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후이시며 사랑이 넘친 어머니…”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시는 분들께는 너무나 익숙한 문구지요. 바로 묵주기도의 마지막에 바치는 ‘성모찬송’입니다. 또 10월이 되면 많은 본당에서 미사 전이나 후에 ‘성모찬송’을 바치곤 합니다. 「가톨릭 기도서」에 10월 묵주기도 성월의 성월 기도로 실려 있기 때문인데요. 문득 ‘성모찬송을 바치려면 묵주기도를 바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성모찬송은 묵주기도의 마침기도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이전부터 성무일도, 곧 시간전례에서 바쳐 온 기도였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묵주기도 때 바치는 성모찬송 외에도 다양한 성모찬송이 있습니다. 묵주기도의 마침에 주로 바치는 성모찬송은 ‘살베 레지나(Salve Regina)’인데요. 이와 함께 ‘알마 레뎀토리스 마테르(Alma Redemptoris Mater)’, ‘아베 레지나 첼로룸(Ave Regina Caelorum)’, ‘레지나 첼리(Regina Caeli)’가 전통적인 성모찬송들입니다. 레지나 첼리는 우리가 부활삼종기도로 바치는 기도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우리가 성모찬송을 바칠 때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오니…”라고도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성무일도 중에 묵주기도를 바치는 건 아닐 텐데 말이죠. 사실 살베 레지나는 “모후이시며…(중략)…오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님”에 해당하는 기도입니다. 지금 우리가 묵주기도 마지막에 바치는 기도는 이 살베 레지나에 두 가지 기도가 추가된 것입니다. 먼저 “천주의 성모님…(중략)…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는 옛 성무일도 중 성모찬송 후에 바치던 기도문입니다. 이어 “기도합시다. 하느님, 외아드님께서…”부터 마지막까지는 옛 미사경본에서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 미사의 본기도로 사용되던 기도입니다. 묵주기도의 마침이 꼭 살베 레지나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라나 문화권에 따라 성모 호칭 기도나 다른 성모찬송을 바치는 곳들도 있습니다. 살베 레지나를 바치는 것은 묵주기도를 마치는 여러 전통 중 하나인 것이지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에서 “묵주기도를 드리며 성모님의 모성을 깊이 체험한 사람이 성모 찬송가(Salve Regina)나 성모 호칭 기도와 같은 뛰어난 기도문으로 동정 성모님을 찬미할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어찌 놀라운 일이겠느냐”며 “이것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와 성모님의 신비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내적 순례의 마침”이라고 가르치십니다.(37항) 시작만큼 중요한 것이 마무리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묵주기도를 바치는 동안 성모님께서는 힘찬 전구로 우리의 기도를 뒷받침해 주십니다. 이를 기억하며 성모찬송을 바친다면, 묵주기도의 마지막은 단순한 끝맺음이 아니라 성모님과 함께 걸어온 기도의 여정을 그리스도를 향한 찬미와 희망으로 맺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청양 다락골 줄무덤 성지 개발 봉사 40주년 기념위원회가 「무명순교자들을 위한 땀의 찬미」(642쪽/비매품)를 발간했다. 이 책은 부제 ‘다락골 줄무덤 성지 개발 봉사에 관한 기록 연구(1986년~1988년)’에서 알 수 있듯 40년 전 대전교구 청양 다락골성지의 ‘다락골 줄무덤’이 성지로 개발되던 초창기 3년 동안의 역사를 모았다. 집필자인 작은형제회 신춘하(프란치스코) 수사 역시 성지 개발이 한창이던 1988년 봉사자로 참여했으며, 당시 문헌 기록과 사진, 봉사자들의 증언을 수집해 이 책을 펴냈다. 다락골 줄무덤 성지는 1980년대에 대전교구 청양본당이 자체적인 개발을 추진하기 어려웠던 현실에서 서울대교구 서남권 지역 본당 청년들이 봉사대를 결성함으로써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춰 나갔다. 신춘하 수사는 책 도입부 ‘다락골 봉사의 형성과 배경’에서 “청양본당 차원에서는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고 재정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어 외부와 협력이 필요했다”며 “이를 계기로 서울 지역 청년 조직과의 연계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다락골 줄무덤 성지와 무명순교자 역사에서 출발해, 서울대교구 청년들이 성지 개발 봉사에 참여하게 된 배경을 이룬 1980년대 한국가톨릭교회 청년운동을 조명하고 있다. 또한 성지 개발 과정에 참여했던 청년들의 증언을 상세히 실어 현재 줄무덤 성지의 원형이 형성된 내력을 전한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프란치스코) 신부는 이 책에 관해 “현재의 한국교회와는 다른 40년 전 교구와 본당을 초월해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성지 개발에 힘을 합쳤고, 그때의 노력이 현재까지 다락골 줄무덤 성지에 상당 부분 남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록물”이라고 평가했다. 신 수사는 ‘집필자 후기’에서 “앞으로 다락골 줄무덤 성지 개발과 가톨릭교회 청년 운동사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가 나타난다면, 부족한 이 책을 디딤돌 삼아 후속 연구를 이어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밝혔다.
메조소프라노 김청자(아녜스) 씨가 10월 5일 선종했다. 향년 82세. 고인의 장례미사는 10월 8일 서울대교구 개포동성당에서 봉헌됐다. 194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김 씨는 어린 시절 아일랜드 출신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성당에서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1963년 서울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독일에 건너가 아우크스부르크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에서 성악과 피아노를 공부했다. 1970년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데뷔해 스위스 베른 오페라단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이듬해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한 김 씨는 귀국해 중앙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성악과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독일 뒤셀도르프 오페라단 등에서 프리마돈나로 활약했다. 1994년 귀국한 김 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교수로 재직하다 2010년 정년퇴임했다. 김 씨는 2005년 안식년을 맞아 방문한 아프리카에서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만난 것을 계기로 선교와 봉사의 삶을 시작했다. 2010년 퇴임 후에는 사재를 털어 말라위에 정착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과 자립을 지원했다. 청소년센터 4곳과 말라위 최초의 전문 음악교육기관인 ‘루스빌로 뮤직센터’를 설립하는 등 평생 쌓아온 재능과 사랑을 나누는 데 헌신했다. 2014년에는 음악가로서의 삶과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담은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바오로딸)을 펴냈다. 김 씨는 2009년 가톨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은 시간과 물질, 재능을 모두 소진한 다음에 하느님께 가길 바라는 것이 제 마지막 소망”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군종교구 흑룡본당(주임 최승범 베드로 신부)은 10월 27일 오전 10시30분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백령로 783 현지에서 교구장 서상범(티토) 주교 주례로 새 성당 봉헌식을 거행한다. 새 성당은 건축면적 482.74㎡에 지상 2층 규모다. 1층에는 사무실과 교리실, 카페, 2층에는 사제관이 자리했다. 새 성당 내부는 신자석을 향해 팔을 벌리는 듯한 조형으로 제대를 배치해 본당 신자 모두를 넉넉하게 품으시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표현했고, 십자가를 공중에 떠 있는 듯이 구현해 하느님과 인간의 중개자로서의 예수님을 드러내도록 했다. 또한 수직선을 강조한 창호 디자인과 좁고 기다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비치는 색감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표현했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 자리한 흑룡본당은 오랫동안 새 성당 건립을 추진해 왔으나 예산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착공이 미뤄지다 2025년 9월 마침내 첫 삽을 떴다. 최승범 신부는 “섬이라는 특수성으로 공사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발생했지만, 본당 공동체 가족들과 수많은 은인의 기도와 도움으로 이렇게 새 성당 봉헌을 하게 됐다”며 “특별히 성당 성모상과 성모동산 조성을 위한 모금에 함께하고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대만 타이중(臺中)교구 칭수이 중화성모당(주임 강우중 베르나르도 신부, 대구대교구) 성지순례단이 10월 7일부터 12일까지 5박6일 일정으로 대구대교구를 방문했다. 이번 순례는 2027년 대구대교구와 타이중교구 자매결연 40주년과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두고, 다가올 은총의 시간을 미리 체험하면서 그 기쁨을 타이중교구 젊은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강우중 신부와 함께 한국을 찾은 19명의 성지순례단은 8일 대구대교구 부교구장 김종강(시몬) 대주교를 예방했다. 이어 순례단은 일정 동안 성모당, 관덕정, 주교좌계산대성당, 한티순교성지 등 신앙 유산을 둘러봤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 한중친선협회, 예수성심시녀회 포항 모원, 가톨릭신문사 등을 방문하며 한국교회 역사와 신앙의 의미를 되새겼다.
한국 남자 수도회 사도 생활단 장상 협의회는 10월 9일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회 관구관에서 ‘AI 시대와 인간생명’을 주제로 ‘수도자들을 위한 생명문화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생명문화를 일궈 갈 사명을 지닌 수도자들이 새 과학기술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안의 가능성과 위험을 올바로 식별하며 인간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지켜 갈 지혜를 함께 찾고자 마련됐다. 제3발표를 맡은 뇌과학 및 AI 연구자 윤 프레드릭 수녀(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는 “AI 시대 수도자의 사명은 사람들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도록 돕는 것”이라며, “AI를 두려워하기보다 올바로 식별하고 선용하는 ‘인간 존엄성 지킴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수녀는 “AI에 끌려가지 않고 지혜와 창의성, 연대의 힘을 일깨우는 수도자가 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생각을 질문으로 바꾸고 목적에 맞게 설계하는 기술인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미래 사도직의 ‘선교 언어’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AI가 내놓은 답을 확인하고 숙고해야 정확한 진리를 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도자의 시대는 지났다”며 “창조적으로 변방을 향해, 성당 밖의 사람들을 찾아 떠나야 하며, 이것이 미래의 사도직”이라고 강조했다. 그 본보기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보여준 ‘비움’과 성 가롤로(카를로) 아쿠티스의 ‘연결’을 제시했다. 제1발표에서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백종호(요셉) 신부는 수도자가 식별해야 할 위기의 뿌리를 효율과 이윤의 논리가 모든 결정을 지배하는 ‘기술관료적 패러다임’에서 찾았다. 백 신부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결정을 알고리즘에 맡기면 취약한 이들의 배제가 ‘중립성’이라는 겉 포장에 가려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칙 「고귀한 인류」가 말하는 AI의 ‘무장해제’는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류를 지배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윤을 사람보다 앞세우는 ‘바벨탑’이 아닌, 대화와 경청, 공동 책임으로 함께 세우는 ‘느헤미야의 길’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 박은호(그레고리오) 신부는 제2발표에서 교황청 문헌 「옛것과 새것」을 들어 생명에 관한 결정의 책임은 언제나 인간에게 있으며 결코 AI에 넘길 수 없다고 역설했다. 박 신부는 트랜스휴머니즘, 의료 AI의 책임 공백, 돌봄 로봇이 낳는 정서적 고립 등이 기술로 인간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술적 솔루션주의’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술적 대체’가 아닌 ‘인간적 동행’을 회복해야 한다며 “AI가 선한 힘으로 작동할지, 최악의 불의가 될지는 기술 자체가 아닌 우리의 윤리적 식별과 결단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협의회장 백남일(요셉) 신부는 축사에서 “기술이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고 서로를 위한 봉사와 사랑의 도구가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외신종합]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반포 10주년을 맞아 10월 7~14일 가톨릭교회가 추구할 가정과 혼인을 주제로 회의를 개최했다. 교황청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는 전 세계 주교회의 의장 주교와 동방 가톨릭교회 수장 총대주교 150여 명, 평신도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7일 첫날 회의에 참석해 주교단, 평신도와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의견을 교환했다. 교황은 이날 개막연설에서 “오늘날 가정에 복음을 선포하고 성사의 은총을 전하며, 가정과 동반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교회의 사목적 책임”이라고 요청했다. 회의 둘째 날에는 가족이 함께하는 가정생활을 위해 절제 있는 휴대전화 사용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뤄졌다. 인도 주교회의 의장이자 고아·다만대교구장인 필립 네리 페라오 추기경은 한 가정의 실제 사례를 소개하며 “휴대전화 없는 가족의 저녁은 작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밝혔다. 페라오 추기경이 소개한 가정에서 자녀들은 평소 휴대전화에 몰두하고, 직장에 다니는 부모는 자녀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과 여력이 부족했다. 본당 사제가 가정 방문을 통해 가족의 고민을 경청한 후, 가족은 일주일에 하룻저녁은 휴대폰 없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매일 한 끼 식사를 같이하며, 몇 분 동안이라도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다. 페라오 추기경은 “이 사례를 계기로 해당 본당은 사제의 가정 방문을 확대하고, 결혼생활 경험이 풍부한 부부들이 젊은 가정과 동반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회의 참석자들은 이날, 디지털 기술의 발전, 서로 다른 종교 신자와의 혼인, 인간관계에 대한 인식 변화 등 현대 가정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과제를 공유하고, 더욱 효과적으로 가정들을 지원할 수 있는 사목 방안을 논의했다. 9일에는 오늘날 청년층의 동거 증가와 혼인율 감소라는 교회의 새로운 과제가 다뤄졌다.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 장관 케빈 패럴 추기경은 “사회에서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혼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으며, 많은 청년들이 평생에 걸친 헌신을 주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혼인하지 않은 채 동거를 선택하는 젊은층에 대해, 인도 봄베이대교구 스티븐 유스터스 빅터 페르난데스 보좌주교는 “교회 지도자들이 동거하는 연인들을 판단하기보다는 연민과 식별의 자세로 동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호주 퍼스대교구장 티모시 코스텔로 대주교는 SNS와 세속 문화, 다양한 이혼 사례 등이 혼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켰다고 언급한 뒤 “그리스도교 혼인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혼인생활을 충실히 해 나가는 부부의 모습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스페인 마드리드대교구장 호세 코보 카노 추기경은 10일 「사랑의 기쁨」이 가르치는 혼인의 가치와 관련해 “그리스도교의 혼인은 단지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성장하고 꽃피우도록 부름받은 교회적 소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학문과 문화 안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설정하는 근본적 토대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레오 14세 교황이 인공지능(AI) 과학 혁명 시대에 과연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회칙 「고귀한 인류」를 반포했다. 가장 심각한 위험은 일자리 상실이나 허위 정보라기보다는, ‘자기 인식의 전환’에 있다. 인간이 ‘자신을 관계와 친교로 부름받은 인격체’가 아니라, 효율성을 ‘가치의 궁극적 척도’로 삼으며, 인간을 ‘최적화해야 할 프로젝트’로 환원하는 유혹이다.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사유 능력을 확장한다는 의미이다. AI의 도움으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인지적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사유의 외주화’는 인간이 고유하게 수행하던 비판적 사고와 판단 등의 정신적 활동을 AI에 의존하거나 떠넘기는 현상이다. 그러나 본능이나 외부 환경에 이끌려 사는 것을 넘어 자신의 존재와 세상을 성찰하고 삶의 의미를 인식할 수 있는 사유하는 능력은 인간 본질의 핵심이다.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이 가장 심각하게 염려하는 부분이 바로 사유하는 능력의 상실이다. 1580년 출간된 최초의 수필… 인간 내면 들여다보며 본질 성찰 사유 활동으로 불완전함 극복하는 과정과 깨달음의 의미 강조 효율 극대화 추구하는 AI 시대에 ‘인간 존엄’이라는 화두 던져 몽테뉴(1533~1592)는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으로, 법관으로 활동하다 1571년 38살의 나이에 자신의 영지인 몽테뉴 성으로 은퇴한다. 그 후 사색과 저술에 몰두하면서, 1580년 최초의 수필 문학으로 꼽히는 「에세」(「수상록」)를 완성한다. 프랑스 지성인들이 정신적 위기에 빠졌을 때 찾아간다는 「에세」는 생각하는 능력과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준다. 몽테뉴 성의 탑 건물을 사유의 공간을 위한 서재로 꾸민 그는 벽과 기둥에 60여 개의 그리스어와 라틴어 경구들을 새겼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오직 하나의 프랑스어 문장이 놓여 있었다. 바로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질문이다. 「에세」 제2권 제12장에 수록된 「레몽 스봉을 위한 변명」에서 드러나는 인간은 자신을 신적 존재로 상상하며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혹은 욕망과 충동에 이끌려 동물처럼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간다움’이란 이 양극단 사이에서 사유를 통하여 신과 동일시하는 교만함에 빠지지 않고, 동시에 동물적 본능으로 무너지지 않는 중간적 위치에 머무르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자신에게 속할 줄 아는 것이다.” 자기 인식이 인간 삶의 중심적 과제이다. 「에세」는 일반화된 한 개인의 자아 인식이 아니라, 유명하게도 몽테뉴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그는 반복적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면서, 독자들에게 “정신과 의지가 바깥으로 흩어져 소진되고 있다면 그것을 다시 안으로 불러들이라”고 초대한다.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적 성찰을 통해서 발견하는 것은 확정되고 완전한 정체성이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의 움직임들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그러해야 할 어떤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매일매일’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다. 따라서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지속적인 사유를 통하여 자신이 모순되고 제한되어 있고 변화무쌍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한다. 그래서 생각의 능력은 저자로 하여금 자신의 불완전함을 깨달을 수 있게 했다. “우리가 남의 삶이나 바깥세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만이라도 자신을 돌아보는 데 시간을 쓴다면, 우리라는 존재가 얼마나 연약하고 결함투성이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곧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지성적 약함이 아니라, 지성적 성숙함이다. 자신에 대한 내적 성찰 활동이 없다면, 그 사람은 실제로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할 것이다. 결국 자신이 이상적으로 꿈꾸는 허구적인 모습에 위안을 받을 뿐이다. 고정된 존재가 아닌 ‘되어 가는(becoming)’ 존재로서 인간에게 사유하는 행위의 과정은 개인의 연속성을 가능케 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의 불안정성을 계속 추적할 수 있는 활동이 내적 성찰이다. 성찰은 ‘되어 가는’ 자아에게 연속성을 부여한다. 20여 년에 걸쳐 집필되고 수정된 「에세」는 변화되어 온 몽테뉴의 자아에 연속성을 형성해 주었다. 특히 몽테뉴는 이성이 신체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관점을 거부한다. 내적 사유는 지식을 축적하거나 철학적 체계를 구축하기보다는, 자기 신체와 일상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는 ‘경험에 대하여’에서 어떤 음식이 그에게 맞지 않는지, 혹은 고통을 어떻게 돌보는지 등,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진정한 철학적 대상으로 삼는다. 이렇듯 육체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유는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매우 혁명적인 통찰을 보여 준다. 즉, 인간은 추상적 범주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고유한 신체적 특징, 특정한 고통, 개인적 역사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은 몸을 지닌 존재로서 겪어야만 하는 보편적 경험들이 있다. 예를 들어, 육체적 고통과 죽음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경험들은 동시에 매우 개별적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경험을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상황 안에서 본인이 직접 겪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몽테뉴도 오랜 지병으로 고통받고 죽음의 문턱에까지 다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 앞에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기보다는, 고통은 사유의 동반자였다. “나는 이 결석과 함께 살아가는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안에서 위안을 찾고 희망도 찾는다.” 비록 몸의 고통은 즐거움을 앗아가지만, 사유의 힘은 고통의 체험을 바탕으로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가능성을 보여 준다. “나는 건강할 때보다 아플 때 죽음을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결석을 통해 한 가지 유익은 얻고 있다. 스스로는 해내지 못했던 죽음과 화해하는 일을 이 병이 대신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에세」에서 강조하는 인간의 본질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인간은 몸을 지닌 존재로서 가변적이며 모순적이고 불완전하다. 둘째, 인간은 사유의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AI는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어 효율성을 극대화한 결과물을 제공한다. 과연 이 결과물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몽테뉴의 사유는 지식의 축적이나 결과물이 아니라, 사유 과정의 경험을 통한 깨달음을 강조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가르침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며, 결국 잘 살고 죽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불확실성과 불완전함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핵심 대상으로서 인간 본질의 핵심 요소이다. 불완전함을 바탕으로 한 사유의 과정을 통해서 인간은 인간이 되어 간다. 그러나 AI는 인간이 인간이 되어 갈 수 있는 그 과정을 앗아가 버리고, 효율성이 극대화된 결과물만을 제공한다. 몽테뉴가 인간의 한계와 불완전함을 지적하고 있지만, 인간성에 대한 경멸이 아니다.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지만, 인간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여전히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인간은 완벽하진 않지만 사랑, 연민, 우정, 인내, 후회, 충성, 감사, 절제 등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사유의 활동 과정을 통해서 그러한 삶의 의미와 충만함은 더욱 깊어진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께 순명하지 않은 이후 인간은 성찰을 통해서 그렇게 인간이 되어 오고 있다. 만약 AI에게 사유의 힘을 내준다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글 _ 김치헌 바오로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영문학부 교수)
다섯 번째 계명 “살인하지 마라” 성경은 인간 생명이 근원적으로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닮게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인간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존엄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 생명의 주인’이시기에 인간이 다른 이의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은 마땅히 받아야 하지만 그의 생명을 빼앗는 사형제도, 태아의 생명을 해치는 낙태, 자기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살 등을 금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축시키고 약화시키는 언행을 자제하는 것’도 이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 대한 무시, 미움, 부정적인 선입관,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입장을 헤아리지 않는 판단과 질책,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말과 행위를 자제하는 것 등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계명을 설명하시면서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화를 내는 행위를 경계하시며 화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5,21-24) 서로의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어떻게 하면 서로의 생명을 살릴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나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하느님께 사랑받는 소중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특히 신앙인으로서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인간적인 감정과 의지를 선한 방향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실천’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가는 보람과 기쁨, 진정한 행복, 나아가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서 충만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이웃 사랑의 은혜입니다. 여섯 번째 계명 “간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되도록 하셨습니다.(창세 2,24) 이러한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남자와 여자는 자유로운 의사로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의를 서약하고 부부로 맺어집니다. ‘부부 사랑’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전인적(全人的) 사랑입니다. 부부 사랑은 몸과 마음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둘째, 배타적(排他的) 사랑입니다. 부부 사이에 제3자의 개입을 거부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부 관계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사랑의 서약을 충실히 지키는 서로에 대한 신의입니다. 그런데 신의로 맺어진 부부 관계를 훼손하는 행위가 간음입니다. 따라서 이 계명은 일차적으로 부부 외의 다른 사람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 계명은 ‘부부가 서로에 대한 사랑의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혼인은 부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본격적인 의미에서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각자 인간적인 부족함과 단점을 가지고 있기에 성경은 부부가 서로 보완하는 관계요, 서로 협력하는 관계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그 대상이 나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존중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그들이 이루는 가정은 참된 사랑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계명의 가르침이 우리 자신의 부부관계를 다시금 살펴보는 계기가 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배려함으로써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 행복한 가정 되시길 바랍니다. 글 _ 송재준 마르코 신부(대구대교구 구미 도량본당 주임)
[중국 다롄·하얼빈 이형준 기자] 한국교회 청년들이 안중근(토마스)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 다롄과 하얼빈을 찾았다.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하얼빈역과 투옥됐던 뤼순감옥 등을 직접 둘러보며, 그가 꿈꿨던 ‘동양 평화’의 의미를 되새겼다. 특히 신앙인이었던 안 의사가 의거를 결심하기까지 겪었을 고뇌와 갈등을 돌아보고, 오늘날 청년들이 추구해야 할 평화는 무엇인지 고민했다.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처음 마련한 ‘2026 청년 안중근 평화학교’ 1기 참가자들의 중국 연수 여정에 동행했다. 뤼순감옥,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시간을 따라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 묻어다오.” 31세 청년 안중근이 남긴 유언이다. 그러나 그의 유해는 1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행방을 알 수 없다. 청년 안중근 평화학교의 중국 연수는 안 의사의 의거 이후 행적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으로 시작됐다. 첫 방문지는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투옥돼 사형을 당한 중국 다롄의 뤼순감옥과 재판을 받았던 일본 관동법원이었다. 뤼순감옥에는 안 의사가 수감됐던 공간과 사형장이 남아 있다. 안 의사는 이곳에서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이 꿈꿨던 동양 평화의 구상을 「동양평화론」에 담아냈다. 끝내 완성하지 못한 「동양평화론」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유와 동양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구상이 담겨 있다. 청년들은 안 의사가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수감실을 바라보며, 죽음을 앞두고도 평화를 고민했던 그의 삶을 되새겼다. 이어 찾은 일본 관동법원에서는 안 의사가 재판받기 위해 올랐던 좁은 계단을 직접 걸어 올랐다. 천장이 낮아 몸을 굽혀야만 지나갈 수 있는 계단이었다. 당시 피고인들이 허리를 굽히도록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이토 저격했던 하얼빈역·투옥됐던 뤼순감옥 등 방문 미완의 「동양평화론」 돌아보며 각자 자리에서 평화 이루기 위한 노력 다짐 저격 거리 7m 남짓한 하얼빈역 의거 현장 연수 참가자들은 다롄을 뒤로 하고 하얼빈까지 약 1000km를 기차로 이동했다. 지금은 고속철도가 두 도시를 잇고 있지만, 이 철길은 1909년 안 의사가 의거를 준비하며 여러 차례 오갔던 길이기도 하다. 하얼빈역에 도착한 청년들은 역 안에 조성된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찾았다. 안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현장이다. 역 1번 승강장에는 안 의사가 총을 겨누고 서 있던 자리와 이토 히로부미가 총탄을 맞은 자리가 각각 세모와 네모로 표시돼 있었다. 두 지점 사이 거리는 불과 7m 남짓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가까워서 놀랐어요.” 현장을 바라본 청년들 사이에서 놀라움이 터져 나왔다. 연수에 동행한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사무처장 임재근 박사는 “어떻게든 의거를 성공시키기 위해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한 손을 뻗어 저격했다”고 설명했다. 불과 몇 걸음 떨어진 두 지점은 의거를 준비했던 안 의사의 치밀함과 결연한 의지를 짐작하게 했다. 안 의사는 옥중에서 고해성사를 받으려 했으나, 당시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니콜라 빌렘 신부가 안 의사를 찾아가 순국 전 고해성사를 베풀었다. 청년들은 안 의사가 의거를 앞두고 고뇌하며 자주 거닐었다고 알려진 자오린공원(옛 하얼빈공원)도 찾았다. 공원에는 2006년 세워진 ‘청초당’이라는 작은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기념비에는 안 의사가 독립운동의 의지를 다지며 왼손 약지를 끊고 혈서를 썼던 단지동맹의 손도장도 새겨져 있었다. ‘청년’ 안중근에게 오늘의 평화를 묻다 “신자였던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살생’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괴로워했을까요? 존경스러우면서도 이런 상황을 만든 당시의 ‘시대’가 정말 슬프게 다가와요.” 안 의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은 일제의 침략과 전쟁이 남긴 상처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청년들은 옛 남만주철도주식회사 본부와 일본군이 전쟁 포로 등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731부대 유적지도 찾았다. 또 이토 히로부미가 저격당하기 전 일본군이 점령한 뤼순항을 내려다보며 시를 읊었다는 203고지에도 올랐다. 일본 제국주의가 팽창하는 과정에서 자행된 폭력과 그 흔적을 직접 마주하기 위해서였다. 여러 역사 현장을 둘러보면서 청년들은 안 의사가 살았던 시대와 그가 꿈꿨던 동양 평화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해 갔다. 하루 일정을 마친 뒤에는 조별 나눔을 통해 현장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안 의사의 삶을 각자의 시선으로 되짚었다. 연수 마지막 날 봉헌한 주일미사에서는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평화를 위한 기도를 봉헌했다. 강연우(루치아·의정부교구 파주 금촌2동본당) 씨는 “역사책으로만 접했던 현장을 직접 보니 색다른 감동이 있었고,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 느꼈을 감정과 떨림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며 “뤼순감옥에서는 안 의사와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하며 버텼는지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신지연(마르가리타·의정부교구 신곡1동본당) 씨는 “고국에 묻어 달라는 안 의사의 유언을 아직도 지켜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하다”며 “독립운동가들이 힘겹게 지켜 온 평화로운 나라에서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내 주변의 이웃을 사랑하는 작은 행동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전했다. 청년 안중근 평화학교 참가자들은 중국 연수에 앞서 4주간 안 의사의 삶과 동양평화론, 동북아 국제 정세 등을 배웠다. 중국 연수를 마친 청년들은 11월 7일부터 8일까지 경기도 파주 민족화해센터에서 열리는 ‘국제 청년 안중근 평화 포럼’에 참석한다. 교육과 연수를 통해 마주한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동북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을 이어갈 예정이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장 이은형(티모테오) 신부는 “안 의사가 의거했던 시대에는 나라를 빼앗긴다는 절박함이 있었다면, 지금 청년들이 사는 시대는 남북 분단과 위태로운 국제 정세 속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떤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시대”라며 “그래서 안 의사가 청년이었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고, 참가자들과 함께 배우고 나눠보고자 이번 연수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앞으로도 매년 청년 안중근 평화학교 참가자를 모집해 교육과 연수를 이어갈 계획이다.
지난 추석, 완벽한 차례상 위에는 정작 아무도 모르는 것이 하나 놓여 있었다. 며느리는 인터넷에서 ‘차례상 차리는 법’을 검색했고, 화면 속 정갈한 표는 홍동백서와 조율이시까지 순서대로 일러주었다. 상은 표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만으로 완성됐다. 그러나 정작 그 앞에 선 사람들 가운데, 대추가 왜 그 자리에 놓였는지 아는 이는 없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과 뉴멕시코주립대학교 공동연구진은 2025년 10월 발표한 논문에서 이 익숙한 장면의 속내를 밝힌다. 연구진은 만 명이 넘는 참가자를 모아, 한쪽은 생성형 AI의 요약으로, 다른 한쪽은 기존 방식대로 웹 검색 링크를 하나하나 찾아 읽게 했다. 그 뒤 각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써 보게 했더니, AI로 배운 이들의 글은 유독 짧았고 구체적인 근거도 적었으며 서로의 글이 놀랍도록 비슷했다. 정보를 직접 찾아 나선 사람들과 달리, 힘을 덜 들인 자리에는 남는 것도 적었다는 뜻이다. 이 조언들을 누가 썼는지 밝히지 않은 채 1493명에게 평가를 맡기자, 사람들은 AI로 배운 이의 조언을 한결같이 덜 유익하고 덜 믿음직하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AI는 정답을 가르쳐 줄 뿐, 그 정답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걸어야 비로소 배움이 된다고 짚는다. 차례상 앞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화면 속 표를 그대로 따라 하면 상은 차려지지만, 그 뜻은 차려지지 않는다. 대추는 씨가 하나여서 임금을 뜻하고, 밤은 세 톨이 나기에 삼정승을 뜻하며, 나물과 생선은 각각 땅과 바다의 결실을 대표해 나란히 놓인다는 것. 이런 이야기는 검색창이 아니라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나온다. 물어야 들을 수 있고, 그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새겨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AI는 가르친다. 배움은 그 가르침을 스스로 붙잡고 씨름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화면 속 표는 상차림의 순서를 알려주지만, 그 순서 뒤에 담긴 마음까지 옮겨주지는 못한다. 조상을 기억하는 일도, 곁에 있는 가족을 헤아리는 일도, 누군가 가르쳐준다고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신앙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리서를 통째로 외운다고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기도문을 수십 년 바치고도 그 뜻이 삶에 스며들지 않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짧은 한 구절을 붙들고 평생을 씨름하며 그 말씀을 자기 것으로 빚어낸 이도 있다.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배움은 저마다 다른 무게로 새겨진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그 가르침과 씨름했느냐는 것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가르침을 내놓아도, 그 가르침을 배움으로 바꾸는 몫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명절은 지나갔지만, 그 물음은 지나가지 않았다. 조상이 왜 그 자리에 대추를 놓았는지, 부모님이 왜 그 말씀을 하셨는지, 가르침만으로는 끝내 내 것이 되지 않는 그 이유를 다음에 만나면 다시 여쭤보자. 가르침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배움은 죽는 날까지 계속된다. AI가 가르친다? 그래도 인간이 배워야 한다. 글 _ 최홍규 안토니오(EBS 디지털교육기획부 연구위원, 미디어학 박사)
눈부신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 아르노강이 유유히 흐르는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바로 르네상스의 본산지인 이곳에는 보석과 같은 명소가 있습니다. 바로 도미니코회 산마르코 수도원 또는 프라 안젤리코 미술관이라 불리는 이곳 내부는 수사 화가인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가 그린 벽화들로 가득 차 있지요. 성스러운 고요가 지배하는 평화로운 화면은 그 누구도 쉽사리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영성이 배어 있습니다. 성미술의 지향점인 예술과 영성이 일치된 화면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수도원 2층에 오르자마자 마주치게 되는 <성모영보>를 시작으로 복도 양편으로 줄지어 있는 수사들의 독방에는 그리스도 생애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등신대 크기로 그려 놨는데 이는 명상과 기도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그중에서 제6독방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변모>를 감상합니다. 제자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타볼산에 오른 예수는 홀로 바위 위에 올라 서 있는 듯 보이는데, 실은 그가 산 정상에 서 있는 것을 나타낸 것이지요. 이같이 산을 바위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중세 동방 이콘의 영향입니다. 온통 천상의 신비로운 황금빛 배경 중앙에 순백의 옷을 입은 예수가 팔을 양편으로 활짝 펼치고 있고, 그 주위는 눈부시게 빛나는 새하얀 빛, 만돌라가 감싸고 있습니다. 이는 ‘빛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이자 곧 맞이할 그의 운명인 십자가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화면 하단에는 이 광경을 바라보며 각양각색의 자세로 놀라워하며 바라보지 못하는 세 명의 제자가 있고, 좌측에는 고귀한 짙은 보라색 망토 차림에 겸손되이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성모 그리고 맞은 편에는 기도드리는 도미니코 성인이 있습니다. 여기 도미니코의 등장은 수사들을 깊은 관조로 이끄는 안내자 역할을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의 양팔 아래에는 구름 위 머리만 떠 있는 듯 초현실적으로 표현된 구약의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좌측에는 율법을 나타내는 모세 그리고 우측에는 엘리야가 신약의 구세주 도래가 구약 시대부터 예정된 하느님의 역사임을 말해줍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마르 9,4)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루카 9,30-31) 그리고 놀랍도록 정제된 눈부신 공간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글 _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기후변화가 시시각각 현실로 다가오는 데다, 석유 고갈을 의미하는 피크오일의 불안감은 세계 곳곳의 깨어있는 시민들을 움직이게 했다. 이대로 정부만 믿고 가다가는 심화하는 자연재해와 에너지 위기로 피해를 보는 것은 시민들 자신이라는 생각에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속한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화석연료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시민들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그룹으로 모여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전환마을(Transition Town)’의 시작이었다. 영국의 데본주 토트네스는 오래전부터 마을과 지역을 연구한 많은 사상가가 협업과 연대를 했던 곳이다. 예를 들면 인도의 시인 타고르를 비롯해 엘름허스트, 간디, 사티시 쿠마르, 에른스트 슈마허 등이다. 슈마허의 이름을 딴 대안대학인 슈마허 칼리지는 토트네스 외곽에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쓰고, 이를 통해 적정기술을 주창했던 슈마허의 정신을 이어받아 인문학적 생태교육을 수행한다. 슈마허 칼리지를 설립한 것은 1990년대 초인데, 첫 강의를 담당한 교수가 바로 가이아 이론으로 유명한 제임스 러브록이었다. 그만큼 토트네스는 영국 내에서도, 대안적 생활 양식을 개발하고 도전하려는 시도와 실험이 많은 곳으로 매우 유명하다. 토트네스의 이러한 토양 아래서 2006년 세계 최초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전환공동체 운동인 전환마을이 선언되었다. 전환마을 운동을 주도한 사람은 롭 홉킨스인데, 당시 그는 아일랜드 킨세일 교육대학에서 퍼머컬처를 강의하고 있었다. 자연 친화 농업인 퍼머컬처가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 문제에 해답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롭은 학생들과 함께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생활 계획서인 「킨세일 2021」 보고서를 만들었다. 에너지, 식품, 건강, 교육, 경제, 농업 등 다양한 영역들을 지역 중심의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계획은 킨세일 시의회에서 채택하여 2005년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킨세일에서 전환 운동의 기초 이론과 성과를 이룬 롭 홉킨스는 토트네스로 옮겨와 주민들과 함께 전환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최초의 토트네스 전환마을을 선언했다. 킨세일 보고서를 발전시켜 2010년에 「행동하는 전환: 토트네스 및 주변 지역 2030(Transition in Action: Totnes & District 2030)」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석유 의존의 시대에 지역의 회복력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실용적인 방법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유럽과 북미로 확산된 전환마을 운동은 우리나라에도 곧바로 전파되었다. 퍼머컬처를 실천하면서 기후위기와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려는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 전국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유기농 농사와 에너지자립은 물론 플라스틱 프리와 평화, 인권 등 대안적인 삶의 양식을 활발히 실천하고 있는 전환공동체다. 제각기 이름은 달라도 지향점과 맥락이 같은 많은 공동체가 활발히 움직인다는 것은 이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임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글 _ 강신호 스테파노(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소장)
“아~, 이렇게 하면 되겠네!” 10월 5일 서울대교구 청담동성당.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순례자들을 위한 숙박 공간과 샤워장 등의 시설이 설치된 모습을 직접 살펴본 방문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방문자들은 줄자로 공간의 크기를 재거나, 시설 설치 방법과 실제 이용 방식 등을 봉사자들에게 질문하며 숙소 준비에 필요한 정보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서울 WYD 조직위원회는 대치성모탄신·문래동·삼각지·상계2동·신림성모·청담동·한강본당을 WYD 숙소 시범본당으로 지정하고, 10월 3일부터 5일까지 공개했다. 순례자 숙박을 준비하는 본당 관계자들이 실제 시범 시설을 살펴보고 각자의 여건에 맞는 숙소 운영 방안을 마련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7개 본당은 저마다 다른 형태의 숙박 공간과 화장실, 샤워 시설을 선보였다. 본당마다 공간과 시설, 예산이 다른 점을 고려해 다양한 선택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숙박 공간의 경우 소성당, 교리실 등의 바닥에 구획선을 표시해 수용 가능한 인원과 공간 활용 방법을 가늠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 본당에서는 침낭이나 캠핑용 간이 침대 등을 펼쳐 WYD 순례자들의 이용 모습을 재현하기도 했다. 신림성모본당은 1인용 화장실뿐 아니라 다인용 화장실도 마련해 다양한 시설을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삼각지본당은 원터치 텐트와 무선 샤워 펌프, 물통 등을 활용한 간이 샤워 시설을 선보였다. 청담동본당은 기존 급수·온수 시설을 활용해 캐노피 천막과 샤워 수전을 설치한 사례를 제시했다. 실무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정보도 제공됐다. 조직위는 안내 자료를 통해 시설별 규격과 설치 방법, 업체 정보, 구입처, 구매·설치 비용 등을 상세히 공유했다. 샤워 커튼과 미끄럼 방지 매트, 숙소 공간 구획용 테이프, 멀티탭 등 작은 비품까지도 구매처와 비용 등을 소개해 실제 준비에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청담동성당 시설 안내를 맡은 양나정(헬레나·본당 WYD분과 위원) 씨는 방문자들의 반응에 대해, “WYD를 어떻게 치를지 두려운 마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직접 시설을 보면서 ‘그래, 우리가 이렇게 함께하면 할 수 있겠다’ 하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삼각지·청담동·한강성당 등을 찾아 시범 시설을 비교했다고 밝힌 아현동본당 기획분과장 조만석(아우구스티노) 씨는 “본당마다 여건이 다르다보니 시범본당 방문이 참고가 됐다”며 “숙소 준비를 위해 본당에서 고민한 방식이 실제 적용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Hail Mary, full of grace, the Lord is with thee…”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 성모송이 울려 퍼진다. 확성기를 든 선창자가 기도를 시작하자 참가자들이 화답한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운동복을 입은 젊은 여성들. 이들은 본당이나 교구의 주관 없이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청년들이다.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기 위해 SNS를 통해 공동체를 이룬 청년들. 바로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홀리 걸 워크(Holy Girl Walk)’다. 홀리 걸 워크는 ‘신앙(faith)과 운동(fitness), 친교(fellowship)’를 함께 나누는 걷기 모임이다. 참가자들은 걷기 좋은 복장에 묵주를 들고 함께 걸으며 묵주기도를 바친다. 특히 사람들이 오가는 공원과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신앙을 증거하고 있다. 또 걷기가 끝난 뒤에는 카페에 모여 신앙 이야기를 나누는 등 공동체의 친교도 도모하고 있다. 모임의 이름은 SNS에서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유행한 ‘핫 걸 워크(Hot Girl Walk)’에서 가져왔다. 핫 걸 워크는 젊은 여성들이 ‘걷기’를 통해 감사한 일과 자신의 목표를 되새기고, 이를 SNS로 공유하면서 확산된 미국 Z세대의 ‘힙한’ 웰니스 문화. 여기에 묵주기도와 친교를 접목시킨 것이다. 청년 이사벨라 올랜도(23) 씨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혼자 걸으며 묵주기도를 바치던 개인적인 경험을 또래 청년들과 나누고자 홀리 걸 워크를 기획했다. 그는 SNS를 통해 묵주기도를 좋아하고 또 가톨릭 여성 공동체를 원하는 청년들을 모집해 올해 3월 모임을 시작했다. 수십 명의 여성 청년들의 모임으로 시작한 홀리 걸 워크는 SNS로 영상이 확산되면서 두 번째 모임에는 150명 이상이 참가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네브래스카주와 뉴저지주, 애리조나주, 캘리포니아주, 조지아주 애틀랜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등 미국 여러 지역에서도 열리고 있다. 올랜도 씨는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모임을 위해 운영자 양성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홀리 걸 워크가 눈길을 끄는 것은 SNS에서 시작된 만남이 실제로 함께 기도하고 신앙을 나누는 공동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본당이나 교구의 조직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신앙을 공유할 또래를 찾는 청년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고 있다. 언론 인터뷰에서 올랜도 씨는 “뉴욕에서는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만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며 “자신과 같은 가치에 뿌리를 둔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모임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시카고에서도 모임을 진행한 올랜도 씨는 SNS를 통해 “단 한 사람과라도 함께 기도하고 진심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보람이 있다”며 “홀리 걸 워크 공동체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어 정말 큰 축복이라 느낀다”고 밝혔다.
본당에 있을 때, 미사가 끝나면 어르신들의 성토대회가 열리곤 했습니다. “신부님, 우리 아이가 예전에 초등학생 때는 복사도 하고 주일학교도 열심히 다녔는데, 성인이 된 지금은 도통 성당에 오질 않습니다. 어쩌면 좋나요?” 처음에는 저도 함께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다니던 아이들이 왜 성당에 나오지 않게 되었을까?’ 그래서 여쭤보았습니다. “중고등학생 때도 성당에 나오지 않았나요?” “에이~ 신부님. 그때는 학원에 가야 해서 성당에 안 나왔지요.” 지금 성당에 나오지 않는 청년들도 한때는 주일학교에 빠지지 않고 나오고, 여름 신앙학교를 기다리고, 친구들과 성당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할 것은 많아지고, 학원에 가야 하는 시간도 늘어납니다. 그러다 보니 성당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고, 어느 순간 아예 모습을 볼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중학교에 올라가는 무렵은 아이들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이 시기에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한 아이들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쉬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남겨 주어야 할까요? 저는 아이들 마음속에 좋은 신앙의 기억을 남겨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당에 오면 나를 반겨 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 힘들 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었던 기억 말입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는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왔을 때 느꼈던 기쁨, 경쟁해서 이기는 것보다 함께할 때 즐거웠던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아이들에게 남겨 주어야 할 것이 단순히 즐거운 시간만은 아닙니다. 함께 지내는 기쁨 속에서 공동체를 배우고, 경쟁하기보다 서로 협력하는 법을 익히고, 받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내줄 때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어려움에 놓인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마음도 배워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교리를 통해 배우는 복음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습니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내주는 경험은 교리의 내용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합니다. 친구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 주는 것,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 어쩌면 이런 경험들이야말로 아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 신앙교육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청소년 사목에서 우리가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고 마음에 간직할 수 있는 신앙의 순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만이 청소년 사목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성당에서 멀어지더라도 다시 하느님을 찾고 싶을 때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마음속에 만들어 주는 것, 그 길 어딘가에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던 사람들, 함께 웃었던 친구들, 그리고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었던 공동체의 기억이 남도록 돕는 것. 그것이 교리를 가르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신앙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언젠가 그들이 다시 하느님을 찾고 싶어졌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사랑의 기억이 아닐까요? 글 _ 이규성 요셉 신부(수원교구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
신나는 노랫소리와 함께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다양한 TV 프로그램에서 뛰어난 노래 실력을 선보였던 조남구 신부(마르코·수원교구 제1대리구 공도본당 주임)가 무대에 올라 흥겨운 노래를 부르자 어르신들도 음악을 즐기며 모처럼 활기찬 시간을 보냈다. 수원교구 제1대리구 용인본당(주임 김형중 그레고리오 신부)은 10월 8일 본당 노인대학인 ‘성베드로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남구 신부 초청 ‘음악과 함께하는 영성피정’을 열었다. 이번 피정은 어르신들이 음악을 통해 신앙의 기쁨을 느끼고 활기찬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조 신부는 ‘오늘,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을 주제로 강의와 노래를 번갈아 하며 어르신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조 신부는 “나이가 들었다고 무엇인가를 포기하기보다 직접 해 보고 참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며 “적극적인 참여자로 살아갈 때 오늘, 지금, 여기에 더욱 충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라는 말씀을 통해 삶의 모든 순간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설명했다. 조 신부는 “지나온 삶의 수많은 조각을 돌아보면 하느님께서 선을 이루기 위해 하나하나 맞춰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하느님은 우리 삶의 동반자이자 동행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반자이신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성베드로 대학 어르신들이 되기를 바란다”며 <동반자>를 함께 불렀다. 삶에서 맺는 관계와 시간의 소중함도 강조했다. 조 신부는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할지가 결정되기도 한다”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주어진 시간을 더욱 의미 있고 충실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의 마지막에는 <사랑의 트위스트>를 부르며 다시 한번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신나는 음악과 유쾌한 강의가 어우러진 피정은 어르신들에게 웃음과 함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선사했다. 용인본당은 올해 어르신들이 복음 정신에 따라 건강하고 보람 있는 노년을 보내도록 돕기 위해 성베드로 대학을 개설하고 3월 12일 입학식을 열었다. 학생 41명은 스마트폰 활용반, 미술치료반, 파크골프반, 하모니카반 등 4개 수업에 참여하며 배움과 친교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정보윤(클라라) 성베드로 대학 학장은 “어르신들이 조남구 신부님의 신나는 노래와 영성 강의를 통해 유익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피정을 마련했다”며 “성베드로 대학과 함께하며 더욱 활기차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이어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정에 참여한 안연숙(멜리티나) 씨는 “본당에 노인대학이 생겨 다양한 것을 배우면서 삶이 더욱 풍요로워졌다”며 “오늘 신부님의 노래와 강의를 들으며 앞으로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삶의 적극적인 참여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