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가 교구 곳곳의 성지와 사적지 등을 찾아가는 순례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전주교구는 10월 3일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에서 ‘순교자현양 장엄미사’를 봉헌하고, 미사 중 교구 순례운동 ‘순교자의 땅을 걷다’ 선포식을 거행했다. 장엄미사와 순례운동 선포식은 “사랑은 죽음처럼 강합니다”(아가 8,6)를 주제로 열린 ‘제26회 요안루갈다제’ 본행사로 마련됐다. ‘순교자의 땅을 걷다’는 교구의 신앙 역사가 깃든 63곳의 성지와 사적지, 교우촌, 공소 등을 직접 찾아 걷고 머물며 순교자와 신앙 선조들의 믿음을 되새기는 순례운동이다. 단순히 모든 순례지를 방문하는 데 의미를 두기보다 선조들이 남긴 신앙 유산을 오늘의 삶에서 새롭게 이어가고, 이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순례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취지다. 교구는 순례자들이 각 장소에 담긴 역사와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순례 안내서 「순교자의 땅을 걷다」를 발행했다. 63곳을 모두 순례한 이들에게는 교구장 주교의 축복장이 수여된다. 선포식에서 전주가톨릭순교현양원 원장 김광태(야고보) 신부는 순례 안내서를 교구장 김선태(요한 사도) 주교에게 봉정했다. 김 주교는 교구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며 어린이와 청년, 장년, 노년, 수도자 대표에게 순례 안내서를 전달했다. 김선태 주교는 “전주교구는 순교자들의 피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자란 땅”이라며 “그리스도께서는 일상에 지쳐 있는 우리를 순례의 여정에 초대하시고 그 순례에 동행하시며 당신을 더욱 깊이 만나게 해 주신다”고 말했다.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와 김선태 주교 공동 집전으로 봉헌된 이날 미사에는 50여 명의 교구 사제와 수도자를 비롯해 1000여 명의 신자가 참여했다. 가스파리 대주교는 강론에서 “치명자산성지를 둘러싼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순교자들의 피로 비옥해진 이 땅 위에서 수많은 신자가 함께 기도하는 모습은 순교자들의 희생이 오늘날 신앙을 꽃피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올해 요안루갈다제는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체험형 신앙 문화 축제인 ‘치명자산 순례 축제’로 펼쳐졌다. 2일 전야제에서는 ‘피어나는 만남’을 주제로 교구 청년들이 함께 찬양하며 축제의 밤을 보냈다. 3일 장엄미사 후에는 ‘유항검 나눔 비빔밥 행사’가 열렸다. 이원택 전북특별자치도지사와 조지훈 전주시장 등이 함께한 가운데 순례 참가자들은 음식을 나누며 이웃사랑과 공동체 정신을 되새겼다. 또 치명자산에서 자란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순교 영성과 성가정을 위한 기도 지향을 적어 봉헌하고, 동정부부 복자인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의 신앙과 사랑을 다룬 순교 성극 <님이시여 사랑이시여>도 관람했다. 4일에는 순교자와 함께하는 성시간과 ‘나만의 성물 만들기’ 체험, 파견미사 등이 이어졌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삶을 그린 영화 <프란체스코>가 10월 9일 재개봉했다. 영화는 성인이 세상을 떠난 뒤 성녀 클라라와 동료들이 그의 삶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방탕했던 청년 시절과 전쟁 포로 생활을 거쳐 회심한 프란치스코가 가족의 재산을 포기하고 가난한 이들과 나병 환자들을 돌보는 모습, 형제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인노첸시오 3세 교황에게 회칙을 승인받는 과정 등을 담았다. 공동체의 분열로 고뇌하던 말년과 오상을 받는 장면 등도 그려진다. 이탈리아 릴리아나 카바니 감독이 1989년 연출한 작품으로, 미키 루크가 프란치스코를, 헬레나 본햄 카터가 성녀 클라라를 연기했다. 카바니 감독은 1966년 TV 영화부터 1989년 <프란체스코>, 2014년 미니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에 걸쳐 프란치스코의 삶을 영상화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가난과 신앙을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방황과 고뇌를 겪는 인간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 시간 135분.
수원교구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300일 앞두고 지역사회와 함께 세계 청년들을 맞이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교구는 10월 2일 교구청에서 ‘2027 WYD 수원 교구대회 D-300 대사회와 함께하는 비전 선포식’을 열고, 세계 청년들을 환대하기 위한 비전을 선포했다. 특히 이날 교구는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 교구 관할 지역 19개 시군과 ‘2027 WYD 수원 교구대회 성공 개최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약에 따라 교구는 대회 주최·주관과 안전 관리, 참가자 배정 등을 총괄하고 지자체와 교육청은 행정·재정 지원, 학교 시설 활용, 관계기관 협의 등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각 기관은 지역의 행정·교육·문화·관광 자원을 활용해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청년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식전 공연으로 막을 올린 행사는 기념 영상 상영, 환영사 및 축사, 수원교구-경기도 및 19개 시군 업무협약 체결, 비전 선포, 상징 퍼포먼스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성직자·수도자·평신도·청년·청소년 대표들은 ▲세계 청년 환대 ▲신뢰와 연대의 공동체 형성 ▲생명과 평화 문화 실천 ▲청년에게 희망, 세상에 용기 제공 ▲모두의 축제 조성 등 5대 비전을 함께 선포했다. 참석자들은 교회와 국회, 경기도, 경기도교육청, 19개 시군 등을 상징하는 24개 조각으로 제대 형상을 만들고 ‘환대’ ‘신뢰와 연대’ ‘생명과 평화’ ‘희망과 용기’를 상징하는 촛불을 밝히며 지역사회와 함께 WYD를 준비하겠다는 뜻을 모았다.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는 “‘수원 교구대회를 300일 앞둔 뜻깊은 날, 세계 청년들을 맞이할 마음과 다짐을 하나로 모으고 교구가 지향하는 비전을 선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WYD가 세대와 문화, 국가와 종교의 경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존중하며 평화와 연대의 가치를 함께 체험하는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 및 단체와 더욱 긴밀히 협력해 세계 청년들을 가족처럼 환대하겠다”고 밝혔다.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는 환영사를 통해 “이 협약을 통해 젊은이들을 환영하고 보살피는 일은 교회만의 몫이 아니라, 경기도와 시군, 학교 그리고 다른 종교인들까지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박래혁 경기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이 대독한 축사에서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청년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평화와 연대, 공존의 가치를 함께 나누는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할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며 “세계 각국 청년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바르샤바, 폴란드 OSV] 흉기 공격에서 살아남은 폴란드 아드리안 만티키에비치 신부가 사건 이틀 만에 베네딕도수녀회 야로스와프 수도원 제대에 다시 서서 ‘용서’의 메시지를 전했다. 만티키에비치 신부는 9월 26일 봉헌된 미사 강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저 자신과 마레크 신부, 스타니스와프 신부의 이름으로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다”며 “우리는 용서한다”고 말했다. 이 강론은 이후 폴란드에서 크게 확산됐으며, 정치인과 성직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소셜미디어에서 반응을 보였다. 용의자인 31세의 우크라이나 남성은 9월 24일 이 수도원에서 모두 5명에게 흉기 공격을 가했다. 공격을 받은 스타니스와프 즈보이니에비치 신부는 숨졌으며, 만티키에비치 신부는 치료를 받고 사건 당일 퇴원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마레크 피엔코프스키 신부는 중태지만 안정된 상태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이날 미사는 9월 24일 발생한 흉기 공격 이후 수도원에서 처음 봉헌된 미사였다. 만티키에비치 신부는 “특별히 우리를 공격한 사람을 위해, 그리고 그가 회개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청한다”며 “진심으로 그 누구보다도 그에게 이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무슨 일이 일어났든, 우리 수도원에서 벌어진 이 악을 선과 사랑, 용서로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티키에비치 신부는 한 사람의 범죄가 폴란드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이어질 위험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악을 저지른 것은 특정한 한 사람이기 때문에 공격자가 속한 민족 전체를 비난하지 말아 주기를 또한 청한다”며 “그는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삶을 가진 한 사람이기에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사랑과 지원, 이해와 돌봄으로 응답해 달라”면서 “우리 수도원과 우리 도시, 우리 지역과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중해 달라”고 호소했다. 만티키에비치 신부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형제와 같은 두 민족’이라 지칭하며 다시 한번 “서로 존중하고 서로를 지지해 주기를 청한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폴란드에서는 대규모 구호 활동이 펼쳐졌다. 많은 폴란드인이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자신의 집으로 받아들였으며, 국경 도시 야로스와프는 이러한 지원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러나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의 정치적 관계가 냉각되면서 사회적 분위기도 달라졌다. 일부 폴란드인들은 이번 사건의 책임을 우크라이나 민족 전체에 돌리기도 했다. 만티키에비치 신부는 미사 강론을 마치며 신자들에게 “서로를 돌보고, 우리 인생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를 사랑하자”고 당부했다.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인격 안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성장해 나갈 수 있을까. 글라렛 선교 수도회 소속으로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성소 양성과 축성 생활의 심리학을 연구·교육해 온 저자가 심리학의 관점에서 축성 생활의 여정을 안내한다. 책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축성 생활의 여정을 다룬다. 특히 축성 성소를 심리적·양성적 차원에서 바라보며 성소의 선택과 식별, 양성 과정에서 일어나는 내적 움직임을 함께 살핀다. 전반부에서는 성소의 의미와 식별, 그 과정에 작용하는 심리적 요소를 살펴보고, 후반부에서는 관련 교회 문헌을 바탕으로 축성 생활의 양성이 지향해야 할 본질과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성소가 어느 한순간에 도달해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 안에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지속적으로 응답해 나가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성소에 대한 응답은 건강한 인격과 깊이 연관돼 있으며, 그 동기를 매일 새롭게 발견하고 받아들이며 성장해 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저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2항이 제시하는 ‘올바른 지향’, ‘내적 자유의 정도’, ‘성소 지망자의 적합성’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낸다. ‘올바른 지향’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를 바탕으로 사제직이나 축성 생활 안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려는 열망을 뜻한다. ‘내적 자유’는 성소의 가치를 실제 삶에서 얼마나 충실히 살아 낼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척도다. 개인적이고 방어적인 욕구가 앞서거나 삶의 계획과 성소의 가치가 충분히 통합되지 못할 때 이러한 자유는 제한될 수 있다. ‘적합성’ 역시 올바른 동기만으로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사제직이나 수도회의 고유한 소임을 수행할 기본 자질과 함께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분별하고, 기도와 성사, 사목적 직무 안에서 신앙을 깊이 살아갈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저자는 심리학을 신앙이나 영성을 대신하는 도구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욕구와 감정, 내적 동기를 정직하게 들여다봄으로써 하느님과 자신,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성소를 더욱 자유롭고 진실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책은 수도 성소뿐 아니라 사제 성소를 지망하는 이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양성과 식별의 근본 원리를 성찰하도록 이끈다. 동시에 성소에 응답한다는 것이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인격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성장해 가는 과정임을 일깨운다.
가톨릭 교리와 동·서양 철학을 바탕으로 세상과 인간의 내면, 사제의 삶을 성찰한 글을 한데 모았다. 제목 ‘묵언지성’(默言之聲)은 ‘침묵의 말이 내는 소리’라는 뜻으로 저자가 직접 만든 말이다. 세상을 바라보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침묵 속에 묻어 두기보다 독자의 마음에 작은 울림으로 남기고자 글로 꺼내 놓았다는 뜻을 담았다. 책은 제1부 ‘세상을 보고 세상을 밝힌다 관물명세(觀物明世)’, 제2부 ‘내면을 보고 자기를 바로 세우다 관심이정기(觀心以正己)’, 제3부 ‘여백을 본다 이백위관(以白爲觀)’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법과 정치, 편견과 갈등, 언론의 자유와 책임, 자비와 정의, 가정과 교육 등 사회의 여러 문제를 살피고, 2부에서는 행복과 고통, 희망, 지혜와 책임 등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한다. 3부에는 오랜 사제 생활과 인생을 되돌아보는 성찰을 담았다.
성당 반주자로 있을 때인 2000년대 초, 당시 보통의 성당 성가대에서는 보다 은총 충만한 전례에 도움이 될 만한 성가곡 자료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대축일을 준비할 때마다 새로운 미사곡과 성가대 특별 찬미가를 찾느라 애쓰던 중 아르스노바 합창단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르스노바의 이철수 지휘자님은 특히 수채화처럼 투명한 음색과 섬세한 음정에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셨고 또 탁월한 효과를 끌어내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혼자만의 기량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인내와 사랑의 호흡이 일치될 때 울려 나오는 감동의 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체험할 수 있었다. 합창단에서의 활동은 그동안 목말라 있던 성음악에 대한 갈망을 많이 해소해 주었다. 이후 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가 발족했고 교구 차원에서 많은 음악인의 활동이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세월이 흐르며 반주자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실제 미사 전례와 성가대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 전례는 사제와 교중, 성가대가 함께 기도로 이끌어 가는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어야 한다. 너무 음악적인 기량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기도의 내용이 지니는 신앙적인 울림으로, 보다 교중과 친밀하게 교류하며 모두가 함께 느낄 수 있는 성가의 은총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특히 성주간의 중요한 전례인 여러 편의 따름 노래와 시편에 신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면, 단아한 성가대의 소리와 웅장한 회중의 대비되는 교송이 어우러져 풍성하고 아름다운 감동으로 성전 전체를 울릴 것이다. 아르스노바에서의 훈련을 통해 얻은, 면도날처럼 날렵하고 새털처럼 가벼운 음정 조절은 여럿이 함께 화음을 만들 때 귀를 열고 순간순간 스스로 조율해 가는 능력이다. 즉, 남의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나의 소리를 맞춰 내는 것인데, 듣지 않는다면 면도날이 무디어지고 새털은 갑옷이 될 것이다. 비단 음악에서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듣는 것보다 자기 소리를 먼저 내고, 함께 맞추려 하기보다 자기주장을 펴는 것이 더 능력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세상이다. 유명한 「가문비나무의 노래」의 저자인 마틴 슐레스케는 그의 두 번째 저서 「바이올린과 순례자」에서 “성서는 하느님의 도구입니다. 성서는 우리 안에 공명판을 찾습니다. 우리가 듣는 가슴을 지니지 못하면 성서는 입을 다물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듣는 가슴’을 공명판이라고 했다. 듣는 가슴은 매 순간 말씀에 열려 있으므로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게 되고, 게으름이나 교만으로 무디어지지 않아 우리 영혼을 깨우침의 맑은 울림으로 가득 채워 준다. 그 울림은 나만의 것이 아니고 다른 울림과 함께 조화롭게 울릴 때 창조주가 만드신 법칙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것이 기도가 되고 찬미가 된다. 연장이 무디어지면 날을 바로 세워야 하듯이 듣는 가슴이 무뎌지지 않도록 타성에서 벗어나 참된 공명판으로서 성음악인의 역할을 겸손하게 봉헌해야 할 것이다. 글 _ 조정숙 풀케리아(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아르스노바 합창단 부지휘자)
9월 19일 경기도 수원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WYD 노래로 쉬어가는 토요일’ 공연에 2027 WYD 수원 교구대회 버스킹팀 ‘피아트(Fiat)’가 무대에 올랐다. 수도자를 포함한 4명의 팀원은 체리필터의 와 러브홀릭의 를 선보였다. 화려한 퍼포먼스보다 청년들에게 용기를 건네는 힘찬 목소리에 집중한 무대였다. 전문 가수는 아니지만 진심을 담아 부른 노래는 현장을 찾은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피아트는 2027 WYD 수원 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이 노래를 통해 WYD를 알리고 청년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만든 버스킹팀이다. 이름은 라틴어 ‘Fiat’에서 가져왔다. ‘이루어지소서’라는 뜻처럼 ‘주님의 뜻이 우리의 찬양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담았다. 피아트에는 노래 실력이나 활동 경력과 관계없이 WYD를 노래로 알리고 싶은 청년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피아트 팀장을 맡고 있는 황예음(테오도시아·제1대리구 서정동본당) 씨는 피아트가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의 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노래를 잘해야 무대에 오를 수 있고,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의 문턱부터 낮추고 싶어서다. “전공을 하지 않았지만 즐기며 공연하고 있어요. 봉사는 무언가를 대단히 잘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만 있다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때문에 피아트의 무대는 공연 자체에만 목적을 두지 않는다. WYD라는 축제를 기다리는 청년들이 먼저 신나게 노래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또 다른 청년들에게 ‘나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표다. 9월 19일 무대에서 부른 노래에도 이런 마음이 담겼다. 황 씨는 “청년들이 취업 준비를 하거나 사회 초년생으로 살아가며 겪는 어려움을 노래를 통해 공유하고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함께 나아가는 WYD의 취지와도 맞다”고 전했다. 함께 무대에 선 유 마리아 베네란다 수녀(마리아의 종 수녀회)에게 버스킹은 또 다른 방식으로 청년 곁에 서는 일이었다. 떨리는 마음에도 무대에 오른 것은 수도자가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유 수녀는 “WYD가 서로 환대하고 연대하면서 함께 즐기는 잔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버스킹팀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모여 한 곡의 노래가 되듯 피아트는 서로 다른 청년들이 WYD라는 하나의 여정 안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을 노래로 보여주고 있다. 무대와 객석이 함께 웃고 호응한 이날 버스킹처럼 피아트는 노래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을 WYD의 축제로 초대하고 있다. 교구 가톨릭문화원이 주관하는 'WYD 노래로 쉬어가는 토요일'은 WYD가 지향하는 만남·환대·공존·연대·평화의 정신을 지역사회에서 미리 경험하도록 마련한 시민 참여형 문화 버스킹 프로그램이다. 이어지는 공연은 10월 10일 손골성지, 11월 14일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열린다.
[외신종합] 레오 14세 교황이 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을 맞아 “프란치스코 성인 선종 8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은사는 계속해서 열매를 맺고 있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1226년 10월 3일 선종했다. 교황은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자들과 삼종기도를 바치기에 앞서, 이날 복음(마태 21,33-43)을 인용하며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가져다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지만 정작 그분을 받아들여야 할 이들에게 배척당하신 일을 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현실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인류의 역사를 괴롭히는 수많은 잔혹 행위를 되돌아보게 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분 아버지의 더욱 크신 자비를 드러낸다”고 밝혔다. 아울러 복음에 등장하는 포도밭의 이미지에 대해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의 보살핌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선택에 따라 교회를 세울 수도, 훼손할 수도 있다”고 밝히고, “교회를 고치라”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교회를 쇄신하는 데 맡았던 역할을 언급했다.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인은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라는 토대 위에 자신의 삶을 세웠고, 그분의 가난과 기쁨과 고통에 동참했으며, 마침내 오상의 신비로운 표지까지 받았다”면서 “그분은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교회를 고쳤을 뿐만 아니라 형제적 사랑을 증거함으로써 불화가 낳은 분열을 치유했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남긴 영적 유산이 오늘날에도 살아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 “크고 활기찬 프란치스코 수도회 가족뿐만 아니라 그의 영적 유산이 하느님 백성에게 베푸는 수많은 선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계속해 성 프란치스코의 해 특별 희년(2026년 1월 10일~2027년 1월 10일)을 보내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평화를 위한 기도를 꾸준히 바칠 것과 민족들 사이의 화해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 마테오 추피 추기경은 4일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서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과 성인 선종 800주년을 맞아 미사를 주례했다. 미사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장상들과 교황 특사인 앙헬 페르난데스 아르티메 추기경 등이 공동집전했으며,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을 비롯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를 주보성인으로 하는 이탈리아 각지의 기관 대표 등이 참여했다. 추피 추기경은 미사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을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모습’, ‘기쁨으로 충만한 사람’, ‘생명의 시인’으로 표현하고 “프란치스코 성인은 피조물 안에서 온전히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온전히 신적인 아름다움을 노래했다”고 말했다. 이어 “프란치스코 성인은 우리가 주님의 현존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편 주님의 뜻을 실천하도록 격려한다”면서 “그의 뜻을 따르면 그 누구도, 원수조차도 버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수원교구 제1대리구 동수원본당(주임 김지웅 아우구스티노 신부)은 10월 4일 수원시 영통구 창룡대로 267 새 성당에서 700여 명의 신자가 참석한 가운데 새 성당 입당 및 본당 설립 25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미사를 주례한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는 강론에서 “본당 공동체가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온 새 성당에서 오늘 입당미사를 거행하게 돼 주님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본당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봉사자들에게 ‘정말 애 많이 쓰셨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본당의 지난 25년을 돌아보며 “지금은 성사 전담 사제인 김학렬(요한 사도) 신부님이 2000년 1월 초대 주임으로 부임해 1700여 평의 대지를 마련하고 임시 성당을 건립하는 등 본당의 기틀을 세우셨다”며 “이후 성 한재권 요셉 유해를 본당에 안치하고 음악회와 바자 등을 통해 성당 신축 기금을 마련하는 한편, 본당 구역을 14개에서 22개로 재편성하는 등 공동체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이 주교는 또 “하느님께서 이곳 동수원 땅에 아름다운 포도밭을 마련해 주셨고, 그동안 여러분이 정성껏 가꿔 오셨다”며 “동수원성당은 교구 내 222개 성당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돋보이는 성당 중 하나”라고 밝혔다. 이 주교는 “앉으면 머물러 기도하고 싶은 성당을 신자 여러분이 마련하셨다”며 “건물은 그 웅대함과 아름다움만이 전부가 아니기에 믿음과 사랑, 봉사와 일치의 공동체를 이뤄 나가자”고 당부했다. 이용표(시몬) 본당 총회장은 “우리 본당은 우만동 등 구시가지와 광교신도시로 구성돼 서로 상부상조하며 신앙의 전통과 새롭고 참신한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라며 “우리와 함께 머무시는 주님 안에서 소외된 이웃을 품고 기쁘게 본당 설립 50주년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2000년 1월 25일 성 최형 베드로를 주보로 설립된 본당은 2024년 4월 새 성당을 기공했다. 새 성당은 2년 5개월 만인 2026년 9월 완공됐으며, 이에 따라 본당 설립 25주년 감사미사도 약 1년 늦게 봉헌됐다. 새 성당은 대지 면적 5851㎡에 성당동과 교육관동 등 2개 동으로 건립됐다. 성당동은 연면적 1154.54㎡,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이며, 교육관동은 연면적 1705.41㎡,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다. 성기화 명예기자
[외신종합] 성 카를로(가롤로) 아쿠티스(1991~2006)가 밀레니얼 세대 최초의 성인이 된 지 약 1년 만에 그의 삶을 다룬 공식 다큐멘터리가 전 세계 관객을 만난다. 성 아쿠티스는 2025년 9월 7일 레오 14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다큐멘터리 <카를로 아쿠티스: 젊은 성인(Carlo Acutis: The Young Saint)>이 9월 29일 바티칸 영화 도서관에서 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이번 다큐멘터리에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성 아쿠티스의 생애와 가족의 모습이 담겼다. 올해는 그가 2006년 백혈병으로 선종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는 가족들이 촬영한 영상에서부터 로마와 밀라노, 파티마 등 여러 순례지를 찾은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까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성 아쿠티스가 남긴 메시지가 미친 영향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의 성덕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는 10월 15~21일 이탈리아 극장에서 상영된 뒤 유럽에서 개봉하며, 2027년 2월에는 북미 지역에서도 공개될 예정이다. 교황청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성 아쿠티스의 어머니 안토니아 살자노 아쿠티스도 참석했다. 그는 시사회가 끝난 뒤 “하느님이 자주 잊히는 오늘날 세상에서 카를로가 남긴 유산은 하느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신앙에서 멀어지고, 기술은 극단적일 정도로 우상화되고 있다”며 “하지만, 카를로는 ‘우리 모두 언젠가는 골고타에 오르게 되겠지요?’라고 물었고, ‘반드시 긴 삶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실 수 있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주님께서 카를로를 통해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지를 실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지켜보는 것은 분명 내 신앙에도 강력한 증거가 된다”고 덧붙였다.
수원교구 마리아사제운동 체나콜로는 10월 1일 교구청 지하대강당에서 ‘체나콜로 영성피정’을 열었다. 영성피정은 체나콜로 기도, 전 체나콜로 지도 한영기 신부(바오로·수원교구 제2대리구 분당성요한본당 주임)의 ‘저희가 그 가르침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주제 강의, 미사 순으로 진행됐다. 한 신부는 강의에서 “로마서 9장에는 ‘아, 인간이여! 하느님께 말대답을 하는 그대는 정녕 누구인가? 작품이 제작자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또는 옹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한 덩이는 귀한 데 쓰는 그릇으로, 한 덩이는 천한 데 쓰는 그릇으로 만들 권한이 없습니까?’라는 말씀이 나온다”며 “하느님이라는 옹기장이의 손에 모든 것을 오롯이 맡기고 그 뜻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모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다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성모님의 가르침을 잘 따라가는 교구 체나콜로 가족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고 덧붙였다. 체나콜로 정진숙(도미니카) 회장은 “이번 영성피정을 통해 하느님과 성모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면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회원 모두가 공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리아사제운동 체나콜로는 성모의 티 없는 성심에 자신을 봉헌하고 성모께 의탁하는 삶을 통해 그 봉헌을 일상에서 실천하도록 초대하는 기도운동이다. 현재 교구 내 70여 개 본당에서 92개 기도 모임이 활동하고 있다. 체나콜로는 매월 첫째 주 목요일 영성피정을, 셋째 주 목요일 월례미사를 열고 있다.
수원가톨릭대학교 이성과신앙연구소는 10월 14일 오후 2시 교내 하상관 토마스홀에서 제51회 학술발표회를 연다. 이번 학술발표회 주제는 ‘WYD와 청소년 사목: WYD와 함께 여는 청소년 사목의 새로운 지평’이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두고 대회가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젊은이들을 위한 ‘만남과 선교의 장’이자 청소년 사목 쇄신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사목적·신학적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발표회에서는 청소년 사목과 교리교육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신앙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체험하도록 돕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살핀다. 첫 발표는 교구 사목연구소 소장 박상일(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희망의 사건으로서 2027 WYD: 세 교황에게 배우는 청소년 사목’을 주제로 발표한다. 이어 제1대리구청 복음화2국장 김승철(안토니오) 신부가 ‘교리교육의 장으로서 WYD: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주제로 발표한다. 종합토론에는 살레시오회 돈보스코 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 이진옥(페트라) 박사, 충북대학교 이새별 교수, 서울대교구 WYD 조직위원회 학술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박사과정 임나경 씨가 참여한다. 연구소는 이번 발표회를 통해 서울 WYD가 청년들의 신앙 여정을 북돋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교회 청소년 사목의 새로운 도약과 전환을 이끄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수원가톨릭대 총장 한민택(바오로) 신부는 “청소년 사목의 새로운 도약과 전환을 위한 마중물이 될 학술발표회에 사목자와 봉사자, 교우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청한다”고 전했다.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여성소위원회는 10월 22일 오후 2시 서울대교구청 본관 5층 501호에서 ‘2026년 정기 세미나’를 연다. 세미나 주제는 “‘젊음’에 주목하는 교회-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향한 사목적 전망: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이다. 여성소위원회는 서울 WYD를 앞두고 청년들이 겪는 성별 갈등과 상대적 박탈감, 탈종교화 현상 등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청년 사목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 세미나를 마련했다. 세미나는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고민과 갈등을 이해하고, 교회 안에서 ‘젊음’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아울러 청년들이 단순한 행사 참여자를 넘어 능동적인 기획자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젊은이들의 체험을 바탕으로 향후 청년 사목의 방향을 논의한다. 위원장 손삼석(요셉) 주교의 환영 말씀에 이어 정규현(마르티노) 신부가 주제 발표를 한다. 이어 청년공간 ‘바라’를 운영하는 이지현 수녀(로사·성심수녀회), 2023 리스본 세계청년대회(WYD)에 참가했던 박예슬 기자(헬레나·cpbc 가톨릭평화신문), 2027 WYD 인천 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장 유영욱(프란치스코) 신부가 각각 사례를 발표한다. 발표 후에는 종합 토론이 진행되며, 사회는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김세서리아(세실리아) 교수가 맡는다. ※문의: 02-460-7641 여성소위원회
“새 천년기와 더불어 시작되는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는 교회사에 귀중한 이정표가 될 순교 신심을 되살리는 새로운 도정에 오른다. 교회는 한국 천주교에 첫 번째 대규모 순교자를 안겨준 신유박해 200주년을 맞아 오는 2월 2일부터 2002년 2월 4일까지 1년 동안 이어지는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기념 기간’에 공식 돌입한다. 이에 맞춰 교회는 다채로운 기념사업을 개최해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었던 순교자들의 삶을 오늘에 되살림으로써 신앙의 스승이요 모범인 순교자들의 정신을 새롭게 하는 장을 마련해 나간다.”(가톨릭신문 2001년 1월 21일자 1면) 새 천년기를 이제 막 시작한 2001년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대규모 박해이자 4대 박해 중 하나인 신유박해가 발생한 지 꼭 20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새로운 천년기를 맞아 복음 선포의 새 전기를 마련하고자 했던 한국교회는 박해 2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열고,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발걸음에 힘을 더했습니다. 한국교회 최초의 대규모 박해 신유박해는 1801년(순조 1년) 조선 조정의 주도 아래 전국적으로 전개된 최초의 대규모 천주교 박해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천주교에 대한 종교적 배척에 머물지 않고, 정조 사후의 권력 재편과 남인·시파 계열 인사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건이었습니다. 남인 계열 관료를 중용하며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피하던 정조가 1800년 세상을 떠난 후, 어린 순조가 즉위하면서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시작했습니다. 노론 벽파를 배경으로 한 정순왕후는 음력 1801년 1월 10일 천주교 금지령을 내리고, 오가작통법을 동원해 전국의 천주교 신자를 색출하도록 했습니다. 박해는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이승훈, 정약종, 최창현, 최필공 등이 체포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됐습니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사형을 면했으나, 정약전은 신지도를 거쳐 흑산도로, 정약용은 장기를 거쳐 강진으로 유배됐습니다. 주문모 신부는 1801년 4월 24일 자수해 5월 31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습니다. 여성 회장 강완숙도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습니다. 전주에서는 ‘호남의 사도’ 유항검을 비롯해 아들 유중철과 며느리 이순이 동정부부 등이 순교했습니다. 한편, 서양 군함 파견을 요청하는 내용 등이 담긴 ‘황사영 백서’가 발각되면서 조정은 천주교 신자들을 외세와 내통하는 세력으로 몰아갔습니다. 많은 신자가 처형되거나 옥사했고, 살아남은 이들도 유배와 피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신유박해의 영향과 의미 신유박해는 초기 조선 천주교회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지만, 신앙 공동체의 구성과 복음 전파 방식에 변화를 불러오는 계기도 됐습니다. 첫째, 지식인 중심으로 출발한 교회가 서민층에 더욱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지도급 신자들이 대거 순교한 뒤에도 중인과 상민, 천민, 여성 등 다양한 계층의 신자들이 신앙을 이어갔습니다. 박해와 가난 속에서 신앙을 지킨 이들의 삶은 교회를 지탱하는 힘이 됐습니다. 둘째, 신자들의 피난과 이주를 통해 교우촌이 형성되고 확산됐습니다. 박해를 피해 산간벽지로 숨어든 신자들은 옹기를 굽거나 화전을 일구며 생계를 유지하고, 서로 도우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신자들의 흩어짐은 오히려 복음이 더 넓은 지역으로 전파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셋째, 평신도 중심의 신앙 공동체가 교회를 지탱했습니다. 당시 조선의 유일한 성직자였던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뒤, 1834년 유방제 신부가 입국할 때까지 조선 교회는 30여 년 동안 성직자 없이 신앙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이 공백 속에서 평신도 지도자들은 신자들을 모아 기도하고 교리를 가르치며 공동체를 돌봤습니다. 성직자 영입을 위한 노력도 이어졌습니다. 평신도들의 헌신과 공동체의 결속은 거듭되는 박해 속에서도 교회가 생명력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행사 한국교회는 1984년 103위 시성의 기쁨을 누렸지만, 이들은 기해·병오·병인박해 순교자들로 신유박해 순교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한국교회는 신유박해 200주년을 맞아 교회의 초석을 놓은 초기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을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현양 사업을 펼쳤습니다. 대표적인 행사는 서울대교구가 9월 16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거행한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기념 순교자 현양 신앙대회’였습니다. 이에 앞서 9월 1일에는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성당에서 ‘순교자 현양의 밤’이 열렸습니다. 명동본당과 한국교회사연구소는 9월 1일부터 22일까지 토요일마다 명동대성당 문화관에서 초기 천주교회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공개 학술강좌를 마련했습니다. 네 차례에 걸쳐 두 강좌씩 총 여덟 강좌가 진행됐습니다. 전주와 청주 등 각 교구에서도 신유박해의 역사를 기리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춘천교구는 신자들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순례성당을 추가로 지정했습니다. 학술 심포지엄과 순교 관련 유물 전시 등도 이어지며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을 돌아보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초기 순교자 시복시성에 기여 교회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성과는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한 통합 추진 체제가 구체화됐다는 점입니다. 주교회의는 이미 1997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시복시성 작업의 통합 추진을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준비를 바탕으로 2001년 3월 22일 춘계 정기총회에서는 시복시성 청구인을 주교회의로 변경하고, 담당 교구장으로 마산교구장 박정일(미카엘) 주교를 선출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18일에는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첫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후 2002년 3월 7일 시복 추진 대상자 124위가 확정됐고, 조사와 심사 과정을 거쳐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주례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으로 이어졌습니다. 124위 가운데 신유박해 순교자는 53위로 가장 많았습니다. 2001년의 기념사업은 초기 순교자들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앞서 시작된 시복시성 추진에 힘을 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낮은 출생률로 국가가 사라질 위기라지만, 이 부분에 있어 나는 꽤 떳떳하다. 우리 집은 아이가 셋인 다자녀 가구다. 내가 아이를 셋이나 낳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으니, 인생은 참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주변에서는 애가 셋이라고 하면 대단하다고 입을 모으는데,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중 하나는 특히 키우기가 힘들었기에, 스스로 생각해도 진짜 대단하다 싶다. 첫째를 낳기 전 나는 비장하게 다짐했다. 내 부모처럼 아이 앞에서 다투지 않고 아이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아이가 태어난 건 내 욕심 때문이니 괜히 태어났다는 생각은 안 들게 하고 싶었다. 친정엄마의 화와 짜증을 받으며 자란 기억 때문에 내 아이에게는 그러지 않으려 애썼다.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 같았고 가끔 폭발할 때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처음이라 서툴고 긴장했던, 신입사원 모드였던 첫째 육아를 지나 둘째가 왔을 때는 경험자가 되었으니 한결 수월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둘째는 산 넘어 산이었다. 조금 쉽게 키워보려 분유를 먹이려 했으나 우유 알레르기가 있어 모유 수유를 해야 했고, 조금 커서는 계란을 먹여보았다가 발진이 일어나 급히 소아과로 달려가기도 했다. 알레르기뿐만 아니라 아토피도 있던 아이는 밤에는 더 심하게 피부를 긁어댔고, 나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크림을 수시로 발라주며 밤을 새워야 했다. 처음엔 나만 힘든 거 아니다, 모두 자신의 십자가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매일 똑같은 고통이 해를 넘어가자,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하느님께 묻고 싶었다. 자라면서 아토피와 알레르기는 나아지나 싶더니만 이번에는 병원에서 또래보다 작다며 성장 호르몬 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아이가 작은 건 알고 있었지만 클 때가 되면 알아서 크려니 싶었다. 그래도 아이가 스스로 친구들보다 키가 작아 위축되는 것 같아 검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대학 병원에 입원하고 아이는 안 그래도 작은 몸에서 몇 번이나 피를 뽑아야 했고, 혈당을 올렸다가 내리는 위험한 검사도 받아야 했다. 그리고 결국 성장 호르몬이 나오지 않아 집에서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매일 맞혀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매일 직접 주사를 놓아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자꾸 괴롭게 하시는지 하느님께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화보다는 엎드려 비는 마음이 더 컸다. 어릴 적에 하느님을 원망하는 원망권(!)은 다 써버려서 그런지, 아이 피부가 낫게 해달라고, 잘 자라게 해달라고 빌기만 했다. 매일 정성을 다해 기도하진 못했어도 하느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아이는 거짓말처럼 아토피가 사라졌고 알레르기도 줄었으며, 주사를 맞으며 또래의 키를 따라잡고 있다. 아프고 힘든 시간을 겪으며 마음도 성장했는지 또래보다 성숙하고 기특하다고 느낄 때도 많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이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더 크게 쓰시려고 이런 시련을 주셨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다행히 셋째는 피부도 깨끗하고 알레르기도 없다. 성격은 나를 닮아 가끔 왜 저러나 싶을 때도 있지만, 세상에 단점만 있는 일은 없다. 시련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하느님의 큰 뜻이 있음을 몸소 체험했기에, 오늘도 그 뜻을 믿으며 뚜벅뚜벅 내 길을 걸어간다. 글 _ 마예은 엘리사벳(웹툰작가)
2년 전과 달라진 게 또 있다. 이번 포르투갈 해안 길은 남편 안톤과 ‘따로, 또 같이’ 걸었다. 처음 사흘은 어떻게든 맞춰보려고 했지만 내 무릎 사정을 뻔히 아는 안톤이 앞서가는 게 야속했고, 그 역시 내 걸음에 맞추느라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게 답답했을 거다. 걷는 속도가 다르니 사진 한 장, 커피 한잔에도 “좀 기다려!”, “또 쉬어?” 하며 티격태격했다. 결국 나흘 째부터는 아침 8시에 출발해서 10시쯤 모닝커피까지만 같이 마시고, 그날의 숙소까지 따로 걷기로 했다. 그게 신의 한 수였다. 나는 내 속도인 ‘라르고(Largo)’로 걸으며 마음껏 경치를 즐기고 카페에 앉아 일기도 썼다. 안톤은 ‘프레스토(Presto)’ 속도로 일찌감치 숙소에 도착해 낮잠도 자고, 주변도 둘러보았다. 한나절 따로 걷다 다시 만나니 오히려 서로에게 더욱 살갑고 다정해졌다. 혼자 걸으니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 특히 나처럼 부상으로 천천히 걷는 이들과는 금세 동지가 되었다. 순례자들은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저마다 사연과 십자가가 있었다. 물집 때문에 느리게 걷던 마리따도 그랬다. 대학 가면 함께 순례길을 걷자던 엄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완전히 신앙을 잃었단다. 엄마 사진을 품에 안고 걷고 있다는 그녀가 말했다. “이 길이 끝나면 하느님 곁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엄마가 그걸 간절히 바란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발목을 다쳐 나와 나란히 걷던 이탈리아인 마우리치오는 절뚝거리는 순례자에게 기꺼이 자기 지팡이를 내어주었다. 그 모습에 농담으로 ‘수사님’이라고 불렀더니, 놀랍게도 얼마 전 수도원을 나온 수사였다. “그동안의 교만을 깊이 참회하고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하며 걷는 중입니다.” 그렇게 걷고 걸어서 드디어 도착한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의 감동은 압도적이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아들의 환한 웃음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엄마, 나란히 무릎 꿇고 기도하는 수녀님들, 목청껏 성가를 부르며 서로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는 청소년들…. 우리도 뿌듯한 마음으로 기념사진을 찍고는 두 시간 넘게 광장에 앉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을 바라보았다. 세상 어느 축제가 이토록 순수하고 흥겨울까? 아무도 하루에 몇 km를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묻지 않았다. 각자의 속도로 끝까지 걸어온 모두가 이 눈부신 축제의 주인공이었다. 안톤과 나 또한 ‘따로, 또 같이’ 걸어 사이좋게 완주할 수 있었음에 기뻐하며 감사기도 드렸다. 다음 순간,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은 산티아고 길처럼 삶이라는 순례길에서도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얼마나 충실히’ 걸었는가를 보시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명확해진다. 타인의 빠른 걸음에 조바심 내지 않고, 내 십자가를 품은 채 내 속도로 묵묵히 내 길을 가는 것! 이것이 인생 순례길에서 하느님께 ‘온몸으로 드리는 기도’일 거다. 나의 길을 충실히 걸어 마침내 삶의 종착지에 도착한 날이, 후회나 아쉬움 대신 오늘 광장처럼 기쁨이 넘치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방금 들어선 내게 하느님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해주시면 참 좋겠다. “수고했다. 내 딸아. 어서 오렴.” 글 _ 한비야 비아(국제구호전문가, 작가)
어머니를 잃었다. 5년이 넘는 투병 기간, 그 마지막 3개월은 나 자신을 준비시키고 훈련도 해보았지만, 막상 어머니가 떠나신 후에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소음처럼 다가왔다. 왜였을까?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따뜻하고 선한 사람, 어머니가 힘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 때문이었을까? 병간호로 잠시 멈추었던 내 직업적 성취와 시간이 응답받지 못했다는 분노였을까? 알 수 없었다. 장례식날 이모님들이 위령미사를 봉헌하길 권하셨다. 하, 나는 교적상 냉담자가 아닌가…. 하지만, 많은 딸이 그러하듯, 나 역시 어머니를 위해 무어라도 하고 싶었다. 그렇게 50일 위령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다. 매일 미사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주로 저녁에 있었지만, 새벽에만 있거나 행사 때는 시간이 이동되기도 했다. 겨울 그 추운 새벽,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다소 용기가 필요하기도 했다. ‘이렇게 눈까지 오는데, 그 큰 성당에 나만 있으면 어쩌지?’라는 대단한 고민과 함께…. 이런 생각은 성당에 들어선 순간 언제나 나를 멋쩍게 했다. 입구부터 깨끗이 치워져 있는 눈, 따뜻해져 있는 성당, 기도하고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 깜깜한 새벽 택시에서 내리는 교우들. 헛웃음과 함께 고마움이, 또 왠지 모를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무슨 마음이었을까? 모두가 나처럼 위령미사를 위해 나오는 것은 아닐 텐데,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이런 궁금증은 ‘왜 나는 저러한 열정적인 신앙심을 가지지 못할까?’, ‘하느님은 왜 이리도 과묵하실까?’라는 나의 오랜 화두에서,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면 어머니 상황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묻기와 원망이 반복되는 동안, 다시 익숙한 침묵과 만났다. 그러면서도 무엇 때문인지 매일 미사 안에서, 절실히 기도하는 교우들의 모습에서, 묵묵히 전례를 준비하는 신자들과 성직자들에게서 그리고 성당 그 자체에서 내가 힘을 얻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시간이 준 자연스러운 회복 과정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상투적이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그 끝없는 침묵도 주님 표현의 한 방식임을, 위령미사를 핑계로 나는 매일 기대고 쉴 곳을 찾아갔음을, 그리고 때로는 가장 필요했던 위로와 평화를 성당이라는 공간과 그 안 사람들의 존재 자체를 통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고. 이제 나는 어디에 있든 주일미사를 우선순위에 둔다. 그리고 내 신앙은 여전히 덤덤하다. 어느 영화 속 대사에서 “신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라고 했다. 무겁고 때로는 두렵고 답답하기까지 한 그 침묵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성당 어딘가에 자리 잡고 앉아 ‘응답하라…’를 되뇌는 내 모습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안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 _ 익명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A4 ⅔장 이내) 보내실 곳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jebo@catimes.kr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그분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두 사람이 매달려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이를 저주하고 있었다. 그 누가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 사람, 우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가운데 그는 자기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죽음을 수용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다. 우도는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오로지 사랑의 길만을 간,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끝내는 하느님을 신뢰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죽음을 이해하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장나지 않음을 확신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라고 말함으로써 자기 죽음에 대한 수용과 자신의 믿음을 드러냈고, 최종 결단으로서 자기 자신과 세상과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루었다. 이러한 우도의 마음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죽음을 수용하고 하느님을 굳게 신뢰한 인간이 절대로 죽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언하셨다. 바로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이다. 그분은 죽음을 거부한, 세상과 자신 그리고 하느님과 화해하지 못한 좌도에게는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이 죄수의 죽음을 내리덮은 어두움과 적막은 죽음이 영원한 죽음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인간에게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인간에게는 영원한 멸망과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있는 것이다. 인간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을 믿음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인간은 믿음으로써 고통과 죽음 너머에까지 나아갈 수 있다. 생각함으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써 그렇게 될 수 있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말대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게 아니라 파스칼의 말대로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redo ergo sum)”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보다는 믿는다는 것이 더 근원적인 차원이고 지식보다는 신앙이 더 근본적인 차원인 것이다. 지식이 아니라 신앙이 고통과 죽음을 넘어가게 해주고 새로운 차원의 삶을 시작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게 해준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이성은 침묵할 뿐이지만, 신앙은 우도처럼 절망의 순간에도 하느님을 바라보며 영원한 낙원을 신뢰하게 하는 초월적 힘이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의 참된 완성은 유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무한한 하느님 자비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신앙의 차원에서 비로소 이루어지는 법이다. 이렇듯 생각하는 지식을 넘어서는 온전한 신앙만이 인간을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는 가장 온전하고도 근원적인 구원의 길이다. 글 _ 김석태 베드로 신부(대전교구 도룡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