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성 다미아노 성당, 충만한 시간의 완성

불타는 떨기 한가운데에 당신 모습을 모세에게 드러내시며 거룩한 땅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성스러운 장소는 하느님께서 당신 신비를 드러내신 곳입니다. 이 신비를 아시시 성 밖 한적한 곳에 있는 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를 통해 성 프란치스코에게 보여주셨고, 현재는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의 삶을 통해 당신 현존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시리아의 의사이며 순교자인 다미아노 성인에게 봉헌된 성 다미아노 성당은 8~9세기 사이에 처음 지어졌고 1030년까지 베네딕토 수도원의 중요한 경당으로 사용되다가 점차 부서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당 안에 있는 이콘형 십자가는 12세기 익명의 화가가 제작했는데, 성당의 이름을 따 ‘다미아노 십자가’로 불립니다. 성녀 클라라 선종 이후 베네딕토 수도원이 1257년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클라라 대성당으로 이전하면서 이 십자가도 함께 옮겨졌기 때문에 현재 성 다미아노 성당에 있는 십자가는 모조품입니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하는 이콘이라는 말은 ‘비친 상’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거울 앞에 서 있을 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바로 이콘인 것입니다. 초기교회 시절, 눈으로 볼 수 없는 초월적인 대상을 그림으로 그린다거나 형상으로 만드는 것은 교리적으로 우상숭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방교회에서 시작된 이콘의 주제는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 그리고 넓게는 사도들까지만 가능했고, 이콘을 그리는 것도 전문적인 화가가 아니라 영성이 뛰어난 수도자만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항상 단식과 기도를 먼저 하신 것처럼, 수도자는 이콘을 그리기 전 단식기도와 회개를 하고, 지도 사제로부터 신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대상을 그리려 했던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비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콘은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이콘에 그려진 분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고, 이런 이유로 이콘 속 가장 중요한 분은 가장 크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분은 조금 더 작고, 이콘을 바라보는 우리는 이콘 속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콘 속 예수님의 시각으로 평면은 공간으로 확장되고, 우리 또한 그 안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가 기도한 다미아노 십자가가 우리의 시간을 초월하여 지금 내 앞에서도 뭔가를 말씀하실 것만 같이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콘 앞에서 우리는 기도하지만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성화 앞에서는 그림에 대한 감상만 하게 됩니다. 다미아노 십자가에서 무엇보다 먼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지만, 죽음의 슬픔과 고통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는 기쁨의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에서는 고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보내신 성부의 뜻을 이해하시고 모두 이루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머리는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 머리 뒤의 후광이 증명하듯 밝게 빛나고 있고, 예수님 주위의 사람들이나 천사들에게서도 어떤 슬픔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십자가의 신비를 이해하고 있다는 듯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예수님 팔 아래 다섯 사람은 예수님의 모습보다 작지만 십자가에 그려진 다른 사람들보다는 크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직접 본 증인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왼쪽 두 명은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사도 그리고 오른쪽 세 사람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인 클레오파의 마리아 그리고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라고 고백한 백인대장입니다. 백인대장의 이 한마디는 예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살아 계신다는 증언입니다. 성모 마리아 아래 작은 모습으로 그려진 사람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던 로마 병사이자 순교자인 성 론지노입니다. 백인대장 아래 작은 모습의 사람 역시 로마 병사로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으로 예수님의 입을 적셔드렸던 성 스테파톤입니다. 발아래에는 여섯 명이 사람이 서 있고 덜 훼손된 두 명의 사람에게서는 후광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여섯 명은 움브리아 지방의 수호성인으로 성 요한 사도, 성 미카엘, 성 루피노, 성 요한 세례자,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양 팔의 끝에 있는 여섯 명의 천사도 슬퍼하는 모습보다는 놀랍고 영광스러운 광경을 서로 이야기하며,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를 ‘살아 계시며 양팔을 벌려 모든 사람을 맞이하시는’ 예수님에게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머리 위에는 죄명판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말이 라틴어로 적혀있고 그 위로 황금색 옷을 입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고 계십니다. 열 명의 천사가 예수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하늘나라에 오르시는 예수님은 손을 들어 인사하시는 것처럼 밝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머리 위로는 두 손가락을 펴고 올라오는 성자를 축복하며 맞으시는 성부이신 하느님의 오른손이 보입니다. 다미아노 십자가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두 팔과 손을 벌려 우리 모두를 하늘나라로 데려가기 위해 세상 끝 날까지 기다리시는 살아 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 십자가 앞에서 멀리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곁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본 것입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13면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주님의 부르심과 회심 그리고 카이로스의 완성

포목점과 염색업을 하는 부유한 상인 집안에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던 프란치스코에게 세상의 유혹을 떨쳐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프란치스코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당시 황제를 지지했던 도시 페루자와 교황을 지지했던 아시시의 전쟁에 참전하면서부터입니다. 어린 시절 라틴어도 배우면서 남부러울 것 없이 성장한 프란치스코였지만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중인이었지 귀족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 신분 상승의 유일한 방법은 전쟁터에서 공을 세워 기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1202년 부푼 꿈을 안고 페루자와의 전쟁에 참전하였지만, 포로로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인생의 밑바닥을 보았을 것입니다. 지하 감옥 안에서 1년 가까이 갇혀 있던 기간은 고통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참담하고 나약한 모습을 직접적으로 체험한 시간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순간 처음 밖으로 보이는 ‘나’가 아닌 내부의 자신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 진정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지만 아직도 프란치스코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고 귀족이 되고 싶은 열망을 끊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온 프란치스코는 새로운 꿈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위해 십자군들이 모이는 아시시 근처 도시 스폴레토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을 자다 꿈꾸게 되는데 주님께서는 더 많이 베풀어줄 주인을 섬기지 않고 왜 종에게 자신의 삶을 바치려고 하는지 질문하십니다. 그러면서 다시 고향인 아시시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프란치스코는 꿈에서 들었던 음성대로 기사가 되겠다는 욕심을 포기하고 아시시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꿈은 하느님이 프란치스코를 부르시는 중요한 첫 번째 때, 카이로스의 시간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에 대한 개념으로 아이온(αἰών), 크로노스(χρόνος) 그리고 카이로스(καιρός). 세 가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아이온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성을 나타내는 신의 시간입니다. 크로노스는 양적인 개념으로 1년, 1시간, 1분 등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세상의 시간입니다. 카이로스는 질적인 개념으로 측정할 수 없는 순간이나 때를 가리키는 시간입니다. 아이온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만날 수 없는 영역이고, 크로노스는 유한한 존재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영역이며, 카이로스는 사람의 힘으로 만날 수는 없지만 절대자의 개입으로 아이온과 크로노스를 이어주어 새로운 순간을 경험하게 해주는 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카이로스는 하느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강요와 명령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하심의 시작이고 그 완성의 때는 오로지 ‘사람의 응답’에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선택을 위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깨어있는 이성과 믿음인 것입니다. 기사가 되겠다는 욕심을 포기하고 아시시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프란치스코의 온전한 선택과 믿음,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에서 완성된 충만한 시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프란치스코에게 무작정 아시시로 돌려보낸 것이 아니라 세상과 싸울 무기를 주셨습니다. 꿈속 예수님의 손이 향한 궁전 안에 있는 무기들은 사람을 죽이는 칼과 창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평화를 지키는 십자 표시가 들어간 방패들이었습니다. 하늘나라를 위한 싸움의 무기는 세상의 칼이 아니라 믿음의 방패임을 프란치스코에게 명확하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에페 6,12-16) 고향으로 돌아온 프란치스코는 아시시 성 밖에 있는 허물어져 가던 다미아노 경당에서 하느님의 뜻을 청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제대 위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이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영혼의 안식을 느끼며 십자가를 응시하였습니다. 그 순간 십자가로부터 울리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세워라.” 이 말씀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처음엔 문자적으로만 알아들어 자신이 기도하고 있는 반쯤 허물어진 다미아노 경당을 수리하라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허물어져 가는 집을 고쳐 세우라는 것은 작은 성전인 개인의 회개와 큰 성전인 교회의 회개를 말씀하시는 것임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프란치스코에게 회개하라는 이 말씀은 과거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그림 <십자가의 기적>을 보고 있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 앞으로 몸이 기울어져 다가가는 프란치스코의 모습과 놀란 얼굴, 그리고 벌어진 손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모두를 회개의 시간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13면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교황권의 승리와 프란치스코의 탄생

799년 레오 3세 교황이 프랑크족의 왕 카를로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축성하며 시작되었던 교황과 황제의 ‘양검론’(예수님께서 영적인 칼은 교황에게 세속의 칼은 황제에게)이라는 공생관계는 서로의 욕심으로 오래 가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주교 서임권이라는 문제로 촉발된 싸움은 ‘카노사의 굴욕(1077년)’이라는 사건으로 하인리히 4세 황제가 그레고리오 7세 교황에게 무릎을 꿇으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세속의 권한을 둔 교황과 황제의 대립 시기를 지나 프란치스코가 활동하였던 13세기는, ‘교황은 자체 발광체인 태양, 황제는 그 태양 빛에 의존해서 빛나는 달’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교황권이 최고의 정점을 찍은 인노첸시오 3세 교황(1198~1216) 시절이었습니다. 교황의 축복 없이는 황제라는 칭호를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비록 군대는 없었지만, 파문이라는 막강한 교회 무기로 살아있는 황제도 지옥으로 보낼 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원하신다’라는 구호 아래 성전이라 불리는 십자군 전쟁이 교황의 지휘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시기로, 마치 예수님께서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 완성될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자치도시라고 불리는 코무네(Comune)가 등장할 정도로 상공업이 도시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영주들이나 수도원장들의 예속된 삶에서 벗어나 자기의 능력을 더 중요시하는 자유 시민의 삶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황권을 태양이라 부르던 시대, 상공업 발전과 자치도시 번성 탄생 설화로 예고된 ‘가난의 영성'…세속·영성 기로에서 가난의 길 선택 프란치스코는 1182년 아시시에서 태어나 1226년 44세의 나이로 아시시 성 밖 포르치운쿨라에서 선종하였습니다. ‘제2의 그리스도’라는 별명처럼 프란치스코에게는 신비로운 탄생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어머니 피카 부인은 아이를 따뜻한 집 안에서 낳으려고 하였지만 산파의 어떤 도움도 소용없이 산고만 더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순간 지팡이를 짚고 집 안으로 들어온 한 순례자는 예언자처럼 피카 부인에게 이야기합니다. “이 아이는 편안한 집 안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려면 집 밖의 마구간으로 가야 합니다.” 피카 부인은 순례자의 말을 믿고 마구간으로 가서 기적적으로 프란치스코를 출산하게 됩니다. 프란치스코가 선종하고 300년이나 지나서야 문서상으로 처음 등장한 이 탄생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요? 아마도 마구간이라는 탄생 장소의 진위를 밝히려 했다기보다는 그의 삶은 첫 순간부터 예수님을 닮으려 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의 앞날에 관한 이야기는 조토 디 본도네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시시의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한 사람이 프란치스코를 볼 때마다 그를 통해서 하느님의 위대한 일이 이루어질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공경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예언이라도 하듯 프란치스코 앞에 자기의 망토를 깔아 그 위를 걸어가도록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간적인 토론을 하고 있고, 프란치스코 또한 자신 앞에 벌어지는 상황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에게 망토를 깔아준 사람의 눈을 보면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이성으로 판단하여 프란치스코를 알아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에 이끌려 그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프란치스코의 인간적 갈등은 계속됩니다. 아직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프란치스코지만 자신의 본성인 측은지심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하루는 길에서 가난한 기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에게 자신의 망토를 주저함 없이 벗어줍니다. 이 모습은 비신자 시절 투르의 마르티노 성인(316~397)이 거지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에게 자신의 망토를 잘라 주었던 이야기를 연상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림 속 배경을 보면 왼쪽 언덕 위에는 세상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보이고 있고 오른쪽 언덕 위에는 베네딕도 수도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언덕 골짜기의 두 선이 만나는 지점에 프란치스코의 머리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세속을 상징하는 마을과 영적인 삶을 상징하는 수도원 사이에서 프란치스코는 아직 자신의 삶을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수도원 쪽을 향해 있는 그의 몸과 가난한 사람을 향한 그의 자비로운 행동은 앞으로 프란치스코가 어떤 삶을 살지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크로노스의 양적인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카이로스의 질적인 시간인 주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충만한 시간인 그때는 오로지 주님께서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때를 잡기 위해 사람은 등불을 들고 깨어있는 여인처럼 기다려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함께 망토를 부여잡고 서 있는 프란치스코의 모습 속에서 그때가 멀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발행일 2026-01-11 제3474호 13면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자의 모범, 성 프란치스코

지금은 ‘성지’로 불리는 장소가 다양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거룩한 땅(Terra Santa)’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부활 및 승천하신 예루살렘에 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중세 이후엔 정치적, 지리적, 그리고 종교적 이유로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있는 로마와 큰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세 군데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성지순례란 하늘나라를 선포하러 오신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세상에서 살며 지었던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과 완전한 용서 즉, 연옥의 벌에 대한 전대사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은 예수님께 직접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장소라고 한다면 로마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사도들의 전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집을 떠난다고 모두가 순례자라고 불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시절 자신이 살던 동네를 떠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용기와 함께 하느님께 나의 죽음까지 맡길 수 있는 전적인 믿음이 필요하였습니다. 그 누구도 성지에 언제 도착할지 그리고 다시 집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였고 순례 중 유일한 희망은 하느님 섭리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한평생을 바쳐 살아간 사람들이 수도자라고 한다면 순례자는 한시적인 시간 속에서 자기가 살던 세상을 벗어나 또 다른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수도자처럼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순례는 또한 지역적으로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왔던 일상이나 습관, 악습, 생각, 행동들까지 모두 세상에 던져 버리는 자기 포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수도자가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 주님의 부르심이 필요한 것처럼 순례자도 순례를 시작하기 전 자기 결심이 필요하였고 교회 전례를 통해 순례자의 신분으로 바뀌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순례자를 식별할 수 있는 세 가지 요소가 있었는데, 바로 순례복, 지팡이 그리고 배낭이었습니다. 수도자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외적 표시로 수도복을 입는 착복식을 하는 것처럼, 순례자도 순례 기간 일상의 세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의 삶 안에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는 표시로 본당 신부님 앞에서 순례복을 입는 착복식을 하였습니다. 죄의 완전한 용서 향해 시작된 순례 생사 하느님께 맡긴 믿음의 여정 비움 통해 완성한 ‘길 위의 영성’ 이것으로 순례자는 교회의 가장 낮은 성직자가 되고 순례 중 만난 같은 순례복을 입은 사람들과는 국적을 떠나 깊은 동료애와 함께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자화된 규칙서는 없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청빈과 하느님께 모든 마음을 드리는 정결함, 그리고 순례 중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순명의 마음이라는 특별한 길 위의 영성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순례자들은 예수님 말씀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길 위로 예수님을 따라나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길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참회의 기도를 하고 사람들에게 애덕을 실천하고 죽음을 맞기까지 하며 하느님께 다가가는 영적인 여정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중세의 수도원 중에는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에 길 위의 영성을 먼저 살아보도록 권고하였고, 이런 길 위의 순례 영성을 충실히 살며 수도회를 완성한 대표적인 창립자가 성 프란치스코였습니다. 순례자가 들고 가는 나무 지팡이는 순례 중 만날 수 있는 짐승이나 산도적들과 싸울 수 있는 무기가 되어 주기도 하였지만, 지팡이의 첫 번째 목적은 순례자가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또 다른 발의 역할이었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있음으로써 순례자에게는 세 개의 발을 가지게 된 것이며, 이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순례자는 홀로 걸어가지만 혼자 걸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성부이신 오른발과 성자이신 왼발 그리고 성령의 하느님이신 지팡이에 의지를 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는 전적인 믿음의 여정이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물건은 순례자용 배낭입니다. 배낭은 크지 않게 하였고 죽은 동물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크지 않게 만든 이유는 순례 기간 자신의 계획이나 의지를 덜어내고 오로지 하느님 섭리에 믿음을 두는 사람으로서 음식이나 소유물도 최소한의 것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죽은 동물 가죽으로 만든 것은 순례 중 악습과 욕망, 배고픔과 목마름 등을 죽여야 하는 순례자의 금욕주의적 삶을 가르치고, 또한 죽음이 나와 멀지 않은 곳에서 함께 걸어가고 있지만, 이 죽음은 나를 슬픔으로 끌고가는 것이 아니라 프란치스코가 이야기한 것처럼 하느님 아버지께 친절히 인도할 누나와 같은 것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순례는 나 중심이 아닌 하느님이 중심이 되어 천국으로 향하는 길 위의 영성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시고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례자가 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 은총의 빗물이 채워질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한한 그릇이 아닙니다. 마음 그릇의 한계를 넘으면 근심과 걱정이라는 것이 다가오기 시작하고 하느님 은총의 빗물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마음 그릇 밖으로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이 은총의 빗물이 채워질 때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이 기적의 영성을 현실로 보여준 사람이 바로 성 프란치스코이고 우리를 다시 800년이 지난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글 _ 이관술 요한 마리아 비안네(성지순례 가이드) 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성지순례학 마스터 과정 수료한 성지순례 가이드로, 현재 로마에서 순례자들에게 성지의 역사와 신앙을 깊이 있게 전하는 가이드 활동을 하고 있다.

발행일 2026-01-01 제3472호 13면