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OSV] 레오 14세 교황은 선종 1주기를 앞둔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리며 “혼란한 세상 속에서 진리를 선포한 그의 모범을 따르자”고 신자들에게 당부했다. 교황은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인 4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자들과 부활 삼종기도를 바치기에 앞서 지난해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에 선종한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을 추모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그분의 깊은 신앙과 사랑의 증언을 되새기며, 우리가 더욱 빛나는 진리의 선포자가 될 수 있도록 지혜의 옥좌이신 성모님께 함께 기도하자”고 요청한 뒤, 부활 삼종기도를 바쳤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5년 4월 21일 선종했다. 교황으로서 마지막 주님 부활 대축일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메시지를 전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날 복음 말씀을 언급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여성들의 이야기와 뇌물을 받고 부활을 부인한 경비병들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진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교황은 “이 상반된 두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의 증언과 인간 소통의 진실한 가치를 성찰하도록 초대한다”며 “오늘날 우리가 가짜 뉴스라고 부르는 거짓과 암시, 근거 없는 비난으로 인해 진리의 선포가 종종 가려진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 앞에서도 진리는 숨겨지지 않고, 살아 빛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가장 깊은 어둠까지 비춘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여성들에게 하신 말씀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황은 “주님의 파스카는 우리의 파스카이자 온 인류의 파스카이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우리에게 생명을 내어주셨다”면서 “항상 현존하시는 주님께서 과거를 파괴적인 종말에서 해방시키듯, 부활 선포는 우리의 미래를 무덤에서 구원한다”고 밝혔다. 또한 “역사를 타락시키고 양심을 혼란스럽게 하는 악에 의해 억압받는 이들, 특히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 신앙 때문에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어린이들에게 복음은 전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복음의 가치를 다시 언급하면서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선포하는 것은 폭력으로 짓눌린 희망에 새로운 목소리를 부여하게 되고, 복음은 선포되는 곳마다 모든 시대의 모든 어둠을 밝게 비춘다”고 말했다. 부활 삼종기도를 마친 뒤 교황은 “부활 팔일 축제 기간 기쁨과 신앙 안에서 이 시기를 보내면서 온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계속해 달라”고 당부했다.
신서이(젬마) 작가가 4월 10일부터 15일까지 제주 서귀포예술의전당 1~3전시실에서 개인전 ‘선과 질감의 만남’을 연다. 작가는 올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을 맞아 프란치스코 영성의 핵심인 정결·청빈·순명의 복음삼덕을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작품에는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는 붉은색,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푸른색, 프란치스칸 수도복을 떠올리게 하는 갈색 계열이 사용됐다. 이를 통해 모든 수도자 안에 깃든 성모 마리아의 은총과 수도 영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그는 과거 봉쇄수도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도와 단순노동의 시간을 선과 질감, 색의 중첩으로 화면에 쌓아 올리며 수도자의 내면과 구도 여정을 담아냈다. 특히 이번 전시 작품들은 별도의 제목 없이 ‘무제’로 선보인다. 이는 관람객이 자유롭게 작품을 해석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성인의 가난한 영성과 순명의 깊이를 깨닫고 다시금 기도로 정화시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반복과 누적의 노동을 통해 완성되는 단색화의 과정 자체를 수행과 비움의 여정으로 이해하며, 작품마다 교회를 떠받치는 기도의 힘과 세상을 향한 염원을 담고자 했다”고 밝혔다. 제주교구 가톨릭 미술가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작가는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2020년 대한민국 회화대상전 입상, 2021년 한국새늘미술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휴관일 없음.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돔 아래 작은 경당 하나가 마치 특별한 보석처럼, 동시에 겸손한 여인처럼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로 포르치운콜라(Porziuncola) 경당입니다. 이 경당은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입니다. 프란치스코와 초기 형제들이 1209년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수도회 인준 이후 공식적인 가난의 수도 생활을 시작한 곳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성모님과 함께 발현하시어 회개한 이들에게 ‘완전한 용서’, 곧 전대사를 약속하신 거룩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 경당은 프란치스코와 잘 어울리는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포르치운콜라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 포르치오네(porzione, 작은 몫)와 아그리콜라(agricola, 농사 또는 농부)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즉 ‘작은 몫의 땅’, 다시 말해 매우 작은 장소를 의미합니다. 6세기경부터 존재했던 이 경당은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역 수바시오 산(Monte Subasio)에 위치한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 소유였습니다. 이곳은 수도원 농장에서 일하던 수사들과 사람들이 기도 시간에 사용하던 장소였습니다.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이 이곳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하려 하자,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이를 무상으로 내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이 작은 경당마저 소유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해마다 한 번 물고기 한 바구니를 바치며 이곳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경당 전면 벽에는 세 차례에 걸쳐 복원된 벽화가 있었으나, 현재 작품은 1829년 독일 화가 요한 프리드리히 오버벡(Johann Friedrich Overbeck)이 다시 그린 것입니다. 이 벽화는 성모님의 전구로 포르치운콜라의 완전한 용서를 예수님께 받는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포르치운콜라는 1206년 프란치스코가 성 다미아노 성당과 아시시 지역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을 수리한 뒤, 1208년 세 번째로 수리한 경당입니다. 그래서 경당 내부의 벽돌에는 성인의 손길을 느끼고자 했던 많은 순례자의 손길이 더해졌고, 그 거친 표면은 사라져 하느님의 사랑처럼 부드럽게 남아 있습니다. 1209년 마티아 사도 축일에 들은 복음 말씀(루카 9,1-6 참조)으로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프란치스코는 설교를 시작했고, 더 많은 형제를 받아들이며 세상 곳곳에 파견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은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돗자리 총회를 통해 자신들이 한 일들을 나누었습니다. 포르치운콜라는 프란치스코 형제들에게 영적인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1216년 프란치스코는 이곳 인근에서 장미의 기적을 체험한 뒤, 포르치운콜라 경당에서 기도 중 환시를 통해 예수님과 성모님을 뵙고, 성모님을 통해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한 전대사를 청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전구를 받아들여 그 청을 허락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예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이 전대사는 그전까지 교회 안에서 시행되던 전대사와는 크게 달랐습니다. 그 당시 전대사가 일정한 조건과 대가를 요구했다면, 그것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조건적이고 금전적 대가가 필요한 전대사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예수님께, 죄를 회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전대사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아시시의 용서’는 은총이라는 말의 뜻처럼,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주시는 아무런 대가 없는 선물입니다. 여기서 프란치스코의 위대함이 나타납니다. 정확히 300년 후인 1517년 마르틴 루터도 프란치스코처럼 돈을 치러야 하는 교회의 전대사를 반박했고 교회를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분열이라는 두 갈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나 마르틴 루터 모두 교회의 세속화를 경고하며 개혁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사람의 개혁 즉 ‘회개’를 외쳤고, 마르틴 루터는 교회의 개혁 즉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대가로 이루어지는 전대사를 둘 다 배격했지만, 프란치스코는 전대사가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주시는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마르틴 루터는 교회가 만들어낸 장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로 인해 한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라고 생각하여 순명하며, 가난이 하느님의 벌이 아니라 ‘하느님의 본성인 사랑을 찾는 최고의 선’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하느님 없는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에 대한 불만으로, 하느님을 가르고 사람을 가르는 일을 벌였습니다. 그러기에 마르틴 루터의 개혁은 고쳐 세운 것이 아니라 ‘분열’이었습니다. 진정한 종교개혁이 무엇이고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프란치스코는 이곳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수원교구 2대 교구장 김남수(안젤로) 주교는 “수도자야말로 교회의 뼈대인 성직자를 보완하고 둘러싼 살(근육)이므로, 교회가 건강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뼈대인 성직자와 살인 수도자가 많아야 한다”며 “교회 발전의 가능성은 건전한 수도회가 얼마만큼 존재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김남수 주교 사제서품 50주년 기념 회고록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중) 이에 따라 교구는 전교와 사회 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해외 수도회 영입과 교구 수도회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수도자 양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교구 진출 수도회 증가는 사회복음화가 확산되는 자양분이 됐다. 지역의 사회복지 토대를 일군 교구의 역사를 살펴본다. 1970년대 이후 수도회 진출 확대, 사회복음화 토대 다져 1970~1980년대 경제 성장과 인구 집중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은 도시화가 크게 진전됐지만 이와 동시에 빈부 격차로 도시빈민과 소외계층도 증가했다. 이 시기 농촌 교구에서 도농 복합 교구로 변화하고 있던 교구는 선교사업과 함께 복지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인적·물적 자원의 부족으로 교구 차원에서 사회복지 사업에 힘을 기울이지 못했고 대신 복지관이나 수도회를 교구에 유치하거나 정착시키는 노력에 관심을 기울였다. 교구에 수도회가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1972년 노틀담 수녀회를 시작으로 미야사끼 까리따스 수녀회(현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미리내 천주 성삼 성직 수도회,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현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서울수녀원), 성 원선시오의 애덕 자매회(현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 등이 교구에 진출해 교육사업, 의료사업, 사회복지사업을 전개했다. 1980년대 후반에도 많은 수녀회가 교구에 자리를 잡았다. 이 중 1985년에 교구에 진출한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는 1990년 수녀원과 양로원 ‘평화의 모후원’을 준공했다. 천사의 모후 수녀회는 교구 초청으로 한국에 진출해 1991년 한국 분원을 수원 율전동에 설립하고 소외된 노인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1989년 교구에 진출한 예수 마리아 성심 전교 수녀회도 1996년 경기도 화성 향남읍에 본원을 세우고 성심어린이집을 개원해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성 안드레아 수녀회는 교구에서 설립된 수도회다. 1988년 정음전(마리안나), 김화숙(율리안나), 김정희(젤마나) 씨는 낙태를 예방하고 미혼모를 돕고자 새싹의 집을 열었다. 생명수호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김남수 주교는 이들의 뜻에 공감하고 1991년 11월 수도 공동체 설립을 인가했다. 경기도 안성에 본원을 둔 성 안드레아 수녀회는 현재 경기도 군포에 한부모 가정 양육시설 새싹들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서는 남자 수도회의 진출이 활발했다. 1992년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는 성남에 자리를 잡고 도시빈민 사목을 전개했다. 1998년에는 노숙인급식소 ‘안나의집’을 열고 현재까지 노숙인들에게 무료 급식과 자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1994년 교구에 진출한 예수의 작은 형제회도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 자리를 잡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사목을 펼치고 있다. 교구의 수도회는 1974년 7개 수녀회, 2개 수도회에서 1997년 33개 수녀회, 14개 수도회로 크게 확대됐다. 1997년 당시 수도자 수는 수사 58명, 수녀 766명이었다. 1994년 사회복지회 설립…지역의 소외된 이와 동행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구는 사회사목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사회복지법인인 수원교구 사회복지회를 설립하고 1994년 5월 10일 경기도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이를 토대로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이 교구 관할 지역에서 전개됐다. 특히 교구 관할 지역사회에는 의탁할 데 없는 노인들을 보호하는 양로시설이 필요했는데 수도회나 개인, 본당, 단체들이 노인복지 사업을 맡아 운영했다.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 ‘평화의 모후원’,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글라라의 집’,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성녀 루이제의 집’, 천사의 모후 수녀회 ‘아녜스의 집’ 등이 설립돼 현재까지 노인복지 활동에 힘쓰고 있다. 개인이나 본당에서 시작한 시설 중에는 복지법인으로 발전하거나 교구·수도회에 이관된 경우도 있었다. 복지사업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1989년 서종선(토마스) 신부가 무의탁 노인 보호를 위해 설립한 ‘애덕가정’은 1992년 천주의 섭리 수녀회가 인수해 노인 주거 복지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1991년 제1대리구 사강본당에서 시작한 양로시설 ‘사강 보금자리’는 교구 사회복지회로 이관돼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당시 도척본당 주임 방구들장(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사랑의 씨튼 수녀회 수녀들과 함께 무의탁 노인 보호사업을 시작했다. 1994년 4월에는 사회복지재단 오로지종합복지관을 만들었고 그해 11월 양로원 ‘작은 안나의 집’을 건립했다. 장애인 복지시설도 확충됐다. 인보 성체 수도회는 1990년 사회복지법인 천주교인보회를 설립하고 노인과 장애인 복지사업을 추진했다. 1991년부터 경기도 용인시 포곡읍에 시설을 마련했고, 1994년 중증장애인을 위한 요양시설인 ‘요한의 집’을 개원했다. 또한 교구 사회복지회는 중증장애인의 직업 자활을 위해 1994년 3월 수원 원천동에 ‘복지 개미사업’을 설립했다. 이후 ‘해피해누리작업장’으로 이름을 바꿔 장애인의 자립을 돕고 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도 1997년 3월 ‘해동일터’를 열고 장애인이 직업을 갖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친구 라자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셨고 그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셨다. 이 복음을 읽을 때 나는 다시 자유롭게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된 라자로의 심경을 상상해 본다. 우리는 세상 모든 것과의 자유로운 만남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숨 쉴 때마다 느껴지는 공기, 내 육체의 감각, 자연과 인간관계들, 귀를 통해 들려오는 온갖 소리와 코를 통해 느껴지는 다양한 내음 등….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자유롭다는 것을 만남을 통해 확인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반면 억압되어 있거나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들을 발견할 때는 두려움과 슬픔의 감정을 느끼고 죽음을 연상한다. 아무런 만남이 없거나 아무런 새로움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는 아마도 가장 큰 공포일 것이다. 이주 노동자들을 만나면 그들이 너무도 만남을 좋아하고 즐기는 모습에 놀라게 된다. 고된 작업과 노동으로 지친 와중에도 휴식의 시간을 갖게 되면, 그들은 항상 서로 모인다. 그들의 숙소나 편의점이 주된 만남의 장소이다. 공단 주변의 편의점에서는 밤늦게 소주를 쌓아놓고 마시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일에 이주민을 위한 미사가 끝난 후에도 그들은 성당을 바로 떠나지 않고 꼭 모여 음식을 나누며 시끌벅적한 만남의 시간을 즐긴다. 휴일이면 만남을 피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TV와 컴퓨터와 배달 음식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요즘 우리 사회의 풍조와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나도 휴일에는 딱히 만남의 기회를 바라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모습은 마치 돌무덤 속 라자로의 모습과도 같다. 어느 때부터인지 몰라도 우리는 스스로 몸을 감싸고 돌무덤 안에 들어가 죽음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만남과 친교가 더 이상 우리 삶에 기쁨과 활력이 아니라 피하고 싶은 일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혼자 보내는 시간이 우리에게 점점 익숙해지는 삶의 방식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비록 그 삶의 방식이 아직은 그다지 쓸쓸하고 외롭지 않을지 몰라도, 이주민들의 친교와 만남의 모습을 볼 때면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 이주사목위원회를 방문한 경찰관 한 분이 이런 말씀하셨다. “저희 업무는 그들이 우리 사회 안에서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계도하고 도움을 주는 역할이지, 체류 비자와 관련하여 단속하는 업무가 주가 아닌데 이주노동자들은 서로 모여 대화하다가도 저희가 출동하는 모습만 보면 흩어져 달아나곤 합니다. 그들이 오해하지 않고 저희를 편안히 대할 수 있도록 신부님께서 이야기해 주세요.” 타국 땅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주민들의 삶은 때로는 불안에 의해 자유로움이 억압되기도 한다. 그런 이주민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로 그 불안과 걱정을 덜어주고 싶은 경찰관의 마음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부활을 맞이하면서, 이주민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어떠한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고 함께 자유롭게 걸어가는 삶을 희망해본다. 글 _ 이상협 그레고리오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모든 신자는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에 일치해 그분과 함께 묻혔다가 함께 부활합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삶의 정점이 성찬례, 곧 성체성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교회는 주로 주님 부활을 기념하는 파스카 성야에 세례성사를 거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린이의 경우 세례를 받았더라도 10세 무렵 첫영성체를 하기 전까지는 성체를 모실 수 없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신비를 제 능력대로 이해하고 주의 몸을 신앙과 신심으로 영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인식과 정성된 준비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교회법」 제913조 1) 신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큼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유아세례를 받고 주일학교를 꾸준히 다니면 자연스럽게 첫영성체도 받을 수 있는데요.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주일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성인이 된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분들이 다시 성당에 오셔서 미사에 참례하셨다면 성체를 모실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별도의 준비와 예식 없이는 성체를 모실 수 없습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는데,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유아세례는 온전한 세례가 아니라는 걸까요? 당연하게도 유아세례는 온전한 세례입니다.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요. 죽을 위험에 처한 분이 대세(代洗)를 받은 후 회복돼 신앙생활을 하게 됐거나, 다른 그리스도교에서 적법한 방식으로 세례를 받고 가톨릭교회로 온 경우입니다. 모두 온전한 세례지만, 곧바로 성체를 모실 수는 없습니다. 이분들은 예비 신자들처럼 일정 기간 교리 교육을 받으며, 신자 공동체와 친교를 나누고, 전례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첫 고해성사를 하고, 대세를 받은 분의 경우 보충 예식(보례)을, 다른 그리스도교의 경우 일치 예식을 하면 성체를 모실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유아 세례만 받은 어른들도 이 기간이 필요한데요. 교회는 이를 “정화와 조명의 기간”이라고 말합니다.(「어른 입교 예식」 21항)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회개하는 ‘정화’와 신앙의 빛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 인간이 되는 ‘조명’을 위해 필요한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 성체를 모실 준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단 첫영성체에만 ‘정화와 조명’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교회는 성체성사라는 “이 초대에 응하기 위해서, 이 위대하고도 거룩한 순간을 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385항) 바오로 사도도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된다”면서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1코린 27-28 참조)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성체 앞에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한 번쯤 돌아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주님 안에서 평화를 빕니다~. 주님 안에서 평화를 나눕니다~.” 서울 독립문 인근에 자리한 서울대교구 무악동 선교본당(주임 남해윤 요셉 신부, 예수회) 한옥 성당. 휘모리장단과 전통 악기 선율에 맞춰 국악 성가의 가락이 은은히 흘러나온다. 본당은 주님 부활 대축일인 4월 5일 가톨릭 우리맥소리 국악성가단(이하 국악성가단)을 중심으로 전례와 성가를 국악으로 봉헌하는 ‘국악 정기 미사’를 처음으로 거행했다. 이번 국악 정기 미사는 본당에서 매월 한 번 국악 미사를 봉헌해 온 국악 미사를 넘어, 앞으로 매 주일미사를 국악 전례로 봉헌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국악성가단 홍상진(시몬) 단장은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는 국악 전례 미사가 정기적으로 봉헌되는 사례가 드물고, 대부분 특별 행사나 기념 미사에 한해 이뤄지고 있다”며 “국악 정기 미사는 국악을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국악인들이 전례의 주체로 참여해 우리 전통 음악으로 미사를 봉헌한다는 점에서 뜻깊다”고 전했다. 국악성가단은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에 등록되기 전인 2002년 3월부터 여러 본당과 성지 등에 초청돼 합창제, 독주 등 여러 방식으로 활동해 왔다. 또한 성경 구절을 바탕으로 장단과 가락에 맞춰 직접 작사·작곡한 곡을 모은 「가톨릭 국악성가」 를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현재 가야금, 해금, 아쟁, 장구, 대금 등 다양한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와 소리꾼 등 20여 명의 국악인이 함께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의 생애를 그린 성극 ‘광암 이벽’을 준비해, 의정부교구 주엽동본당 설립 31주년 기념 행사에서 무대에 올렸다. 물론 국악성가단의 활동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년 넘게 본당과 성지 등을 찾아다니며 국악 미사를 봉헌해 왔지만,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활동 기반이 흔들리는 시기도 있었다. ‘국악 전례곡이 어렵다’는 인식도 넘어야 할 벽이었다. 몇 차례 존립의 위기를 겪었지만, 여러 사제와 단원의 노력으로 활동을 이어오며 오늘에 이르렀다. 아쟁 연주자 정대순(클라라) 씨는 “우리 선율과 전통 악기로 연주하는 국악 성가단이지만, 정작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설 자리가 부족한 현실이 아쉽다”며 “물론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더 많은 관심과 기회 속에서 우리 음악을 키워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국악성가단 담당사제인 남해윤 신부는 “개인적으로 학창 시절 학교와 성당에서 풍물놀이를 자주 접해 더욱 친밀하고 관심이 크다”며 “한국인에게는 전통 가락인 국악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이자 리듬인 만큼, 많은 신자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악의 멋을 더 많은 이와 나누고 함께할 수 있도록, 매 주일 오후 6시 미사에 함께해 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무료 자선병원 요셉의원이 고(故) 선우경식(요셉) 초대 원장의 18주기(4월 18일)를 맞아 가난한 이들에 대한 그의 애덕을 기리는 음악회와 심포지엄을 마련했다. 요셉나눔재단 요셉의원은 4월 13일 오후 7시30분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선우경식 선종 18주기 추모 및 감사음악회’를, 16일 오후 1시30분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의사 선우경식 선종 18주기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심포지엄은 “가난한 환자는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고백했던 선우 원장의 삶과 영성을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하며,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그를 닮아 살아갈 것인지 나누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김승애 수녀(프란치스카·미리내 성 요셉 애덕 수녀회), 김평만 신부(유스티노·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최현순 교수(데레사·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김선필 교수(베드로·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가 발표자로 나서 마태오복음에 드러난 성 요셉의 영성을 따라 가톨릭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의료 사각지대 소외된 이웃을 돌본 선우 원장에 대해 발표한다. 음악회는 선우 원장을 추모하는 의미와 함께 그와 한뜻으로 무료 봉사를 이어온 의료진과 봉사자, 6000여 명 정기 후원자를 향한 감사의 의미를 담았다. 소프라노 송광선(안젤라)·구은경(루치아) 씨, 테너 강훈(시몬) 씨, 바리톤 김정석(요한) 씨 등 공연단이 4부로 구성된 무대를 펼친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내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선우 원장은 1987년 8월 요셉의원 개원 이래 유일한 상근의사로서 2008년 4월 18일 63세 나이로 선종하기까지, 노숙·행려병자, 쪽방촌 주민 등 의료 사각지대 이웃들을 위해 21년을 헌신했다. 가난한 환자들의 병을 넘어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고, 동등한 사회인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자립·자활까지 지원했던 그는 경제·사회적 격차를 극복한 인간애를 실천한 ‘쪽방촌의 성자’로서 모든 의료·신앙인의 모범으로 존경받고 있다. ※문의 02-2634-1760 요셉나눔재단 요셉영성센터
‘왜 대화해야 하는가’를 명쾌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방송과 언론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저자 류지현(안나) 씨는, ‘말하기’를 단순한 화술이나 스킬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을 주고받는 태도의 문제로 바라본다. 대화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조율해 가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좋은 대화란 말을 잘하는 기술 이전에 듣는 자세와 반응하는 태도, 표현의 균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책은 마음을 여는 대화법, 유능하게 보이는 대화법, 신뢰감을 주는 대화법, 상대와 자신의 가치를 함께 높이는 대화법 등 네 가지 주제로 전개된다. 직장 내 보고와 회의, 강연과 인터뷰는 물론 일상적인 대화와 관계 회복의 장면까지 폭넓게 다룬다. 각 장 끄트머리에는 저자가 현장에서 직접 체득한 실천 팁도 간결하게 정리했다.
베트남 이주노동자 응웬 티 배(마리아·35) 씨는 2021년 둘째를 임신했지만, 기쁨보다 두려움이 먼저 찾아왔다. 주기적인 하혈로 산부인과에 장기간 입원해야 했고, 의료진으로부터 “아기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포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응웬 씨는 깊은 고민과 두려움 속에서 결국 퇴원을 선택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뒤 매일 기도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요.” 그녀는 그저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르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응웬 씨의 기도가 닿았을까. 열흘쯤 지나 하혈이 멈췄고, 그해 11월 둘째 황 티엔 안(프란치스코)이 태어났다. 아이는 폐렴 등 잔병치레를 겪기도 했지만, 현재는 부모와 함께 지내며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응웬 씨는 지난해 3월부터 심한 복부 통증을 겪기 시작했고 여러 병원을 찾은 끝에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주민 가정이 감당하기에는 병원비 부담이 컸다. 당장 수술을 결정하지 못한 채 동네 병원을 전전하며 약물 치료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통증이 더욱 악화되자 대학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았고, 수술을 미루면 췌장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응웬 씨는 올해 1월 담도와 쓸개 제거 수술을 받았고, 이후 입원 치료까지 이어졌다. 수술과 치료에 들어간 비용은 약 3200만 원. 하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인 추적 관찰과 외래 진료, 약물 치료가 필요해 의료비 부담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응웬 씨의 상황은 가족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친언니는 같은 증상을 겪다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났으며, 친오빠 역시 현재 췌장암 4기 판정받아 베트남에서 치료받고 있다. 베트남에 있는 친정어머니는 고령에도 첫째 아이 황 떠 이득(안토니오·14)을 돌보며 가족을 위해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부부는 2010년 베트남에서 결혼했고, 2015년 남편 황 응억 허우(안토니오·39) 씨가 먼저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 황 씨는 생계를 위해 일용직 노동을 이어왔고, 현재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비와 월세, 공과금, 병원비에 더해 베트남에 있는 첫째 아이의 양육비까지 감당하기에는 빠듯한 형편이다. 응웬 씨 역시 수술 이후에도 이어지는 복통 속에서, 베트남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친척의 가게 일을 도우며 조금씩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애쓰고 있다. 광주대교구 광주이주민지원센터장 황성호(미카엘) 신부는 “응웬 씨 가족은 낯선 타국에서도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가며 신앙 안에서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며 “이들이 희망과 기쁨을 잃지 않도록, 하느님의 사랑과 부활의 빛을 전할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낯선 나라에서 병과 빚, 생계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가족은 오늘도 기도하며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그리고 그 기도 속에서 다시 희망을 찾고 있다. ※성금계좌※ 우리은행 1005-302-975334 국민은행 612901-04-233394 농협 301-0192-4295-51 예금주 (재)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모금기간: 2026년 4월 8일(수) ~ 2026년 4월 28일(화) 기부금 영수증 문의 080-900-8090 가톨릭신문사 ※기부금 영수증은 입금자명으로 발행됩니다.
흐드러지게 핀 봄꽃 속에서 부활절을 맞이합니다. 볕 좋은 곳의 개나리는 벌써 노랑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려 하고 벚꽃도 활짝 피었습니다. 꽃을 연구하는 분의 말씀에 따르면 지난겨울이 예년보다 추웠기 때문에 올봄 벚꽃의 휴면 해제 시기가 빨라진 거라고 하네요. 겨울엔 겨울나무처럼 단단하게 안으로 응집하는 힘을 키우려 기도했는데, 봄이 되니 수줍게 피어나 어느 순간 화르르 주위를 밝히는 봄꽃이 되어 봅니다. ‘사는 동안 꽃처럼’은 아버지가 붓글씨 쓰시던 책상 위, 종이 뭉치 속에서 발견한 글귀입니다. 주로 한자로 붓글씨를 쓰셨기에 아버지 붓글씨 작품을 알아보려면 얇은 한문 지식으로 늘 더듬더듬 읽어야 했는데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사는 동안 꽃처럼’을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평소 엄격하고 단아한 서체를 즐겨 쓰셨는데 이 문구는 캘리그라피를 하듯 꽃처럼 날아가게 쓰셨네요. 서예대전에 출품할 목적으로 표구한 작품이 서재에 하나 걸려 있는 걸 제외하고는 아버지 쓰신 글씨는 이렇게 종이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하나 숨결처럼 쓰다듬어 봅니다. ‘사는 동안 꽃처럼’은 아버지가 처음 하신 말씀은 아니겠지만 아버지가 남기신 붓글씨 덕분에 이 봄 매일 새기며 생각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DMZ세계문학페스타’라는 행사에 참여해 여러 작가를 만났는데요. 팔레스타인의 작가 아흘람 브샤라트는 어렵게 여러 나라를 거쳐 한국에 왔습니다. 기적처럼 죽음을 건너온 사람이 환하게 꽃처럼 웃습니다. 한국으로 출발하기 며칠 전, 이웃의 가족이 명절에 입을 옷을 사러 가다가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의 총격에 살해되었다고 해요. 뉴스를 들어도 남의 일처럼 실감 나지 않던 이야기를 바로 앞에서 들으며, 도라산 전망대에서 가까운 북녘땅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절감합니다. 평화는 매일 한 걸음씩이라도 더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일임을. 사는 동안 꽃처럼. 성경에서 꽃은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하느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자주 비유되는데, 저는 마태오복음의 말씀을 자주 새깁니다.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마태 6,28) 솔로몬왕의 영광도 이 꽃보다 못하다는 말씀은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의 충만함을 느끼라는 뜻이겠지요. 하나인 세상이 분열하고 나뉘어 서로 공격하면서 전쟁의 불안이 전 세계를 덮고 있는 이때, 평소 별생각 없이 쓰던 기름이, 원재료들이 모두 유한한 자원임을, 우리가 그동안 기적처럼 서로 돕고 나누며 이어왔음을 뒤늦게 실감합니다. 이 위태로운 세상에서 아무 불안 없이 환하게 피어 있는 꽃을 바라봅니다. 부는 바람에 소리 없이 떨어질 운명을 한탄하지 않고 피어 있는 꽃. 곧 사라질 영광이 이 찰나의 시간에 기입됩니다. 오늘은 그걸로 충분합니다. 각자의 고투로 바쁘고 힘들지만, 사는 동안 꽃처럼!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과 슬픔, 하느님의 신비를 모두 간직한 꽃들이 세상을 밝히고 있는 오늘, 주님 부활하신 빛과 함께 흐르는 이 시간, 그대로 기쁘고 고맙습니다. 글 _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주교회의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신자들과의 소통을 넓히고 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공식 기구로 다소 엄숙하고 딱딱한 이미지로 여겨져 왔지만 최근 카드뉴스와 영상 콘텐츠, 참여형 이벤트 등을 통해 보다 친근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하며 눈길을 끈다. 주교회의 인스타그램(@cbck_official)은 한국교회의 다양한 뉴스와 교황 메시지, 교회 문헌, 전례 시기 등 교회 소식과 신앙 콘텐츠를 카드뉴스나 짧은 영상 형식으로 꾸준히 게시하며 신자들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교회의 공식 발표 등을 문서 원본이나 공식 발표 형태로 그대로 전달하던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핵심 내용을 간결한 문장과 이미지로 시각화해 신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주교회의의 전국위원회 위원장 주교 담화와 교황 메시지를 소개하는 카드뉴스는 대표적인 콘텐츠다. 이동 축일과 특별 주일, 기도의 날 등에 발표되는 담화와 메시지의 핵심 문장을 정리해 게시하며 교회의 가르침을 더 쉽게 전달한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내용을 가독성 있게 정리하고 신자들이 신앙생활 속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돕는 콘텐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SNS의 특성을 살린 참여형 콘텐츠도 눈에 띈다. 주교회의는 3월 3일 인스타그램 개설 1주년을 맞아 댓글 참여 이벤트를 마련했다. ‘주교회의’, ‘축복예식’, ‘매일미사’, ‘교황문헌’ 등 제시된 네 글자의 앞 단어로 사행시를 짓는 방식이었다. 신자들이 댓글로 직접 참여해 다양한 문장을 남겼고, 게시물에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며 큰 호응을 얻었다. 단순한 공지 전달을 넘어 신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SNS가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영상 콘텐츠는 주교회의 유튜브 채널(@cbck)을 통해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교회의 다양한 소식과 교회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영상이 게시되고 있으며, 특히 홍보국장 임민균(그레고리오) 신부가 직접 등장해 신앙 상식이나 교리를 재미있게 설명하는 형식의 영상은 공식 기관의 메시지를 보다 친근하게 전달한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문서 중심 홍보에서 벗어나 영상으로 설명하고 소통하려는 새로운 시도로 평가된다. 주교회의 홍보국은 주교회의에 대한 신자들의 이해를 높이고,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를 보다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영상 제작에는 홍보국 구성원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참여해 콘텐츠를 만들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교회의 가르침과 소식을 보다 친근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민균 신부는 “모든 콘텐츠는 주교회의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신자분들이 교회의 가르침과 여러 소식을 지루하지 않게 접하실 수 있도록 하는 목표로 제작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 목표가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결실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앞으로도 하느님 말씀이 한국교회의 토양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한국교회뿐 아니라 호남 지역 미술 발전에 기여한 두 작가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광주시립미술관은 본관 1·2전시실에서 4월 26일까지 ‘김재형·정승주: 찬미와 탐미’를 연다. 전시는 ‘성경’과 ‘설화’를 주제로 서로 다른 화업을 구축해 온 김재형(안토니오·1939~)·고(故) 정승주(베드로·1940~2023) 작가의 예술 세계를 선보인다. 두 작가는 인간과 공동체의 이야기가 담긴 성경과 설화를 공통 주제로 삼아 그 의미와 정서를 각자의 언어로 풀어내 왔다. 작가별로 각각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총 70여 점의 회화를 통해 시기별 작업 특징을 드러낸다. 각 작품은 이들의 예술관이 형성되고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특히 김재형 작가의 회화는 신앙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찰을 중심으로 한 관찰 기반의 사실주의 작업부터 1980년대 중반 이후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에 바탕을 둔 작품까지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성경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도상에 머무르지 않고 남도의 풍경과 정서 속에 스며들며, 화면은 묵상과 기도의 시간이 축적된 영성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정승주 작가의 작품은 조형적 가능성을 모색한 초기 작업에서 출발해, 이후 형상과 색채에 집중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설화를 매개로 인간의 감정과 관계, 삶의 장면을 탐구한 후기 작품들은 현실과 상징, 이야기와 조형이 결합된 독특한 화면을 드러낸다. 광주시립미술관 윤익 관장은 “이번 전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을 성찰하며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쌓은 두 작가의 작업을 함께 살펴보는 자리”라며 “광주 미술사 안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두 작가는 1984년 창립된 광주가톨릭미술가회의 원년 멤버로 오랜 시간 광주를 중심으로 창작 활동과 후학 양성을 이어 왔다. <성서적 풍경> 연작과 <주님의 수난> 등 성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온 김재형 작가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여러 차례 입선했고, 제9회 한국가톨릭미술상 본상을 수상했다. 이후 아시아 현대미술전과 예술진흥원 주최 초대전 등에 참여하며 활발한 국내외 전시 활동을 이어왔다. 정승주 작가는 <성모자의 축복>, <고행의 그리스도> 등 신앙을 주제로 한 작품과 함께 판화와 회화 작업을 병행하며 자신만의 예술관을 확장해 왔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을 세 차례 수상하고, 전라남도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역임하는 등 지역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2027 WYD 수원 교구대회 사무국은 4월 3일 성라자로마을 아론의 집에서 WYD 상징물과 함께하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 수난 예식을 거행했다.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 이규성(요셉) 신부 주례, 교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열린 수난 예식에는 교구 내 청년·청소년 등 150여 명이 참례했다. 지난 3월 25일 교구 순례를 시작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상징물인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인 이날 성라자로마을에 도착했다. 2027 WYD 수원 교구대회 사무국은 파스카 성삼일 중 성금요일에 젊은이들이 WYD 상징물과 기도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주님 수난 예식을 진행했다. 중학교 1학년 청소년부터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예식은 오후 8시부터 두 시간 가량 진행됐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이날, 금육과 함께 파스카 단식을 한 참례자들은 말씀 전례와 십자가 경배, 영성체로 이어지는 주님 수난 예식에 참여했다. 먼저 WYD 공식 기도문 낭독 후 청년 성가대가 를 연주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사랑 표징인 3.8m 높이의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가 청년들에 의해 제단 앞으로 옮겨졌다. 참례자들은 말씀 전례와 십자가 경배를 통해 주님의 고통과 죽음을 깊이 묵상했다. 아울러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수난기 봉독 후 이규성 신부는 강론에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죄 없는 분이 우리 인간을 위해 죄인이 되셔서 수난하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면서 “십자가는 단순히 고통의 굴레가 아니라 예수님의 ‘환대’가 극적으로 드러난 자리”라고 말했다. 또 “십자가에서 두 팔을 벌린 그 모습은 고통의 자세이면서도 동시에 누구든지 받아들이는 예수님 ‘환대’의 모습”이라며 “그렇기에 WYD의 가장 큰 가치는 환대라는 것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동참해 모든 이를 환대하고 받아들이자”고 당부했다. 이어 사제단과 젊은이들은 무릎을 꿇어 침묵 기도 후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교회를 위한 기도 등 10개의 보편 지향 기도를 바쳤다. 십자가 경배 예식에서 사제가 “보라, 십자 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를 선창하자, 신자들은 “모두 와서 경배하세”로 화답한 다음 깊은 절을 했다. 이날 WYD 상징물과 함께하는 수난 예식 중 젊은이들은 각자가 적은 기도 지향을 봉헌했다. 성기화 명예기자
4월 2일 서울대교구 가락시장준본당(주임 조대현 바오로 신부)의 ‘하상바오로의 집’은 달걀을 포장하는 신자들로 북적였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가락시장 상인들에게 건넬 부활 달걀을 준비하는 현장이었다. 본당의 부활 달걀 나눔 행사는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가락시장에도 성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성당이 가락시장 청과동 3층에 위치해 있고, 눈에 띄는 십자가 등도 없는 탓에 성당의 존재를 모르는 상인들이 많았다. 본당은 행사 이후 상인들의 인식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달걀 준비를 위해 신자들은 3~4일 동안 작업에 매달린다. 첫째 날에는 달걀을 삶고, 둘째 날에는 봉투에 성당 위치, 미사 시간, 부활 소식 등을 담은 안내지를 넣어 포장한다. 이후로는 상인들이 일하는 시간대에 맞춰 포장된 달걀을 직접 전달한다. 올해도 부활 달걀 약 5000개를 나눴다. 본당은 행사를 점차 확대해 달걀 1만 개를 나누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본당은 이러한 나눔이 선교로도 이어진다고 밝혔다. 냉담 교우인 상인이 달걀을 받고 성당에 다시 나가거나, 답례로 본당에 감사 예물을 봉헌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달걀을 보고 “이제 또 부활이네요”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행사는 신자들에게 선교의 보람도 주고 있다. 문병규(프란치스코) 씨는 “주변 상인들이 안내지를 보고 시장에도 성당이 있었냐고 물으며 신기해한다”며 “잘 보이지 않는 성당을 알릴 수 있어 뿌듯하다”고 전했다. 정명선(글라라) 씨도 “달걀을 나눌 수 있어 즐겁다”며 “나눔 이후 성당에 간다는 분들을 볼 때마다 선교하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아르스노바 합창단 제13회 정기공연이 4월 18일 오후 5시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열린다. ‘이철수 작곡·편곡’을 부제로 열리는 이번 공연에서는 아르스노바 합창단 이철수(베네딕토) 지휘자가 작곡·편곡한 성가를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연주로 선보인다. 공연에서는 「가톨릭 성가」에 수록된 <주 하느님 크시도다>, <주 예수 따르기로>, <마리아 모후여>, <무변 해상>, <수난 기약>, <예수 부활하셨네> 등을 편곡한 성가를 합창단이 연주한다. 또한 이 지휘자가 새로 작곡한 <작은 기쁨되게 하소서>,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 <주님은 나의 목자>, <사랑이 없으면> 등 4곡도 이번 공연에서 초연된다. 이 무대에는 아르스노바 합창단과 함께 소프라노 정아영·홍민정, 바리톤 이병철이 출연한다. 부산시립교향악단 지휘자를 역임한 이철수 지휘자는 현재 가톨릭 성음악 동호회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성가 작곡·편곡집」과 「화답송집」을 비롯해 16권의 성가집과 미사곡집을 발간했다. 2003년 아르스노바 합창단을 창단해 지휘하고 있다. 합창단장 양재동(라파엘) 씨는 “지난 1년 동안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곡들을 이제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됐다”며 “이번 공연과 함께 이철수 지휘자의 작곡·편곡집도 출판돼 한국교회 성음악 발전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예수회 호주관구 김성기(안드레아) 신부가 서울 답십리동 하늘병원에서 개인전 ‘빛을 찾아서 IV’를 연다. 사단법인 성 아가다가 주관하는 전시는 4월 10일부터 한 달간 하늘병원 1층 로비와 2층에서 열린다. 전시는 병원을 방문하는 환우와 보호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기획됐다. 성 아가다는 경제적 취약계층의 의료와 학업 지원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시 수익금 전액은 사단법인을 통해 의료 지원, 미혼모 후원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지난해 진료를 위해 하늘병원을 찾은 김 신부는 성 아가다 이사장인 조성연(요셉) 하늘병원 원장과의 대화를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동참하고자 전시 참여를 결정했다. 1978년 홍익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김 신부는 1995년 예수회 호주관구에 입회해 멜버른 신학대학교에서 신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05년 시드니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2022년 기도 중 자신의 재능을 다시 살리라는 마음의 응답을 받은 것을 계기로 20여 년 만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후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삼으며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간 호주 시드니 한인성당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메주고레성당을 비롯해 한국의 일산, 용인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김 신부는 서울에서의 첫 전시를 앞두고 있다. 김 신부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했다”면서 “이번 자선 전시회가 도움이 필요한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17세기 프랑스 작곡가 마르크 앙투안 샤르팡티에(Marc-Antoine Charpentier· 1643?~1704)의 음악에는 두 가지 결이 존재한다. 하나는 루이 14세 시대 문화의 영향을 받은 장엄함이고, 다른 하나는 내밀하고도 영적인 교회음악을 향한 감각이다. 그 가운데 〈포르루아얄을 위한 미사(Messe pour le Port-Royal)〉는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 미사는 1687년 7월 20일, 파리 포르루아얄 공동체를 위해서 작곡되었다고 추정된다. 병에서 회복된 프랑수아 드 알레 대주교를 위한 감사의 의미와, 대주교의 여동생이자 수녀원장이었던 마르가리타 드 알레의 영명 축일이 겹친 자리였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미사 구조에 있다. 입당송, 화답송, 봉헌송, 영성체송에 해당하는 부분이 두 세트로 제시되어, 상황에 따라 성 프란치스코 혹은 성 마르가리타를 축일별로 선택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오빠 프랑수아, 곧 프란치스코와 누이 마르가리타의 이름이 구조 속에 중첩된 것이다. 요컨대 하나의 미사가 복수의 의미와 용도를 수용하도록 짜여 있는 셈이다. 음악적 구성 역시 독특하다. 세 명의 소프라노와 여성 합창 그리고 통주저음으로 이루어진 편성은 극도로 절제되면서도 투명한 음향을 만들어낸다. 과시하지 않는 소박한 선율이 중심을 이루고, 오르간 역시 절제되어 사용된다. 이 곡의 배경으로 우선 ‘얀세니즘(Jansenism)’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는 벨기에 지역인 이프르의 주교이자 루뱅대학교 교수였던 코르넬리우스 얀센의 저작에서 출발한 신학적 흐름으로, 성 아우구스티노의 은총론을 강조하며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 의지보다 하느님 은총의 절대성을 부각했다. 얀세니즘은 교회와 왕권에 의해 반복적으로 단죄·탄압되고 18세기 해체되었지만, 그 엄격한 은총 중심의 영성은 사라지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잔존했다. 작품이 연결되는 지점은 흔히 떠올리는 얀세니즘의 본거지 포르루아얄 데샹(Port Royal des Champs)이 아니라, 파리 포르루아얄이다. 두 공동체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1668년 이후 다른 길을 걷는다. 즉 우리가 기억하는 ‘얀세니즘’ 이미지는 포르루아얄 데샹에 더 강하게 남아 있지만, 미사가 울려 퍼졌던 파리 포르루아얄은 왕권과 교권의 질서 속에서 일정 부분 재편된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음악에서 느껴지는 얀세니즘의 잔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성 수도회와 공동체를 염두에 둔 소프라노 중심의 편성, 과장되지 않은 음색은 당시 얀세니즘이 품고 있던 방향성을 조용히 드러낸다. 이제 그 이름이 남아 있는 장소로 시선을 옮긴다. 얀세니즘의 중심지 포르루아얄 데샹을 찾았던 것은 늦가을이었다. 파리 남서쪽, 베르사유에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도시 경계가 끊기는 지점부터 풍경은 달라진다. 길은 조용해지고, 사람의 흔적은 희미해진다. 안내 표지조차 드물고, 주변은 지나치게 고요하다. 그렇게 홀로 걷다가, 확신이 사라질 무렵 포르루아얄 데샹 국립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편에서 계속〉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