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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성당 순례] 고초골공소

‘신앙 선조들이 박해를 받으며 고초를 당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는 마을, 경기도 용인의 ‘고초골.’ 이곳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직접 연관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성인이 사목하던 시절 방문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용인특례시는 고초골공소와 성인이 유년기를 보낸 은이성지 등 다섯 곳의 명소를 잇는 스탬프 투어 ‘청년 김대건의 길을 걷다’을 마련했다. 김대건의 길을 따라 걷기 위한 이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는 수원교구 제1대리구 원삼본당(주임 송영오 베네딕토 신부) 관할 고초골공소와 피정의 집을 찾았다. 되찾은 초가지붕으로 더 뚜렷해진 신앙 선조 숨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 좁은 골목과 둔덕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고초골공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돌담 사이로 향토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마치 전래동화에 나오는 작은 마을 공동체에 들어선 듯 정겹다. 대부분 기와지붕을 얹은 집들이지만 그중 초가집 한 채가 눈에 띈다. 바로 옛 고초골공소다. 현존하는 수원교구 공소 중 한옥으로 지어진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공소로 현재는 경당으로 쓰인다. 최근 연 1회 있는 초가 복원을 막 마친 말끔하고 풍성한 지붕 아래로 세월의 흔적이 담긴 ‘고초천주교회(枯草天主敎會)’ 현판이 걸려 있다. 전통 가옥이지만 자세히 보면 한지 문에는 유리가 덧대어 있고 벽에는 소화 설비가 설치돼 있다. 대들보와 서까래에는 형광등도 달려 있는 등 실용성을 더해 개량된 모습이다. 이는 1891년 세워진 후 기와와 팔작지붕 등으로 개조되며 오랫동안 실제 교회 시설로 사용돼 왔기 때문이다. 이후 2018년 국가등록문화재 제708호로 등재된 것을 기념해 교구와 용인특례시는 2023년 공소의 원형 모습을 최대한 살려 복원했다. 내부 제단의 감실대 등은 고가구로 갖춰 세월의 손길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기둥마다 걸린 은색 주석 십자가의 길이 고풍스러운 나무와 어우러진다. 경당 바깥 왼쪽으로는 검은색 철제 종탑이 눈에 띈다. 인근 용암(용바위)공소가 폐쇄되면서 약 12년 전 이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지금은 공소의 명물이 됐다. 경당 오른편에는 청보라색 수국과 노란 나리꽃 사이로 루르드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마당 구석구석에 놓인 항아리들은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더한다. 정기적 피정 이어가며 옛 교우촌 구현 고초골공소와 피정의 집에는 교육관, 개인 피정의 집, 수도자·선교사 쉼터, ‘순교자 신안드레아의 집’, 관리동 등 각 용도에 맞는 공간들이 오밀조밀 마련돼 있다. 민가를 개량한 ‘라자로·마르타·마리아의 집’은 순례자들의 식사 준비 공간으로 썼다가 현재는 다른 용도로의 활용을 준비 중이다. ‘순교자 유군심 치릴로의 집’, ‘순교자 박바르바라의 집’이라는 이름의 정자는 순례자 쉼터로 쓰인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 안내를 시작으로, 바위와 소나무에 기대어 있는 십자가의 길도 이색적이다. 2003년 원삼본당이 설립되며 피정의 집으로 용도가 변경된 고초골공소에는 전임 교구장 최덕기(바오로) 주교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머물며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 후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2024년부터 송영오 신부의 특강을 재개했다. 현재 송 신부의 봄·가을 피정 프로그램은 교육관 혹은 경당에서 열린다. 올 하반기 가을 피정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9월 9일) ▲‘하느님은 어디 계십니까?’(9월 25일)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10월 14일) 등의 주제로 11월까지 이어진다. 피정은 오전 11시 미사로 시작해 점심 식사 후 특강으로 마무리된다. 개인 피정은 운영 준비 중이다. 순교자들의 덕, 마침내 공소로 꽃 피다 고초골은 1820년경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산중에 모여들면서 생긴 교우촌이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에 숨어 살던 신자들이 붙잡혀 순교하고 마을은 불타 없어졌다. 이때 끌려간 신자들 중 박 바르바라, 신 안드레아, 유군심(치릴로) 등 다섯 순교자의 기록은 「병인사적 박순집 증언록」, 「치명일기」, 「병인치명사적」에 수록돼 있다. 1886년 조선에 선교의 자유가 허락되자 이곳에 다시 신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1891년 기도와 집회 장소로 사용할 공소가 세워졌다. 고초골 교우촌 규모는 문헌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수원교회사연구소의 「상교우서」에 따르면, 공소 신자 수는 1900년 78명, 1924년 226명, 1937년 242명이다. 고초골공소에 대한 기록은 몇몇 사료에 남아 있다. 제8대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1854~1933)가 쓴 「뮈텔주교일기」의 서울 남부지역 사목 순방 기록(1902년 11월 11~17일)에 고초골공소가 등장한다. 뮈텔 주교는 이곳에서 신자들로부터 국수 대접을 받았다고 적었다. 또한 우리나라 세 번째 사제 강도영 신부(마르코·1863~1929)는 「서한집」 중 <주교님(뮈텔)께 쓴 편지>(1916년 2월 16일) 등 여러 서한에서 고초골공소를 언급했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4면

‘인공지능, 사목에 적용하려면?’…수원교구 사제들 AI 교육 실시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를 업무에 활용하는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교회는 AI의 윤리적 문제를 우려하면서도 인간 중심적으로 활용토록 인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첫 공식 연설에서 “AI는 인류가 직면한 중대한 과제”라며 “AI 시대에도 인간을 위한 복음의 원칙을 선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수원교구가 생성형 AI의 기본 원리와 활용방법을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수원교구 홍보국(국장 이철구 요셉 신부)은 7월 2일 교구청 2층 대강의실에서 사제들을 대상으로 AI 활용 교육을 실시했다. AI에 대한 신앙적 접근이 아닌, 실무교육을 교구 차원에서 마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철구 신부는 “AI가 시대적 화두이자 이용범위가 넓어지는 가운데 사제들이 사목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무적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을 마련했다”며 “새로운 과학 기술을 경계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폐단을 줄이고 바람직한 활용 방법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은 AI 리터러시 교육 전문기업 에이블런이 주관했다. 교육에 참가한 사제들은 생성형 AI의 기업 적용 사례부터 챗지피티(ChatGPT)의 다양한 기능, AI 검색에서 원하는 결과를 효과적으로 도출하는 방법 등을 배웠다. 또한 다양한 AI 툴을 활용한 실습도 병행됐다. 이미지 생성부터 특정 문서를 활용한 프레젠테이션 제작, 동영상과 배경음악 생성 등의 교육이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와 함께 챗GPT의 유료 버전 기능이 탑재된 ‘GPTs’에 대한 교육도 약 한 시간 동안 열렸다. 참가자들은 GPTs의 활용 분야와 사례를 배우고, 회의록을 자동으로 작성하는 챗봇을 직접 체험했다. 수원교구 용문본당 주임 손창현(이냐시오) 신부는 “AI는 미래에 신자들을 선교하거나 사목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기술이라는 생각에 교육에 참여했다”며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역마다 다른 신자들의 성향과 분위기를 파악한다면 사목적으로 신자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수원교구 원로사목자 최재용(바르톨로메오) 신부는 “새로운 하느님 역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종교와 과학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과학기술의 오용을 막기 위해서는 종교도 이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알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교육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교육에는 수원교구뿐 아니라 대구대교구와 마산교구 사제들도 참석했다. 대구대교구 홍보국 차장 이재근(레오) 신부는 “직접 기술을 사용해보니 가톨릭 용어가 개신교와 혼용되거나 성인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만연하다는 것을 알게 돼 교회가 AI 기업들과 협력해 이를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점점 발전하는 AI는 성찰하는 기능이 있다는 내용도 교회가 AI시대에 무엇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었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2면

신학생들, 남북 분단 현장에서 ‘평화·화해’ 염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김주영 시몬 주교)는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2025 민족화해관심 신학생 연수’를 마련했다. 부제 1명과 신학생 17명이 참여한 올해 연수는 남북 분단과 6·25전쟁, 남북 화해의 의미를 묵상할 수 있는 접경 지역과 북향민 관련 시설을 방문하고 북한 문제 전문가들의 강의를 듣는 시간들로 구성됐다. 신학생들은 첫째 날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센터에 모여 오리엔테이션으로 일정을 시작해 평화감수성 교육을 받고, 북한대학원대학교 김성경 교수로부터 ‘분단 문화’ 주제 강의를 들었다. 둘째 날인 7월 1일에는 6·25전쟁 발발 전후 시기 이념 대립 속에 목숨을 잃은 강화도 민간인 희생자 묘역을 찾았다. 또 강화 평화전망대와 교동 망향대를 방문해 북녘을 바라보며 남북이 하나 되는 날을 염원했다. 둘째 날 일정을 마치며 민족화해센터에서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남덕희(베드로) 신부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평화’라는 주제로 신학생들에게 강의했고, 조별 토론도 진행했다. 2일 오전에는 경기도 안성 하나원을 방문해 하나원에 대한 소개를 들었고 같은 날 오후에는 민족화해센터로 다시 이동해 북향민들과 만남의 시간도 가졌다. 예수회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연수(스테파노) 신부는 ‘북한 천주교회 역사’를 주제로 강의하며 북한 지역 교구와 본당 역사를 상기시켰다. 3일에는 파주 임진각과 파티마 평화의 성당, 연천 유엔군화장장, 파주 북한군 묘지를 방문하며 남북 분단과 6·25전쟁이 남긴 아픔과 그 아픔을 승화시켜야 하는 종교인들의 의무를 묵상했다. 신학생들은 특히 1952년부터 6·25전쟁 휴전 이후에도 짧게 운영됐던 유엔군화장장, 묘비 대부분에 ‘무명인’이라 적혀 있는 북한군 묘지 앞에서 국적과 남북을 초월한 평화와 화해를 위해 기도했다. 이날 민족화해센터에서 저녁 식사 후에는 광주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황성호(미카엘) 신부가 광주하나센터 활동을 신학생들에게 소개했다. 춘천교구 김찬(안드레아) 신학생은 “머리로만 생각하고 무관심하기 쉬웠던 북한에 대해 피부로 느낄 수 있어 감사했다”며 “앞으로도 민족화해 문제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2면

서울대교구-우리금융, 미성년 한부모 만나…“생명 위한 용기, 교회가 도울 것”

서울대교구는 7월 4일 서울 명동 교구청 내 ‘우리사랑나눔터’에서 미성년 미혼 한부모 6명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교구와 우리금융그룹이 함께 진행하는 미혼부모 자립 지원 사업 ‘우리 원더 패밀리’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수혜자는 “매달 안정적인 지원을 받아 정말 큰 힘이 된다”며 “지원금으로 적금도 들고 식비로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는 “생명이라는 가장 소중한 선택을 한 여러분들의 결정을 함께 지지하며 동행하고자 한다”며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교회를 찾아주시면 종교를 떠나 기꺼이 응답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우리금융미래재단 임종룡 이사장은 “생명을 향한 결정을 내린 용기와 책임감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이 사업은 사회가 그 용기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자리에 동석한 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오석준(레오) 신부는 “개인적으로 ‘미혼 부모’라고 하면 ‘생명을 선택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며 “부정적으로만 판단하면 그들은 오히려 숨어서 낙태 같은 반 생명 행위를 하게 되고 범죄에도 노출되기에, 사회와 어른들이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우리 원더 패밀리’ 사업은 서울대교구와 우리금융미래재단, 여성가족부가 협력해 2023년 7월부터 이어가고 있는 미성년·청소년 미혼 한 부모 자립 지원 프로그램이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3면

[당신의 유리알] 기억 저 깊은 곳에(상)

저녁 미사 전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언덕 위의 작은 성당에서 장명숙 안젤라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밀라논나’로 불리며,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는 분이었다. 선생님(이하에서는 밀라논나님으로 칭함)을 부르는 애칭 밀라논나는, ‘밀라노 할머니’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비롯됐다. “제가 머리가 하얗잖아요. 하루는 그 방송을 만드는 친구들이, ‘밀라노 논나’라는 채널명을 제안했어요. 거기에 대고 ‘할머니 소리는 싫어’ 하기도 우습고, 그런 것에 저는 자유롭거든요. 그때부터 이 애칭을 쓰게 됐어요.” 영상을 보는 이들은 밀라논나님의 가식 없는 이런 모습들을 좋아했다. 나는 요양원에 계신 엄마가 잠시 떠올랐다. 누군가 엄마를 ‘할머니’라고 불렀을 때의 거북했던 기억과 함께, 몸만큼이나 이 호칭은 엄마를 더 멀리 느껴지게 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세례명도 안젤라였다.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서 밀라논나님이 공부를 시작했을 때 느꼈던 문화적 차이에 대해 먼저 가볍게 물었다. “우선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유롭게 애정 표현을 하는 것에 저는 무척 놀랐어요. 그리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의 이름을 그냥 부르는 모습에서 ‘평등한 관계가 이렇게 시작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러니 세월이 지나도 서로 트집 잡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내가 살던 밀라노에 이미 계셨구나…’ 우리는 이미 밀라노 중심 스칼라 극장 건너편 있는 고풍스러운 카페에 앉아 있는 듯했다. 질문을 준비하면서 밀라논나님이 출연하신 영상과 책을 먼저 읽었다. 책에서는 장기기증에 관해 쓰신 문구 ‘나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기를’ 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저는 이제 살아온 만큼 더 살지는 못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달려만 가던 생각들에서 멈칫 서서는,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를 더 고민하게 되었지요." 나이가 드니 생각도 바뀌는 느낌. "나이 듦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역시 소탈한 표정으로 답하셨다. “저는 그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나이를 어떻게 안 먹나요?! 떡국을 안 먹는다고 나이를 안 먹나요. 잠을 안 잔다고 세월이 안 가는 것도 아니고, 물결 따라 가는 거지요. 인생을 역행한다는 게 얼마나 흉해요. 사람들이 그래요 ‘염색하면 더 젊어 보일 텐데…’ 젊어 보이면 어쩔 건데요? 연애할 것도 아니잖아요. 이대로의 내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염색을 안 하니까 제일 화를 내시는 건 어머니였어요. 당신은 염색을 하셨거든요. 딸이 당신보다 나이 들어 보이니까 그러신 거지요.” 어머니에 대해 언급하셨을 때, 사제 아들을 두고 서로 당신들을 더 닮았다고 농담하시는 부모님이 생각났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무도 닮지 않았다고 차갑게 답했던 기억. 받은 것은 많으나 작은 가시 하나가 늘 아픈 법이다. 이럴 때는 왜 엄마가 더 미웠던 것일까. “’하느님 아버지’를 부를 때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평소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밀라논나님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는 알고 있었다. 저편에서 기억을 길어 올리는 듯한 얼굴. “제 아버지는 은행원이셔서 바쁘셨지만, 저를 사랑하셨어요. 울타리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기도 중에 ‘하느님 아버지’를 말할 때 오히려 든든했지요. 저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저를 보며 ‘어떤 때는 네가 얄미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맨날 못생겼다고 구박하셨고. 지금은 다들 스타일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때는 그러셨거든요. 아마도 우리 할머니가 며느리에게 굉장히 엄격하셔서 시집살이를 모질게 시키신 거 같아요. 신교육을 받은 어머니는 저를 그래서 귀찮아하신 거 같고요. 게다가 어릴 때 제가 할머니를 많이 닮아서 더 그러셨나 봐요.” 밀라논나님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했던 예술가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그의 사진에는 부드러우면서도 말없이 타인의 내면을 감싸줄 것 같은 응시가 있다. 내면의 상처를 작품에 형상화했던 예술가 루이스 부르주아. 그녀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나약했고, 남편과 가정교사의 오랜 불륜을 보고도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던 인물로 그려졌다. 작가는 ‘덧없음’과 ‘안정’이라는 감정에 깊이 파고들었다. 느닷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기억의 덧없음은, 상실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었다. 동시에 보이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영속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했다. 그랬다. 낳아 준 존재를 미워한다? 고맙고, 밉고, 사랑하고, 분노하고…. 우리는 가족에 대해 말하면서 ‘상처받은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친부에게 성범죄를 당한 아이들의 이야기. 밀라논나님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가출 소녀 쉼터’에서 20여 년 동안 봉사활동 중인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다. “거기 애 중에는 아버지에게 성범죄를 당한 애들이 참 많아요. 그 아이들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할 때마다 손끝에서부터 몸서리를 치는 거 같아요.” 꽝 하고 마음의 문이 닫히는 소리. ‘이해와 용서’라는 단어가 강요될 때, 피해자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에 갇힌 채 곪아 간다. ‘엄마’라는 이름, 태어나서 처음 만난 존재이며 사랑, 사랑하면서도 아픔을 주는 관계. 중증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는 나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든든한 울타리이자 찌르는 가시관이었다. 예술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그녀의 작품 전반에서 ‘엄마’라는 존재를 ‘양가감정’으로 다루었다. 즉 엄마에 대한 분노와 함께 사랑하는 존재로, 존경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 그의 작품에는 공존했다. 강하면서도 무기력했던 존재의 이름. 내가 오히려 엄마를 아프게 한 적이 더 많은데, 식지 않은 미움은 어찌할 것인가. 밀라논나님은 공감하듯 말을 이었다. “저의 어머니는 따뜻한 분이 아니셨잖아요. 그래도 묵주기도를 할 때면 제 마음이 따뜻해져요. 저는 엄마에게서 따뜻한 손길을 받은 기억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돈을 잘 주시고 제가 부탁한 것은 절대로 거절하지 않으셨지만, 마음에는 살가운 온기가 없던 분이셨어요.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용서를 청하셨어요. 그 후로는 ‘성모님’을 부를 때마다 오히려 마음이 훈훈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내 영혼은 설명할 수 없는 기억을 향해 돌을 던지며 묻고 있었다. 그 존재를… ‘엄마’라는 이름을 다시 사랑할 수 있냐며. 글 _ 박홍철 다니엘 신부 (서울대교구 삼각지본당 주임)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13면

[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줄리아노 다 상갈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를 처음 맡은 도나토 브라만테(1444~1514)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피렌체 사람으로, 알베르티 이후 정체된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전성기로 끌어올린 건축가가 있습니다. 피렌체 초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의 훌륭한 계승자로 알려진 그는 줄리아노 다 상갈로(Giuliano da Sangallo, 1445~1516)입니다. 상갈로 가문은 여러 건축가를 배출했는데, 줄리아노는 그중 가장 연장자입니다.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베키오(Antonio da Sangallo il Vecchio)가 그의 동생이고,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조바네(Antonio da Sangallo il Giovane)는 그의 조카입니다. 그리고 조각가인 프란체스코 다 상갈로(Francesco da Sangallo)는 그의 아들입니다. 줄리아노는 20대 초반에 5년간 로마에 머물면서 고대 로마의 건축물을 연구하고 그림으로 남겼는데, 이 자료들은 훗날 그의 건축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대 중반에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목조 조각가로 일하다가 요새(要塞) 공사를 시작으로 건축가로 활동하였습니다. 특히 로렌초 데 메디치의 후원으로 메디치가의 전속 건축가가 되었으며, 로렌초의 의뢰로 프라토의 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le Carceri a Prato, 1486~1495)을 설계하였고, 피렌체의 영토를 방어하기 위한 포조 임페리알레 요새(Fortezza di Poggio Imperiale, 1488~1511)의 설계도 맡았습니다. 이 시기에 라파엘로가 피렌체에 머물렀는데, 이때 줄리아노는 라파엘로와 교류하며 건축 분야에서 영향을 주었습니다. 1492년 로렌초의 사망과 함께 줄리아노는 밀라노에 가서 브라만테와 레오나르도를 만났고, 1495년에는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 추기경(훗날 율리오 2세 교황)의 건축물을 지으며 그의 후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1503년 율리오 2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어 그는 로마 교황청에서 일하였고, 그때 성 베드로 대성당에 대한 기획을 제안하였습니다. 그의 계획안은 브라만테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나중에 브라만테에게 뒤처지면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브라만테 사후 라파엘로와 함께 성 베드로 대성당 공사의 건축가로 활동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피렌체로 돌아와 151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줄리아노의 작품 중에 브루넬레스키의 마지막 작품인 산토 스피리토 성당의 성구보관실(제의실)이 있습니다. 1489년 건축이 시작된 이 성구보관실은 평면이 팔각형인 점에서 피렌체 대성당의 세례당을 닮았습니다. 내부는 피에트라 세레나(회색 사암으로 토스카나 지방의 석재료)로 된 12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있고, 드럼(돔을 받치는 수직 구조물)에는 삼각형의 페디먼트와 직사각형 창문이 있으며, 돔 하부의 반원 아치 부분에는 둥근 창이 있습니다. 줄리아노는 당대의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 그리고 브라만테로 이어지는 르네상스의 특징들 특히 중앙집중형 평면과 오더 양식을 종합하여 그의 작품에 담았습니다. 줄리아노의 대표작은 프라토의 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1484년 어떤 병든 아이가 프라토의 한 감옥(카르체리) 벽에 그려진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그림이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되었고 곧 아이의 병이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 기적에 대한 대중 신심이 커지면서, 1485년 로렌초 데 메디치는 그곳에 성당을 짓기로 결정하고 줄리아노에게 설계를 맡겼습니다. 성당의 평면은 르네상스 성당의 대표적인 형태인 그릭 크로스의 평면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줄리아노는 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을 설계하면서 특히 알베르티가 만토바에 건축한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단 알베르티의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은 출입구가 한 곳이고 세 팔에 앱스가 있는 반면에, 줄리아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은 제단이 있는 한 곳에만 앱스가 설계되어 있고 나머지 세 방향에 모두 출입구가 있으며, 크로싱을 중심으로 네 방향의 팔 길이가 짧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단독 출입구에서 생기는 선형성을 약화하고, 중앙 크로싱까지의 거리를 줄여서 중앙집중성을 높였습니다. 내부는 특히 브루넬레스키의 파치 경당과 산 로렌초 성당의 구 성구보관실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건물의 높이가 3층으로 확장된 것을 제외하면 두 건물과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특히 3층 부에 펜던티브(돔 하부의 곡면 삼각형 부분)가 있고 그 위에 반구형 돔이 얹혀 있는 형태가 두 성당과 매우 흡사합니다. 출입구가 있는 세 면은 외부처럼 페디먼트가 있는 신전 파사드이고 제단이 있는 앱스 쪽은 반원 아치로 되어 있습니다. 외부는 알베르티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처럼 토스카나의 로마네스크 형태에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기하학적 장식을 취했습니다. 사각형은 흰색 대리석 둘레로 검은색 대리석의 띠가 둘러쳐 있는 형태인데, 이러한 대비는 추상적인 외관을 만들어냅니다. 외관 본체의 구성은 1층과 2층이 같은 크기로 올라가면서 육면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지붕은 페디먼트로 마감되었습니다. 그 위로 12개의 오쿨루스가 있는 원통형 드럼과 돔이 있는데 브루넬레스키의 돔 지붕 형태입니다. 본체의 모서리 부분은 쌍기둥 형태의 벽기둥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토스카나식이고 2층은 이오니아식입니다. 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은 훗날 줄리아노가 로마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을 계획할 때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줄리아노의 성 베드로 대성당 계획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브라만테의 설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따라서 브라만테의 성 베드로 대성당 평면이 미켈란젤로에 의해서 다시 취해진 것은 줄리아노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건축의 중심이 브라만테 이후로 피렌체에서 로마로 옮겨졌다고 하지만, 그런 흐름 안에서도 줄리아노 다 상갈로는 르네상스의 뿌리가 여전히 피렌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고, 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20면

[글로벌칼럼] 기대되는 새 교황의 주교 선출 과정 개혁

여름의 열기가 더해지고 교황청의 일상이 한층 느슨해진 가운데, 중요한 직책 하나가 두 달째 공석이다. 바로 교황청 주교부 장관직이다. 레오 14세 교황이 선출 전 마지막으로 맡았던 자리다. 레오 14세 교황이 누구를 새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하느냐에 따라, 새 교황 아래에서 교회의 리더십이 어떻게 재편될지 가늠할 수 있다. 또한, 그 인선은 교황이 주교 선출 절차에서 어떤 개혁을 시도할지를 드러내며, 새 장관은 그 개혁을 실현할 실무자가 될 것이다. 레오 14세 교황의 과거 행보는 그의 개혁 방향에 대한 몇 가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2023년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을 당시, 한 인터뷰에서 “평신도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부서 내에서 이에 대해 흥미로운 논의를 나눴고, 앞으로는 점점 더 개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수도자나 평신도의 의견을 더 많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현재 주교 임명 절차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된다. 교황대사가 후보자 명단을 작성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평신도의 의견을 참조할 수는 있으나, 이는 법적 의무는 아니다. 이러한 절차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부 개혁을 시도했다. 대표적인 변화는 1978년 이후 처음으로 개정된 비밀 설문지이다. 교황대사가 후보자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 위해 활용하는 이 설문지에는 ‘여성과 미성년자 관련 스캔들 연루 여부’에 대한 항목이 추가되었다. 또한 2022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성 세 명을 주교부 위원으로 임명했다. 이 중 두 명은 수녀, 한 명은 평신도 여성으로, 프레보스트 추기경(현 레오 14세 교황)은 이들과 협업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그와의 협력이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2024년 초,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세계주교시노드 회기 사이에 두 개의 시노드 연구 그룹에 소속되었다. ‘그룹 6’은 주교·수도자·교회 단체 간 관계를 다룬 문서의 선교적·시노드적 개정에 집중했고, ‘그룹 7’은 주교 선출 기준, 사법 기능, 사도좌 방문 방식 등 주교직의 본질적 과제를 연구했다. 특히 ‘그룹 7’은 2024년 시노드에서 주교 선출 절차의 투명성 강화, 지역 교회와의 연계 확대, 평신도 의견 반영 확대 등을 골자로 한 개혁 권고안을 발표했다. 2023년 시노드 이후에는 시노달리타스를 교회법에 반영하기 위한 위원회도 발족되었다. 이 위원회는 오는 가을 교황에게 권고안을 제출할 예정이며, 주교의 권한 조정과 평신도와의 책임 공유 확대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교회법 박사 학위를 보유한 레오 14세 교황이 이 권고안을 수용할지가 주목된다. 개혁의 방향과 효과는 결국 주교 인사를 통해 드러난다. 즉위 두 달도 되지 않은 레오 14세는 이미 40명 이상의 주교 인사를 단행했다. 이들 중에는 새로 임명된 인물도 있고, 기존 주교의 이동도 포함되어 있다. 다만 대부분은 프란치스코 교황 시절에 이미 승인된 인사들이다. 현재까지 레오 14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사 원칙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역 신자들과 긴밀히 연결된, 이른바 ‘양 냄새 나는 목자’를 선호했다. 시노드 제2회기에서 프레보스트 추기경과 함께 일한 한 인사는 “전 세계 주교 절반은 실질적인 교구가 없는 교황청 관료나 교황대사”라며, “교황대사가 반드시 주교가 될 필요는 없다”는 그의 견해를 전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일치’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으며, 이념 성향이 강한 인물을 기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정치적 발언을 전면적으로 막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 주교들에게 이민자 보호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또한 레오 14세 교황은 주교 간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시노드에서 여러 주교가 업무 과중, 탈진, 고립감 등을 호소하며 요청한 내용이기도 하다.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추기경단과 함께한 첫 미사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저를 부르시어 이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셨고, 그 사명으로 축복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함께 걸어가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친구로서, 복음을 선포하는 신앙 공동체로 함께 나아갈 것입니다.” 글 _ 콜린 둘레 미국 예수회의 ‘아메리카’지 편집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가톨릭교회와 교황청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CNS, AP 등에서 근무했으며, 전 세계 다양한 언론에 기고하고 있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6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기절초풍한 무덤 경비병들

교황청에 가면 중세 복장을 한 근위병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교황청을 수비하는 공식 경비대로, 바로 ‘스위스 근위대’이다. 14세기 이후부터 교황청의 경호를 맡아온 이들은, 1505년 개혁 정책을 추진하던 중 신변에 위협을 느낀 율리오 2세 교황에 의해 창설되었다. 당시 교황은 이들에게 ‘교회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특별한 임무를 맡겼다. 스위스 근위대는 클레멘스 7세 교황 재위 시기인 1527년 5월 6일,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보낸 군대가 로마를 침공하고 약탈을 벌이자, 다른 용병들은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러나 스위스 근위대는 수적으로 크게 열세임에도 끝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다.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피신하던 당시, 500명의 근위병 중 겨우 42명만이 살아남았다. 교황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조국 스위스로 돌아갈 것을 권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교황의 안전을 먼저 당부한 뒤 모두 장렬히 전사했다. 이들의 희생 덕분에 클레멘스 7세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약 800미터 떨어진 ‘천사의 성’(Castel Sant’Angelo)으로 무사히 피신할 수 있었다. 이처럼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한 스위스 근위병들의 용맹함으로 인해 이후로도 스위스 병사들이 교황청 근위대로 계속 기용되는 전통이 이어졌다. 한편, 복음서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경비병 이야기가 등장한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신 다음 날,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총독 빌라도에게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저 사기꾼이 살아 있을 때 ‘나는 사흘 만에 되살아날 것이다’라고 한 것을 저희는 기억합니다. 그러니 셋째 날까지 무덤을 지키도록 명령해 주십시오.” 이에 빌라도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당신들에게 경비병들이 있지 않소? 가서 알아서 지키시오.” 그들은 경비병을 배치해 예수님의 무덤을 사흘 동안 지키게 했고, 무덤 입구는 큰 돌로 막았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을 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하늘에서 번개처럼 빛나고 눈처럼 흰 옷을 입은 주님의 천사가 내려와 무덤 입구의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다. 천사는 여자들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여기에 계시지 않다. 말씀하신 대로 되살아나셨다.” 이 광경을 지켜본 경비병들은 급히 시내로 들어가 모든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자 수석 사제들은 경비병들에게 많은 돈을 주며 이렇게 지시했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 시체를 훔쳐 갔다고 하시오.”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속담처럼 이 이야기는 유다인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나갔다. 결국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의 이야기는 초대교회에서도 다른 부활 이야기들과 함께 널리 알려졌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역사(役事)는 참으로 신비롭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18면

드브레드 주교가 구한말 남긴 편지…「드브레드 주교 서한집」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가 ‘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 자료 총서’ 서한집 세 번째로 「드브레드 주교 서한집」을 간행했다. 서한집에는 파리 외방 전교회 드브레드(Émile Alexandre Joseph Devred, 한국명 유세준(劉世俊), 1877~1926) 주교의 신부 시절 서한, 부주교로 임명된 이후의 서한과 관련 문서 등 총 164건이 수록돼 있다. 드브레드 주교가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로 한국교회에 파견될 때부터 선종하기까지 쓴 여러 서한은 물론, 연례 보고서, 주교 축성식 팸플릿, 소포 수령증, 전보, 사망증명서, 선종 추도사 등 다양한 문서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드브레드 주교의 연보와 함께 전남대학교 사학과 윤선자(도미니카) 명예교수의 해제와 주석을 실어 당시 시대와 교회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조한건 신부는 간행사에서 “이 서한집을 통해 당시의 교회 모습을 좀 더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다소 잊혀 있던 드브레드 주교의 활약상이 더 자세히 드러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드브레드 주교는 1899년 9월 23일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사제품을 받고 같은 해 11월 15일 한국 파견 선교사로 임명됐다. 1900년 5월 13일 원주본당(현 원주교구 주교좌원동본당) 주임으로 부임했다. 1906년 8월 8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임명됐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징집명령을 받고 1914년 8월 9일 프랑스로 귀국해 참전했다. 이후 1919년 10월 15일 용산 신학교에 복귀했다. 1920년 8월 20일 계승권을 가진 조선대목구 부교구장으로 임명됐으며, 1926년 1월 17일 점심 식사 후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져 그 이튿날 선종했고, 1월 21일 서울 용산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15면

美 텍사스주, 기록적 폭우…‘피해자 위한 기도 요청’

[외신종합] 미국 텍사스주 커빌 지역에 7월 4일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다수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하자 샌안토니오대교구는 4일 홍수 피해자들을 위한 기도를 요청했다. 샌안토니오대교구는 발표문에서 “특히 홍수로 인한 사망자와 실종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샌안토니오대교구의 기관, 단체들이 구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비롯해 다수의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돕고자 많은 이들이 자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스도인 소녀들이 참여한 여름 캠프도 홍수 피해를 입어 최소 20명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과달루페강 강가에서 진행되던 여름 캠프는 밤사이에 250mm가 넘는 비가 쏟아지면서 해산됐다. 4일 오전에 내린 폭우로 과달루페강은 45분 사이에 수위가 9m가량 높아졌다. 샌안토니오대교구는 발표문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어난 수위로 피해를 입었는지 알 수 없다”며 “홍수 피해자들이 회복할 새로운 힘을 찾는 데는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만큼, 유례없는 재앙 앞에서 피해자들과 함께하겠다는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샌안토니오대교구장 구스타보 가르시아 실러 대주교는 5일 홍수 피해자 가족을 위한 봉사자들과 만난 뒤 “이 재난은 단지 샌안토니오대교구만의 일이 아니다”라며 “이런 비극을 접했을 때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고 요청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6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자들과 삼종기도를 바친 후 “사랑하는 가족, 특히 미국 텍사스주 과달루페강에서 여름 캠프에 참여했던 딸을 잃은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말했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7면

[독자마당] 비로소 알게 된 ‘말씀의 맛’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손상희 베드로 수녀님의 말씀에 자극을 받고 성경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지금껏 성경을 제대로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참 어이없는 신자다. 수녀님 말씀을 못 들었다면 성경 공부에 열중하는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다. 복음을 안내하고 성경 공부를 권유하는 한 사람의 역할이 나에게 미치기까지 수고하신 많은 분의 노고를 귀하게 받아들인다. ‘성서 그룹공부’를 하고 있다. 말씀 봉사자와 그룹원 합하여 8명이다.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 공부할 내 믿음의 이웃이다. 몇 번 모임을 했는데 한 번도 8명 모두 모인 적은 없다. 이 사람 저 사람 번갈아 가며 빠진다. 그날 누가 빠지면 그 사람을 생각한다. 왜 빠졌을까? 그냥 궁금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짧게 기도한다. 안 좋은 일이 없기를! 다음 주엔 함께 공부할 수 있기를!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부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 혼자만 잘 사는 것보다 나도 잘살고 너도 잘살고 이웃과 함께 우리 모두 잘살면 그게 좋은 세상이지! 재물 나눔, 재능 나눔뿐 아니라 말씀 나눔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나누어 먹듯이 영혼의 양식인 성경 말씀이나 묵상도 나누면 미처 알지 못했던 것도 깨닫게 되고, 내가 겪어보지 않았던 다른 사람의 경험도 귀 기울여 듣다 보면 감동과 은혜가 더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성경 말씀을 반복해서 함께 읽고 묵상을 나눌 때 언제 어떤 사람이 이야기하는 말씀 한 구절, 묵상 한 마디가 내 가슴을 ‘쿵’ 하고 울릴지 모른다. 성경 공부하러 갈 때마다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감동과 기쁨이 넘치는 말씀과 묵상을 만나게 해주십사 기도한다. 아울러 지금의 배움과 묵상이 나중에 이웃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공부에 열중하고, 신앙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신앙의 열매를 맺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저 기계적으로 겨우 주일미사만 참례하던 지난날의 소극적인 신앙생활을 자주 돌아본다. 나는 내가 이웃을 예수님께 인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친구가 몇 있다. 그 믿지 않는 친구를 믿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해 못 한 것을 친구에게 잘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고 차분히 묵상하는 생활에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어 스스로 뿌듯하고 행복하다. 틈날 때마다 성경을 필사해서 마태오 복음을 끝내고 나니,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성경 전체를 다 필사할 날이 오겠지 하며, 벌써 설렌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어느 때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깨달음을 얻었고, 또 어느 때는 고통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느님의 섭리에 감탄하기도 하였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배우고 경험했던 일들이 성경 이해에 의외로 종종 도움이 되어 놀라기도 하였다. 어쩌면 청년일 때 성경 공부를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노년에 시작한 공부도 아직 늦지 않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더 잘 이해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이대로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믿을 만한(?) 신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글 _ 배정수 프란치스코(서울대교구 답십리본당)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22면

천주교 등 3대 종교, SPC 삼립 산재사망사고 49재 추모기도

천주교 등 3대 종교가 경기도 시흥 SPC 시화공장에서 5월 19일 발생한 사고로 사망한 50대 여성 노동자의 영원한 안식을 기리고, SPC 본사를 직접 찾아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위원장 김시몬 시몬 신부)와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와사회위원회 등 종교 성직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7월 5일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SPC삼립 산재사망사고 49재 추모기도’를 개최했다. 추도식은 3대 종교 추모사와 추모 발언 등으로 진행됐다. 3대 종교는 각자의 방식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고, 수사기관의 철저한 수사와 정부 당국의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김시몬 신부는 추모 발언에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때 세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할 것”이라며 “노동자들이 죽음의 두려움에 떨면서 일하거나,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무 사고 없이 지나가길 바라며 사는 삶이 아니라 일에 보람을 느끼고 퇴근 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모여 일상을 공유하는 삶이 꿈이 아닌 현실로 이뤄지길 함께 힘을 모으자”고 제안했다. 성직자들은 SPC 허영인 회장 사퇴와 수사기관의 책임자 엄중 처벌, 고용노동부의 수사와 송치 관련 상황 공개, SPC 삼립의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등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정부를 향해서도 “안전한 일터와 책임경영을 기업들이 실천하도록 중대재해처벌법을 보완하는 입법 계획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SPC 시화공장 사망사고에 대해 3대 종교가 목소리를 높인 것은 5월 27일 이후 두 번째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4면

악의 평범성

‘자기결정권’(헌법 제10조) 행사는커녕 기초 의사소통도 어려운 중증 발달장애인들 편에서 강제 탈시설에 반대해 온 가톨릭 사회복지계에 상처를 준 사건이 석달 전 있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4월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애도 기간에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 종탑을 무단 점거하고 탈시설 주장 플래카드를 내걸며 농성과 집회를 벌였다. 한 수도권 교구 주교좌성당에도 허락 없이 들어가 교황 빈소의 영정을 배경으로 플래카드를 내걸고, 조문 온 신자들에게 ‘성부와 성령의 이름으로 투쟁’이라는 공격적 언사도 했다. 6월 30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장애인거주시설 혁신방안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중교 신부(야고보·수원교구 중증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둘다섯해누리’ 시설장)는 이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으로 해석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계 독일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분석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개개인으로 보면 상식과 대화가 통하던 인간이 집단화하자,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비합리적 수단도 동원하고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개개인은 선량할 시민들이 집단 논리에 매몰돼 ‘대수롭지 않게’(Banal) 이행한 이해타산 때문에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이 실제로 피해를 봤다. 2022년 1월부터 탈시설 시범 사업이 진행되며, 장애인 당사자 중 3개월 만에 욕창 패혈증으로 사망하거나 2주 만에 장폐색으로 죽는 일이 속출했다. 그래서 기원하게 된다. 우리 모두 집단 헤게모니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맺으며 더 큰 참극을 막을 수 있기를.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23면

바보의나눔, ‘기부금 필요한 소규모 단체’ 신청 받는다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이사장 구요비 욥 주교)이 외부 지원을 받기 어려운 국내외 소규모 단체의 지속 가능한 활동을 돕기 위해 나선다. ‘2026년 공모배분사업’은 기부자들의 기부로 조성된 기금을 소외계층과 도움이 필요한 단체에게 지원하는 사업으로, 7월 1일부터 31일까지 바보의나눔 홈페이지(www.babo.or.kr)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2026년 사업 신청 분야는 총 11가지다. ▲해외 지역공동체개발사업 ▲소규모 단체 단년·다년·특화·기능보강 지원사업 ▲이주민 지원사업 ▲청소년 함께 지원사업 ▲재단 비전과 가치 활성화 지원사업 ▲‘밥이 되어주세요’ 지원사업 등 기존 9개 분야에 더해 ▲‘우리 공동의 집 지구를 지켜요’와 ▲‘청년에게 용기를 전해요’ 지원사업이 추가로 신설됐다. ‘우리 공동의 집 지구를 지켜요’는 기후위기와 환경 불평등, 지역 생태 보전 등 환경 이슈가 커지면서 현장의 지속적인 요청과 시의성을 반영해 새롭게 편성됐다. 환경을 독립된 분야로 분리해 지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년에게 용기를 전해요’는 경계선 지능 청년의 자립과 사회참여, 네트워크 형성 등을 지원한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적장애 기준(IQ 70)보다 높지만 비장애인의 평균 대비 낮은 지능지수에 해당해 ‘느린 학습자’로도 불린다. 전체 인구의 13%인 이들은 법적 장애 등록이 어려워 복지·교육 등 제도적 차원에서 배제돼 왔다. 공모배분사업 관련 자세한 내용은 바보의나눔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관련 사업설명회는 7월 9일 서울 중구 가톨릭회관 1층 대강당에서 진행된다. ※ 문의 : 02-727-2503 바보의나눔 나눔사업부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