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서울대교구 새 주교 탄생] 인터뷰 정순택 신임 보좌주교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3-12-31 수정일 2013-12-31 발행일 2014-01-05 제 2877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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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탔던 나귀처럼 그분만 돋보이게 하겠습니다”
‘빛’ 역할 하기 위해 세상과의 접점 찾아야
“영성 목말라하는 시대에 수도회 출신으로서
  교구-수도회 조화롭게 나아가도록 힘쓰고파”
“한국교회가 사회에 어떤 빛을 비출지 고민하며 교회와 사회의 접점을 찾겠다”고 말한 정순택 주교는 수도회 출신인만큼 “영성에 목말라하는 시대에 교구와 수도회가 조화롭게 나아가게 하는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1세기 한국교회가 사회에 어떤 빛을 비출지 고민하면서 교회와 사회의 접점을 찾겠습니다.”

정순택 주교는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공식 임명된 12월 30일 오후 8시 인천 계산동 가르멜수도원에서 서울대교구 조규만 보좌주교의 축하를 받은 후 첫 목소리로 한국교회가 시대의 징표를 읽고 빛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정 주교는 “빛은 어두운 곳일수록 밝게 빛나지만 빛의 역할은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교회는 사회와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교회가 사회를 선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류에 편승해 변화되는 것도 문제지만 교회가 사회와 유리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제시한 ‘세상을 향해 창을 연 교회’를 지향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정 주교는 12월 19일 가르멜수도회 로마 총본부에 체류하던 중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으로부터 내방 요청을 받고 처음에는 수도회 업무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인류복음화성 차관 사비오 혼 타이파이 대주교가 들고 온 서류를 보여주며 사인하라는 요청을 하고서야 주교로 임명된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 주교는 당시의 느낌을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충격’이었고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불안감이나 흥분이 아니라 오히려 머리가 명징해지면서 “지난날의 나를 비워내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믿음으로 주교직에 응답했다”고 말했다. 정 주교는 주교직은 조금도 꿈꾸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충격으로 다가왔다면서도 하느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고 그분의 부르심에 순명했다고 덧붙였다.

수도회 출신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서의 역할에 대한 물음에 정 주교는 “가르멜수도회는 외국에서는 본당 사목을 하지만 국내에서는 전혀 본당 사목을 하지 않아 저 역시 본당 사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며 “제가 서울대교구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아직 계획이나 구도가 없는 백지상태”라고 답했다.

이어 “영성에 목말라하는 시대에 수도회 출신인 제가 교구를 도와 교구와 수도회가 두 수레바퀴처럼 조화롭게 나아가게 하는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 주교는 1986년 가르멜수도회 입회 후 1993년부터 수도회 수련장, 서울과 광주 학생수도원 원장, 로마 총본부 동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담당 부총장 등을 역임하며 20년 가까이 영성 양성에 주력해 왔다. 정 주교의 수도회 시절 행보는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서도 연결돼 서울대교구 나아가 한국교회 전반에 영성의 깊이를 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정 주교는 “제가 주교로 임명됐을 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며 탔던 볼품없고 비실비실한 나귀 같은 존재가 돼 오직 예수님만을 돋보이게 하자는 다짐을 했는데 부족한 저를 선후배 신부님들과 선배 주교님들이 도와주실 것을 청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앞으로 교구 일을 배우면서 주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입은 되도록 다물고 살겠다”며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

서울대교구 교구민들에게 바라는 점에 대해서는 “지금은 사회적으로는 물론 교회도 분열을 겪는 어려운 시대로 교구민들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명과 그 은총도 역시 크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며 “한국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서울대교구의 신자로서 조금 더 일치하고 기본에 충실하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의 ‘맏형’인 서울대교구가 갈수록 심해지는 교회 내외의 갈등과 분열상을 극복하는 데도 앞장서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 주교는 1986년 입회해 27년간 몸담았던 가르멜수도회의 영성을 묻는 질문에는 “가르멜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 중간에 만나는 모든 것을 무로 돌리고 하느님께만 나아가는 영성”이라고 답했다. 계속해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하느님 한 분만 남는다’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말로 요약되는 영성이라고 부연하면서 자신의 수도성소와 수도자 생활의 근간이었던 가르멜 영성을 새로운 소임지인 서울대교구에서도 견지할 뜻을 피력했다.

정 주교는 수도생활을 하며 가장 힘든 시기를 포콜라레 운동에 열심이던 부모가 2010년 모두 선종했을 때라고 회상하며 “아버지께서 지금 살아계시다면 제가 주교라는 새 직책을 맡게 돼서가 아니라 앞으로 주교로서 어떤 일을 하는지를 보고 기뻐 하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학도에서 수도자로, 수도자에서 주교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정 주교는 새 출발과 도전의 힘을 ‘전례’에서 얻는다고 밝히면서 “특히 매해 찾아오는 성탄을 통해 신앙을 되살리는 원동력을 얻곤 한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성탄을 단순한 반복이나 연말 행사로 맞이해서는 안 되며 하느님이 우리에게 새 출발점이 되도록 한 번 더 주시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1년 태국 낙혼사완 지역의 가르멜 수도회 봉쇄수녀원을 찾은 정 주교가 수도원 묘원에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
정순택 주교(앞줄 가운데)가 2012년 동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담당 부총장으로서 가르멜 수도회 일본지부를 방문,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약력

1961년 8월 5일

대구 출생

대구 효성초등학교 졸업

서울 동일중학교 졸업

서울 우신고등학교 졸업

1980년 ~ 1984년 서울대학교 공대 공업화학과

1984년 ~ 1986년 가톨릭대학교(대신학교)

1986년 5월 가르멜 수도회 입회

1988년 2월 7일 가르멜 수도회 첫 서원

1992년 1월 25일 가르멜 수도회 종신서원

1992년 6월 가톨릭대학교 석사

1992년 7월 16일 사제 수품(인천 수도원)

1993년 ~ 1997년 가르멜 수도회 수련장

1997년 ~ 1998년 가르멜 수도회 서울 학생수도원 원장 겸 지부 제2참사

1999년 ~ 2004년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교 성서학 석사 학위

2005년 ~ 2008년 가르멜 수도회 인천수도원 부원장 겸 준관구 제1참사

2008년 ~ 2009년 가르멜 수도회 광주 학생수도원 원장 겸 관구 제1참사

2009년 ~ 2013년 가르멜 수도회 로마 총본부 동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담당 부총장

2013년 12월 30일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 임명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