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향해 높이 뻗은 두 첨탑…내포교회 중심지로 100여 년 자리 지켜 본당 출신 사제·수도자 100명 넘어 한국교회 ‘성소의 못자리’라 불려
서해안고속도로 송악나들목을 나와 충남 내포(內浦)의 너른 평야를 달린다.
11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솔뫼성지 방문 이후, 이곳 내포는 교황 방문 성지로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솔뫼와 신리, 여사울 등 천주교 성지를 알리는 입간판들이 교차로마다 세워져 있는 걸 봐도 짐작할 수 있다.
18세기 말 내포의 사도 이존창의 전교로 싹튼 ‘내포교회’는 한국 천주교의 중심지이자 신앙 못자리라 불린다. 초기 조선교회 어느 곳보다 많은 신자가 공동체를 이뤄 신앙생활을 했고 때문에 신해박해(1791년) 이후 무진박해(1868년)까지 크고 작은 박해마다 수많은 순교자가 나왔다. 교회사에 등장하는 성직자 대부분도 이곳 내포를 터전으로 활동했다.
합덕삼거리에서 신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농촌의 여느 풍경과 전혀 다른 이국적인 모습. 대전교구 합덕성당이다. 내포가 한국교회 신앙 못자리라면 합덕성당은 내포교회의 중심이다. 그 수식어를 대변하듯 성당은 내포의 너른 평야를 바라보며 우뚝 서 있다. 아담한 성모동산이 ‘주님,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요한 6,68)라 새겨진 비석과 어우러져 순례자를 맞이한다.
합덕본당의 역사는 1890년 충남 예산 고덕면 상궁리에 ‘양촌본당’(현 예산 양촌공소)이 설립되며 시작됐다. 이후 1899년 현재 자리로 성당을 옮기면서 본당 이름을 합덕으로 바꿨다. 현재 성당은 제7대 주임인 필립 페랭(Philippe Perrin, 백문필 필립보) 신부가 1929년 세운 것이다.
계단 맨 위 예수성심상과 하늘 높이 뻗은 두 개의 첨탑이 한 폭의 그림을 보듯 아름답다. 두 첨탑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상징한다. 한 순례자는 두 첨탑이 마치 하늘 향해 두 손 뻗은 기도 손이라 표현했는데 직접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성당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탈출 3,5)라는 말씀 그대로다. 제대까지 줄지어 선 회색 기둥이 아치형 천장을 떠받치고 있다. 성가정을 주보로 모신 성당답게 제대 뒤에는 ‘성가정화’가 십자고상을 대신해 걸려 있다. 1930년대 당시 본당 주임이던 페랭 신부의 사촌이 그린 것이다. 좌우 스테인드글라스의 은은한 빛 머금은 성화를 마주하며 자리에 앉는다. 제대 우측으로는 성 김대건 신부,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의 유해와 페랭 신부의 유품인 십자가가 모셔져 있다.
성당을 나서 골고타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옛 사제관 건물 뒤로 돌아가면 황석두(루카) 성인, 그리고 한국전쟁 때 순교한 페랭 신부, 총회장 윤복수(라이문도), 복사 송상원(요한)의 순교비와 봉분이 14처 곁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합덕에서 30년째 사목하던 페랭 신부는 신자들의 피난 권유에도 “내 양들을 위해 내 목숨을 버리겠다”며 성당에 남아 있다가 8월 14일 고해성사 중 인민군에 체포됐다. 그때 곁에 있던 윤복수와 송상원 또한 자신들은 신부님을 모시는 사람들이니 “신부님과 함께 갈 것”이라며 페랭 신부를 따랐다. 체포 한 달 후 페랭 신부는 대전 목동에서 두 평신도는 당진에서 순교했다. 이들은 한국교회가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위에 속해 있다.
넓은 잔디마당의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성당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푸르름을 뽐낸다. 고목(古木)만큼이나 오랜 세월, 합덕성당은 이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를 배출해 냈다. 본당 출신 사제·수도자만 100명을 넘는다. 내포 순교자들의 신앙 열정이 이곳 합덕 사람들의 면면으로 이어져 결실을 이룬 것이다. 본당이 한국교회 ‘성소의 못자리’라 불리는 이유다.
미사를 마친 할머니들이 하나둘 교리실로 모인다. 레지오 회합을 위해서다. 지팡이와 보행기에 의지하는 불편함도 마다하지 않고 하나둘 모인 할머니들이 성모님 곁에 촛불 밝히고 묵주기도를 봉헌한다. 할머니 한분 한분의 정성 담긴 기도가 하늘에 닿아 합덕성당의 지금, 한국교회의 오늘이 있게 했음을 마음에 새긴다. 성가정의 어머니 성모상 바라보며, 할머니들처럼, 성모송을 봉헌한다.
◆ 대전교구 합덕성당
- 주소 : 충남 당진시 합덕읍 합덕성당2길 22
- 미사 : 주일 미사(오전 6시·10시, 토요일 오후 5시)
화 오후 5시, 수~금 오전 10시
- 문의 : 041-363-1061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