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아! 아! 십자가 - 나의 죄가 파먹은 예수님의 몸 / 정미연

정미연 아기예수의데레사(화가)
입력일 2023-08-22 수정일 2023-08-22 발행일 2023-08-27 제 335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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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번의 항암치료가 끝났다. 고즈넉한 어느 날, 전주교구 효자4동본당 주임 박상운 토마스 신부님께로부터 전화가 왔다. 힘든 과정을 거쳐 설계를 마친 도면을 가지고 찾아오시겠다고 한다. 한국교회 첫 순교자 윤지충, 권상연의 유골이 발견된 시점에 효자4동성당이 첫 순교자 기념성당으로 지어지게 됐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나눴던 일이 실제 상황이 됐다. 웅대한 설계도를 보니 이 건강 상태로 엄청난 프로젝트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먼저 앞선다. 가족의 동의가 필요했다.

“가문의 영광이네, 평생 성화 작업을 한 당신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이구만. 특히나 첫 순교자를 기념한 성당 일이 당신에게 온 것은 하느님의 깊은 뜻이 있지 않겠소?” 제일 먼저 의중을 물어본 남편은 내게 힘이 되는 말을 건넸다.

다음으로 조각 일을 함께 해온 박장근 선생께 의논을 드리자 그림, 조각, 스테인드글라스까지 한 작가의 작품으로 지어지는 멋진 프로젝트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며 흥분한다. 설계도를 보고 또 본다. 큰 성모상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본 신부님께서 성령의 바람을 일으키는 이 성모상을 언젠가 꼭 세우고 싶어했다.

성전 앞 뜰 중심에 세울 성모상을 보니 작품 배치를 먼저 하고 설계하신 것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하다. 보내주신 시뮬레이션 영상을 보며 전체적인 구상을 한다. 재료비와 인건비가 올라 성전 건립에 어려움을 겪고 계신 신부님께서 또다시 전국을 순회하며 강론을 하시느라 10㎏이나 빠지셨다. 작은 체구로 분주히 뛰어다니신 신부님과 함께 나 또한 주님께 기쁘게 재능봉사를 한다.

성수대에서 십자고상까지 33m. 예수님의 생애를 기억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게 한 신부님의 뜻이 의미심장하게 와 닿는다. 제일 먼저 성수대를 구상한다. 세례 받으시는 예수님 위로 성령의 비둘기 형상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한다. 오랜시간 병마와 함께한 몸이 흙을 만지는 순간 기쁨으로 용솟음친다. 왼쪽 첫 번째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더니 불쑥 혹이 생겼다. ‘아! 내 몸이 예전과 같지 않구나. 이 상처도 주님께 봉헌하자.’

다음은 성전 전체의 상징인 대형 십자고상을 완성할 차례다. 그즈음 「성녀 비르지타의 예수님 수난 15기도」를 바치게 되는 오묘한 주님의 계획이 계셨다. 같은 시기에 아픔의 동창이 된 김진화씨의 염려와 기도로 기적의 패와 예수님 수난 15기도책을 선물받았다. 예수님께서 성녀 비르지타를 통해 계시하신 당신 수난에 대한 기도가 담긴 책. 신혼초에 열심히 바쳤던 예수님 수난 15기도를 항암 치료 중에 1년간 바치니 예수님의 고통이 뼛속까지 이입이 된다.

“바수어져 탈골된 주님의 뼈, 주님의 몸은 우리 죄를 대신 기워 갚기 위해 찢겨지고 성심은 산산히 부서졌으며 내장은 온전히 비워지고 열어진채 마지막 숨을 거두셨나이다.”

책의 내용을 묵상하며 깊은 기도가 이어졌다. ‘아! 지금까지 나는 십자고상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구나! 나의 죄가 파먹은 예수님의 몸! 탈골된 뼈! 꺽어진 목! 골수까지 박힌 가시관!’

긴 터널의 아픔 속에서 3m50㎝의 대형 십자고상이 완성됐다. “주님 영광 받으소서.”

정미연 아기예수의데레사(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