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복음화국은 6월 9일 분당성요한성당과 11일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제60차 교구 성경 특강’을 개최했다. 박형순(바오로·인천교구 화수동본당 주임) 신부의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예레 20,9 참조) - 예언자에게 배우는 예언직’ 주제 강의에는 1200여 명의 신자가 참석했다. 박 신부는 예언직에 대한 가르침이 담고 있는 본질적인 내용을 설명한 후, 구약성경 중 예레미야 예언자의 궤적을 따라 예언자의 정체성과 소명을 살펴보고,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에게서 어떻게 참된 예언직을 배울 것인가를 함께 모색했다. ‘예레미야의 다섯 번째 고백’(예레 20,7-13 참조)을 시작기도로 바친 박 신부는 “하느님은 완벽한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의지할 사람을 부르신다”며 “예언서 대부분의 말씀은 ‘하느님으로부터 맡겨진 말씀’(예언·預言)을 예언자가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참된 예언직은 ‘많이 말하는 능력’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담아내는 능력’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예언자는 미래를 알아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다”며 “그는 폐허 속에서도 밭을 사고, 눈물 속에서도 다시 말씀을 붙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 시대에도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신다”면서 “말씀에 사로잡혀 세상의 소음보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깊이 듣고, 절망보다 희망을 더 끝까지 붙드는 그런 사람이 오늘의 예언자”라고 덧붙였다. 특강에 참석한 전연신(헬레나·수원교구 제1대리구 광교1동본당 교육분과장) 씨는 “예언서는 어렵고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흥미진진하게 전개해 나가는 신부님의 강의에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면서 “강의를 통해 배운 예레미야서를 집에 돌아가 펼쳐놓고 그 말씀에 맛 들이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광교1동본당에서는 120여 명이 ‘성경 통독’ 프로그램을 통해 매일 말씀을 읽고, 나누며 영적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기화 명예기자
한국 교회미술의 초석을 놓은 선구자 고(故) 장발(루도비코, 1901~2001) 화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선종 후 25년 만에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다. 전시는 강원 춘천시에 자리한 한림대학교 일송기념도서관 1층 한림대학교박물관에서 9월 11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장 화백의 아들 고(故) 장흔 신부(코넬리우스, 미국 성 베네딕도회, 1931~2022)의 뜻에 따라 마련됐다. 장 신부는 미국 성 빈센트 수도원에 보관돼 있던 부친의 작품을 한림대학교에 기증하겠다는 유지를 남겼다. 전시에서는 장 신부가 기증한 작품 가운데 그간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장 화백의 성화와 추상화를 만날 수 있다. 에덴동산을 한국의 십장생(十長生) 이미지로 치환해 표현한 <에덴의 여성>과 <에덴의 남성>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이 밖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빛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을 담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갓과 한복 차림으로 십자가를 높이 들고 있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고개를 맞댄 자매가 굳건한 신앙을 다짐하는 <성녀 김 골룸바와 아녜스 자매>, 강직한 신앙을 지닌 순교자의 모습을 정적으로 표현한 <성녀 유 체칠리아>, 한국교회 공동체의 역사와 평신도의 삶을 담아낸 <신부님과 세 명의 신자> 등을 볼 수 있다. 한국 전통 서예와 서양 물감을 결합한 추상화 <무제> 연작도 함께 공개된다. 1세대 서양화가인 장 화백은 한국 근현대 미술의 중요한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일본 도쿄미술학교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초대 학장을 지냈다. 교육자이자 행정가로 활동하다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추상 작품 제작에 전념했다. 1984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장면(요한) 총리의 동생이자, 춘천교구장을 지낸 고(故) 장익(십자가의 요한) 주교의 숙부이기도 하다. 장 화백은 한국 교회미술에도 중요한 자취를 남겼다.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의 제단화 <14사도>를 제작했으며, 신자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최초의 현대식 성당으로 평가되는 혜화동성당 건립에도 참여했다. 특히 1955년 ‘성미술전람회’를 열어 현대 미술가들을 성미술의 장으로 이끌며 한국 교회미술의 토착화와 현대화에 크게 기여했다. 조정래 한림대학교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는 장 화백의 깊은 신앙에서 비롯된 성화와 동서양의 조형성이 어우러진 추상화를 함께 선보이는 자리”라며 “그가 구축한 독자적인 예술 세계와 그 흐름을 폭넓게 공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 기간 중, 매주 수요일 오후 12시30분 ‘큐레이터와의 대화’가 사전 예약을 통해 운영된다. 전시와 연계한 인문학 강좌 ‘시민박물관대학’도 이어진다. 전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주말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UCAN] 필리핀 주교단은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사랑가니주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7.8 강진 피해자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지진으로 최소 41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발생한 지진의 영향으로 인도네시아와 일본을 포함한 태평양 일부 지역에는 지진해일 경보도 내려졌다. 이번 지진으로 제너럴산토스시 성십자가성당, 사우스코타바토주 하느님 자비 성지 등 가톨릭 성당과 성지 시설들도 피해를 입었다. 2년 전 개교한 산토토마스대학교 제너럴산토스 캠퍼스에 있는 본관 탑도 무너졌다. 대학 측은 “해당 구조물에 대한 추가 안전 검사가 진행 중”이라며 “학생과 직원, 교수진 가운데 다친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마리스타 교육 수사회가 설립한 ‘다디앙가스의 노트르담 학교’ 기초교육동도 파괴됐다. 필리핀교회 각 교구는 14일 모든 주일미사 중 지진 피해자들과 구조·구호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 피해 공동체의 신속한 회복을 위해 보편 지향 기도를 바쳤다. 또한 주교회의가 9일 발표한 호소문에 따라 14일 주일미사 중 지진 피해 구호를 위한 2차 헌금을 실시했으며, 이 헌금은 피해 교구 사회사목센터와 필리핀 카리타스에 전달될 예정이다. 필리핀 주교회의 의장 길버트 가르세라 대주교는 호소문에서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교회가 희망의 표징이자 자비의 증인이 되도록 부름받았음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마닐라대교구장 호세 아드빈쿨라 추기경도 별도 메시지에서 “지진 피해로 어려움을 겪는 필리핀 국민들이 우리의 신앙과 상호 연대에서 힘을 얻기 바란다”고 밝혔다. 필리핀 카리타스도 지진 발생 후 성명을 통해 “지진 피해 공동체가 회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전했다. 필리핀 카리타스는 9일 저녁 온라인 회의를 열고 교회 활동가들이 지진으로 고립된 지역에서 피해 규모를 파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는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상황을 공유했다. 또한 카리타스 관련 회의 참석차 태국 방콕에 머물고 있던 필리핀 카리타스 사무국장 카르멜로 칼루아그 신부도 “다른 아시아 국가의 카리타스 관계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교회의 생태환경 보전을 위한 실천 활동이 성당 울타리를 넘어 지역사회와 만났다. 광주대교구 광산1·2지구는 6월 13일 광주광역시 수완동 수완문화체육센터에서 에너지 전환, 생물다양성, 먹거리, 선순환 공동체를 주제로 ‘광산지구 지역생태문화축제’를 열었다. 광산1·2지구는 신자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초대해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인식하고, 일상에서 함께 실천할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축제에는 비아동·신창동·쌍암동·운남동·월곡동·장덕동·하남동·장성본당 생태환경분과를 비롯해 지구별햇빛발전협동조합, 광주여성센터 등 지역 시민단체가 함께했다. 1부에서는 책 「카메라로 지구를 구하는 방법」의 저자인 KBS 김가람 PD를 초청해 자원순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으며, 2부에서는 하남동본당 중창단 밴드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위한 음악제’를 열었다. 영화 <수라> 상영과 황윤 감독과의 대화도 마련됐다. 야외 전시장에서는 ‘1인 1태양광발전소 갖기’과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알리는 전시와 체험, 생태화 그리기 대회, 친환경 물품 판매, 전쟁 사진 전시 등 각 본당과 시민단체가 준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쌍암동본당 주임 김관수(시몬) 신부는 “교회와 사회 지도층, 지역 주민, 시민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어우러졌다는 점이 감동적이었다”며 “교회뿐 아니라 광산구 전체가 환경에 높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의미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박용주(요안나·장덕동본당) 씨는 “이번 축제에 참여하지 못한 다른 본당에도 직접 찾아가 알리고 활동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내년에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와 연계한 청년 생태문화축제도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대교구는 6월 9일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옴니버스파크에서 제20회 생명의 신비상 시상식을 열고 생명과학·인문사회과학·활동 분야 수상자들에게 상을 수여했다. 올해 수상자는 생명과학 분야 본상 정원석 교수(스테파노·KAIST 생명과학부), 인문사회과학 분야 본상 파올로 베난티 신부(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 인문사회과학 분야 장려상 김수정 교수(비비안나·가톨릭대학교 간호대학), 활동 분야 장려상 인도 HRDF(Human Resource Development Foundation)다. 수상자들은 뇌 면역 연구와 인공지능(AI) 윤리, 소아 완화의료, 인도 달리트 공동체 자립 지원 등 각 분야에서 생명 존중 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본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1억 원, 장려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3000만 원이 수여됐다. 이날 시상식에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와 총대리 구요비(욥) 주교를 비롯해 김민석 국무총리, 한지아(베로니카) 국회의원 등 정부와 국회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정 대주교는 인사말에서 “수상자 여러분께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드러내고 이를 실천하는 데 헌신해 오셨다”며 “여러분의 고귀한 노력과 성과가 이 시대에 생명의 가치를 드러내는 귀한 표지가 되리라 믿는다”고 축하와 감사의 말을 전했다. 김 총리는 축사에서 “서울대교구가 지난 20년 동안 생명의 신비상을 비롯한 다양한 실천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생명 문화를 확산시켜 오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국민 곁에서 생명을 살리고 마음을 잇는 길에 함께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대전교구 논산 대건 중·고등학교는 6월 11일 교내 마리아홀에서 교구 총대리 한정현(스테파노) 주교 주례로 개교 8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이번 행사는 지난 80년 동안 학교에 베풀어진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학교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교직원과 동문,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해 온 발자취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정신 안에서 가톨릭 교육의 의미를 되새기며, 개교 100주년을 향한 희망과 비전을 함께 나눴다. 한 주교는 강론에서 “‘선으로써 악을 이기자’는 뜻을 담은 교훈 ‘이선승지’를 실천하기 위해 기뻐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와 함께 울어야 한다”며 “이러한 삶을 잘 보여주신 김대건 성인의 이름을 물려받은 여러분 또한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선을 선택하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1946년 설립된 학교는 김대건 성인의 영성을 교육이념으로 삼아 지성·인성·영성을 겸비한 전인적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교는 신앙과 인성, 공동체 의식을 함께 키우는 가톨릭 교육을 실천하며 지역사회의 신뢰를 받아왔다. 특히 일반계 고등학교 중 최초로 ‘구글 레퍼런스 학교’로 선정돼, 디지털 기반 미래교육의 우수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한우진(토마스 아퀴나스) 교감은 “지난 80년은 단순한 학교의 역사가 아닌, 가톨릭 교육의 가치를 실천해 온 시간”이라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앞으로도 김대건 성인의 영성에 따라 복음과 사랑을 실천하는 학교로서 100년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문을 연 퐁피두센터 한화가 개관기념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을 열고 있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6월 4일 개관했다. 10월 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20세기 현대미술의 흐름을 바꾼 큐비즘의 역사를 조망한다. 큐비즘이 탄생한 파리를 중심으로 1907년부터 1927년까지의 전개 과정을 살펴본다. 전시는 퐁피두센터 소장품 91점을 선보이는 8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큐비즘의 탄생부터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나타난 변화까지 폭넓게 다룬다. 파블로 피카소의 <여인의 흉상>과 <기타 연주자>, 마리 로랑생의 <아폴리네르와 그의 친구들>, 조르주 브라크의 <레스타크의 고가교> 등이 전시된다. 한국 근현대 회화 작품 21점을 소개하는 특별 세션도 마련됐다. 나혜석과 김환기, 유영국(바오로) 등 서구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은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큐비즘과 한국 미술, 문학 등 여러 예술 분야의 교차점을 살펴볼 수 있다.
신장 투석 치료를 받으면서도 의료와 돌봄이 절실한 두 아들을 홀로 키우는 정수현(가명) 씨 사연(2026년 5월 24일자 4면 보도)이 전해지자, 정 씨 가족에게 희망을 전하려는 독자들의 사랑이 이어졌다. 5월 20일부터 6월 9일까지 모인 성금은 총 4737만2000원이다. 성금은 6월 10일 대구 서구종합사회복지관 이한성(요한 보스코) 관장이 정 씨 가족에게 전달했다. 정 씨는 “예상하지 못한 큰 사랑으로 저를 도와주신 많은 분에게 감사드린다”며 “저와 자녀들도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나누며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이한성 관장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을 실천해 주신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서구종합사회복지관도 지속적으로 정수현 씨 가족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곁에서 돌보겠다”고 말했다.
■ 홍성민 신부(토마스 아퀴나스·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의 모친(김정화 디오니시아, 81세) - 선종일: 6월 10일 - 장례미사: 6월 12일 오전 10시 울산 옥동성당 - 장지: 대구 군위군 선산
▲던지실 주임 송호진(본오동 보좌) ▲본오동 보좌 송빈(휴양) 이상 6월 16일부
오늘날 인간 생명은 특별히 생명의 시작과 끝, 가장 생명이 취약한 순간에 위협받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낙태와 안락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특별히 생명과학의 발전과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 위협의 강도는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기결정권’은 근래에 와서 낙태와 안락사(의사조력자살)의 법제화를 두고 가장 중요한 근거처럼 작용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안락사에서 자기결정권은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종식할 수 있는 ‘죽을 권리’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고, 낙태에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명까지 좌우할 수 있는 권리로 등장합니다. 여기에서 태아는 더 이상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 세포 덩어리 혹은 여성의 자궁의 일부로 왜곡됩니다. 만약 여기에 자살이라는 문제까지 더해지면 대한민국은 인간 생명이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자기결정권’의 이름으로 일생 위협에 시달리는 독특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중요한 가치도 아니고 단지 개인의 ‘자유’가 이토록 강조되고 있다는 것은 지금 한국 사회가 여러모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함께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동의하는 객관적 가치의 상실은 개인과 사회의 방향성 상실로 이어지고 사람들은 그저 다수의 의견에 따라가는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선포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최근 서울대교구 생명의 신비상을 수상한 교황청 자문위원 파올로 베난티 신부는 수상 소감에서 인공지능 시대를 경고하며 “다수(Majority)가 곧 진리(Truth)는 아니다”라는 분명한 소신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의 순교자들을 언급합니다. 한국의 순교자들은 스스로 깨닫게 된 진리를 굳게 간직하며 신앙이 없는 대다수의 군중 속에서도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보여 주었습니다. 대다수의 의견을 거스르고, 시류를 거스르고, 인간 생명을 억압하는 거대한 시스템을 거슬러 홀로 진리를 외쳤던 한 군인의 역사적 결단이 최근 매스컴을 통해서 보도된 바가 있습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자국민을 향한 무력 진압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했던 제38집단군 사령관 쉬친셴 소장의 일화가 그것입니다. 최근 비밀이 해제되어 유출된 1990년 그의 군사재판 영상 속에서, 그는 삼엄한 압박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자신의 소신을 밝혔습니다. “차라리 목이 잘릴지언정 역사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라는 그의 외침은 ‘진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고 있고, 그 진리를 선택하는 모습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비록 소수일지언정 진리를 선택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선택은 그저 한두 명에 불과하니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수를 거슬러 내려지는 선택, 시류를 거슬러 내려지는 선택이야말로 그 어떤 선택보다 의식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결코 다수결로 결정될 수 없습니다. 윤리는 통계가 아닙니다. 보편적 진리를 따라 산다는 것은 다수의 의견이나 삶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외치는 것은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진리를 선포하는 일임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겠습니다. 글 _ 박은호 그레고리오 신부(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교수)
가톨릭교회는 6월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달로 보낸다. 그러나 지금의 남북관계는 화해나 일치라는 말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얼어붙어 있다. 민간과 정부 차원 모두에서 작은 교류나 협력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남북관계와 민족화해의 미래를 전망하도록 돕는 두 가지 이슈가 있었다. 북한에서는 헌법을 개정했고, 남한에서는 통일부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통일백서」를 발간했다. 북한 개정 헌법과 통일부 「통일백서」 내용을 살펴보고, 경색된 남북관계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기울여야 하는 노력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북한 개정 헌법, 무엇을 담았나 북한이 헌법을 개정한 것은 올해 3월 22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를 통해서다. 그러나 이 소식이 남한에는 뒤늦게 전해지면서 최근에야 북한 문제 전문가들과 민족화해 분야 성직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적대적 두 국가 관계에 부합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라”고 지시한 것이 북한 헌법 개정의 계기였다. 예상보다 긴 2년 2개월여의 시간이 지나 개정된 북한 헌법에는 남한을 적대 국가로 지칭하는 표현은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북한 개정 헌법이 명시적 표현 여부와 무관하게 남한과 북한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는 평가가 중론을 이룬다. 북한 개정 헌법에서 가장 주목받는 두 가지 사항은 기존 헌법 서문에 있던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원칙’을 삭제하고 제1장 정치 제2조에 영토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개정 헌법은 북한 영토의 범위를 규정한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령역에 대한 그 어떤 침해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밝히고 있다. 일각에서는 예상과 달리 북한이 남한을 ‘적대 국가’로 명시하지 않은 것은 남북 관계 개선의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긍정적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이냐시오) 신부는 북한이 헌법을 개정하기까지 한반도와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한 뒤 “과거처럼 남과 북이 화해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방문하고 교류하던 시대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임을출(베드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역시 북한 개정 헌법 조항에 대해 “대남 적대 노선을 국가 최상위 규범 차원에서 확립한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민족 담론을 폐기하고 적대적 교전국 관계를 법적으로 정당화하려는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성기영(이냐시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헌법 개정을 통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한이 합의했던 ‘통일 지향의 특수관계’를 부인했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 정부가 국가 대 국가 관계를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서 북한이 외교적 차원의 대화 가능성은 남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전향적으로 평가했다. 통일부 「통일백서」, 한반도 평화 공존 일관되게 지향 통일부가 올해 5월 18일자로 배포한 「통일백서」는 ‘2025년 한반도 평화 공존의 기록들’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당시 완전히 단절 상태였던 남북관계를 극복하고 적대와 대결을 평화 공존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집대성했다.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접경지 전단 살포를 막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는 등 먼저 평화를 실천하는 선제적 긴장 완화 조치에 나섰다. 「통일백서」에는 한반도 평화 공존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기반해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 기능을 전면 복원하기 위한 통일부 조직개편 등 남북관계 복원의 제도적, 구조적 토대를 다진 노력이 기술돼 있다. 정동영(다윗) 통일부 장관은 「통일백서」 발간사에서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흡수통일을 추진하지 않으며, 어떠한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다는 평화 공존의 3원칙을 확고하게 천명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6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역사의 눈으로 보면 70년, 80년 분단은 길지 않다”면서 “평화적인 통일 지향을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현재로서는 일단 평화 공존하는 것으로 소통하고, 대화하고, 존중하는 길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북한 정치·지도체제 전문가인 황소희(안젤라) 박사는 “북한과의 공존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북 관계를 조정하는 부서인 통일부가 북한의 입장에 맞춰 남북관계를 진행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며 “통일된 한반도가 한국의 국가 이익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통일을 추구하는 과정은 평화적이고 북한 주민의 동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손서정(베아트릭스) ‘삶을 살리는 평화 교육 연구소’ 소장은 “「통일백서」에서 통일이라는 목표 이전에 평화 공존을 우선하고 있는 부분이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라며 “가톨릭 사회교리가 가르치듯, 평화란 상대가 변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적대의 악순환을 멈추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통일부 「통일백서」는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한국교회 입장과 큰 틀을 같이하고 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가 2025년 8월 15일 한반도 분단 80주년을 맞아 발표한 특별 사목서한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고 또 추구하여라’에는 한반도 분단의 상처를 아파하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한국교회 입장이 담겨 있다. 주교단은 특별 사목서한에서 한국교회가 서로 다른 문화와 사상을 가진 이들도 형제자매로 존중하듯 북한 동포들을 한 형제자매로 존중하고, 북한과 호혜적인 협력에 기반을 둔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남북이 ‘공동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는 모든 이와 더욱 연대할 뜻을 재확인했다. 정수용 신부는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해 “남북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재적 특수관계이기도 하고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인 측면도 있어 어느 한 시각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가 모든 해답을 다 갖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무기를 통해서는 아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만큼 남북 사이에 적대감을 줄이고 신뢰를 쌓아가는 역할을 하는 가운데 궁극적인 화해의 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손 소장은 다음 세대가 평화를 일상의 관계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복음적 가치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교회의 역할을 요청했다. 특히, “오늘을 사는 세대에게 북한은 ‘낯선 존재’일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언론의 무관심은 북한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북한에 대한 편견을 학습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하며 사회 공익을 위한 교회 언론의 역할을 요청했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이 민족이라는 연결고리를 끊어 내는 상황에서도 교회는 그리스도교적 형제애와 보편적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북한 주민에게 접근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체적으로 “북한 정권이 남한 민간단체와의 접촉을 거부하더라도 교황청이나 국제카리타스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북한 내부 수요가 높은 병원 현대화 등 실익이 확실한 사업에 관여함으로써 북한 주민들과의 직간접적인 접촉면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제안했다. 황소희 박사도 같은 맥락에서 “한국교회는 북한에 대한 교회만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황청을 비롯한 국제 가톨릭 네트워크와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방향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떤 공간은 문을 여는 순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지하 1층에 자리한 헌책방 ‘글벗서점’도 그렇다. 네 번이나 보금자리를 옮긴 이 책방이 성산동에 새 둥지를 튼 지도 어느덧 1년 6개월.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전날 내린 비로 오래된 종이 냄새가 더욱 짙어졌고, 스피커에서는 1980년대 가곡이 흘러나왔다. 빼곡하게 꽂힌 헌책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채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글벗서점입니다.” 책들 사이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이는 김현숙(클라라)·기광서(스테파노) 부부. 50년 가까이 헌책방을 운영해 온 이들에게 책방은 생업의 공간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사랑방이었다. 헌책과 함께 키운 네 아이 부부가 처음 헌책방 문을 연 것은 1979년이다. 홍익대학교 앞에서 ‘온고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따뜻할 온(溫), 옛 고(古), 집 당(堂). 따뜻한 집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이었다. 남편 기 씨가 군 복무를 마친 뒤 김 씨와 결혼하면서 시작한 책방은 네 아이를 키운 삶의 터전이 됐다. 당시 온고당은 직원만 3명이 있을 정도로 지역에서는 이름난 서점이었다. 오랫동안 이 일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홍대 앞 온고당’은 헌책방이라기보다 동네를 대표하는 서점으로 기억된다. 이후 부부는 직원에게 온고당을 맡기고, 서대문구 창천동으로 옮겨 ‘글벗서점’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발했다. 그것도 어느덧 2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글벗서점은 참고서와 문제집, 그림책이 주력 상품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저렴한 가격에 참고서를 구입하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북적였다. 이미 누군가 연필로 문제를 풀어 놓은 참고서였지만, 아이들에게는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배움의 공간이 됐다. 생업의 공간이자 아이들의 공부방이었던 셈이다. “아이들은 새책방 딸이고 싶어 했죠.” 김 씨는 웃으며 오래된 일화를 들려줬다. 어느 날 헌책방을 부끄러워하던 큰딸을 교보문고에 데려가 새 책 한 권을 사 주고, 다시 책방으로 돌아와 책꽂이에 꽂았다고 한다. 김 씨는 딸에게 “이제 이 책도 헌책이 된 거야”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딸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헌책방만의 길을 찾다 글벗서점의 하루는 오전 11시에 시작된다. 쉬는 날 없이 부부는 매일 책방으로 출근한다. 50년 가까이 함께 책방을 꾸려 온 덕분에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역할을 안다. 책방 문을 열기 전 기 씨는 가정집이나 출판사 등을 돌며 헌책을 수집한다. 하지만 아무 책이나 들여오는 것은 아니다. “새 책방이나 대형 중고서점에 없는 책을 찾습니다.” 부부가 눈여겨보는 것은 정부 간행물이나 오래된 자료집처럼 바코드조차 없는 책들이다. 다른 곳에서는 외면받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책들이다. 사양산업으로 불리는 헌책방이지만 부부는 나름의 생존 전략을 찾았다. 일반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책을 갖추는 것이다. 김 씨는 “헌책방에 오는 분들은 단순히 싼 책을 찾는 분들이 아니다”며 “정말 오래된 책의 가치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에는 교사와 교수, 연구자들이 자주 찾는다. 오래된 자료 속 단 한 줄의 문장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다. 재래시장에서 오래된 물건과 시간을 찾아 걷듯, 글벗서점 역시 오래된 책과 기록을 찾는 이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오늘도 사랑방 문을 열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책방을 지키다 보니 자연스레 단골손님도 생겼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뒤에도 일부러 책방을 찾는 손님이 적지 않다.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지만 오랜 시간 얼굴을 익혀 온 손님들도 있다. 부부에게 글벗서점은 책을 파는 곳을 넘어,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기꺼이 내어주는 사랑방이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으로 책방을 한 적은 없어요. 손님들이 원하는 책을 찾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편히 쉬었다 가는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김 씨는 연중무휴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도 주일 교중미사는 빠지지 않는다. 매일 아침 주모경을 바치며 하루를 시작하고, 그날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현재는 셋째 딸이 부부를 도와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부부는 딸에게 선뜻 가업을 물려주기가 미안한 마음이다. 갈수록 독립서점과 헌책방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50년 가까이 이어 온 전통과 역사 앞에서도 현실적인 이유로 영원을 장담할 수 없는 시대다. 그럼에도 부부는 오늘도 문을 연다. 누군가에게는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사랑방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부는 자신들이 책방을 지키는 동안만큼은 글벗서점이 ‘대한민국의 사랑방’으로 남기를 바란다. “책을 오래 곁에 두고 살다 보면 겸손해져요. 우리는 모르는 것이 참 많은데 책은 늘 새로운 것을 알려 주잖아요. 그래서 지금도 배우고, 낮아지고, 겸손해집니다.” 반세기 동안 헌책과 사람을 품어온 부부의 얼굴에는 오래된 책처럼 깊고 따뜻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 글벗서점 -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210 지층 - 운영시간: 매일 11:00~21:30 - 문의: 02-333-1382
가족끼리 이런 말, 한 번쯤 해 보셨지요. “왜 또 늦었어?” “맨날 내가 다 해야 해?” “됐어, 말해 봐야 소용없어.” 겉으로 들으면 불평이고 짜증이며 때로는 비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곧장 방어합니다. “나도 힘들어.” “그 말투가 뭐야.” 말은 금세 말과 부딪히고, 마음은 더 깊이 숨어 버립니다. 비폭력대화의 창시자 마셜 B. 로젠버그는 말의 밑바닥이 대개 두 가지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하나는 부탁이고, 다른 하나는 감사입니다. 투박한 말 안쪽에도 ‘들어 줘서 고마워요’라는 감사와, ‘나를 봐 주세요’라는 부탁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오늘도 살게 하심에 감사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청합니다. 미사 안에서도 우리는 말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신앙의 언어는 감사와 청원 사이를 오가는 언어입니다. 가족의 대화도 그렇습니다. 다만 가족 안에서는 이 단순한 언어가 자주 뒤틀립니다. “됐어, 알아서 할게”라는 말 밑에는 ‘챙겨 줘서 고마웠어’라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 또 늦었어?”라는 말 밑에는 ‘나는 당신을 기다렸어’라는 부탁이 있습니다. “맨날 내가 다 해야 해?”라는 말 밑에는 ‘나도 좀 쉬고 싶어’라는 요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가족의 말을 너무 빨리 판정한다는 데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가르고, 서로의 몫을 계산하다 보면 말의 겉만 듣고 그 밑의 마음은 놓칩니다. 가족 사랑은 거칠고 어지러운 말속에서도 내 곁에 머무는 존재의 부탁과 감사를 식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말을 그렇게 들으셨습니다. 눈먼 바르티매오가 길가에서 자비를 청하며 외쳤을 때, 많은 이들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멈추어 서십니다. 사람들은 소란을 들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소리 안의 청을 들으셨습니다.(마르 10,46-52 참조) 가족 안에서도 작은 전환이 필요합니다. 비난처럼 들리는 말 앞에서 잠시 멈추어 묻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지금 내게 무엇을 부탁하고 있을까?’ 그리고 하루가 끝날 때 조용히 다시 묻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누구에게 고마웠는데 말하지 않았을까?’ 감사는 관계를 당연함에서 선물로 되돌리는 말입니다. 밥을 차려 준 일, 기다려 준 일, 말 없이 곁에 있어 준 일은 너무 익숙해서 쉽게 사라집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먼저 말해야 합니다. “오늘 고마웠어.” 그 말 하나가 닫힌 마음을 조금 엽니다. 내가 먼저 건넨 감사가 상대의 입에서도 다른 감사를 불러냅니다. “나도 고마웠어.” 이렇게 말의 방향은 조금 달라집니다. 사랑은 늘 큰 고백으로만 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도와줘”, 때로는 “고마워”라는 말로 옵니다. 많은 날에는 그 두 말조차 하지 못한 채, 침묵과 한숨과 투정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뭅니다. 그래도 거기 있습니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 어설픈 말들 속에서 남아 있는 부탁을 듣고, 오래 미루어 둔 감사를 다시 꺼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가족의 말들 속에서 어떤 부탁을 듣고, 어떤 감사를 미루고 있을까요? 글 _ 유형선 아우구스티노(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세상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 기후 위기, 불평등, 차별과 갈등, 돌봄 위기와 공동체 해체….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들 앞에 문제의식을 던지는 영화제가 열린다. 인천교구 문화예술위원회가 ‘함께 짓는 집 - 우리 공동의 집을 위하여’를 주제로 6월 26일부터 28일까지 인천 주안동 영화공간 ‘주안’에서 여는 제2회 인천가톨릭영화제다. 영화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한 ‘공동의 집’ 정신을 바탕으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가 서로 책임과 돌봄으로 연결돼 있음을 성찰한다. 지난해 첫 영화제가 영화와 신앙의 만남을 여는 자리였다면, 올해는 그 질문을 사회의 구체적 현실로 넓혔다. 총 28편의 상영작을 노동, 돌봄, 차별, 가족, 생명, 공동체, 연대, 인천 등 8개 섹션으로 배치했다. 개막작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소박한 삶을 살며 가난한 이들과의 동행과 평화 수호와 생태 환경 보호, 인간 존엄을 실천해 온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폐막작 <사랑, 우린 멀리 이곳에>는 재개발로 영등포를 떠나 서울역으로 이전하는 요셉의원 이야기다. 영등포에서의 마지막 날 의료진과 환자들이 나누는 작별, 서울역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통해 요셉의원이 품은 기억과 희망을 전한다. 탄소 배출·흡수량 계산이 과학적 방법론뿐 아니라 정치·경제 이해관계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탄소를 세는 사람들>, 철거를 앞둔 인천 양키시장(송현자유시장)을 통해 재개발 속에 사라져 가는 인간 공동체와 그 기억의 소중함을 환기하는 <양키시장>처럼 기후 위기 문제작과 지역색을 살린 상영작도 눈길을 끈다. 예매는 6월 16일부터 영화제 홈페이지(www.icff.kr)에서 할 수 있다. ※문의 032-765-6961 인천가톨릭영화제 사무국
푸른 초원 위의 낮잠 Amdo Tibet, 2012. 고단한 유목의 계절이 끝나고 마을로 돌아온 청년이 수고했던 말들을 풀어놓고 초원에 누워 낮잠을 잔다. 순백의 구름은 유유히 떠가고 들꽃 내음은 향기롭게 흐르고 보리를 베는 여인들의 노래 소리는 바람결에 실려온다. 자신의 할 일을 다 한 청년은 지구를 배경 삼아 푸르른 초원에 누워 깊고 달콤한 낮잠을 누린다. - 박노해 사진 에세이 「다른 길」 수록작 글·사진 _ 박노해 가스파르
“아니, WYD에 웬 철조망?” 저는 WYD 조직위원회에서 행사총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교황님 오시는 본대회의 메인 행사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요즘 주일마다 한 가지 일이 더 생겼습니다. 다름 아닌 신자분들과 망치질하기, 철조망으로 십자가를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 민족 분단의 상징이자 갈등과 분열의 상징이었던 철조망으로 치유와 부활 그리고 평화의 상징인 십자가를 만드는 일명 ‘철조망 십자가 프로젝트’입니다. “손을 펴라” 철조망으로 어떻게 십자가를 만들까요? 휴전선 철책으로 사용되었다 사용기간이 만료되어 폐기된 철조망을 미리 70cm 단위로 잘라놓았습니다. 그렇게 준비한 가시 돋친 철조망을 망치로 퉁퉁퉁~ 내려칩니다. 그러면 철사를 감싸고 있던 날카로운 가시는 벗겨지고 가운데 심지(철사)가 쏘옥~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철사를 수백수천 개를 모아 커다란 십자가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십자가는 WYD 메인 행사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철조망은 철사와 가시가 결합된 아주 질기고 날카로운 흉기와 같은 물건입니다. 그 날카로운 가시를 펴내고 벗겨내는 일. 그래서 이 행사의 모토와 문구가 ‘손을 펴라’(루카6,10)입니다. 철사를 펴고 가시를 펴고 남북 간에 갈라졌던 관계를 펴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쥐었던 분노의 주먹을 펴고 마음과 얼굴, 관계를 펴고…. 그래서 WYD에 참가하는 우리 청년들 모두가 가슴을 펴고 날개를 펴기를 바라며 이 철조망 십자가 행사를 진행합니다. 어린아이에서 큰 형님으로 이 철조망 십자가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한 신자분의 아이디어와 후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철조망을 망치로 두드리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인 철조망을 녹이고 붙여서 136개의 소형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136개? 2021년-1953년=68년. 남북을 갈라놓았던 68년의 세월, 남과 북을 합쳐야 하니 68년X2=136년이라는 분단의 시간적인 의미를 담아 136개의 십자가가 탄생했습니다. 그 십자가들은 주교좌명동대성당과 서울대교구를 넘어 대통령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도 전달되었고 분단과 갈등의 상징으로 만든 십자가에 교황님도 매우 기쁘게 화답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십자가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철조망을 망치로 두드리고 해체하여 WYD 대회 정신인 평화의 주제를 담아 약 5m의 대형 십자가로 다시 세워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우리만의 K-WYD 상징물 지난 3월에 말씀드렸던 WYD 상징물 순례 이야기처럼 WYD는 교황님이 내려주신 WYD 십자가와 성모님 이콘이라는 고유한 상징물이 있습니다. 그 상징물들은 WYD 메인 행사 제단에 올라 대회를 상징하고 순례자들의 영적인 동반자로 함께합니다. 그 상징물에 추가로 우리만의, K-WYD만의 상징물이 함께하면 어떨까요? 1984년 103위 성인 시성식, 19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 2014년 광화문 시복식 등의 행사를 치르며 그 행사만의 고유한 보물(?)들이 우리 교회 안에 거룩한 유산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교황님이 사용하신 제대와 의자 그리고 제대 위 올려진 십자가와 제구와 성물들이 행사의 역사적 증인으로 그날의 그 거룩한 시간을 증언합니다. 이번 WYD도 예외가 되면 안 되겠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면서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지금도 전쟁 중인 국가 대한민국만의 가슴 아프면서 희망적인 이야기가 담긴 상징물을 지금 우리 신자분들의 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만의 십자가 우리가 함께 만들어요 신자분들의 참여로 십자가는 오늘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4월부터 내년 4월 4일까지 1년 동안 진행 ▶장소는 명동대성당 마당 철조망 십자가 부스 ▶운영시간은 매 주일 1시~3시 ▶중학생부터 참여 가능 & 현장 접수 가능 ▶본당 단체 또는 다수의 인원일 경우 WYD 홈페이지의 철조망 십자가 참가신청서 통해 이메일로 사전에 접수하면 대기 없이 참가 가능 ▶참가 후 예쁜 포토 프레임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귀여운 십자가 모양 굿즈도 받아가세요~! ▶문의 events@wydseoul.org ▶사전접수 바로가기 글 _ 김윤욱 루카 신부(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영성구현본부 행사총괄부)
‘파견 설교’라고도 불리는 오늘 복음의 골자는, 너희가 제자가 된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마태 10,32 참조)하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마태 10,26)인 까닭이지요. 그분이 구원자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숨긴다고 숨겨질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기 마련이고, 진리는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 마태오 복음이 ‘드러낸다’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아포칼립토’(ἀποκαλύπτω)입니다. 이는 함께하는 단어 앞에 붙어서 ‘~으로부터’ 또는 ‘~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온다는 의미를 강화하는 전치사 ‘아포’(ἀπό)와 ‘덮거나 감추다’라는 뜻을 가진 ‘칼립토’(καλύπτω)가 합쳐진 말이지요. 직역하면 ‘덮어진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이니, 결국은 감추어진 것이 밖으로 환히 드러난다는 뜻이 됩니다. 아포칼립토는 또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라고 하신 말씀에도 사용됩니다. 여기서 ‘드러나게(아포칼립토)’ 하는 주체가 성자 예수님이 아니라 성부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숨어계신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직접 드러내 보이신다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하느님의 ‘자기 계시(revelatio)’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왜 우리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시는 걸까요? 그것은 “당신 뜻의 신비를 기꺼이 알려주심으로써 사람들이 사람이 되신 말씀,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다가가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도록”(「계시헌장」(Dei Verbum) 2항 참조)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하느님께서 드러내시는 계시 진리를 통해 하느님을 뵙고(visio Dei)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 ‘하느님 본성에 참여’가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이라고도 하였습니다.(「신학대전」 I-II, q.3, a.8) 계시란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한, 만날 수밖에 없는 진리의 빛입니다. 인간은 그 빛으로 비로소 눈을 뜨게 되는 거지요. 계시는 항상 인간에게 ‘눈이 열리는 것’으로 체험됩니다. 이를테면,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걸으면서도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루카 24,16)지요. 그러나 그분께서 빵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시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루카 24,31)습니다. 예수님을 못 보던 이들이 다시 알아보게 된 건, 갑자기 또 다른 예수님이 새롭게 등장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의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아포칼립토가 말하는 하느님의 드러냄도 이와 같습니다.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우리 앞에 새로운 하느님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눈이 열리는 겁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뜨게 만드는 것이지요. 하지만 눈을 뜬다는 건 때때로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우리 자신의 나약함까지 고스란히 직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눈을 뜰수록 자기 환상은 무너지고, 꼭꼭 숨겨 두었던 상처가 드러납니다. 나의 위선은 그대로 폭로되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던 나의 삶이 산산이 조각나는 과정을 겪게 되지요. 어쩌면 계시는 하느님을 바라보기에 앞서, 인간 실존의 나약함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숨겨왔던 우리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지요. 오늘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마태 10,26)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가진 죄의 경향성을 ‘드러내’ 주심으로써, 당신 사랑과 자비를 ‘계시’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내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나약함이 드러날수록 그분의 자비 또한 환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_ 김정일 안드레아 신부(의정부교구·서울대교구 대신학교)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의 소명은 말 그대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처럼 하느님 백성 가운데 머무는 것입니다. 삶의 무게로 걸음이 느려지고 유약해진 이들의 속도에 맞추고, 반대로 발걸음이 빠르고 강건해 여정을 재촉하는 이들에게도 자신을 맞춰 그 누구도 길가에 뒤처지거나 버려지지도 않도록 늘 깨어 살피는 것이지요.”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총원장 아민타 사르미엔토 푸엔테스 수녀(Aminta Sarmiento Puentes)는 수녀회의 소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아민타 수녀는 5월 20일부터 6월 13일까지 한국을 방문해 전국 본당, 수녀원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회원들을 만났다. 또한 영성 피정, 나눔 등을 통해 국내 수녀회의 사도직 현황과 미래에 대해 함께 숙고했다. 아민타 수녀는 2023년부터 수녀회를 이끌고 있다. 그는 총원장 직무를 “하나의 특권이자 매우 큰 도전”이라고 여겼다. 한국 내 수녀들을 만나는 것처럼 세계 곳곳의 회원들을 만날 수 있음과 동시에 큰 책임감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다양한 국가에서 활동하는 자매들과 그들이 몸담은 사목 현장을 직접 알고 가까이 만날 수 있기에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교회 목자들, 평신도들과의 친교 안에서 시노달리타스 정신에 따라 함께 걸어가며 용기와 희망을 품고 미래를 함께 바라보아야 하기에 정말 큰 도전이기도 해요.” 아민타 수녀는 “설립자이신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님이 바오로 가족 수도회 전체에 가르쳐 주신 바와 같이, 우리의 영성은 언제나 성체성사에서 시작된다”면서 “여기서 더 나아가 현대 세계의 성취와 모순이 교차하는 역사, 인류의 목소리, 그리고 교회와 민족들이 걸어가는 여정의 소리에도 깊이 귀를 기울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이런 점에서 우리 수녀회는 ‘어머니와 자매’의 마음을 품고 인류의 여정 위에 서 있는 순례자들”이라고 말했다.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는 올해 최우선 목표를 ‘양성’으로 삼았다. 아민타 수녀는 “오늘날 어떻게 복음을 환대하고 선포하며 증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 성소 사목 책임자들과 양성자들을 위한 연수 과정을 마련했고, 또 이탈리아에 단일 ‘국제 통합 수련소’를 설립했다”며 “새로운 세대의 수녀들이 상호 문화적 도전 속에서 함께 걸어갈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우리의 사명을 실천하는 자매들, 목자들과 평신도들을 만나고 싶었다”는 아민타 수녀는 “한국의 다양한 현실 속에서 사목적 돌봄의 직무를 실현하기 위해 수녀회가 얼마나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 직접 체험했다”고 전했다. 또 “한국은 풍요롭고 창의적이며,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문화를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수녀님들을 통해 함께 나누는 신앙, 경청하는 마음, 따뜻한 환대를 느낄 수 있었지요. 또 신앙에 대해서는 매우 철저하고 깊은 진지함을 지녔고, 전례 또한 아름다웠습니다. 이 자산들을 앞으로도 잘 간직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발달장애 성인을 위한 국내 첫 대학 기반 평생교육 프로그램인 ‘발달장애인 지역사회생활 아카데미’(E-ACOLA, Ewha Academy for COmmunity Living of Adults with Developmental Disabilities, 이하 이아콜라)가 25주년을 맞았다. 이아콜라는 6월 13일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삼성교육문화관에서 25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발달장애 성인의 성인기 배움과 지역사회 참여를 지원해 온 지난 여정을 돌아봤다. 행사에는 수강생과 가족, 자원활동가, 강사 등이 참석해 이아콜라가 국내 대학 기반 평생교육의 효시이자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교육공동체로 자리매김해 온 의미를 나눴다. 기념행사는 연혁 보고와 축사, 수강생·학부모·자원활동가·강사의 소회 나눔, 이전 수강생들의 축하 연주 등으로 진행됐다. 2007년 고등학교 졸업 후 이아콜라에 참여했던 전 수강생 이정익 씨는 “매주 토요일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 공부하고 발표하며 작품도 만들었다”며 “전시회 관람과 대안학교 견학 등 많은 추억을 쌓았고, 교수님 도움으로 2009년 장애인으로서 처음 이화여대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다 학기 자원활동가로 참여한 성예빈(이화여대 특수교육과 재학) 씨는 “누군가를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각자의 모습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성장한 경험이 큰 의미로 남았다”고 전했다. 이아콜라는 이화여대 특수교육과 박승희(율릿다) 교수가 2001년 9월 시작했다. 당시 발달장애인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정규 교육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 박 교수는 이들이 대학 환경 안에서 성인기 삶에 필요한 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는 2010년대 이후 서울시 25개 자치구에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가 갖춰지는 등 성인 발달장애인 평생학습이 확산되기보다 10년가량 앞선 시도였다. 박 교수는 지난 25년 동안 무급 강사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이아콜라의 특징은 발달장애 성인을 보호와 돌봄의 대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지역사회 안에서 배움을 지속하며 관계를 맺는 평생 학습자로 존중한다는 점이다. 수업은 대학 캠퍼스와 인근 지역사회, 미술관 등 실제 생활환경을 활용해 진행된다. 수강생들은 자기결정, 의사소통, 사회성 기술 등을 익히고 이를 삶의 현장에서 적용하는 경험을 쌓는다. 대학생 자원 활동가들은 ‘학습 파트너’로 함께하며 발달장애 성인의 사회적 관계망 확장에도 힘을 보탠다. 박 교수는 “발달장애인도 매일 조금씩 더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을 사회는 간과한다”며 “장애인의 교육을 비장애인의 교육과 전혀 다른 문제로 보는 사회적 인식도 더 성숙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학령기 이후 정기적으로 참여할 프로그램이 없으면 발달장애 성인은 쉽게 고립될 수 있다”며 “이아콜라는 이들이 성인기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태도를 배우고, 사회와 연결되도록 돕는 교육의 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