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교회와 시노달리타스] (17) 수도회와 시노달리타스(상)

허성석 로무알도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입력일 2023-08-29 수정일 2023-08-29 발행일 2023-09-03 제 3358호 1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세속화·개인주의 등 대화와 소통 방해… 수도 정체성 이해가 우선
섬기지 않고 섬김받으려 한다면
복음적 가치 추구할 수 없어
관상과 활동의 균형 잡지 못하면
내적 깊이와 영성 약화되기 마련

시간전례 기도를 바치기 위해 입당하고 있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수도자들. 한국교회 시노드 여정 종합의견서에는 교회의 모든 지체가 수도자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본 기획은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와 가톨릭신문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가톨릭교회의 뜨거운 화두는 아마도 시노달리타스일 것이다. 사실 시노달리타스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초대교회 공동체 생활의 원리였지만 역사의 과정에서 잠들었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서 다시 깨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오래된 새로움’이라 하겠다. 시노달리타스는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다. 하느님 백성이 친교와 일치 안에서 경청과 나눔으로 서로 소통하며 식별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면서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해 가는 여정이다. 하느님 백성은 각자의 부르심에 따른 사명 수행으로 이 여정에 참여한다. 이 글에서는 필자의 경험과 좁은 식견으로 시노달리타스 관점에서 한국교회 수도회의 상황과 역할에 대해서 나름의 생각을 나누어 보려 한다.

■ 수도회의 상황

한국교회 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수도회가 있고 수도자의 수도 적지 않다. 수도회마다 고유의 카리스마가 있고, 그에 따라 교회 안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지역교회와의 올바른 관계와 협력을 위한 노력, 사회 문제와 생태환경 문제 등 우리 사회와 시대의 긴급한 문제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 참여, 그리고 세상에 대한 개방과 환대를 위한 노력은 한국교회 수도회의 긍정적 측면이라 생각한다. 이는 하느님 백성뿐만 아니라 인류와 모든 피조물과 함께 걸어가는 보편적 시노달리타스 여정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세상에서 물러남(fuga mundi)이라는 측면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세상과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무관심했던 점을 생각하면 분명 긍정적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 외에도 긍정적 측면이 많지만, 굳이 여기서 다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신 시노달리타스 여정에서 수도회가 직면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개인주의 문제

저출산으로 인한 핵가족 사회에서 각자의 개성과 고유성에 대한 강조, 이로 인한 공동체성의 약화는 일면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 이제는 공동체보다는 개인이 우선되고 강조되는 풍조가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수도공동체 역시 다르지 않다. 수도공동체 안에 이런 개인주의 경향은 공동체성의 약화와 공동체 생활의 와해를 낳는다. 그 결과 공동체와 타인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참된 의미와 중요성은 망각되고 각자 자기 건강과 행복, 자기 시간 챙기기에 급급하게 된다. 이로 인해 시노달리타스의 정신과 삶을 구현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닐까 한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수도자들이 오후 일과를 끝낸 뒤 저녁기도를 바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세속주의 문제

세속주의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예컨대, 남들 위로 올라가 군림하고 섬김을 받으려는 것, 자기만을 위하고 자기 안으로만 모으려는 것이다. 반면 복음적 가치란 아래로 내려와 남을 섬기는 것, 남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고 자기 밖으로 나누는 것이다. 수도자는 복음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세속적 가치를 포기한 사람이다. 하지만 수도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포기한 가치를 다시 찾으려 할 수 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이집트의 노예 생활을 그리워하는 격이다. 오늘날 수도 생활 안에 침투한 세속주의는 수도자 자신도 모르게 복음적 가치에서 멀어져 세속적 가치를 지향하게 한다.

이런 개인주의와 세속주의 경향은 시노달리스 측면에서 깊은 우려를 낳게 한다. 한국교회 시노드 여정 종합의견서(이하 ‘종합의견서’)에서도 “수도자들 가운데서는 수도자들의 세속화, 개인주의, 세대 차이 등이 시노드 정신과 삶, 서로 간의 대화와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종합의견서 6쪽)는 우려가 있었다.

-관상과 활동의 불균형 문제

한국교회 내 대부분의 수도회가 외적 활동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다 보니, 상대적으로 내적 생활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과도한 치우침은 관상과 활동의 불균형을 낳아 내적 깊이의 결여와 신앙과 영성의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수도자의 모든 활동은 관상이 그 토대가 되고 관상의 열매로 표현되어 나올 때 진정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관상과 활동의 불균형으로 초래되는 현상들은 시노달리타스 여정에서도 수도자의 증거적 역할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요사이 한국교회 수도회들이 너무 획일적이고 평준화된 방향과 활동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기능적 차원이 아니라 존재적 차원에서 수도회 고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다소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든다. 외부적 활동에 참여하고 투신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교회 내 다른 공동체가 줄 수 없는 수도회 고유의 존재 이유와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시노달리타스 여정에서 수도회가 놓쳐서는 안 되는 과제 중 하나는 수도자의 정체성, 소명과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아닐까 한다.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우리 시대 수도회의 진정한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교회와의 관계 문제

이는 특히 본당에 파견된 수도자가 겪는 어려움이다. 실제 본당에서 적지 않은 수녀들이 공동체 운영과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소외감을 느끼곤 한다. 한국교회 종합의견서에도 본당에서 “수도자들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될 때 무력감을 느끼며, 의사 결정 과정에서 공동 협의의 한 주체로서 역할이 존중받기를 희망하였다”(종합의견서 8쪽)는 표현이 나온다. 이런 어려움은 수도자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인식 부족에서 올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수도 생활과 수도자의 소명에 대한 사목자의 이해 부족에 기인하기도 한다.

종합의견서의 다음 내용은 이 문제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듯하다. “오늘날 많은 본당에서 수도자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의문만큼 교회 안에서 수도자들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었고 수도자들이 본연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쇄신의 여정이 요청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회의 모든 지체가 수도자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교회 전체가 쇄신하는 이 여정에서 수도자들이 앞장서는 모습을 통해 성령의 활동이 역동성을 발휘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종합의견서 6쪽)

허성석 로무알도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