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햇수로 계산하니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달콤하면서 애잔한 청년 로맨스 영화의 상영 소식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젊은 청년과 그 사실을 모르고 사랑에 빠지는 앳된 아가씨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라는 영화평을 읽으며 내용보다는 제목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었습니다. 이미 그때 내 나이는 40대 후반. 달콤하고 풋풋한 순정 영화에 호기심이 발동할 시기는 이미 훌쩍 넘긴 나이였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제목을 되뇌며 여러 가지 상념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가장 추운 계절에 크리스마스를 경험한 저로서는 삼복더위 중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온 사방에서 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갑자기 더 더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며 ‘성탄은 그래도 겨울이어야지’라는 혼자만의 가벼운 결론을 내리기도 했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려 우리 주 예수님이 겨울에 오셔서 추위로 스산한 인류의 마음을 따뜻이 어루만져 주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고정관념은 몇 년 전 12월 초, 평소 가깝게 지내는 수녀님 권유로 아프리카 카메룬이란 국가를 방문하면서 깨지게 됐습니다. 에이즈로 부모님을 여읜 어린이들을 돌보러 가시는 수녀님과의 동행 여행에서 저는 정말 많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재탄생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40년 넘게 이탈리아를 왕복하며 살고 있으니 비교적 많은 경험을 한 편이라고 스스로 인식하고 살아왔지만, 그 인식이 얼마나 무지의 결과인지를요.
아프리카 중서부에 위치한 카메룬은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의 식민지였던 과거가 있어 생활 전반에 유럽 문화가 스며있었습니다. 종교 역시 회교도도 있었지만, 천주교를 포함한 그리스도인이 인구의 70%를 넘었습니다. 지구 남반구에 위치한 카메룬에서 맞이한 크리스마스. 우리나라의 8월보다 훨씬 더운 아프리카에서의 크리스마스는 ‘8월의 크리스마스’란 영화 타이틀에서 느꼈던 생소함과 후덥지근한 느낌을 고스란히 체험하는 기회였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눈을 상징하며 얹어 놓은 흰 솜 장식을 보며 ‘흰 눈을 본 적이 없는 나라에서 과연 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그 의미를 알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남반구 아프리카의 크리스마스는 북반구의 크리스마스만을 경험했던 제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신세계였습니다. 야자수에 오색등을 걸어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하는 등의 익숙지 않은 광경들은 정작 예수님 생신인 성탄절이 가까워지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자주 듣게 되며 익숙해졌습니다. “그래, 우리 예수님은 이 세상 어디에나 계시고 또 계셔야 하는 인류의 구원자이신 존재이지. 나의 좁고 얕은 지식이 그 위대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라는 깊은 반성이 밀려왔습니다.
짧지 않게 살아온 제 인생에 가장 둔중한 충격을 느꼈던 성탄절이었고 가장 큰 반성을 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프랑스어를 제대로 배워 꼭 다시 찾아오겠다고 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어린 소녀들이 이젠 많이 커서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가 됐을텐데…. 그 약속을 꼭 지킬 기회를 주님께서 주시길 간절히 기원해보는 성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