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미사 전례

[알기 쉬운 미사 전례[(15) 복음 환호송과 부속가

이주연
입력일 2024-04-05 수정일 2024-04-10 발행일 2024-04-14 제 3388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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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소식’ 맞이하며 환호하는 노래
하느님을 찬미하라는 뜻 ‘알렐루야’…'야' 음절 길고 화려하게 부르면서 새로운 가사 추가된 부속가로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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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활 대축일 부속가인 ‘파스카의 희생께 찬미를’ 악보 일부. 16세기에 부속가가 수천 곡에 이르게 되면서 전례에 혼란을 야기하자 공의회를 거쳐 4곡으로 제한됐다.

‘굶는다’는 것은 주로 먹는 것에 사용하는 동사이지만, 어떤 것을 꾹 참고 기다리는 상황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순 시기에 가톨릭신자들은 미사 중에 두 가지, 곧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굶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수난받고 묻혔다가 부활하신 사건을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부활 사건’을 기념하는 때에 웅장한 악기 연주와 함께 장엄하게 노래로 부르기 위해서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아꼈던 거지요.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부터 파스카 성야 전까지는 ‘알렐루야’ 대신에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또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등을 복음환호송의 후렴구로 사용합니다.

‘하느님(ia)을 찬미하라(allelu)’는 뜻의 ‘알렐루야’(alleluia)는 시편에서 사용되던 고대의 전례 환호로서,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모두의 전례적 유산에 속합니다. 서방의 여러 지역에서는 4세기 말 복음에 앞서 화답하는 후렴인 알렐루야가 50일 동안 곧 부활절부터 오순절(성령강림)까지 불렸고, 아프리카에서는 이 시기를 ‘알렐루야 시기’라고까지 했습니다. “기뻐하는 사람은 말로 하지 않고, 말 없는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라고 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설명에 가장 적합한 것이 환호의 알렐루야일 겁니다.

부활 시기 50일 동안 바치던 알렐루야를 대 그레고리오 교황(재위 590~604년)의 전례 개혁을 통해 연중 주일에도 알렐루야를 노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이유는 교황께서 모든 주일이 주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 대축일과 동일시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알렐루야의 ‘야’(ia)는 지금은 ‘주님’으로 번역하는 ‘야훼’를 의미하며 이를 음악적 용어로 ‘유빌루스’(Jubilus, 환희)라고 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따라서 그레고리오 성가로 ‘알렐루야’를 부르는 경우, 특히 ‘야’(ia)의 음절에 많은 음을 사용하여 길고 화려하게 부르는 멜리스마 관습이 생겨났습니다. 이후 점차로 ‘야’(ia)가 지니고 있던 멜로디와 여기에 추가된 새로운 가사가 별도의 노래로 발전하였는데, 이것이 ‘부속가’(Sequentia)입니다.

9~10세기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부속가는 16세기에는 수천 곡에 이르게 되어 전례에 혼란을 야기했고,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부속가를 4곡, 곧 주님 부활 대축일의 ‘파스카의 희생께 찬미를’, 성령 강림 대축일의 ‘오소서, 성령이여’,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의 ‘시온아, 찬양하라’, 그리고 위령의 날의 ‘분노의 날’로 제한합니다. 여기에 1727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재위 1724~1730)에 의해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9월15일)의 ‘십자가 아래의 어머니’가 추가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의 전례 개혁으로 부속가는 모두 4개로 제한됐습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의 부속가는 의무이고,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의 부속가는 선택입니다. ‘십자가 아래의 어머니’(Stabat mater)의 11절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는 십자가의 길에서 각 처를 이동하면서 부르는 노래로 사용하여 귀에 익습니다. 미사에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위령의 날 부속가인 ‘분노의 날’(Dies irae)은 성무일도 연중 제34주간 독서기도 찬미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알렐루야를 뒤따르던 부속가가 지금은 전례적 흐름 때문에 알렐루야 앞으로 배치된 것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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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