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31, 35, 40, 32. 지난달 본당의 매주 월요일 새벽 미사 참례자 수다. 비록 실내 마스크 착용이 아직 의무이긴 하지만 코로나19의 두려움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본당 신자가 약 2000명인 것을 감안할 때 참여 비율은 코로나19 이전 평균 숫자의 약 60%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다.
나에게는 4년 전부터 미사 때 항상 맨 뒷자리에 앉아 미사 참례자 수를 세는 습관이 생겼다. 그 무렵 미사 중 한 자매님이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가는 응급 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었고, 그 사건 이후로 “맨 뒷자리에 앉아 미사 드리는 신자분들의 상황을 두루 살펴 달라”는 신부님 권고가 있었다. 이후 미사 때 항상 맨 뒷자리에 앉게 되었고, 신자분들을 살펴보는 동시에 미사 참례자 수를 세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 습관이 언제부터인가 단순하게 숫자를 세는 정도를 넘어서 작은 강박감이 되었다. 숫자가 적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변명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아주 종식되지 않아서 아직은 사람 많은 데 가는 것이 꺼려질 거야’, ‘날씨가 추워져 독감과 함께 코로나가 재확산할 수 있으니…’ 등등.
이미 코로나19는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종교단체에서도 사람들이 모이는 데 있어 열외 허가증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런 변명이 어색하지 않았다.
현재 대부분 성당의 미사 참례자 수가 코로나 이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봉사자들도 줄어 예전의 공동체 모습을 회복하는 데 상당 기간이 걸리거나 어쩌면 다시는 코로나 이전의 공동체로 돌아가긴 힘들 것이라고들 한다. 역시 그 원인은 코로나19라고 하면서.
문득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봄 이탈리아에 관한 외신을 읽은 기억이 났다.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롬바르디아 지방에서 중국에 이어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중에는 사제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사제 사망자가 많은 이유로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생활환경 및 병자들에게 병자성사를 주는 등 끝까지 환자들을 돌보는 희생이 꼽혔다. 나는 진한 감동에 울컥했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사제분들을 위해 기도했었다. 그리고 내가 그러한 사제들을 따르는 가톨릭 신자임을 뿌듯해 했었다.
코로나19가 인간의 생명에 엄청난 위협임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그 위협이 우리의 신앙생활조차도 마음대로 조종하는 모습에는 더 이상 동의하고 싶지 않다. 이러한 생각이 위험하다고 여기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실체가 어느 정도 파악되었고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예방법과 치료가 가능한 현 상황에서 적어도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코로나19가 더 이상 신앙생활을 회피하는 핑계로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기는 ‘지난날의 반성과 새로운 출발’을 원하시는 주님의 은혜로운 시기일 수도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