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이경상(바오로) 주교의 주교서품식이 4월 11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됐다. 이날 주교 서품미사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주례,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과 교황대사 직무대리 페르난도 헤이스 몬시뇰,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를 비롯한 전국 주교단과 교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봉헌됐다. 미사 후 축하식에서는 교황대사대리 헤이스 몬시뇰과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윤석열 대통령(유인촌 문체부장관 대독), 오세훈(스테파노) 서울시장, 사제단 대표 지상술(힐라리오) 신부와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안재홍(베다) 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이경상 주교는 답사를 통해 "저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해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감사드리며 순종을 서약했음을 다시 기억한다"면서 "교구 공동체를 위해 성심성의껏 교구장님을 보필하겠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선후배 주교·사제단, 수도자, 교구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이 주교는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한 어머니 교회에서, 주님의 영을 제 안에 지니고 사람들이 겪는 일상의 노고와 고통, 애환에 감수성과 연민을 갖고 살아가겠다"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토마스 아퀴나스) 장관, 국가보훈부 강정애(율리안나) 장관, 배우 이윤지(마리아)·지진희(요한)·차승원(요한)씨 등이 참석해 이경상 신임 주교의 서품을 축하했다.

2014년 봄, 처음에는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멈춰버린 기분, 정지버튼을 누른 듯 멈춘 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 죽는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그러나 정작 죽은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나 붙어 다녔던 단짝 친구, 함께 신부가 되자며 꿈을 나누던 그 친구는 세월호를 타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멈춘 듯했던 시간은 흘렀고, 올해도 다시 불어온 봄바람에 어김없이 벚꽃이 나부꼈다. “딸랑.” 수원가톨릭대학교(이하 수원가대) 교정에서 만난 수원교구 심기윤(요한 사도) 부제는 문득 종소리가 들리는 언덕 위를 바라봤다. 세월호 희생자 고(故) 박성호(임마누엘)군의 이름을 딴 임마누엘경당에 달린 풍경(風磬)이 낸 소리였다. 심 부제는 “교정을 거닐며 기도하다가 종소리가 울리면 성호가 찾아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며 미소 지었다. 세월호 참사로 함께 사제의 꿈을 키우던 친구를 떠나보내고 10년 동안 사제의 길을 준비해온 심 부제를 임마누엘경당에서 만났다. ■ 친구 대신 온 경당 처음 만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심 부제와 성호는 늘 함께였다. 학교는 달랐지만 방과 후엔 늘 함께였고, 성당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곁에 있었다. 단짝 중의 단짝. 어찌나 둘이 붙어 다녔는지,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캠프나 프로그램 중에 모두가 어울릴 수 있도록 어떻게든 두 사람을 떼어 놓느라 애를 써야 했을 정도다. 늘 함께였고, ‘사제’라는 꿈도 함께 꿨다. 심 부제는 성호와 함께 꾸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신학교에 왔다. 그러나 성호는 오지 못했다. 성호의 이름을 담은 경당만 신학교에 왔다. “참사 후에는 슬픔과 분노가 가득했고 세상이 차갑게만 보였어요. 그런데 임마누엘경당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희망을 바라보게 됐던 것 같아요.” 심 부제는 2014년 경당이 처음 지어지던 때를 떠올렸다. 왜 성호에게, 친구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에 대한 분노와 원망, 절망이 가득했던 그 시기.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 앞마당에 작은 나무 경당이 세워지고 있었다. 성호의 꿈을 대신 이뤄주고자 ‘세월호가족지원네트워크’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이 함께했다. 하루하루, 나무판자가 세워지더니 지붕이 올라가고, 종이 달렸다. 심 부제는 그렇게 경당이 완성되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의 손이 거쳐 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정말 많은 분들이 자신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슬픔을 함께하려고,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느꼈어요. 그들의 작은 사랑 하나하나가 크게 와 닿았고요. 절망의 유효기간은 짧고, 희망이 왜 희망인지를 배웠어요.” 2018년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가 철거되면서 임마누엘경당도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당시 안산대리구와 수원가대가 성호의 꿈을 담은 이 경당을 성호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신학교, 수원가대 교정에 이전하면서, 경당은 이곳에 자리 잡았다. 경당 옆에는 팽목항에 서 있던 세월호 십자가도 있다. 마찬가지로 팽목항에서 철거된 십자가를 수원가대가 2017년 교정에 받아들였다. 수원가대는 세월호 십자가를 경당 옆으로 옮겨 경당과 십자가 인근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경당 부근에는 벚꽃이 많아 봄이면 신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벚꽃 명소다. 성호 대신 온 경당. 심 부제는 “경당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슬픔과 위로가 공존하는 장소”라고 했다. 볼 때마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성호와 친구들이 떠올라 슬프지만, 또 기도 안에서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 함께 걷는 사제로의 길 “신학교 저학년 때는 ‘내가 성호 몫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고학년이 되면서 그런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성호가 그걸 원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제가 하느님 안에서 기쁘게 사는 게 성호가 원하는 것일 거예요. 성호는 그런 친구예요.” 단짝 성호가 떠난 지 10년이지만, 사제의 길을 향해 걷는 심 부제에게 성호는 여전히 곁을 함께하는 친구다. 그러나 친구의 몫을 대신 지고 간다는 생각은 없다. 심 부제에겐 이 길을 기쁘게 가는 것, 그게 성호가 바라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누구보다 성호와 단짝이었던 심 부제이기에 안다. 심 부제는 “만약 성호가 사제의 길을 걸었다면 아마 누구보다도 잘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친구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예수님이 제 인생의 롤모델이시지만, 성호는 또 다른 롤모델이었다”고 말했다. “가난하고, 고통 받고, 버려지고, 또 슬퍼서 울어야 하는데 울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곁에서 때로는 같이 울고, 때로는 위로하고, 또 그 안에서 다시 웃을 수 있게끔 힘을 주는 사제가 되고 싶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제게 많은 신부님들이 그래주셨듯이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사제의 꿈을 꿨지만, 세월호 참사는 심 부제에게 어떤 사제로 살 것인가에 대한 모습을 보여줬다. 세월호 참사로 성호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을 잃고, 심 부제의 삶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상처는 더 깊어졌고, 마땅히 울어야 했지만, 울지도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하느님은 어디 계신가’란 한탄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시간. 그 속에서 많은 이들이 심 부제 곁에 있었다. 심 부제는 “많은 신부님들이, 수녀님들이, 신자분들이 곁에 계셨는데, 사실 그분들 성함이나 세례명도 기억하지 못한다”면서 “그러나 그분들을 통해 곁에 하느님이 계시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도 그분들처럼 제가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억하게 해주는 신부님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부제품을 받은 심 부제는 이제 사제품을 받기 위한 마지막 과정을 밟고 있다. 성호가 떠난 지 10년, 사제로서 새롭게 길을 걷기 위해 다시 힘을 낸다. 그리고 그 길은 더 이상 혼자 걷는 길이 아니다. “성호야, 내 친구여서 고맙다. 그동안 표현은 못했지만, 사랑한다.”

대개 청년 신자들은 기도보다 생활성가 찬양과 같은 활동만을 선호할 것이라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영성보다 활동 중심적인 본당 청년 활동, 표면적으로만 접하는 신앙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청년도 많다.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하는 방법을 모르겠다”거나 “삶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는지 배운 적이 없다”며 교회에서 멀어지는 청년도 있다. 예수회가 전 세계에서 펼치는 평신도 영성 활동인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한국 책임자 손우배 요셉 신부, 이하 기도의 사도직)는 개인별 기도 교육, 영신 상담 등을 통해 청년들의 영적 갈증을 채워주고 있다. 예수회원들 도움으로 예수와의 인격적 만남으로 나아가는 기도의 사도직 청년 회원들은 그들이 방황하지 않도록 나침반처럼 안내하시는 주님을 비로소 체험하고 있었다. ■ ‘그분과의 진지한 만남 추구’ 4월 5일 저녁 7시30분, 서울 예수회센터에서 장엄한 미사가 봉헌됐다. 오르간 성가가 울려 펴지는 가운데 십자고상, 예수성심 상본, 성경을 치켜들고 입당한 건 다름 아닌 청년 복사단원들. 전례 중 제대와 복음서, 신자들을 향해 분향하는 것도 빠지지 않았다. 기도의 사도직은 매달 첫 금요일 바치는 예수 성심 신심 미사를 장엄미사로 봉헌한다. ‘전통 전례는 고리타분해서 싫어할 것’이라는 흔한 예상과 달리 청년 회원들의 호응이 높다. 전통 전례를 경험하기 힘든 청년 회원들은 “가톨릭교회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가치로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고 늘 말한다. “피어오르는 향을 보면 주님에게서 오는 크나큰 위로가 느껴져요. 한 달간 삶 속 힘들었던 것들이 주님께 봉헌돼 올라가는 기분이거든요.” 미사에 참례한 60명가량의 회원 중 청년은 무려 20여 명. 한창인 봄 날씨에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러 가기보다 성당으로 발걸음한 이유는 주님과의 진지한 만남을 추구해서다. 미사에 앞서 5시30분 시작된 기도 묵상과 성시간 전례 때부터 한 명 한 명 모여들었다. 신앙과 괴리되기 쉬운 분주한 삶…. 청년들은 성체 조배와 강복을 통해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예수님을 느끼고 그분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복사기를 돌리거나 상자를 옮기는 등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작업에서도 주님께서 자신에게 바라시는 뜻을 찾고, 일상을 예수성심에 봉헌하는 기도의 사도직 영성을 실천하면서 그분과의 인격적 만남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관상기도에서 마주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답답함 가운데 예수님이 함께 계시니 어느 순간 괜찮아졌던 체험처럼 청년들은 예수님을 만나며 그간 느껴본 적 없던 근본적 안정감을 맛본다. 2016년부터 예수 성심 신심 미사에 참례해 온 이원준(유스티노·37·서울 도곡동본당)씨는 “예수님을 내 삶에서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내 삶에서 구체적으로 그분 뜻에 따라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조금씩 느끼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격적으로 오신 그분을 찾기 전의 삶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평화”라고 덧붙였다. ■ 기도하는 방법 “염경기도 외에 별다른 기도를 해본 적이 없었어요.” 청년 회원들은 레지오, 성서모임, 이런저런 봉사에 몸담았던 사람이 대다수다. “아무리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신앙 지식을 쌓아도 채워지지 않던 목마름은 바로 기도에 대한 갈구였다”는 말은 그들의 공통된 고백이다. 신앙인에게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청년들도 알고 있지만 정작 어떻게 기도하는지는 잘 모른다. 기도의 사도직은 이렇듯 깊이 있는 기도와 친숙하지 않은 청년들을 위해 ‘기도 학교’ 등을 열고 있다. 기도 순서가 복잡하고 일반 청년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신수련을 가르쳐 주고 묵상과 성찰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장이다. 청년들은 예수회원들에게서 가장 기초적인 것들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침을 받는다. 본질적으로 예수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위해 자신의 내면을 비우는 침묵, 영으로 깊이 침잠하게 하는 호흡법, 자세를 배운다. 그러다 보면 양심 및 자아 성찰, 향심기도, 렉시오 디비나 등 깊이 있는 기도법으로 어느새 자연스럽게 나아가게 된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식이 아니라 청년 개개인에게 영적 동반자로 함께하는 여정이다. 청년들은 예수회원들이 매번 내주는 기도 숙제를 받아 각자 수행하게 된다. 청년들을 위한 개인 면담도 이뤄진다. 면담에서는 막연한 체험을 듣기보다 청년들에게 기도 느낌이 어땠는지, 관상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됐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도록 이끈다. 기도의 사도직 한국 부책임자 최준열(다미아노) 신부는 “늘 내면에 무언가 갈망이 있음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그 실체가 예수님임을 알려주는 것이 기도 교육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돈, 지위 등 저마다 좇는 목적을 이뤄도 허전한 마음은 예수님과의 밀접한 대화로 비로소 채워지는 것”이라고 전했다. ■ 나눌 수 있는 분위기 “‘펠릭스 쿨파’(Felix Culpa, 복된 죄)라고 하잖아. 어쩌면 우리가 죄인이기에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닐까 싶어.” 학업, 취업, 직장생활…. 인생에서 유독 캄캄한 시련만 몰아치는 시기를 보내는 청년들은 언제나 마음속으로 “하느님, 함께 있어 주세요”하고 되뇐다. 하지만 그를 다른 청년들과 나누기는 쉽지 않다. 본당 청년 모임 뒤풀이 자리에서만 해도 신앙 이야기를 꺼내려다가도 “오글거리니 그만두자”하고 단념한다. 하지만 기도의 사도직 청년 회원들은 함께 자연스럽게 신앙 이야기를 나눈다. 먼저 청년들에게 본인의 기도 체험을 나누는 예수회원들이 조성한 나눔의 문화다. 반응하는 삶과 응답하는 삶은 어떻게 다른지, 각자 어떻게 자기 삶에 응답하고 있는지 식사 자리, 술자리에서도 물꼬를 트는 예수회원들을 따라 청년들도 자유롭게 털어놓을 용기를 얻는다. 3년째 회원으로 함께하는 양은혜(그라시아·36·의정부교구 일산본당)씨는 “‘우리가 이렇게 서로 도와주라고 하느님이 만나도록 엮어주셨나 보다’라는 등 소소한 일상에서도 청년들이 하느님 현존을 함께 찾아내고 나눌 수 있어 큰 위로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는 1844년 ‘기도의 사도직’(Apostleship of Pray)으로 출발한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는 이냐시오 영신수련을 일상에서 살아가며 예수성심과 일치하는 삶을 실천한다. 회원들은 ▲성체성사와 매일 봉헌기도 및 성찰기도 봉헌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에 대한 믿음 ▲교황 매달 기도지향 동참 등 노력으로 평범한 일상을 예수에게 봉헌하고 신앙과 일상을 통합하는 평신도 영성을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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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물, 망가지거나 안 쓰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톨릭교회는 예술작품을 통한 신앙심 전파에 적극적이다. 그렇기에 미술이 발달했고, 신심행위와 기도를 돕기 위해 성물 사용을 권장한다. 그렇기에 각 가정에서는 다양한 성물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많이 보유하고 자주 사용하는 만큼 부서지거나 낡아지는 성물 또한 적지 않다. 부서진 성상, 안 쓰는 묵주 등 집에 그냥 두기 어려운 성물들을 알맞게 처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폐 성물 처리에 대한 교회의 명확한 가르침은 없다. 하지만 잘게 부수어 깨끗한 땅에 묻거나 일반 쓰레기로 버리는 방법이 널리 알려져 있다. 성물 그 자체를 너무 신성하게 여기면 안 되지만, 악용될 여지가 있어 아무렇게나 버려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이런 폐 성물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신자들은 폐 성물 처리 방법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망가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쓰지 않아 버리려는 성물 처리는 더욱 힘들다. 축복까지 받은 성물을 막상 부수는 것이 내키지 않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서재희(엘리사벳·68·수원교구 서부본당)씨는 “내 사유지가 아닌 이상 깨끗한 땅을 찾아 묻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거룩하게 모셨던 것을 내 손으로 부수거나 더러운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리기도 꺼려져서 처리 비용을 받고라도 어디선가 수거해 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예수회 박종인(요한) 신부는 “축복받았던 성물을 일반쓰레기로 폐기하는 건 어려울 듯하다”는 견해를 전하며 “교회 차원에서 폐기 시스템이 갖춰지면 신자들이 반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에는 파손되거나 훼손된 성물을 사순 시기 등에 본당 사무실에서 모았다가 교회 묘지에 묻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현재 많이 사라진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 행당동본당(주임 소원석 가브리엘 신부)은 주보 공지를 통해 4월 14일까지 안 쓰는 성물을 수거하고 있다. 평소 신자들의 요청이 반영돼 각 가정에 방치된 십자고상, 성상, 묵주 등 폐 성물을 본당에서 일괄 처리키로 한 것이다. 행당동본당 관계자는 “현재 성모상, 묵주 등의 폐 성물이 모였다”며 “신자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폐 성물을 재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안동교구 문경 힐링휴양촌 명상센터(담당 정도영 베드로 신부)는 안 쓰는 성상이나 묵주를 받고 있다. 성상은 부순 뒤 콘크리트를 섞어 블록을 만들어 인근 한실성지 보수 등에 쓴다. 정도영 신부는 “신자들이 성물 폐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에 공감하며 폐 성물을 받기 시작했다”며 “성물을 판매한 곳에서 처리 방안도 고민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에 제주 4·3 희생자 기억 ‘4월걸상’ 놓여

제주 4·3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4월걸상’이 광주에 세워졌다. 제주 밖 육지에 세워진 최초의 4·3 조형물이다. 인권연대 오월걸상위원회(공동대표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는 4월 2일 광주 광산문화예술회관 광장에서 ‘4월걸상’ 제막식을 열었다. 제76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을 하루 앞두고 열린 행사에는 전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전 제주교구장 강우일(베드로) 주교, 박병규 광산구청장, 제주4·3희생자유족회, 5·18기념재단, 오월어머니회 회원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4월걸상’은 제주에서 활동하는 강문석 작가 작품으로 작품명은 ‘민중의 힘’이다. 제주 4·3 학살을 상징하는 총알이 꺾인 모습을 형상화하고 꺾인 총알 아래는 민중의 힘을 상징하는 제주 몽돌을 놓았다. 거친 시간을 견뎌내며 몽돌은 작아졌지만 결국 민중의 힘이 모여 제주 4·3의 폭력을 견디고 이겨낸다는 의미를 담았다. 제주 4·3의 상징인 동백꽃을 동선으로 각인했고 곁에는 ‘제주 4.3, 오월 광주’라는 글귀를 새겨넣었다. 4월걸상 건립 비용은 100% 광주시민들의 모금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5월 제주도민들이 마음을 모아 광주 5.18을 기억하는 ‘오월걸상’을 제주 서귀포시청 앞에 세운 것에 화답하고자 광주시민들이 이번 조형물 설치에 힘을 보탰다. 김희중 대주교는 인사말에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어떠한 지역에서라도 부당하게 광주 5·18과 제주 4.3 같은 국가폭력이 자행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라며 “이번 광주와 제주의 연대를 통해 국민 모두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동포애와 애국심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강우일 주교는 축사를 통해 “제주에 광주 오월걸상을 설치하고, 광주에 제주 4월걸상을 설치하는 것은 우리 역사 안에 자라온 폭력의 확산과 승계를 차단하고 인간 존중과 평화의 연대를 강화하는 희망찬 상징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인권연대는 광주 5·18 정신을 전국화·현재화하기 위해 지난 2017년 3월 20일 ‘오월걸상추진위원회’를 출범하고 현재까지 부산, 목포,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앞, (구)경기도청 앞, 마석 모란공원 입구, 서귀포시청 등 전국 여섯 곳에 오월걸상을 세웠다.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찾는 발길 이어져

“일반인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잖아요. '가려진'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데 큰 의미를 느꼈어요.” 세월호 10주기를 앞둔 4월 7일, 인천 부평동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는 인천 숭의동본당(주임 임현택 안드레아 신부) 청년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일반인 희생자 42명, 참사 당시 구조작업을 펼치다가 사망한 민간 잠수사 2명이 안치된 이곳에서 청년들은 “10년간 참사 자체가 많이 잊힌 지금, 교회와 사회에 일반인 희생자들을 많이 알릴 필요성을 느꼈다”고 역설했다. 청년들은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김지훈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이하 정평위)가 올해 참사 10주기를 맞아 3~4월 교구 청소년·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프로그램을 통해 추모관을 찾았다. 정평위는 10년 동안 세월호가 많이 잊힌 시점에 희생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단원고등학교 학생 및 교사들에 가려져 소외된 일반인 희생자들의 존재를 환기시키고 안산이 아닌 인천에도 추모관이 있음을 교회에 널리 알리고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희생자 유해와 영정이 모셔진 안치단에서 청년들은 “알 수 없는 연결감을 느꼈다”고 표현했다. 그들은 전국 일주 중이던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 함께 추억 여행을 온 초등학교 동창생들처럼 언제든 우리 곁에서 찾아볼 법한 지극히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전무상(요셉·35)씨는 “참사 7분 전의 모습을 담은 CCTV 영상 속 희생자들은 너무나도 평온해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고 말했다. 추모관에 전시된 사고 해역에서 수습된 유품을 보며 청년들은 하루아침에 좌절된 이웃들의 미래에 마음 아파했다. 직장인이었던 희생자의 사원증에는 그가 가족들과 못다 이룬 단란한 삶의 꿈이 서려 있었다. 그는 힘들게 번 돈으로 제주도에 집과 농장을 마련해 가족들과 그곳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모두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 청년들은 그 위기에서도 살신성인의 정신을 발휘했던 의인들의 이야기에 먹먹한 감동을 느꼈다. 20대 청춘에도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양보하고 배에 남아 구조를 돕던 승무원과 선사 노동자들 사연에는 눈시울을 붉혔다. “참사 후 자진해 바다로 뛰어들어 실종자 수색을 벌이다가 목숨을 잃은 민간 잠수사 고(故) 이광욱·이민섭씨는 사회가 함께 기념할 분들”임에는 한목소리를 모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금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묵념을 마친 청년들은 안치단에 “단원고 희생자뿐 아니라 일반인 희생자분들도 잊지 않겠다”는 추모 메시지를 봉안당에 붙였다. 이파란하늘(마리아·19)씨는 “어린 학생들을 더욱 안타깝게 조명하느라 정작 일반인 희생자들은 외면받았던 것 같아 미안하다”며 추모의 꽃을 봉헌했다. 청년들과 동행한 정평위 정정민(오틸리아) 사무국장은 “더 많은 사람이 추모관을 찾아 이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기도해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종합

“오늘은 형제님들이 요리사”

본당 남성 단체를 활성화하고 냉담 교우를 신앙생활로 이끌기 위한 이색 대회를 연 본당이 있어 눈길을 끈다. 서울 연희동본당(주임 류시창 베드로 신부)은 4월 7일 본당 남성 신자를 대상으로 친목과 화합을 다지는 연령별 요리대회를 열었다. 대회에는 연성회(70대), 대건회(60대), 양업회(50대), 하상회(40대), 청년회 다섯 개 팀 30여 명이 참가해 요리 실력을 뽐냈다. 이날 대회에는 참가자 외에도 사목회 등 신자 150여 명이 참석했다. 대회는 참가자들이 지정 요리(오징어볶음과 아귀찜 중 택1)와 자유 요리(두 가지)를 정해진 시간 내에 완성하면 심사단이 맛을 보고 순위를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심사는 협동성과 재료 준비성, 맛 등 5가지를 기준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본당 신자 세 명이 맡았다. 대회 1등은 하상회가 차지했다. 하상회 김남호(미카엘·44)씨는 “다른 팀이 잘 안 할 것 같으면서도 호불호 없는 튀김류인 꿔바로우를 준비했는데 다들 맛있어했다”며 “팀원이 같이 협동해 완성한 음식이라 더 의미가 깊다”고 1등 소감을 밝혔다. 참가자들을 비롯한 본당 신자들은 시상식이 끝나고 대회서 조리된 음식을 다 함께 나눠 먹으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요리대회를 준비한 전대훈(이냐시오) 기획분과장은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 신자들과 달리, 남성의 경우 냉담 비율도 높고 구역별·연령별 소통도 부족해 본당 차원에서 고민이 많았다”며 “남성 단체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본당 움직임에 발맞춰 남성 연령별 요리대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한 끼 100원씩 모아 이웃 돕기 나서요”

서울 신대방동본당(주임 박근태 베네딕토 신부)이 매월 첫째 주에 ‘한 끼 감사 100원 저금통 모으는 날’을 진행해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꾸준히 돕고 있다. 신대방동본당이 ‘한 끼 감사 100원 저금통 모으는 날’을 시작한 것은 2008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본당의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는 자선 실천 활동이다. 본당 신자들은 한 끼에 100원씩 절약한다는 마음으로 한 달 동안 모은 성금을 토요일 저녁 주일미사부터 주일 매 미사 때 성당 입구에 마련된 헌금함에 자유롭게 봉헌하고 있다. 4월 ‘한 끼 감사 100원 저금통 모으는 날’이 진행된 4월 6~7일 주일미사에도 많은 신자들이 사랑 나눔에 동참했다. 매월 평균적으로 150명 안팎의 신자들이 120~150만 원을 봉헌하고 있다. 신대방동본당 안근숙(가타리나) 사회사목분과장은 “과거에는 신자들에게 저금통을 나눠 드린 뒤 매월 회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회사목분과 봉사자들이 주일미사 전후에 성당 입구에 헌금함을 설치해 접수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인 성금은 재가 노인이나 장애인 복지를 위해 연 4회 지급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김장김치 나눔, 홀로 거주하는 이들을 위한 월 1회 반찬 나눔에 사용한다. 본당은 한 끼 감사 100원 성금을 꼭 필요한 이웃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구역장과 반장들로부터 지원 대상자 추천을 받고 있다.

[새 성당 봉헌 축하합니다] 대구대교구 기계본당

대구대교구 기계본당(주임 최재원 펠릭스 신부)이 4월 20일 오전 10시30분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기계로 240번길 2 현지에서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주례로 새 성당을 봉헌한다. 새 성당은 대지면적 3951㎡, 연면적 839.09㎡ 크기로 성당동과 교육관동, 사제관동 등 3개 동으로 구성된 지상 1층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성당동은 150석 규모이며, 교육관은 사무실, 교리실, 강당, 화장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계본당은 1968년 설립된 기계공소로 출발해 2009년 9월 4일 본당으로 승격됐다. 승격 당시 약 139㎡ 규모 조립식 패널 공소건물에서 시작한 본당은 초대 주임 김호균(마르코) 신부부터 2대 주임 배성수(라우렌시오) 신부, 현 주임 최재원 신부까지 15년 동안 모든 주임신부와 신자들이 새 성당 건립 기금 모금을 위해 42곳 본당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호소했다. 본당 신자들은 각자 형편에 맞춰 건축기금을 부담했으며, 수시로 2차 헌금에 동참했다. 봄이면 산에서 산나물을 캐고, 가을이면 김장용 배추를 절였다. 또 수시로 식혜와 밑반찬을 만들어 판매했다. 전 신자가 은인들을 위한 미사와 새 성당 건립을 위한 기도문 등 수많은 기도를 봉헌하며 영적으로도 큰 힘을 보탰다. 주임 최재원 신부는 “새 성당 봉헌을 위해 지난 15년 동안 있었던 하느님의 도우심과 본당 신자 및 수많은 은인들의 희생과 도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