▶2005년 11월 31~12월 1일

국제 카리타스 대북지원 특별소위원회 서울회의에서 한국 카리타스가 선입 기구인 홍콩 카리타스를 이어 국제 카리타스 대북지원 실무 책임을 담당하기로 결정

▶2006년 3월 15일

한국 카리타스 내 대북지원 실무담당팀 구성

▶2006년 5월 11~15일

원활한 업무 인수인계 위해 홍콩 카리타스 방문. 젠 추기경 접견, 협력 당부.

▶2006년 6월 1일

한국 카리타스 위원장 유흥식 주교와 총무 황용연 신부 평양 방문. 북측 협상 파트너인 민족경제협력위원회 김성일 부위원장과 카리타스 대북사업에 관한 의향서 체결.

▶2006년 6월 7~9일

국제 카리타스 대북지원 특별소위원회 운영위원회 1차 회의 서울대교구청에서 개최.

▶2006년 9월 6일

개성 남북경제협력회의 사무소 2층 남측 회의실에서 제1차 실무책임자급 회의 개최.

▶2006년 10월 11~12일

개성 남북경제협력회의 사무소 남측 회의실에서 대북지원 특별소위 운영진과 함께 2차 실무책임자급 회의. 유례없이 외국인과 한국인이 동시 방북하는 성과.

▶2006년 10월 18~19일

로마 국제 카리타스 본부에서 2006년 11월 1일부터 한국 카리타스가 국제 카리타스 대북사업의 추진 기구 역할을 위임받아 이행하기로 함.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