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용 베드로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총장)
늘 새로워지는 교회의 꿈
회심이란 잘못된 것에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다. 새로운 인간, 새로운 교회로 초대하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하루를 선물로 받는 것처럼 성찰하고 기억하며 사는 것도 선물이다. 선물은 늘 새롭고, 새롭기 때문에 신난다. 나에게 주어지는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선물성을 발견할 때, 그것만큼 신나는 선물도 없다.
나의 사제생활 역시 선물이었다. 신학생 때부터 사제라는 선물을 받으면 ‘어떤 교회를 만들어갈까’ 생각해 왔다. 그리고 ‘나는 어떤 교회를 만들고 이루어갈 것인가’를 꿈꾸며, 사제직 안에서 주어진 모든 것들을 늘 새롭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최근 교회에서 회자하는 시노달리타스 운동을 보며 나는 설레었다. 내가 꿈꾸고 만들고 싶은 교회가 바로 거기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시노달리타스는 나에게 몇 가지 의문을 줬다.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함께함’이다. 가톨릭교회는 교회를 친교의 공동체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나는 함께 대화하고 함께 일하며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맛보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 것이다.
교회 일은 함께 하는 것이다. 불확실할 때 함께 한다. 교회는 관료적 구조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형제적 평등과 친교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일할 때 풍요로워진다. 시노달리타스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멋진 곡을 연주하는 것과 같다. 시노달리타스는 ‘하느님의 나라를 향하여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다.
시노달리타스는 별도로 배우는 것이 아니고 교회와 그리스도인 존재 자체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함께 평생 복음과 그분의 나라를 전했다. 우리가 이것에서 원천적으로 멀어졌기 때문에 시노달리타스를 생각하는 것이다.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아름다운 품격이다. 사람을 소중하게 하는 것이다. 이왕이면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친교 안에서 새롭게 하나되는 교회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다.’(에페 4,5)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난 지체들의 품위도 같고, 자녀의 은총도 같고, 완덕의 소명도 같으며, 구원도 하나, 희망도 하나이며, 사랑도 갈리지 않는다.”(「교회헌장」 32항)
이처럼 모든 신자는 참으로 평등하다. 우리가 서로 존중하고 경청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 백성의 체험이다. 세례받은 사람은 누구나 복음적 진리를 알아듣고 비복음적 행동을 배척하는 본능을 가진다. 이러한 본능이 시노달리타스를 이루어갈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복음적 통찰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모든 신자가 복음적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교회를 새롭게 이해하는 통찰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새로워지고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은사는 중요하다. 우리는 고립되게 살아서는 안 된다. 함께 살아가는 재미, 아름다움 이런 것들이 교회 안에서 증언돼야 한다. 아무리 경쟁 사회라 해도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짓밟고 무너뜨리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물어야 한다. 증언해야 한다. 세상 안에서 그런 공동체를 증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